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4부
본문
바람소리-
제 4 부 : 새벽의 홍차
요동치는 고깃덩어리의 파도는 그 밤을 몇번이나 쓸고 지나가는지 셀 수조차 없었다. 도대체 젊음이 갖고 있는 한계가 정말 있기는 있는 것인지 의심 스러울 정도로, 세 녀석은 희진이의 몸에서 모든 정기를 탈진시키려는 것처럼 들러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거의 말을 할 수 없도록 돌아가며, 희진이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박아 넣어진 그들의 좇대가리….민기를 바라다 보는 그녀의 흰자위가 까 뒤집어 지면서, 전기에 감전된 것마냥, 떨려 나오는 신음….오르골의 선율이 끝나기 무섭게, 민기는 다시 태엽을 감아, 보석함의 음률이 끊어지지 못하도록 할 뿐이었다. 그녀만의 유일한 버팀목처럼…….
‘조금만…조금만….’
민기의 입에서는 그녀에게로 향한, 작은 염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무얼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희진아…..희진아…..사랑해…….사랑한다….널 이렇게 만들다니…..널 이렇게 까지……’
그러나, 그 말은 민기의 입술을 움직거리게 했을 뿐, 음성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식이 가물가물한 와중에도, 질긴 목숨처럼 이어져 나가는 그녀의 풀린 눈은, 기어이 민기의 입술을 움직거려 흘려진 그 단어를 잡아챈 듯 싶었다. 그녀가 입에서 좇대를 빼지도 못하고, 엎드린 전신이 앞뒤로 쿨럭거리는 도중에도, 민기가 한 소리를 입모양을 통해 간신히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두 눈을 감고, 마냥 행복한 얼굴로 전신의 힘을 놓아 버리는 그녀의 안도감…그녀는 말을 할 수는 없었어도, 민기에게 그 고개의 끄덕거림으로 모든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기씨, 나도 사랑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한시도 잊은 적 없어요.)
그녀가 시체처럼 고개를 떨구고, 남자들에게 에워싸인 몸의 힘을 깃털처럼 가볍게 놓아 버렸다. 그녀의 앞에서 입 안에 좇을 물려 놓았던, 그 삼슈라는 인간이 제일 먼저 몸을 뗐다.
‘고만 해라! 이쯤 했으면…..’
징얼대는 다른 녀석들은 아직 자신들의 몸의 일부가 희진의 아랫도리를, 나누어 꿰뚫고 있음으로 해서 인지, 불평이 돌고 있었다. 희진이가 침대에 어푸러져, 정신을 놓아버린 것을 뒤로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세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지만, 민기는 괜찮은지 쳐들어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만 싶었다. 옷을 다 입은 남자들은 다시 거실로 나와,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강선생…..본의 아니게 미안허게 됐수.’
‘그래도 그렇지…사람을 저 지경으로…’
‘우리도 원해서 그렇게 한 건 아니었수.’
가장 연장자라는 삼슈 녀석이 대답을 계속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민기는 발끈 화가 치밀었다. 그것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일슈녀석이 또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면서 얘기를 했다.
‘아쟈씨, 몰라도 뭘 모르시는 모냥인데, 우리들, 이래 보여도, 여자 증말로 안 좋아 하거덩여? 아시겠어여? 우리들 모두 이반 이라구여. 나랑 이슈가 모시는 삼슈형이 우리의 대빵이자, 이 세상에서 유일한 우리들만의 남자라는 거, 믿어져여?’
‘그럼, 종합선물 이란 건 또….’
‘아 그거여? 누나가 부탁한 거지 뭐겠어여. 우리를 막아서기야 불가능 하겠지만서도, 아직까지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끝내 알고 싶다고 해서, 연기 쫌 한 걸 갖고 너무 흥분 하시넹!’
민기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반은 또 뭐고, 그녀의 의도는 또 무언지…..
‘불쌍한 누님, 쌈지돈이나 뜯어봐야, 마음만 쫀쫀해지지, 뭐 있을라구여. 늙어가는 줄도 모르고, 무신 독수공방에다, 사랑타령은….에이그, 그래서 내가 여자라면 신물이 난 다니깐.’
‘당신들 정체가 뭐야? 희진이와는 어떤 관계고?’
갑자기 언성이 높아진 자신의 상태를, 민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고정허슈. 우리야 돈 받고 개지랄 떠는 게 일인데, 무슨 관계고 자시고가 있을 텍이 없쥐. 죽을 사람 소원이나 들어준다는 격으로, 강선생 뒤를 쫌 봐 달라고, 하도 애걸복걸 해서, 그간의 정리도 있고해서…..오해는 마슈. 우리도 누님 고객중의 하나 였으니깐두루…..’
삼슈의 얘기에 의하면, 자기들은 1년에 한번씩 정월 초하루에 멋들어지게 빼 입고서, 그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조촐하게나마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 왔다고 했다. 혹시라도 누구 하나 세상을 뜨는 일이 있으면, 절대 사진을 찍지 말자는 맹세와 더불어…..그 와중에 남자 사진을 가장 분위기 있게 박는다는 소문을 듣고, 도도한 그녀에게 사정 얘기를 해가며, 비싼 값에 사진을 찍어 오게 되었다는 그들…..
‘강 선생은 모르실 거요. 일슈랑, 이슈가 얼마나 여자 처럼 사진에 나오고 싶어 허는지….우리들끼리 벌어지는 섹스라 할지라도 배역은 있는 법, 일슈랑 이슈가 굳이 화장에, 떡칠 하지 않고서도 어찌 그리 여성스런 각도는 잘 잡아 내는지, 누님의 짱솜씨야 말을 해서 뭣 허겄수?’
그들의 얘기에 의하면, 정월 초하루의 사진 뿐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섹스를 사진에도 멋지게 담아 줬다는 그녀의 얘기. 그런 그녀가 그들의 속사정을 훤히 꿰차고 있었고, 민기의 위기 상황에 그들에게 헬프를 요청하지 않을 리 없었다.
‘누님이여? 멍청하다고나 할까? 우리랑 같이, 가뭄에 콩 나듯이 섹스는 해여. 삼슈 형님이 언제나 누님의 보지를 열나 빨아주거나, 누나 혼자 딸만 치져. 나나 이슈는 여자 살결도 만지기 싫어 허는 터라…..박아달라고 보지를 까는 게 아니고, 그냥 벌린 채로, 우리가 하는 걸 보면서, 뭔 생각을 그리도 허는지, 손가락이 부러져라, 지 물건에 쑤셔대며, 꺼뻑 넘어가기 일 쑤져. 우리랑 이렇게 번듯하게 섹스한 건, 오늘이 첨 이에여. 찝찝허긴 하지만…..그렇지만, 우린 뭐니뭐니 해도, 샴슈형이 쑤셔주는 게 제일루 좋은 건 어쩔 수 없져, 그치, 이슈?’
‘응, 제일루 주겨…..’
말이 별로 없는 이슈는 혀가 좀 짧은 듯 했다.
‘그럼, 나를 어떻게 도울 건지 누가 얘기해 줄 수 있남?’
그 중에서 제일 활기발랄한 일슈가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따서 마시며, 얘기를 열었다.
‘강 선상님, 잘 들으세여. 제가 누님에게 전화기며, 삐삐를 압수하라고 한 건, 바로 위치 추적 때문이에여. 핸폰이 작동하는 건 의외로 간단해여. 무전기라고 보면 되져. 내가 쏘아댄 나만의 주파수 코드를 번개같이 구분해서 기지국의 가역주파 지역내에서 기가 막히게 찝어내서는 다른 기지국으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전화가 터진다고 말들 하져.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여. 그러니, 당삼 전화가 터짐과 동시에, 그 위치는 이미 기지국의 기록에 남아버리는 것을 알 수 있져. 이미 하루가 훨씬 지났으니, 선상님의 전번 이라든가, 아내 되시는 분의 전번으로 걸려왔던 통화내역은 이미 짭새들의 손으로 넘어갔을 테고, 앞으로 걸려 오는 전번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위치추적의 포망을 던질 예정이니, 잡히려고 안달 떨지 않은 다음에야, 미친 지랄 한다고 전화기 붙들고 있겠어여?’
‘그럼, 컴터와 연결한다는 건 뭐야?’
‘그건 아내 되시는 분의 핸폰을 리모트로 알아보고자, 이 쪽에서 편법을 써 보는 걸 얘기해여. 선상님 전번도 함께….’
‘아니, 전화기를 쓰지도 않고, 어떻게 전화내역을 살필 수가 있지?’
‘무식하시니까 설명을 더 드릴께여. 어째서 동일한 모델의 전화기를 미국에서 구입했는데, 서울에 갖고 들어와서 바로 사용할 수 없는지 아세여?’
‘아니!.....’
‘무식이 통통 튀누만…어디메서부터 설명을 해야되는 거야? 우선 미국과 한국은 주파수의 대역폭이 달라여. 모델의 겉모냥은 같아 보여도, 열나 넓따란 미국이니, 해당 핸폰을 위해서 기지국이 커버해야 하는 지형적 광범위성과 구조적 차이가 크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암튼 미국은 졸나리 넓고, 한국은 고저가 심한 뗏짱구조라서 주파수 설정이 틀리다고 이해 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네여. 헨폰이나, 삐삐에는 이렇게 생산시기에서 부텀, 배정받지는 않았어도, 크리스탈 진동자가 쏟아내는 주파수의 지정석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거라구여. 그걸 주파수를 연다고 해여. 이미 정부에서는 순번처럼, 어디서 부텀 어디까지로, 주파수를 정해놨는데, 이미 파내어져 사용되는 주파수 대역을 상대로 기계를 생산하는 또라이는 없지 않겠어여? 쉽게 얘기허면, 정부고시를 통해 생산자에게 앞으로 100번에서 200번까지가 비워져 있으니, 그 안에서 하나라도 더 많이 주파수 따먹으려면 졸나게 팔아 재껴라 라고 하게 되져, 그게 하나하나가 채워져, 누군가 그 주파수를 사용하게 되고, 그 200번이 다 차기 전에 다시, 앞으로 얼마후에 200번까지는 엥꼬나니, 몇일 부로 201번에서 300번까지 열어주께, 요렇게 정부가 생산자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지는 거라고 보면 되여, 저는 그걸 이용하는 거져. 불법이긴 하지만, 마나님의 핸폰 모델과 생산시기, 시리얼넘버등을 조사해서, 똥꾸녕 뒤를 살살 긁어보면, 현재 정부가 지정해서 그 핸폰으로 배정한 주파수가 칼같이 떨어지거덩여. 우린 그걸 들쳐 보는 거에 불과해여. 감청이 그런 바닥에서 자리를 튼거라고 보면 되여. 게다가 정확한 주파수 내역과 사람, 무선기기가 연결되는 그 데이타 베이스를 제가 몰래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도 있걸랑여.’
무슨 얘기인지, 도통 이해할 수는 없어도, 알고 있는 건 많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야그는 해도 못 알아 쳐 드실꺼고, 우선 빠른 시간 내에 이곳에서 나가야 되여.’
‘그건 또 왜? 여기가 위험한가?’
‘이 아파트 졸나리 돈 쳐들인 아파트 거덩여? 들어 오실 때,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히신 거 모르시져? 낼 모레가 이곳 관리실의 컴터 속 녹화영상을 보관을 위해, 복사해서 떰프뜨는 날인 거 다 알아보고 왔어여. 복사만 뜨는게 아니고, 영구 보관 전에 감리사가 한번 쭉 훑어도 보고, 경찰에서 배포한 몽따쥬의 인물은 혹시 없는가, 할 일 디지게 없는 것들이 눈깔 꿰져라 한번 더 살펴 보거덩여? 그때 재수 없으면 오로록 걸린다 이 말이져, 이 길로 가서 선상님 들어오시던 고 장면으로 치고 들어가서, 감쪽같이 엉뚱한 영상으로 갈아치우고 나올꺼니깐 두루….’
‘그럼 도둑질을?’
‘카,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까쳐 먹는다니깐? 선상님, 대체 의사 맞아여? 허긴 전세계적으로 자신있게 뒤탈 없이 고칠 수 있는 병이, 열 손가락으로도 핑핑 남아 돈다메여? 감기도 뿌리를 못 뽑으니…..내, 참….아니 요즘, 테이프에 장시간 녹화 뜨는 굼벵이 댄스팀도 있다는 말 들어나 보셨어여? 컴터는 삐꾸리로 달고 사남? 아니, 네트워크는 허깨빈가? 점잖게 집에 턱하니 앉아서리, 그 놈의 관리실 컴터 뒤져서, 영상 한컷 바꿔치기 못할 값이면, 여기 왜 왔게여?’
‘근데, 그렇게 허면 됐지, 여기서 왜 나가지?’
‘참, 기가 막혀서, 들어온 일 없는 인물이 관속에 실려 나가지 않은 담에야, 걸어나갈 판인데, 아니, 어떤 또라이가 몰라 보겠냐구여? 들어온 좇대가리는 분명헌데, 빠져나간 좇대가리가 없음, 그 똥꾸녕이 월매나 황당하겠느냐 이거져. 허긴 똥꾸녕을 써 봤어야 알아도 알쥐….쯧쯧….’
‘그럼 나갈 때는 어떻게?’
‘그래서 우리같은 슈샤인 보이즈가 있는 거 아니겄어여? 제가 CCTV 카메라 영상 조작해 놓고, 운짱으로 이슈같은 아그가 모시러 올테고, 삼슈 형님 덕에 똥꾸녕이 간질간질 허시겠지만, 옆에 촉 붙어서 나가기만 허면 된다 이 말이져.’
‘옆에 왜 붙어? 그냥 걸어 나가면 됐지.’
‘아니, 그 쌍판으로 백주대낮에 나 미칭갱이네 하며 돌아 댕기실려구여? 여기서 나가기 전에 곱게 여장으로 차려 입고 나가도 나가야 되여. 떵꼬 팬티에, 쫄쫄이 미니까정 처받쳐 입으면, 간질거리지, 그럼 쓰라릴까 봐서여? 삼슈 형님의 깔치인양, 허리에 촉 붙어서 나가야 의심을 안 사여. 그렇게만 행색을 하면, 명동 한복판에 나가서도, 아마 낳아주신 부모형제도 대체 저게 누군지 몰라 볼걸여? 그것도 설명을 해드려여? 이름하야 신부화장…언더스텡?.....고개가 갸우뚱 허는 걸 보니, 언더스텐이 아니고, 그냥 스뎅 떵어리로구만….화, 이런 아쟈씨를 누나는 뭐가 좋다고 목을 매남?’
‘신부화장?’
‘생전 첨으로, 아니, 첨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고 그렇게 생긴 판때기를, 그 날 만큼은 다른 곳으로 취직 시킨다는, 이른바 신부화장이여. 아마 화장 지우려면 칼로 자죽이라도 내야 벗겨질껄여. 이래 보여도 제가 한 화장빨 하거덩여. 기둘리세여. 작업 완료 되는대로 준비해서 냉큼 올라올테니….’
‘아니, 또 무신 작업이?’
‘아니, 면상만 까고 다니면, 누가 알아 준답디까? 민쯩이 있어야쥐. 제가 앞으로 바뀔 아쟈씨 면상으루 다가, 전경 아쟈씨들도 갸우뚱 할만큼 비스무그리하게 비표 팍팍 넣어서리, 민쯩 작업들을 걸어 놓고 왔으니, 그리 아세여. 아니, 언제까지 설명해 줘야 되는 거야? 누님은 아예 안 일어날 참인가?’
‘이제 그만, 가자.’
삼슈가 모두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돌아다보면서,
‘누님이나….맘 상하지 않게…. 잘 좀…..추스려 주셔. 일슈가 한 얘기 잘 기억 허시고….그럼…..아니, 한가지 더, 마나님의 전번은 통화내역에서 벌써 일슈가 긁어놨을 테지만, 혹시 짐작 가는 곳이라도…..’
‘아녀. 전혀…….직장은 아십니까?’
‘지갑 안에 여분으로 마나님 명함을 넣어 두셨드만여. 벌써 참고 하고 있져.’
그들은 전문가 임이 분명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대할 때마다, 민기는 점점 사라진 윤서에게 다가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인해, 가슴이 들뜨고 있었고,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이라고는 술친구에, 아부할 사람만 득시글한 자신에게 이런 도움을 몸바쳐 가져다 준 희진에 대한 고마움이 무엇보다도 앞서고 있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다른 사람과 달리, 한번 더 뒤를 돌아다보며, 아직 정신을 잃고 있는, 희진이 누워 있는 안방을 바라다 보는, 삼슈의 눈빛이 애잔했다.
‘뭐, 더 남길 얘기락두….’
‘아, 아니여….’
‘형, 가자니깐? 밑구녕 덜 딲은 애들처럼 비적대긴?’
일슈가 매서운 눈으로 올려다 보며, 삼슈의 팔짱을 끼어 밖으로 내몰았다. 민기는 삼슈의 눈빛과 일슈의 질투어린 시선 속에서 말로는 옮길 수 없는 묘한 뉘앙스를 느끼고 있었다. 슈형제들이 돌아가고, 민기는 그제서야 안방으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방 안은 그녀의 호흡이 토해놓는 소주 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었고, 휴지통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티슈 무더기들이, 격한 섹스의 뒤끝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민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발소리를 죽여가며, 바닥에 널브러진 휴지들을 하나하나 주워서는 휴지통에 넣었다. 손에 든 휴지 사이로, 손끝에 차갑게 미끈대는 그들의 좇물이 느껴져, 맘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그런 섹스 놀음에 몸을 내 맡기면서도, 아무런 불평이 없었던 그녀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엎드린 채로 정신을 놓은 그녀의 등에 잔잔한 소름이 돋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민기는 살며시 시트를 덮어 주려고 했지만, 이미 시트에는 그들이 흘려 놓은 정액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쉽사리 덮어주지도 못한 채, 망설이고 있기만 했고……온 몸에는 쥐어 짠 것처럼, 붉그르죽죽한 얼룩들이 번져 있고, 엎드려 벌려져 있는 두 다리 사이로 보이는 지친 그녀의 보지는 매맞은 면상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찢어져 쓰라린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정신을 잃고 있는 와중에도 몇번씩 씰룩 거리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그녀의 괄약근……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눈물도 마르지 않은 채로 잠이 깊이 들어버린 그녀의 옆 모습이 보였다. 민기는 희진이의 앞에 앉기 전에, 바닥에 벗겨져, 처박혀 있던 목욕가운을 펴서, 몸 위에 덮어 주었다. 민기의 냄새가 잠결에서도 느껴지는지, 이불처럼 그 깃을 붙들고 그 안으로 고개를 파 묻는 그녀의 모습에서 민기는 따사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윤서에게서 조차 느끼지 못하던 독특한 구석이었다. 설령 그녀와 어떤 앞날도 보장되는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일종의 보호본능이 솟구쳤다고 표현하기에 충분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거실에 놓아 두었던 보석함을 들고 들어와, 침대 옆의 탁자서랍에 넣어두고, 민기는 집 안의 모든 불을 꺼버렸다. 안방을 바라다 보면서, 거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민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친 병사의 휴식은 달콤한 독약 같다고 했던가? 잠에 깊이 빠져든 희진의 모습은 마냥 평화스럽기만 했다. 이제 얼마 있질 않아, 슈형제들이 자신의 이동을 위해서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민기는 오래도록 망막 깊숙히 아로새겨 놓고 싶었다. 되돌아 보고나니, 그녀와 자신이 윤서를 만나기 전에 만났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정말 많이도 그런 상상을 했던 것이 기억나고 있었다.
‘자기야! 내가 왜 사진에 집착하는 지 알아?’
‘글쎄.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하면 뺨 맞을라나?’
‘그것도 맞긴 한데, 중독 때문이야.’
‘뭐? 허긴 누가 그러드만, 그 놈의 인화액의 강한 냄새에 취해서 헤롱댄다는 거,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너도 그런 거야?’
‘아니, 요리장이 일일이 고기 발라내는 거 본 적 있니? 사람을 어따 취직 시키는 거야? 그게 아니고, 소리 때문이라구, 내 말은…’
‘소리? 뭔 소리? 너 귀에 이상 있니? 막 환청이 들리고 그래? 아님, 귀에서 소리나고 그래? 내가 우리 병원에 특진으로 예약해 주까?’
‘내가 그렇게 늙어 뵈니? 귀에서 소리가 다 나게? 그게 아니고 셔터 소리 때문이야. 셔터…’
‘사진이랑, 셔터랑 무슨 상관인데?’
‘자기는 잘 몰라. 사진이 어떻게 나오느냐는 이미 조명 때릴 때부터 감이 오거던? 그것 보다도 제일 맘이 쓰이는 건, 바로 그 날의 셔터 소리야. 챠카탁 하는 그 소리…소름이 좌악 돋으면서, 손 끝으로 전해지는 그 묘한 감각…..그거에 빠져 사는 거라고, 내 말뜻은….’
그녀는 셔터 소리만 들어도 인화 전에 루뻬로 일일이 원 필름을 검수하지 않더라도, 잘 나올지, 삔이 나가버릴 지, 예상이 가능하다고까지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차속 에서나, 집 안에서도 시끄러운 음악은 틀질 않았다. 게다가 가끔, 음악을 듣다가도 퍼커션 파트의 일부 타악기에서 흘러 나오는 차르륵 거리는 음을 일일이 짚어 내면서, 셔터 소리와 흡사하지 않느냐며, 되돌려 들려주곤 했었다. 짧은 기간 이었기는 했어도 그녀와 민기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많은 부분을 내어주며 지냈던 것이 기억났다. 그저, 시간이나 떼우면서 서로의 몸뚱아리나 훔쳐 먹으려고 날치던 부류들과는 좀 다른 그런 관계…..그래서 그녀에게 더 큰 실망과 미움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민기는 하고 있었다.
윤서는 집에 있을 때는 소리가 나는 것을 무척 싫어 했다. 음악을 트는 것도, 보지도 않는 TV는 왜 켜 놓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 쑤 였지만, 희진은 달랐다. 언제나 같이 있을 때는 음악이 있어야 된다고 지 스스로 분주 했었고, 우리가 제일 처음 같이 들었던 곡이네 어쩌고 하면서, 항상 즐거운 기억을 반추하려고 애를 썼었다. 사실 생활이 닥쳐있는 윤서와 멜로 일색 이었던 희진을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진 못했지만, 비교 되는 면을 애써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언제나 일에 파묻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윤서의 작업은 언제나 자신을 외따로 떨어지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고 스스로 자위해 본 적도 없진 않았다. 민기 스스로도 쫓기는 듯한 병원 스케줄로 인해, 마누라 얼굴 보기 힘들다고 앙앙 대고도 있었고, 나날이 넘치는 프로젝트의 진두지휘 문제로, 한번 컴터 앞에 앉으면, 일어설 줄 몰랐던 윤서와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이격이 다물어질 줄 모르는 크레바스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을 두 사람 모두 의식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희진과 살을 섞는 때라 할지라도, 민기는 윤서와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의심한 적은 결코 없었다. 윤서는 그에게 있어서 패러다임의 시작이었고, 믿음의 완성이라고 믿어 왔었기에…..
‘으음…..으음…목말라…..’
‘어, 깼니? 알았어, 내가 물 갔다 줄께.’
민기는 그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갈증으로 잠이 깬 희진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물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어도, 몸을 가누기 힘들었던지, 그녀는 아직 엎드려 누워있는 그대로 였다.
‘자, 여기 물…..일어나 봐, 언능? 그러게, 빈 속에 퍼 넣더라니…..’
‘아후, 머리야…깨질 것 같네….’
헝클어진 머리를 한 손으로 쥐고 흔들면서, 그녀가 목을 뒤로 젖히고 물을 들이켰다.
‘캬…시원하다…..한 컵 더 주라.’
‘누가 금붕어 아니랠까 봐!’
‘그 별명을 아직 기억해?’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물타령을 하던 그녀를 가리켜 민기가 지어준 별명…..어느 새 시간이 뒤로 돌려 졌는지, 민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별명을 떠올리고 있었다. 두 컵이나 마신 물 덕택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비척대며, 방 안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자기야, 담배 쫌 갖다주라…… 응? 아! 씨라려……니기미….씹쇄끼들…..해도 해도 이렇게나 찢어놓나?’
‘그래, 욕이라도 하는 걸 보니 살았는가 보네.’
‘요렇게 시켜 먹으니 정말 좋다. 혼자 있을 땐, 그게 젤루 괴롭거든…..’
다시 또 그녀의 눈가에 치미는 외로운 구석……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지나온 시간 속인지, 스스로 오해 하고픈 표정이 보이고 있었다. 겉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들어 보이며,
‘자기가 입혀 줬니?’
‘응…..’
‘자기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아…..흠…아!’
오줌을 누다말고, 옷깃을 코로 가져가, 집어 삼킬듯이 냄새를 맡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잠에서 덜 깬 애기 같았다. 컵을 들고 방을 나와, 민기도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좌변기의 물을 내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목욕가운을 입은 채, 거실로 걸어 나왔다. 집을 찾아온 이후, 한 번도 옆에 앉은 적이 없었던 그녀가 살며시, 민기의 옆자리에 앉아 몸을 기대어 온다.
‘남자 가슴은 참 묘하다니깐. 여자처럼 몽실거리는 것도, 피부가 고운 것도 아닌데, 어째서 손 끝이 닿으면 이렇게 가슴이 저릴까?’
그녀가 파고 들면서, 민기의 옷속으로 손을 넣어, 맨 가슴을 만지작 댔다.
‘자긴 정말 웃겨…..그것도 젖꼭지라구, 이렇게 돌돌 거리면, 발딱 선다니깐?’
‘………’
민기는 그저 그녀의 목 뒤로 팔을 둘러 어깨를 보듬고만 있었다.
‘왜 내가 너무 드러워 보이니? 막 놀아 재끼는 년처럼 보여? 그래서 그래?’
‘아니, 지금 널…… 껴 안고 나면……. 다신 놓을 수 없을 거 같아서…..’
민기는 재채기가 나오려고 했다. 가끔 갑자기 햇빛을 쳐다 본다던가, 마음속 깊은 얘기를 하려하면 되풀이 되는 민기의 버릇 이었다.
‘우리 오래간만에 음악이나 듣자. 너무 조용하면, 우울해 진다니깐!’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넘어서는 안되는 선으로 인해 고통받기 보다는, 화제를 돌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그녀의 반응이 민기는 고맙기만 했다. 희진은 거실의 스텐드를 적당하게 조절하고 나서,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민기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우리 춤 추자.’
‘왠 춤은?’
‘그냥….’
민기가 일어나 그녀의 손을 붙들려고 하자, 그녀는 그 손을 이끌면서, 목욕 가운의 앞을 조용히 열었다.
‘맨살인 채로….이렇게…조금만….이렇게…..조금만 더……’
그녀의 가운이 열리고, 민기의 두 팔은 그녀의 맨살을 타고, 그녀의 허리에 감겨 도드라진 둔부 위에 올려졌다. 뜨거우면서도, 거칠기까지한 그녀의 소름이 내달음치는, 기억에도 새로운 그 살결……그녀가 천천히 민기의 셔츠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그녀 스스로 셔츠의 중간에서 단추풀기를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나서 열려진 민기의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깊은 숨쉬기에 빠지는 그녀…..그건 섹스보다 더 강렬한 교감이라고 민기는 느꼈다. 거실의 고즈넉한 조명을 타고, 그녀가 좋아하던 노래가 느린 드럼 비트와 함께 깔려가고….
‘….너를 닮은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흐린 모습을
얼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얘기할 수 있을까?...’
가슴으로 밀착된 그녀의 뺨이 젖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부벼가는 그녀의 뺨이 너무 뜨겁다고 여겨지는 그런 스틸 샷의 연속…..
‘…….너의 그 모습이
내 눈속에 흩어져 버려도
소중한 건 모두 가슴에 남아
그것으로 난 견딜 수 있겠지…..’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진저리 치도록 빠져들게 하는 셔터의 환청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 모습을 남겨 두겠니?
식어버린 마음 한 곳에
어느날 스쳐갈지도 모르는
그대 모습이 너무 외로워……..’
그 노래의 가사처럼 되기 보단 죽는 게 낫다고 하던 그 노래 속에서 조차, 그녀는 지금의 순간을 영원을 향해 엮고 싶은 뜨게질에, 이렇듯 온몸을 던져대는 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사랑이란
사는동안 할 순 없겠지
햇살에 눈이 부시도록 아픈
지난 추억이기에.
지난 추억이기에…..’
그건 지난 추억 이었음에도, 음악 속에 흔들리는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는 마지막으로 맛볼 수 있는 따스한 새벽의 홍차라고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계속-
P.S.: 이어지는 5부에서부터, 사라진 윤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세월이 지나도 감미로운 드러머 김민기씨의 노래, ‘지난 추억이기에’…..여러분께 권해 드립니다.
-블루스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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