바람소리 - 1부
본문
언젠가 200번째를 넘기면 팬 써비스 차원에서라도 장편을 하나쯤 써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기억이 내내 속을 괴롭혔었지요. 완벽한 탈고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 그리고, 단편과 다른 면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두려움…..모든 것을 떨치고 장편을 써야 한다는 심정 하나 만으로 무모한 발걸음을 떼어 봅니다. 이 장편이 끝나면, 다시 이제까지의 패턴대로 단편으로 돌아갈 것 입니다. 쌩뚱맞은 장편 타령이라도 살갑게 맞아주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바람소리-
제 1 부 : 새벽의 왈츠
어두운 방안에는 TV가 켜진 채로, 새롭게 물꼬가 터져, 오래 전의 모습처럼, 다시금 흐르고 있는 청계천의 모습과 함께, 그를 축하하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어지럽게 넘실대고 있었으며, 그 그림자는 울렁대며, 어두운 방안을 이리저리 휘돌고 있었는데,
‘흑흑….자기야…..왜 그래…오늘…평소랑….넘….넘….넘……’
‘우극…윽…윽…..다르긴……이렇게 주구장창 마누라 사랑하는 남자 봤쓰?....윽윽…어후….죽여….’
‘제발……제발…..일찍 싸지나 말지…그래도..그래도…이건…….나….나….아침에….중요한 회의….있는데…..이렇게 하다간….하다간…..’
‘이렇게 하다간…둘다 뻑이 가는 거지 뭐….윽윽..윽윽…어후…어후….나도 바쁜 사람이야…..이거 왜 이러셔? 자네만 돈 벌러 나가남?..나도….나도…얼쑤…..좇대가리 달린 남자라구…..알아? 지 잘난 맛에 사시는 아주마이……아시갔쓰?...억억…..윽윽…..’
‘어흑….어흑…..쫌더….쫌….쫌….어흐…내가 미쳐……미쳐……피곤하다랄 땐 언제고…..윽윽….어흑…어흑……이렇게나…이렇게나…..날 바셔놓나?....윽윽……악악악…보지 터져…..악악…..윽윽..윽윽…아그그그그그…’
‘이제야, 본심을 야그 하네…..그래 내가 당신이랑, 왜 결혼 한 줄 알아?.....훅훅…윽윽…..고놈의 콧대 드신 건방진 보지, 평생 쑤셔주면서, 윽윽..으극…으극…이다지도 찢어 놀라구 그랬지 뭐유?’
‘으이그….인간 하곤…억억…그래도 오늘은….. 해도 너무 하네…악악악악…고만 쫌 쑤셔….보지….보지…..터….져..악악악악…..
터지기도 했을 것이다. 아내인 윤서의 아랫도리를 바셔 놓을 것처럼, 쳐박아대는 민기의 스테미너는 자지러들 줄을 몰랐기에….민기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의 배우자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싶은 믿음, 그 안에서 끝도 없이 이루어지는 섹스의 도화경……아마도 이런 서로의 결합력이, 사랑을 더 깊게 가꾸어가는 요소가 분명하다고 이해하고도 있었다. 밤이 깊어 지기도 전에 벌어진, 두 사람의 섹스는 이제 그 극한을 향해 치닫기 시작하고…..
‘자기야…..이제 뒤에서……. 그만 쫌 박고, 누워 봐.’
‘또 올라가게?’
‘왜 싫어?’
‘아니, 여성 상위 시대라고는 해도, 끝끝내 마무리는 정상 정복 인감?’
‘으흐흑….자기는 모를껄? 어휴…좋아. 이렇게 위에서 내려 박을 때, 좇끝이 자궁을 툭툭 건드리면서, 온 몸이 자지러지는 그 느낌을…..나, 이 자세 정말 좋아. 이렇게….이렇게….응댕이를 흔들면….우…..우…..공알 껍질이 벗어지는 것 같으면서…..보지 속은 불이 나거덩? 무릎 쫌 들지마, 엉덩이가 걸려서 잘 돌리질 못하잖어? 옳지…..그렇게….그렇게…..아흑…아흑..아흑….’
요분질이 그 상태를 과격하게 몰고가면 갈 수록, 윤서의 흥분은 한계를 넘나들면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헤드 뱅잉이 시작되었다. 얼굴은 고통인지, 쾌락인지도 모를 상태로 일그러져, 입술을 물어대고, 몸의 흔들림과 어우러져, 양쪽 젖꼭지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쏠리며, 쭉쩍대는 보지살과 좇대의 화음은, 그 음절의 마디마디가 처절할 정도로 격한 리듬을 탔다.
‘억억억억…..이게 뭐야?…..이 좇대…대체 뭐야?…….날 이렇게……이렇게 만드는 이 좇대…아흐….나 미쳐…..미쳐…..아흑….보지 속이 다 찢어지는 거 같애…우극….욱욱욱욱……학학학….민기씨 사랑해……사랑해. 다른 년들이랑 이렇게 않 했지? 이렇게 나처럼 미치도록 쑤셔 박으면서 즐겁진 않았지?....어서….어서…얘기해 줘……아! 나 미쳐…..보지 터져…..아! 보지가…보지가…..보지가………후…..욱…….’
민기는 그렇게 윤서가 바스러져 간다고 느꼈다. 그녀의 허릿짓이 그 탄력을 잃어가면서, 급기야, 긴 한숨과 더불어, 돌려대는 엉덩이가 서서히 멈추어지면서, 자신의 가슴 위로 땀에 젖은 젖가슴을 털푸덕 안기며 쓰러지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손수 심을 박아 만든 박달나무 팽이의 회전이 멈추는 것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해도, 벌벌 떨리는 가슴과, 무의식 적으로 아직까지 흔들고 있는, 그 허연 둔부의 들썩거림은, 이미 기세를 잃고 구석으로 나동그라질 태세인 것이, 묘하게도 그 팽이의 비틀거림을 닮아 있었다.
‘그렇게 좋았어?’
‘몰라!….’
민기는 윤서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뿜어져 나온 땀이 식어감에 따라, 차갑게 서리가 내린 것 같은 그녀의 체온이 서늘해지지 않게 하려는 듯, 계속해서 등을 감싸안으며, 팔을 쓸어 내렸다.
‘TV도 안 끄고 이게 뭐하는 시츄에이션 인지….내, 참….’
‘뭐하는 시츄에이션 이냐고? 부부간에 열나 떡 치는 씨츄에이션 이지, 뭐긴 뭐래? 히히히….’
섹스가 끝나고, 누워서 천장을 응시하는 민기와 달리, 윤서는 벌거벗은 것도 아랑곳 하질 않은 채, 침대의 시트를 털어내기에 바빴다.
‘아이그, 그 놈의 결벽……내 못산 다니깐두루…..’
‘결벽은!......자기도 눈이 있으믄 쫌 봐 봐. 섹스만 했다하면, 뭐가 그리도 많이 떨어져 뒹구는지, 원…..이래도 내가 가만히 있어야 돼? 이게 그대로인 채로 잠이 들면, 등짝이 얼마나 가려운지, 알기나 해? 남자들은 무심하기도 하지. 그저 싸고, 질러대면 할 일 다한 줄 안다니깐. 뒤에서 버팅기며, 이런 일까지 하는 마누라의 은공을 왜 모를꼬?’
‘어련하실라구! 우리 이쁜이…..자고로 그게 깨소금이라 하잖수? 부부지간에 사랑이 넘치고, 섹스가 충만하면, 그렇게 깨소금이 허부지게, 우박 떨쿠듯이 떨어진다 하잖어?’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어여 담배랑, 재털이나 갖고 와.’
윤서는 벌거벗고 있는 민기에게도 일감을 던진다.
‘후아!....역쉬….건강에 좇도 않 좋네, 어쩌고 해도, 이 섹스 후에 꾸어대는 담배 맛, 역쉬 죽여…..자기야 안 그래?’
윤서 역시,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코 끝이 싸하도록 치미는 담배의 연기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는 섹스 후의 한 모금….그건 마약과 진배 없다는 생각을 했다.
‘목마르다…..자기야. 물 쫌 떠와. 시원한 걸루다가….저녁을 짜게 먹었나 봐.’
‘오케바리…얼음도?’
‘아니, 얼음 넣으면, 물도 얼마 안되고, 밤사이 얼마나 컵 주위로 질질 대는데……’
‘그래?’
‘꼭 싸고 나서도, 찔끔찔끔 삐대는 자기 좇물처럼 말이야….호호호….나도 다 베렸다….도도한 민윤서…..강민기 만나서 바디 조져, 씹구녕 벌창 돼, 아가리까지 걸레 됐으니, 볼 짱 다 본거 아니냐구?’
‘무신 말쌈을 그리도 섭하게 허시낭? 그럼 난 뭐 하늘로 승천 했남? 주구장창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서리, 아랫도리 노력봉사 해가며, 게다가 돈까지 벌어와야 하는 난, 그럼, 마님곁에서 헤벌레 하고 서 있는 의리의 싸나이 돌쇤 감?’
‘하여간 한마디도 질 줄을 몰라요, 글쎄….’
민기는 벌거벗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보면 어쩌려구?’
‘보긴 누가 본다구? 아니, 이 아파트 꼭대기 15층까지 창문에 대롱거리며, 매달리다 기어이 본 게, 물 뽑아 늘어진 남자 좇대가리? 히히…..못 보여 줄 것도 없지 뭐유?’
‘비…익……비…..익…..비…..익’
‘또 시작이다.’
물 심부름을 시킨 윤서가 담배를 피우다 말고, 침대 옆에 놔둔 삐삐의 진동음을 듣고서, 비아냥 거렸다.
‘저 구닥다리 삐삐 좀 다른 걸로 바꾸면 안 되남?’
‘아무리 핸폰이 잘 터져도, 삐삐만 못하거덩…..보지 찾아 삼만리 하면서, 휴게텔 이나, 대딸방에서 노니닥 거릴 때, 핸폰 안 터져 봐, 다 이게 노동력 착취의 시발점 인 거, 당신도 잘 알면서……’
‘그래도 그렇지, 핸폰으로 TV 때리는 요즘, 삐삐가 뭐야, 삐삐가….’
‘대략 난감 허드락두, 이해하셈!’
민기는 어두운 거실을 지나, 식탁 옆의 냉장고로 다가갔다. 냉장고 문을 열자, 그 조그만 냉장고 안의 불빛이 그렇게 밝게 보일 수가 없었다. 들고 간 컵에 물을 따르면서, 밀린 숙제를 끝낸 심정으로, 기어이 섹스를 치룬 뒤에 날라온 삐삐의 신호음이었기에 망정이지, 열나 쑤셔대는 와중에 그랬더라면, 기분도 잡치고, 파장이 되었을 것이 뻔한 그 소중한 시간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손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물컵의 감각……어두운 실내와 달리, 밖은 오렌지 빛 네온과 더불어 길게 꼬리를 끌고 이어져 있는 다리의 차량들이 멀리서 나마 구분이 가고 있었고, 그 불빛에 반사되어, 잔주름 처럼 일렁이는 한강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 여기….’
‘꿀꺽….꿀꺽….꿀꺽….’
윤서가 심히 목이 말라 있었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 목이 탔나? 허긴, 바락바락 소리질러, 헉헉대며, 숨 토해내, 누구라도 목이 안 마르고 배기겠나 말이야, 안 그래?’
‘자꾸 장난치면 이 물, 확 부어 버린다?’
옆으로 샐쭉 노려보는 그녀의 얼굴에 색기라기 보다는, 웃음이 더 많이 실려 있음으로 해서 민기는 그녀를 껴안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으이그, 우리 애기….이렇게 구여우니, 내가 살지..내가 미쳐….’
갈증을 면했다 싶은 윤서가 ,민기의 옆구리를 파고 들면서, 자리에 누웠다.
‘꼭 지금 가야돼?’
‘번호 보면 모르냐? 가야지, 그럼 여기서 뻐팅기다, 누구 책상다리 빠지는 꼴 보려구?’
‘그래도 그렇지….아직도 이렇게 보지에서 당신 좇물이 질질 새는데, 그걸 느끼면서 밤새 혼자 자라구? 이거 해도 너무 허는 거 아냐?’
‘이 사람이 그래도! 서방님 허시는 일에 왜 이다지도 딴지를 걸고 계실까?’
‘딴지가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민기는 어기적 어기적, 바지를 껴 입고, 대충 옷을 들쳐 입는 도중에도 사이사이에, 자신을 올려다 보면서 옆으로 누워 있는, 윤서의 쏠려 늘어진 젖무덤을 살살 어루잡곤 했다.
‘나 나간 사이에, 이 이쁜 젖탱이, 딴 놈 입에 물리기만 해 봐, 기냥 너 죽고, 나 딴년 꿰찰 쭐 알라구, 알으?’
‘하이구, 기깔난 마누라 독수공방 시키는 주제비에, 단도리는! 아니, 어느 누가 노는 보지, 마다한대디? 떤져주면 받아먹기도 바쁜 이 시상에 설라무네….’
‘조, 조, 째진 아가리로 설쳐대는 말 폼새 허고는….내 나가서 한 시간 간격으로 전화 때릴테니 알아서 해.’
‘잠은 언제 자구?’
‘아, 참 그렇지, 허나, 생긴 거랑 틀리게 우아래 입술이 그렇게도 설치는데, 잠을 자는지, 보짓살을 까대는지, 알 게 뭐야? 그러니, 시시때때로 확인 사살은 필수 아닌감!’
‘필수는 뭔 놈의 필수? 자기가 무신 열공허는 고딩이니? 필수니, 핵심이나 찾고 앉았게?’
‘암튼 세상 말에도 있잖수? 자나 깨나 말좇 조심, 자는 아내 다시 보자… 이런 표어도 있잖어?’
‘하여간 대가리에서 튀어나오는 주제비가 노상 저거니, 내가 못살아…’
‘못살긴? 그 놈의 좇대가리 땜시롱, 진정한 삶의 의의가 있다고 내 위에서 울어 재낄 때가 바로 10분전 아닌감? 씰데 없는 소리말고, 잠이나 쳐 자셈. 내 얼릉 돌아오께.’
‘차 조심하고..뽀뽀!’
윤서가 민기의 얼굴에 상체를 들어, 입술을 내민다. 단촐한 입술끼리의 키스였지만, 그 와중에도 윤서는 못내 보내기 아쉽다는 듯이 상체를 수그린 민기의 앞섶을 손바닥으로 널널하게 쓰다듬으며,
‘일 한답시고, 요 몽둥이 맘대로 돌렸단 봐. 아주 아작을 내 놓을 테니깐두루……’
‘오케바리, 마…아….님…..어여 주무시지유! 소인 장작 패러 갈꺼 구만유!’
‘호호호…..’
민기의 우스개에 따라 웃어주는 윤서의 젖이 출렁이고 있었다. 보기에도 소담스럽지만, 백옥 같은 피부 곳곳에, 민기가 빨아자신 키스 마크가 또한 울긋불긋하니 단풍이 든 것처럼 장관이었다.
‘아효…자기 아까 너무 쎄게 빨았나봐. 젖꼭지 떨어질 거 같이 얼얼해…..으이그….’
‘난 아까 자기가 얼마나 씨게 빨아던지, 좇대가리가 한 5센치는 더 길어졌네.’
‘당신 껀, 무신 밀가루로 만들었대니? 빤다고 다 늘어나게? 어여, 헛소리 그만하고, 가 봐. 늦겠네…..정리되는 대로 전화 해, 알았쥐?’
‘알으…알으……그럼 나 갔다 올께.’
역시나 두 사람의 작별에는 시간이 꽤나 걸리고 있었고, 그 사이에 서로의 몸을 더듬는 안타까움과, 이 밤을 같이 지내질 못하는 아쉬움이, 온 전신에서 스멀스멀 우러나오고 있는 것이 쉽사리 보이고 있었다. 민기는 문을 열고 현관을 닫으면서, 승강기의 단추를 눌렀다. 우웅하는 기계음과 함께, 어느 층에선가 머물러 있었을 승강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놔 두고 아침이 되면, 기계처럼 일을 나가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둔 때문이라고 한다면, 세상이 너무 시덥지 않느냐는 말이 기억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처럼 한 밤중에 일이랍시고, 마누라를 집에 남겨두고, 집을 나서는 자신이 조금은 한심스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차에 올라타면서 엉덩이를 통해 느껴지는 자동차 가죽시트의 차가운 감각은, 사람을 긴장 시키는 구석이 있다고 믿어졌다.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강변 고속화 도로를 타기 전에, 민기는 항상 아파트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15층 자기 집을 올려다 보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차창을 여니, 싸한 밤공기가 차 안으로 밀려 들고, 어두운 가운데 층수의 구분도 잘 되질 않는, 우뚝선 아파트의 첨두를 향해 고개를 내어밀고, 허공을 향해, 잘 다녀 오겠다는 인사를 되뇌이는 것이었다.
‘윤서야, 갖다올께…..좋은 꿈 꾸고….’
그렇게 얘기하는 도중에, 분명히 자기 집 호수로 보이는 15층의 거실에 불이 들어왔다.
‘어? 저건 우리 집인데….뭐 하는 거지? 아니, 이 여자가 잠 안자고 뭐하는 거야? 아침에 중요한 회의 있다고 앵앵 거릴 때는 언제고? 혹시 너무 어두워서 내가 잘못 봤나?’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결혼 이후부터 한결같이 올려다 보던 그 위치를 자기가 실수할 리 없다고 여기는 민기의 갸우뚱한 고갯짓…..그러나, 곧바로 거실의 불은 꺼지고, 다시금 아파트는 어둠에 휩싸였다.
‘내가 잘 못 봤나? 허긴, 잘 텐데, 뭐….’
그러나, 한번 눈길이 멈춘 그 베란다로 민기는 왠일인지 눈을 떼질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바람이 소슬하니 불어 오면서, 목 주위에 소름을 불러 일으켜, 창문을 닫아야 겠다고 생각한 즈음, 방금 불이 꺼진 그 베란다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민기는 닫으려는 차창을 그대로 두고, 목이 아프도록 위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건 분명히 사람의 어른 거리는 그림자가 분명했다.
‘어..어….어….어…저건……’
보다 못하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가는 민기…..어두운 가운데 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커다란 짐덩어리를 둘이서 나누어 들고, 베란다를 통해 내던지려는 것이 목격 되었기 때문이었다. 차를 열고 나갔을 때, 이미 그 물체는 쏜살같은 빠르기로 공중을 가로질러 추락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랬듯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한 것처럼, 그 물체는 아무 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는 허공을 향해 미친듯이 떨어지고……
‘쿵…쿠쿵…..’
바로 눈 앞에서 민기는 고무공처럼 바닥에서 튕겨져 올라,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그 짐짝을 눈 앞에서 목도하고야 만다. 그건 사람이었다. 그것도 벌거벗은……머릿속이 복잡했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것이 15층이었다면, 윤서가 자고 있는 우리집 이었을 텐데, 내가 내려와 차를 몰고, 주차장에서 나온 그 짧은 시간에,…….아니야, 그럴리가 없어….윤서가 아닐 거야….윤서가…..
‘아저씨, 경비 아저씨! 여기 쫌 와 보세여….큰 일 났어여!’
때 아닌, 땅을 울리는 굉음에 경비 아저씨도 놀란 듯이, 손전등을 들고, 경비실에서 튀어 나왔다.
‘뭔 일이래?’
‘아저씨, 사람이, 사람이 떨어진 거 같아여….저기…저…..저…’
민기는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고 있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몸뚱아리는 평범해 보이질 않고 있었다. 눈알이 튀어 나올 것처럼, 숨이 가빠진 민기는 혹시라도 윤서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상의 저고리를 벗어 들었다.
‘엑? 이기 뭐여? 머리가 없잖여?’
바닥에 뒹구는 그 시신에는 머리가 없었다. 그 대신 가슴이 곱추처럼, 풍선마냥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참혹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추락의 충격으로 두부가 흉골을 부러뜨리면서 가슴 안으로 말려 들어간 형상이었다. 민기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손가락을 살폈다. 그 와중에 얼굴도 구분이 가질 않으니, 그 방법 만이 윤서인지, 아닌지를 확인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만지지 말어! 젊은 사람이 겁도 없이…...근디 워디서 떨어졌디야?’
경비 아저씨는 허공을 올려다 보면서, 아무리 살펴 봐도, 불이 새로이 켜지는 거실이나, 베란다가 눈에 띄지는 않고 있었다. 다행히 가무잡잡한 팔다리 하며, 손가락에도 반지는 없었다.
‘휴, 아니네.’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란 거여?’
그저, 보이고 있는 체중이나, 키가 비슷했을 따름이고, 가슴 사이로 파 묻힌 머리를 타고 낑겨 있는, 치렁한 머리결이 많이도 흡사하단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누가? 아까 본 장면이 확실 하다면, 그건 이 여자를 베란다를 통해 아래로 떨어뜨렸다는 얘기인데, 소리도 지르질 못한 상태에서 던졌다면, 이미 여자를 죽여서?......민기는 온갖 생각을 하다가, 빵빵대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 보았다.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자리도 자리였거니와, 통로를 막고, 운전석을 열어 놓은 채로 나와 버린 탓에, 뒷차가 가지도, 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거 지송합니다. 저 앞에 사고가 나서리…..곧바로 뺄게여.’
차 안을 살펴 볼 사이도 없이, 무신 큰 죄나 저지른 사람 마냥, 민기는 차에 올라타서 쏜살같이 차를 몰아,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 호흡과 몸의 떨림이 진정 되기도 전에, 민기는 차에서 내려 부리나케 승강기를 잡아탔다. 일이고 뭐고 간에, 우선 윤서의 안전을 두 눈으로 확인 해야만,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떨꺼덕…’
혹시라도 잠이 깊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괜한 호들갑을 떤다고 할까봐, 민기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자, 손잡이를 붙들었다. 잠겨 있었다면,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했는데, 문은 슬그머니,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안으로 열려지는 것이었다.
‘이기 무신…..벌써 사고난 거 구경갔나?’
거실은 불이 꺼진 상태 그대로 였고, 민기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안방으로, 자기 집이었지만, 신발을 신은 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약하게 코를 고는 윤서의 기척은 들리질 않고 있었다.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보니, 방안에는 있어야 할 윤서가 보이질 않았다.
‘어?’
방안에 잠자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민기의 기대가 깨어지자, 다시금 의심과 불안이 덮쳐왔다. 아까의 그 시체가 그럼 혹시 윤서?....
‘아니야, 그럴 리가…..손가락에 결혼 반지도 없었는데….’
또다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방안을 둘러 봤다. 어질러진 침대 시트 하며, 열려 있는 옷장, 그리고, 결정적으로 있어야 할, 윤서의 핸드백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나 들고 다니는, 집에 돌아오면,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 할 그 핸드백….게다가 일거리를 들고 다니던 서류가방도 제자리에 없기는 마찬가지 였다. 갑자기 두 다리의 힘이 풀리며, 등에서는 식은 땀이 좌악 솟았다. 민기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민기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벌떡 일어나, 방에서 뛰어 나갔다. 열려진 현관문을 박차고, 현관을 마주보고 있는 앞집의 인터폰을 누르려고 손을 가져가다가, 흠칫 놀라고 만다. 삐꼼히 열려진 현관, 그리고, 미친듯이 새어 나오고 있는 바람…..그건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 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현상 이었다. 베란다나 창문을 열면, 기압차로 인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바깥의 공기순환에 의한 압력, 바로 그것 이었다. 민기는 겁도 없이, 앞 집의 현관을 열고 들어갔다. 어둡긴 했어도 눈 앞에 바로 들어오는 아수라장…..모든 기물들은 처참하게 파괴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열려진 베란다의 창문을 통해 기어 들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거실의 커튼은 미친년 치맛자락 처럼 허공에 펄럭이고 있었다. 신발 바닥에 버적이면서 밟히는 유리조각의 파쇄음을 들어 가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방쪽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안은 극도로 어질러진 상태였고, 모든 물건은 무엇을 찾으려고 한 것처럼 까발려져 있었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윤서가 평소에 의심이 많던 그 여자, 나가요 라느니, 이혼녀가 분명하다랄지, 혹시나, 유명 인사의 숨겨진 첩이나, 세컨드 정도 되질 않겠느냐고 더듬이를 삐적대던 윤서의 참견을 나무라던 일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혔다. 민기는 조용히 그 자리를 나왔다. 문을 조용히 닫아 걸고, 돌아서려는데, 번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아! 현관문….’
얼마전, 민기는 새로 나온 제품이라며, 현관의 시건 장치를 바꾸자고 윤서와 결정한 것이 생각났다. 시건장치는 제대로 교체 했는데, 멀쩡한 쇠문에 쓸데없는 흠집을 남긴 그 결과를 두고, 예정에 없이, 현관문을 다른 색으로 칠하자고 해서, 마지못해 승낙을 했던 그 일…..그랬다. 아파트의 기본 색깔과 다른 민기의 현관은 짙은 포도주 색이었고, 그 여자의 집은 아파트에서 공동으로 정한 그대로의 아이보리 색 이었다. 현관을 칠하면서 떼어 놓았던 호수 표시를 달아달라고, 수리 후에 윤서가 노래를 불렀건만, 차일피일 미루었기에, 누구든 호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헷갈릴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떨어져 죽은 그 여자는 바로 앞의 집 여자가 분명했다. 왜 죽임을 당한 거지? 민기는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면서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어른 거렸던 그림자들은 이미 그 여자를 죽이고, 밖으로 던졌다?
‘이거야, 원…..근데 이 여자는 한 밤중에 워딜 간 거야? 물이나 마셔야 쓰겄네……’
민기는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갈증에 냉장고를 향했다.
‘어? 이게 뭐지?’
물을 먹으려고 손을 뻗치다가 휘갈겨 쓴 내용의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민기씨,
아무 것도 묻질 말고, 이 메모 보는 즉시,
숨어, 어디든 안전한 곳으로.
핸폰도, 신용카드도, 쓰지 말고,
차도 몰지마.
추적당할 수 있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고….
이유는 지금 당장 말할 수 없어.
난 잘 있을테니 걱정말고…
어떻게든 연락할 방법이 있을거야.
-사랑하는 윤서로부터-‘
민기는 두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를 죽인 놈들이 찾고 있던 여자가 바로 윤서?....민기는 그와 동시에 길을 가로막고 있던 자신의 승용차를 빼라고, 경적을 울리던 그 자동차에 탄 두 남자의 상반신이 눈 앞에 어른 거렸다. 까만색 도꾸리를 유니폼 처럼 착용한 번뜩이는 눈매의 그 남자들, 이제서야, 민기는 겨울철이 아닌대도 불구하고, 검은 장갑을 착용한 두 사람의 시퍼런 살기가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계속-
P.S.: 지금 출장중인 관계로 2부는 다음 주부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살인 사건과 함께 기구한 운명으로 향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온 민기와 비밀을 간직한 윤서의 스토리가 펼쳐질 바람소리를 많이 읽어 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블루스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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