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바람소리 - 9부

본문

바람소리-




제 9 부 : 술을 부르는 녹차




‘헉헉….헉헉’




책상에 엎드린 채로, 현석의 무자비한 좇질 세례를 받았던 조 이사는, 그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 앉고야 말았다. 현석은 땀에 흠씬 젖어서 술냄새를 풍풍대고 있는, 조 이사의 몸뚱아리가 방금 전 섹스로 인해 광란의 도가니까지 몰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쭉빵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거추장 스럽고, 게다가 비틀린 고깃덩어리 같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상실한 채, 현석이 거두는 대로 의자에 파묻혀 고개를 뒤로 재낀 채로, 정신을 도대체 못 차리는 미련한 고깃덩어리…..현석은 그래서 조 이사와 윤서가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섹스가 끝나고 나서도, 윤서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마저 달콤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좇물로 인해 허옇게 풀죽을 쑤어버린 그녀의 보지조차, 아름답게만 보이던 것과 달리, 주체를 못하는, 풀려버린 가랭이 사이로, 질질 새는 엔진오일 처럼, 자신이 방금전 부려 놓았던 허연 좇물을 바닥의 카펫트 위에 흘려 놓는 그녀의 상태…..못 봐줄 꼴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고 있었다. 아랫도리를 까 놓은 채로 숨을 몰아쉬고, 정신을 잃고 있던 조 이사를 내려다 보면서, 현석은 옷을 고쳐 입었다. 입고 온 스커트가 배 위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지만, 그걸 내려주고 싶은 맘조차 들지 않고 있는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현석의 못된 심사…..




‘으이그, 저렇게 퍼 재끼고, 돌려댄 보지, 왠떡이냐 하면서 잡아잡순 아새끼들, 졸나리 많았겠구만…..’




혀를 차면서,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담배를 피워 물고는, 정신이라도 차리라는 의미에서, 스피이커의 볼륨을 크게 올려 버렸다. 그러나, 조 이사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너무 못되게 굴고 있다는 생각에 현석은 소리를 낮추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벗겨질듯 위로 올라붙은 스커트를 제자리로 내리고서, 주변에 있을듯 싶은 팬티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너무 황망한 와중에 섹스를 치루다보니, 자신이 벗겼는지, 아님, 초장부터 팬티를 입고 오질 않았는지 조차,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만 했다. 그래도 보지구녕 사이로 질질 흐르는 자신의 좇물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짧은 스커트라는 생각에, 의자 뒤에 걸쳐 두었던 자신의 상의를 가져다 아랫도리에 덮어주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어떻게 나머지 용량의 부분들을 찾을 수 있는거지?’




현석은 사정과 동시에 모니터에서 발견한 그 의문의 용량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연결된 I-POD안에서는 별다른 특이한 메뉴들이 발견되고 있지는 않았다. 그때 문득, 윤서가 그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




‘이젠 디스켓이고, ZIP이고 간에 필요가 없어여, CD에 구워서 집에 갖고 가는 것도 옛말이라니깐! 요 음악만 들을 줄 알게 생겨먹은 게, 이동식 하드디스크 라나?’




이동식 하드디스크…..현석은 윈도우즈의 제어판을 열고 시스템 폴더의 장치 관리자를 열어보았다. 




‘아하! 그렇구만…’




I-POD는 USB로 연결되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에는 하나의 저장장치로 인식되는 기능이 되어 있었다. 그 기계를 써 본 경험이 없는 현석으로서는 하나하나가 신기할 따름 이었다. 그제서야, 현석은 모니터의 오른쪽 구석의 작업 표시줄의 숨은 아이콘 표시라는 부분을 건드리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 안에는 작은 아이콘으로 새로운 기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리는 표시가 띄워져 있는 걸 알았다. 내 컴퓨터 폴더를 열자, 하나의 하드 디스크처럼 자리잡은 윤서의 I-POD….현석은 침을 꼴깍 삼키면서, 그 아이콘을 열었다. 그 안에는 I-POD상에서 보이질 않았던 다른 폴더가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그 폴더를 열어 보려고 마우스를 클릭 하려는 순간,




‘따르릉!’




‘여보세여, 선우현석 입니다.’




‘저, 여기 1층 경비실 인데여, 아직 이사님, 위에 계십니까?’




‘네, 곧 내려가실 겁니다.’




‘그럼, 팀장님 께서도 퇴근 허실 껀지여?’




‘왜여?’




‘아니, 할 일이 남으셨으면, 다음 근무자 인수 인계 상황에, 계속 일하실 거라고 기록을 남겨야 하겠기에…..’




‘아!, 네….저도 곧 퇴근할 겁니다. 이사님께서 깨어 나시는대로 저도 가야죠. 시간도 거지반….’




하면서 현석은 시계를 쳐다 보았다. 10시가 채 안된 시각, 평소 같으면, 집으로 가기에도 이른 시각이지만, 일찌감치 파장이 되어 직원들이 빠져나간 것 하며, 예상치 않은 조 이사와의 섹스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마우스를 붙잡으려는데,




‘끄으으응…..아후!’




기지개를 켜듯이, 두다리를 뻗쳐대는 조 이사, 그 바람에 현석의 상의마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이 드세여?’




‘제가 왜 여기에….’




‘또 기억이 안 나세여? 내 참…..’




그제서야 가랭이가, 보지가 뻐개질듯이 화끈거린다는 것을 눈치챈 듯한 조 이사의 황급함….




‘미안해여, 아까는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근데, 너무 좋은 거 있져?’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조 이사가 자근 거렸다. 조 이사는 옆으로 걸어오다가 흠칫 하면서, 멈추어 서서 스커트를 걷어 부쳤다. 책상 위에 놓인 티슈를 뽑아 현석 앞에서 돌아서서, 다리를 타고 질질 흐르는 좇물을 닦아내는 그녀. 볼 꺼, 못 볼꺼, 다 지난 마당에 돌아서서 뭐하는 짓인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현석의 표정이 가관 이었다. 그 사이로 조그맣게 들리는 그녀의 중얼거림….




‘임신 가능 기간인데……’




현석은 못들은 척, 되묻지 않았다. 임신이야 되었건 말건 간에, 누구에게라도 자기가 너무, 디리, 완전 꼴려서 팀장을 냉큼 잡아 잡숫다 보니, 보지에 가시가 걸렸네 하면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수도 없을 상황인데다가, 만일 임신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걸 빌미로 어줍잖은 시네루를 때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현석과 조 이사와의 상하간 직급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그저, 다음 달 멘스 끊기면 지대루 알아서 몸매 망가지기 전에 중절을 하던가, 미친척하고, 이 아기의 아바지는 외계인 입네 하면서, 낳아 키울 도리 밖에는 없을 거라고 현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만족하세여? 생각보담 별루였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제대루 놓인 거, 보신 적 없져?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니깐여?’




‘아니에여, 만족해여. 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린 것까지 너무 감사드리고 있다고 하면 될라나여? 저 이렇게 섹스 후에 만족스러운 적 첨이에여. 꼭 원하는 걸 가져서 그렇다기 보담은….막말로 기절할 정도로 좋았다라는 걸 경험시켜 주신 팀장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있다고나 할까요? 돌고 돌던 다른 여자들의 평가가 거짓은 아니었네여. 할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저 그만 그럼 갈께여……근데, 그 사진은 지워주실 거져?’




‘물론이져. 걱정마세여. 깨끄시 지워 놓져. 살펴 가서여.’




그러나, 현석은 절대 지우는 법은 없을 거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중이었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이 비상시국에서, 그나마 그 사진이 언젠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짱짱하게 현석의 판단력을 좌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을 나가는 조 이사가 핸폰을 켜는 걸 보면서, 그제서야 현석은 자신의 핸폰을 윤서가 가져갔음을 꺠닫게 되었다. 문명의 이기에 중독된 나머지, 필요 없는 장** 할지라도, 핸폰을 가져가지 않으면, 불안했던 예전과 달리, 그 오랜 시간동안, 핸폰의 필요성조차 잊고 지낼 수 있었던 심리상태가 묘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너무 늦었네. 내일 와서 봐야지.’




현석은 USB에서 I-POD를 분리해서 책상 서랍에 넣고 열쇠로 이번에는 단단히 잠궈 버렸다. 사무실을 완전히 소등을 하고, 승강기를 올라타면서도, 지금 이 건물의 어디엔가에 윤서가 있다는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자신이 직접 한층, 한층을 뒤져보고 싶은 맘 뿐이었다. 그러나, 현석은 승강기를 타고 내려 오면서, 설마 경찰들도, 윤서가 겁도 없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내에 숨어 들어와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음을, 멋들어지게 뛰어 넘은 윤서의 기지가 존경스럽게만 여겨졌다. 1층 현관 회전문으로 향하기 전에 현석은 차를 갖고 가느냐, 혹은 그냥 가느냐 망설여 졌지만, 그냥 택시나 타고 가자고 마음을 정했다. 




‘지금 퇴근 하십니까?’




‘엥?’




별로 익숙치 못한 음성의 사람이, 목소리 마저 낭랑하게 울려대는 대리석 바닥의 로비에서, 누군가 현석을 알아보고 걸어오면서, 말을 붙이고 있었다.




‘아니, 진검사님 아니세여?’




‘이거 죄송합니다. 아까 경비 아저씨께서 말씀 하시려는 걸 제가 막았지요. 곧 내려온다 시길래, 여기서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거던요. 지금 시간, 어떠십니까? 차는 어디에?’




‘아, 지금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하도 여러모로 정신도 없었고, 경황이, 경황인지라, 차는 놔두고, 택시나 타고 가려고요.’




‘잘 되었네여. 제 차로 집까지 모셔다 드리죠. 뭐 딱히 술집이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 갈 곳도 마땅칠 않고 하니, 그냥 집으로 가시면서 얘기나 나누져. 괜찮겠죠?’




‘그렇게 폐를 끼쳐도…’




‘무슨 말씀을요, 자, 가시져.’




현석은 억지로 끌려가는 느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딸려가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심정으로 진검사의 차에 올라탔다.




‘다른 직원들은 일찍 퇴근들 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잔업이라도…..’




‘아니, 이사님께서 내일 아침 일찍까지 서버 사용권에 대한 내부 직속 보고자료가 필요하니, 진술서 형식의 보고서를 올리라고 하셔서, 같이 의논 중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사내에서는 어떤 조치가 있습니까?’




‘일단 상황보고서를 회장님께 올리고, 나머지는 내부 감사반에게 맡기게 됩니다. 뭐 경찰 매한가지의 일들을 하게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런가여?’




‘저도 민윤서씨의 잠적에 누구보다 의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서 빨리 업무로 복귀했으면 싶져.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거덩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가여? 사내에서 민윤서씨의 평판은 어떻죠?’




‘평판이고 자시고가 없져. 사내에서 남자 열몫하는 여장부다라고 하면 짐작이 가시겠져? 일이면 일, 사람이면 사람, 나무랄 데가 없는 직원이었죠.’




‘그래서 가까와 지셨나여?’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뭐 선수들끼리는 말을 안해도 서로가 한 방에 척하니 알아보는, 뭐랄까요, 동물적인 취향의 후각이 발달했다고 하나여? 스파크라고 하기는 쫌 그래도….’




‘사내에서 민윤서씨의 이번 행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들을 하던가여?’




‘글쎄요, 오늘 너무 경황이 없어놔서 찬찬히 직원들과 얘기를 나눌 사이도 없었습니다. 믿기 힘들다고 하는 의견과 이성을 잃고 그런 우발적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질 않겠느냐는 의견이 분분한 거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여쭈어 보려고 했는데…..’




‘아, 말씀 놓으세여, 이건 뭐 심문도 아니고….’




‘다시 돌아오신 이유라도….’




‘그게 쫌 이상시러워서 말입니다.’




‘뭐가여?’




‘아까 증거물을 수거해 가면서, 사내 보안 시스템 담당자에게 지난 3일간의 민윤서씨와 팀장님의 입출 리스트나 영상보관 자료가 있으면 백업을 떠 달라고 해서, 제가 검토해 보았는데, 좀 이상한 구석이 발견되어서 이렇게 직접 찾아 뵈었죠.’




‘이상한 점이라녀?’




현석은 가슴이 뜨끔했다.




‘오늘 팀장님께서는 정확하게 오후 1시 25분에 사내에 걸어서 들어오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팀장님의 자동차는 오전 6시 45분에 입고되어 있는 동영상 때문이지요.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져!’




‘………’




모른다고 시치미를 잡아떼기에, 진검사는 너무 적확한 사실근거를 갖고서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데여?’




‘이런 사소한 문제를 갖고 제가 직접 와야 될 이유는 없지만, 아까 낮에 회의실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직접 챙겨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말이져. 그래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이건 사건 조사가 확대되기 전에, 제가 알고 있어야 될 사안 같아서 말이져.’




‘그건….’




‘만일에 팀장님께서 승용차를 직접 모셨다면, 아까 낮에 저희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거짓 연기가 될 것이고, 만일 그 차를 팀장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몰고 왔다면, 반드시 로비라든가, ID검색에서 드러났을 것인데, 바람처럼 운전자는 사내 그 어디 에서고 발견되질 않고 사라졌다는 얘기고 보면…..’




‘제가 몰진 않았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봤져.’




‘그러셨군여. 그럼 그 운전자가 혹시 민윤서씨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했던 연기를 억지로라도 인정하려면 그게 대답이 되겠죠. 하지만, 정확하게 운전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까지 민윤서씨와 같이 계셨다고 하셨는데, 교통편은 무얼 이용하셨져?’




‘그거야….’




현석은 할 말이 막혀 버렸다. 만일에 거짓으로 택시나 윤서의 자동차 어쩌구 했다가는 더더욱 거짓말 장이로 몰려,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으로 연루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물으시니 할 말이 없네여. 제 차로 움직였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깨어보니, 민윤서씨도 없어지고, 차도 없어졌다, 그 말로 이해하면 될까여?’




‘네.’




‘그럼 그 자동차는 민윤서씨가 몰 수도 있었다는 결론을 짚어도 무리는 아니겠네여?’




‘………맘대로 생각하십시오. 아직 확인된 바는 없으니…..’




‘아, 화는 내지 마십시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니까여. 사내의 보안 시스템이든, 뭐든 간에 팀장님의 손길을 막고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질 않습니까? 거 뭐냐, 서버 사용권한 이란 것을 들이대면, 심지어 회장님의 시스템 이멜까지 열어 보실 수 있다고도 하던데……’




‘패스워드가 있다면, 저도 알 길은 없죠. 패스워드는 저희 회사 기술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고여, 시스템을 수입한 외국 회사의 전문 기술자가 직접 와야만 열어 볼 수 있으니, 다 볼 수 있다는 말은 좀 무리가 있져.’




‘그런데, 차는 입고를 누군가 했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이, 운전자가 사내에서 사라질 수 있나여? 전 그걸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럴 리는 없죠. 차를 몰고 들어온 직원이나, 방문자, 혹은 배달 운송을 책임진 사람들 모두, 승강기를 이용하질 않고 비상계단을 임의로 이용한다고 해도, 지하와 연결된 모든 통로는 1층의 로비 검색구역을 지나치지 않고는 도리가 없으니까요. 아직도 주차장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모를까…..’




‘주차장은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보안 카메라가 회전주시하고 있어서, 사각지대로 피할 수는 있겠지만, 어떠한 곳도 장기적으로 몸을 숨길만한 구석은 없더군요. 건물의 청사진을 펴 놓고 살펴 봤는데도, 도망칠 만한 환기구도 마땅칠 않았습니다. 사다리가 아니고서는 어느 구조물을 이용해서 그 높이의 환풍구로, 보안카메라의 감시망을 뚫고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으니까여.’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으시는지……’




‘제 사사로운 의견인지는 몰라도, 민윤서씨가 아직 사내에, 그것도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위치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거져.’




‘그럴리가…..’




놀라는 척을 하고는 있었지만, 현석은 내심 진짜 겁나게 놀라고 있었다. 그 온화한 눈매와 부드러운 음성과 달리, 날카로운 직감력과 사고판단력을 겸비한 진검사의 다가섬이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현석이었다.




‘저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사내에 보안 카메라가 없는 곳, 예를 들자면, 여자 화장실 같은 곳은 동작을 감지하는 무브먼트 디텍트 센서가 달려 있습니다. 낮에는 보안부서에서 그 센서의 데이터를 접수하진 않지만, 사내의 인원이 모두 빠져 나갔다고 여기는 층별로 부터, 그 데이타는 중요한 점검 포인트로 작동하게 됩니다. 사람이 모두 빠져나간 층, 그것도 화장실에서 전해지는 센서의 감지 데이타는 곧바로 확인작업을 필요로 하는 경비출동 태세로 이어지니까요. 사내의 모든 문은 ID가 있어야 열리니, 그것을 일일이 속여가며, 민윤서씨가 뚫고 다닌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고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내일 아침 일찍부터 사내의 전 구역을 통제한 채로, 이 잡듯이 샅샅이 한번 조사할까 하고, 수색협조 요청 공문을 방금 회장님께 친전멜로 보내고 왔지요. 내일 하루는 불편하시더라도 들어오실 수는 있어도, 마음대로 나가실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또 뭐가 궁금하신가요?’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혹여 내일 나오시지 않는 건 아니져?’




‘그럴리가여? 지금이 어느 땐데…..아파도 약 먹어가며, 몸이라도 질질 끌고 나가야 엄한 소리 듣질 않을 텐데, 결근 이라녀?’




‘아…농담 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여쭙고 싶은데….가만 있자, 여기 아파트 단지가 맞죠? 얘기 하다 보니, 어느새 금방 왔네……민윤서씨의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사시네여?’




‘아니, 그럼 집도 마음대로 못 삽니까? 어디 바람 피우려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다는 얼빠진 년놈들 얘기라도 알고 계시나여?’




‘뭐 그런 뜻에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궁금하시다는 것이 뭔지 말씀이나 해 보시져. 집도 다 와 가는데….’




‘민윤서씨가 어째서 팀장님의 차를 빌려 타고 갔는지, 혹시 짐작 가시는데라도, 혹여 잊어버리신 물건이나, 차 안에 민윤서씨가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는지 해서요.’




‘아니, 뭐 별로요.’




현석은 차 안에 가 보지도 않았지만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사실 핸폰이 없어지긴 했어도, 그 핸폰을 통해 알수없는 사람들에게 추적을 당했느니, 어쩌구 하는 스토리를 먼저 내뱉기에는 별로 타이밍이 좋질 않다고 현석은 생각했다.




‘바쁘지 않으시면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는 게, 이렇게 집까지 태워 주신 것도 그렇고….’




예의상 그냥 던져 본 멘트인데,




‘그럼 그럴까요? 너무 늦은 시간이긴 헌데……’




라고 받아치는 진검사가 못내 성가시긴 했다. 지금 이 시간 이면, 현석의 귀가를 기하여, 온 몸을 불사르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 뻔한 집사람의 행태가 짐작이 가고 있는 판국인데, 어디서 가깝지도 않은, 그것도 조사를 받게 될 예정으로 있어, 껄끄럽기 까지한 검사 양반을 데불고 집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쫌 그림이 언짢은 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현석의 수중에는 마땅히 손님과 같이 간다는 전언을 때릴 핸폰이 없었고, 없어진 핸폰에 대한 찜찜한 감도 있어서, 진검사의 핸폰을 빌려서까지 전화를 걸고 싶지는 않았다.




‘연락을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뵈는 건 도리가 아닐 것 같은데……’




진검사가 한 마디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친구들을 잘 몰고,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성격이라 이해할 겁니다.’




그래도 과일이라도 사가야 한다며, 아파트 입구의 가게에서 배를 한상자 사드는 진검사를 현석은 굳이 막지는 않고 있었다. 오히려 서먹한 상황을 이렇게 차 손님이라도 데리고 가면 좀 누그러 들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현석은 하고 있었다.




‘초인종을 안 누르십니까?’




진검사가 문 앞에서 주섬주섬 문을 열 채비를 하는 현석의 등 뒤에 서서 물었다.




‘이 시간이면, 애기가 자거덩여. 우리끼리의 약속이져, 10시가 넘으면 무조건 초인종을 누르지 말고, 지 스스로 열고 들어오기로 말입니다. 워낙 퇴근 시간이 늦다보니, 쌈 끝에 결정된 사항이져.’




‘딸깍.’




‘여보….기둘렸다우!’




현석의 집사람은 미처 등 뒤에 서있는 조그만 체구의 진검사를 보질 못했던 모양이었다. 놀라서 입이 벌어진 현석의 얼굴은, 정면에서 한 쪽 다리를 벽에 기대고, 무용수처럼 가랭이를 쭉 째고 있는 아내의 모습 때문 이었다. 팬티는 입지도 않고서, 하늘하늘한 망사 가운에다, 그물 스타킹과 가터, 그리고 젖이 다 드러나도록 보여지는 야한 브레지어까지…….현석의 아내는 이 밤에 누구와 같이 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고 있질 않았던 것 같았다. 지난 밤의 일도 있고하니, 조신하게 혼자 들어오겠거니 하는 생각에, 스스로 생각해 낸 야시런 이벤트를, 별로 알지도 못하는 진검사 앞에서 하게 될 줄이야! 현석은 하늘이 노랗게 보이고 있었다.




‘어흠…..저, 실례 합니다.’




진검사가 헛기침과 함께 수그렸던 고개를 들고, 인사를 하려하자, 현석의 아내는 깜짝 놀라며, 몇 초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당황도 되었겠지만, 가랭이를 쭉 잡아 째는 자세로 한 다리를 번쩍 올려 벽에 기대고 있었으니, 쉽사리 자세를 풀고 정상을 찾아가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였다. 현석은 그 벌려진 가랭이 사이로 보지털마저 깨끗이 밀어 버려, 보지 날개살이 너울 거리는 것 까지 확실하게 보이고 있어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에그그…..’




그제서야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손님 맞이할 경황도 없이, 다다다다 방안으로 튀어 들어가는 그녀. 현석은 무안해 하고 있을 진검사를 향해,




‘가끔 저렇게 삐딱선을 탈 때가 있져. 구엽게 봐 주세여. 너무 무안 주지는 마시구여. 참 결혼은 하셨습니까? 부인께서는 저런 이벤트, 집에서 안 하시는지여?’




‘전…… 아직까지…… 미혼 입니다.’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에다, 체구까지 아저씨 체형이라, 결혼을 했을 것으로 예상했던 현석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요즘 마담 뚜들이 노총각으로 남겨두는 검사님도 계시네 그랴? 이거 참…’




거실로 들어서는 마당에, 온 집안에는 현석의 집사람이 좋아하는 장미향의 향수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고개를 도저히 들지 못하는 현석의 아내가, 방에서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죄송하다는 짧막한 인사와 함께 주방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이거, 제가 실례가 되는 건 아닌지…..’




‘괜찮습니다. 자기야!, 녹차나 내오지? 과일도 있으면, 깎아가지고…..’




자리에 앉아서도, 진검사는 좌불안석, 내내 미안해 했다.




‘저 아까는 죄송했스…..ㅂ….’




‘와장창…쨍그렁….’




알맞게 우려낸 녹차와 찻잔, 그리고 과일을 쟁반에 받쳐들고 거실로 걸어와, 자리에 앉으려던 현석의 아내가 그 자리에서 쟁반을 놓치고 말았다.




‘이걸 어쩌나!’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진검사…..그 진검사의 시선과 현석의 집사람 눈빛이 공중에서 만나, 얼어붙고 있는 것을, 곁에서 멀뚱하니 서 있는 현석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진검사나, 아내의 손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현석은 둘러 보면서, 이 밤, 녹차 보다는 진하고 독한 술 한잔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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