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바람소리 - 10부

본문

바람소리-




제 10 부 :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현석은 아주 어중간 하면서도, 어줍짢은 분위기가 몇초간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깨진 그릇을 쟁반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줍고 있는 아내를 내려다 보고 있는, 진검사의 눈가로 그 잔잔한 떨림이 보이고 있기도 했기에…..




‘다시 내어 올께여. 앉아들 계세여.’




아내가 다시 녹차만을 내 왔고, 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야, 담배 쫌 사가지고 올께. 밤에 할 일도 있고, 보고서도 써야 하는데, 담배 떨어지면 사러 나가기도 구찮고…..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제가 얼릉 갔다오죠.’




자기가 데리고 온 손님을, 그 자리에 놔두고, 안면식도 없는 아내 앞에 덜렁 그 손님을 남겨놓고 나간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는 않았지만, 그게 이 상황에서는 가장 현명한 처사라고 현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제 껄 태우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사 놓긴 해야 되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서, 현석은 아내의 불안한 얼굴을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현석이 자리를 비우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현석의 아내, 미주는 차가 놓여진 탁자 앞에 앉았다.




‘살 많이 쪘네?….’




‘그런가? 미주씨는 여전하네.’




‘씨는 무슨 씨? 우리 남편, 그래도 눈치 하나는 깔쌈해. 봐? 얼릉 자리 비켜 주는 거…허긴 형광등이면 내가 결혼 했을까….’




‘아이는 몇이나?’




‘달랑 하나, 넌?’




‘난 아직,…. 그냥 싱글…….’




‘인물 변변한 구석도 없는 짜리몽땅 아자씨가, 타이밍도 놓치고, 너도 참 진상이다. 쯧쯧……’




‘하여간 잘 사는 건 여전하네.’




‘이건 잘 사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본 가락꾸라고들 허지. 학교 때보담 신수가 훤해 지셨네? 그래, 개천에서 용된 기분이 어떠시남?’




‘뭘? 요즘은 개천에서 어찌 그리 줄줄이 용들이 많이 튀어 나오는지, 용도 아니고, 지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천지야. 다 옛말 이지.’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아랫도리까정 까면서, 다시 만나게 되나? 내 참, 어이가 없어서……뻑 하면 소설이다, 드라마다에서 우리들 얘기 배껴다가 아주 도배를 하드만. 이건 뭐 선녀와 나뭇꾼 얘기도 아니고설랑……..맨 첨에야 가슴도 뜨끔하고, 나도 그랬는데 하면서, 봐 줄라고 했는데, 해도 너무 해야지. 판검사네, 변호사들…. 다 예전에 숨겨놓은 애인들은 모두 잘나고 빵빵한 놈들 따라, 줄줄이 도망가는 년들이라고 만드는 그 상투적인 짓거리도 이젠 지겹다. 상상력이 그것 밖에들 안 되나? 아니 도망을 갔음 갔지, 나중에 만나서 배배 꼬고, 지랄 떨 거는 또 뭐 있대? 안 그러니?’




‘…….요즘이야 우리 같은 애들 없지. 다들 보란듯이, 빽이며, 줄 꿰차고, 대가리 빵빵한 아이들이 이 바닥에 나오니까. 나처럼 바닥에서 기던 아그들은 애저녁에 피 뽑아 솎아내듯이, 초장에 싹이 쭈그러 들어서, 개천의 용이란 말, 이젠 고사성어 된지 오래야. 게다가 공직 생활 한다는 젊은 검사들, 동기생들, 누구 뒤쳐질 세라, 잘 들 놀아. 아닌 막말로, 힘 있겠다, 끝발 좋겠다. 집안 빵빵해. 돈 풍족하니, 잘 퍼다 써….여자들이 사족을 못써. 게다가 요즘 여자들…. 남편 비위 맞추려고 별 짓 다하는데, 하물며, 내노라 하는 변호사, 판검사가 지 남편이라 하는 부인네들….자기네 들이 알아서 부부교환 입네, 떼씹 파티네 물어다가 남편 입맛대로 엥기는 시대야. 어차피 사명감으로 일하는 시대가 가고 있지. 그저 월급이나 받는 단순한 일이라는 개념으로 무장하고, 그 옷 벗고 집에 오면, 남들과 같은 자연인에다가, 즐기는 인생과 포카판에서 괜시리 주눅들고 뻘쭘해질 필요 없다고 하는 동기, 후배들 천지야. 나만 오지기리 인물도 없어, 돈도 변변찮어…..예전 부터 하던 그 꼬라지, 그냥 그대로라고 보면 돼.’




‘존심이나 있어서 여자들은 돈으로 꿰지도 못하겠네?’




‘돈이나 풍족해야지? 처갓덕이나 보면서, 살면 몰라도…돈만 있어봐라. 난장이에다, 일곱씩이나 되도, 돈만 풍족하면 백설공주라도 얼씨구나 하면서, 쉬엄쉬엄 일곱이서 싸우지들 말고설랑 돌려 박으라면서 벌려댈 걸? 왕자 따라 결국 빛 본다는 말, 다 허튼 수작이다. 시집 잘 갔어! 미주!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어. ’




‘근데, 우리 신랑 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




‘그건 얘기하려면 너무 길다. 나중에 남편한테 자세히 들으시지…..그럼 그 때, 선 본다는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




‘거럼……우리들 학교 다닐 때부텀 하던 말 있잖아? 대학물 먹던 것들, 한 다리만 걸쳐서 찔러 보면, 다 누가 누구의 친구고, 동창이고, 선배고, 집안 끼리 그렇고 그런 사이고……세상 좁다구 말이야. 이게 다, 그 놈의 세상 좁은 탓에 만난, 우연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겠니? 이리 저리 둘러 보면 한집 건너, 다 아는 사이로 되어 있는 거, 재밌지 않니? 그이도 그런 부류야….선보고 나서, 호구 조사 해 보니까, 한다리 건너 다 인맥도 있구……지금 생각해도 잘하긴 한 거 같애. 너 아까, 나 보고 너무 오바 한 거 알쥐?’




‘거럼…..남들이 보면,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고 했겠다만, 그래야 이렇게 얘기라도 해보지.’




‘왜? 예전처럼 만나기 무섭게 아랫도리 까발기고 들이대 보시지? 내가 괜시리 너랑 빠이빠이 한 줄 아니? 어쩌자고 그 자라다 만 것 같은 뻔데기 좇이, 그다지도 굵었다니? 허구헌날 구녕이나 찢어 놓고….나 결혼 승낙 받아 놓고, 이쁜이 수술, 안 할 수가 없었다. 너 그거 아니? 그 절구공이 같은 굵기로 시도 때도 없이 쑤셔댔으니, 그걸 처녀 보지라고 할 수 있었겠니? 완전 개벌창에 너덜 보지 였지. 나도 미친년이지, 쓰레기 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받쳐도 유분수지, 아니, 그 홍두깨 같은 좇대가리 피하려고, 만난 게, 코끼리 좇? 참 내 인생도 열나 칼라풀 하다, 그치?’




‘내가 그때 고시만 바로 붙었어도 너 만은 안 놓치는 건데…..’




‘고따우 헛지랄 떨고 있었으니, 시험 본다고 제까닥 붙을 턱이 있었겠나?’




‘근데 남편이 한 섹스 한다며?’




‘한 섹스가 다 뭐야? 회사에서 내노라 하는 보지들은 죄다 주어 먹은 모냥 이던데…..내 모르는 척 하고 눈 감아 주려고 했는데, 지난 밤에는 나랑 뒹굴고, 씩씩대다가니, 전화 받고나서, 또다시 횡하니 튀어 나가더라니깐? 힘도 좋아요. 그 허세에 사는 지도 모르지만…..’




‘뉴스 봤지? 니 남편, 그 잠적한 여자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내 입으로 얘기해도 되나?’




‘모를 걸 주어 섬겨야지. 옛말에 아부지 빼고 다 안다고설랑, 진짜 시부모님 빼고, 모르는 인간들이 없어요, 글쎄……내 참, 쪽 팔려서리…..’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남편 단속이나 잘 해. 나중에 울고 짜고 하덜 말고….’




‘그래 봐야, 이혼밖에 더 하겠니? 그래만 보라지? 애새끼도 이젠 덧정 없다. 예전이야 질질 짜는 모정의 세월, 어쩌구 헷지랄들 했지만, 요즘이야, 내가 미쳤니? 애새끼 달고 씹빠빠 댕기게? 누구 좋으라고? 이혼 이락두 하게되면, 내가 그 꼴을 그냥 보나? 에이 씹쇄끼, 엿이나 먹으셈 하면서, 애새끼 팍 엥기고, 이혼 도장 찍는 쌍판떼기 앞에서 남친 옆구리 폼나게 꿰차 버리는 거지. 요즈음 세상, 많이 바꼈다. 너 몰라서 그렇지. 넌 그럼 요즈음 어떻게 지내? 그 뻔데기 좇, 시도 때도 없이 벌떡 댈텐데, 어디 물받아 주는 여친이라도 꿍쳐 둔거야? 그런 거야?’




‘나야 항상 하는 패턴 있잖아? 양수겹장에, 도랑치고, 가재잡고…..요즈음 파출부들, 예전 파출부들이 아니거덩…..소개소에 말만 잘하면, 어디서 외인군단이 파견 오는데, 직업의식으로 친다면야, 내가 쇠고랑을 들이대도 들이대야 하는데, 목구녕, 아니 좇구녕이 포도청인데, 빠삭은 하지만, 그럴 수가 있어야지?’




‘파출부가 뭐?’




‘그 사람들 한테 연락하면, 파출부 쓰실래여, 여친부 쓰실래여 한다니깐?’




‘여친부는 또 뭐래?’




‘나야 그 너른 오피스텔에 혼자 사니, 살림이고, 반찬이고, 영 잼뱅이거덩? 그럴 때 여친부나 하나 보내 달라고 하면, 내 퇴근 시간을 떡 하니 묻는 거야. 아침부터 와서 일하고, 주인 양반 오시기 전에, 노력봉사 댓가 받고,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고, 주인 양반 돌아 오실 시간에 맞추어서 오후에 집에 오는 거지. 그리고, 청소에, 빨래, 음식 장만…..게다가 내가 턱 하니 들어가면, 마누라 처럼 옷 받아 걸어줘, 공과금 다 내놓고, 영수증 들이대, 장 봐다가 밑반찬 기가 막히게, 김치까정 일습으로 담궈놔, 그 뿐인가? 착하니 옆에 붙어서, 밥을 먹는 건지, 룸싸롱에 온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입속의 혀처럼 놀아대는 거야. 그리고, 목욕물 받아서 마사지에, 안마, 그리고, 횟수에 관계 없이 섹스는 기본이구….그리고 밤 1시 땡 하면, 빠이빠이 하고 가는 거야. 그게 요즈음 파출부 아주마이들의 새로운 삶의 돌파구야. 그거, 인물 떨어져도 안쓰고, 음식 지지래 해놔도 퇴짜고, 섹스 못해도 진상 취급 받고 쫓겨 나는 거 알고나 있니? 나중에라도 남편이 여친부나 안쓰게 단속이나 잘해라. 내가 한 2년 쓰고 있는데 , 이제는 여자들이 잘 안오려고 해. 왜냐구? 이유야 뻔하지, 같은 돈 받고 가서, 어떤 년은 보지구녕 매끈한 채로 돌아오는데 우리 집만 왔다가면, 며칠 동안 오줌눌 때 쓰라려서 디진다고 소문이 나서 말이야..히히…말만 점잖빼는 검사지, 좇대가리는 영판 머슴이다야! 머슴…유 노?’




두 사람의 가가대소는 문 밖에서도 들릴 듯 했다. 두 사람은 교내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던 간플(간첩커플) 사이였다. 언제나 미주의 두둑한 용돈은 두 사람의 밀회에 유효적절하게 쓰였고, 진검사는 고시 공부 합네 하면서, 미주에게 고시만 붙으면 세상이 바뀌는 모습을 전해 주겠노라 하면서, 철모르던 순한 보지를 거덜내며, 개벌창을 만들어 가던 시절 이었다. 미주라고 순진무구허니, 앞날을 꿈꾸며, 마냥 벌려주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진검사가 장원급제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겨진다면, 언제고 빠이빠이 할테니, 그 놈의 뻔데기 좇, 상황 봐 가며, 눈치껏 세우고 다니라고 엄포를 놀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에는 투자와 사업개시 전, 이윤획득에 대한 잠재력 과시라는 묘한 함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진 검사는 그런 그녀를 가리켜, 뺸질녀가, 될 성 싶은 좇대가리, 털나기도 전에 키워 자신다고 했었고, 그녀는 진검사를 가리켜, 뒷돈 보고, 바로 바지 풀러대는 짝퉁 이몽룡이라고 놀려대던 엽기커플, 그 자체 였었다. 두 번의 낙방으로 전의를 상실한 진검사의 앞에서 미주는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이제부터 하는 말 잘들어. 내가 계산 통계학과 다녔던 재원 이라는 거 잘 알 쥐?’




‘응……’




‘이제까지 너랑 사귄 기간으로 치면, 오늘 이 시간까지 3년 하고 석달, 5일째고, 날 수로 치면, 1192일, 그 사이에 너랑 만난 날은, 내 수첩의 기록에 의하면, 오늘까지 324번째…..그러니까, 3.68일에 한번씩 만나서 떡을 쳤고, 그 324번째의 횟수 중에 진정으로 섹스를 하지 않은 걸 빼면……..277번이나 섹스를 했어. 계산해 보면 85.5퍼센트의 비율로 넌 나를 만나기 무섭게 쑤셔댔던 거이지. 시간으로 따지면, 우리가 만난 기간, 1192일을 대강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줄잡아 2만8천6백 시간인데, 평균적으로 네가 섹스를 했다하면 2시간에서 3시간 반을 해댔으니, 2.5시간으로 대강 잡으면, 총 기간중에서 섹스 시간이 차지하는 포션이 0.24프로의 밖에 차지하질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그 0.24프로가 도출된 과정을 살펴 보자면, 우리가 하루에 만났던 시간을 평균 4시간으로 쳐서, 324번씩 만났으니까, 합쳐보면 1296 시간, 날수로는 54일동안 잠도 안자고 붙어 있었던 거거덩? 네가 섹스만 한 시간, 2.5시간에 섹스나날의 합계 277을 곱하면, 692.5시간, 날수로는 29일이 거지반 되도록, 근 한달동안 잠도 안자고, 밥도 안먹고, 똥도 안싸고 그 짓만 한 계산 결과가 나와. 어때? 그런데 니가 붙을 수나 있니? 떨어지는 게 당연하쥐? 난 그런 애 한테 내 인생 투자할 순 없다. 내가 왜 이렇게 숫자로 들이대는지 알지? 니가 하면 할 수록, 이 숫자는 늘어갈 뿐이고, 앞날의 비젼은 좇도 없기에 하는 말이야. 이쯤에서 찌그러지시는 거이 어떠셈?’




‘그래도 그걸 돈으로 계산 하질 않았으니, 다행이네.’




‘왜 안했을라구? 시간당 임금으로 계산해서, 집창녀가 하루에 세탕 정도를 뛰는데, 한 껀당 8만원을 받아, 포주에게 떼어주고, 손에 달랑 쥐는 3만원을 기준으로 본다면, 하루 세탕을 만땅으로 채웠을 경우, 9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결론 이거덩? 그렇게 보면 내가 이제까지 벌려준 횟수가 277회니까 거기다 3만원을 곱하면, 831만원이라는 거액이 나오쥐. 넌 그만큼 나에게 지불도 하지 않고 공씹을 자시면서도, 이 순진무구한 보지를 그 좇대가리로 개벌창, 너덜 보지를 만들어 버린 거라구, 알아?’ 




두 사람은 이별도 그렇게 보통의 커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마무리를 했다. 진검사와 미주,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그렇듯 철저히 사무적인 마무리가 강했던 것은, 남들의 눈으로 볼때는 가난한 고시생을 일편단심 받드는 불쌍한 여대생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단함으로 인한, 눈물어린 이별의 콘티 였지만, 그 안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서로의 욕망 충족과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 이외에는 그 이상도 , 그 이하도 아닌 관계였기에 가능한, 이를테면 패배를 받아들이는 깨끗한 승복의 결과였다. 현석의 앞에서 펼친, 표정연기에 능란한 진검사와 미주의 오바액션으로 가슴이 알싸하게 서늘해 온 것은 단지, 바깥에서 이제나, 저제나 얘기인지, 섹스인지가 끝나기 만을 기둘리며, 담배를 조져대는 현석 뿐이었다는 걸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왜 니 남편은 빨리 안 오냐?’




‘몰라서 묻니? 너 나가는 거 밖에서 지켜보고 있을 껄? 너 가고 나면 들어 올꺼야. 벌써 가셨남, 어쩌고 횡설수설 대면서…..’




‘그래, 결혼 생활은 재미 있구?’




‘재미랄 꺼, 뭐 있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근데, 넌 뭐하러 우리 남편이랑 같이 다녀? 니 전공이 뭔데?’




‘나? 전공이 뭐 있겠니? 검찰에서 돈빨 이란 별명의 검사가 누구냐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옛말에도 있잖니? 무어에 포한이 맺힌 인물들한테는 절대 힘을 실어 주지 말라고 말이야. 나야 돈에 목맨다는 건 쫌 표현이 그래도, 돈 가지고 지랄 떠는 것들은 아예 알러지가 팍팍 치솟아서 봐 주질 못하겠더라구. 일원 하나까지 수표 추적이네, 돈세탁의 끝을 아주 악랄하게 들춘다고 해서, 다들 돈빨이라고들 해. 제대로 돈 벌어서, 멀쩡하게 쓰는 것들이야, 똥꾸녕에 다이야를 박던, 보지털에 진주를 매달던 무슨 상관이겠냐? 그 되도 않는 돈으로 헷지랄 하는 것들, 내 손에 걸리면 아작을 내는 것도 모자라 깝데기를 홀라당 벗기는 게 내 주특기야. 쫌 못된 편이지. 니 남편이랑 관련된 이 사건의 뒤에서 그런 시궁창 냄새가 좀 나거덩?’




‘아니, 우리 그이가 관련이락두?’




‘노우,노우,노우….어쩌다 지뢰보지 하나, 잘못 밟았다 이거지, 연루까지야……쓸데없는 걱정….나 그럼 그만 간다.’




‘벌써 가게? 경황이 없어서 남편이랑 같이 삼섬 한번 하자고 부추키지도 못하고 보낸다, 내가 사는 게 이래, 이해허지?’




‘거럼….사건 마무리되고 나서 보자. 그때되면 부담없이 약 처먹고 방문허께.’




‘검사도 약 처먹니?’




‘검사 좇이 무신 국기 게양대냐? 시도 때도 없이 벌떡 서 있게? 약 처먹고 쑝쑝하는 거 뭐라 하는 쇄끼 있으면, 전번 날려. 내가 아주 조둥아리를 바셔 줄테니깐두루….간다! 심심허거나, 보지 놀 때 있음, 낮에 전화해. 아까 내 전번 찍었쥐? 저녁엔 여친부 아줌씨들 등쌀에 좇대가리 놀 시간 없다, 나 이래뵈도 바쁜 사람이야, 알았지?’




미주는 현관을 닫으면서 가슴이 왠지 흐뭇해져 오는 자신을 억누를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검사의 곁을 단칼에 떠나면서, 자신이 그렇게 편의주의에다, 물질 지상주의 일색으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 묻고, 또 물었지만, 현실속에서 자신의 결정이, 결국은 만인들의 박수소리에 묻혀 그 가치관을 상실했다고 우울해 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나오네. 으이그, 츄리닝이라도 걸치고 나오는 건데…..’




하면 나오나, 하면 나오나 하면서, 저 멀리 복도 끝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현석은 덮쳐오는 한기에 오돌돌 떨리기까질 하고 있었다. 




‘딸깍’




‘어? 벌써 가셨남?’




‘자기는 신탄진 갔다왔니? 담배를 어디서 맹글어 왔어? 모르는 손님 앞에 두고 뻘쭘해서 디지는 줄 알았네.’




‘참, 아니, 그렇게 예의상 날린 멘트를 빌미삼아, 그다지도 따라 붙을 쭐 누가 알았겠수?’




‘그러게.’




‘오늘 장사는 영 믿쪘네. 비싼 녹차 그릇 깨먹고설랑……헐’




‘그래도 배는 남았으니, 꼭 믿진 건 아니네 뭐.’




현석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한 아내 미주의 표정에서 아까와는 사뭇 다른 안정감을 읽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까의 그 표정이나 분위기로 봐서는 못 다 이룬 불장난, 이번에는 소화기도 없이, 번갯불에 날름 꾸어먹는 씨츄에이션 이었는데, 내가 잘못 봤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을 미주는 곁눈질로 훔쳐 보면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 시각, 진검사는 혼자서 터덜터덜 자신의 승용차로 가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차키를 꽂았다. 다리와 엉덩이로 전해지는 서늘한 가죽시트의 감촉….그는 그런 느낌이 제일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꺼진 불을 켜고 들어서야 하는 빈집…..아침에 자신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잠옷을 다시 껴 입어야 하는 불편함. 어제 먹던 밑반찬에 파랗게 피어오른 곰팡이, 욕실의 바닥에 아침나절부터 나뒹굴던 자리 그대로 널부러진 치약 뚜껑…..모든 것들이 자신의 주위를 날카롭게 찌르는 고독의 잔재라고 느껴오고 있었다. 차의 시동을 걸고, 그는 자신의 머리를 쉴새없이 때리고 있었다. 




‘그게 아닌데, 그렇게 허풍을 치고 오는 게 아닌데…..’




그는 자신만이 시간을 거꾸로 살고 있는 창피함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다지도 마음에 없는 허풍을 떨었던 자신이 죽도록 미울 뿐이었다. 있지도 않은 여친부의 얘기 하며, 뿌풀려진 자신의 사생활…..사실 그는 무일푼인 데다가, 그녀에게 빠져 허우적대며, 미래의 비젼을 스스로 망실해 가던, 그 당시의 자신을 떠나간 그녀를 잡을 수 없는, 비참했던 현실이 죽기보다 싫어서 칼을 갈게 되었다는 표현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팔요 이상의 돈을 가진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혐오하게 되었고, 기어이 검사직에 오르고 나서도, 돈지랄을 하던 졸부들의 강력사건, 재벌들의 내부자 거래에 의한 불법 자본 증식과 증여, 불법 탈세, 정치권을 향한 불법 정치자금 지원이나 비자금 형성에 누구보다 강경자세로 일관해 온 그야말로 독종 검사의 면모를 유지해 왔으며, 그 원인은 오로지 돈과 생활의 안정을 빌미로, 자신의 곁을 그 간의 정분도 감안함이 없이 떠나가 버린, 그녀에 대한 복수라고 당연시 해오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그녀의 앞에서 쿨한 척, 행세한 바로 몇 분전, 자신의 모습은 다시 돌려 생각하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온 몸 위에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이 다분했다.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그건 그를 지금까지 지탱해 오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그 만의 쓰잘데기 없는 오만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스스로 결론 지었다. 난 이렇게 궁상 바가지로 살고 있는데, 나란 인간을 한때나마 사랑했으면서도, 먼 기억속에서조차 잊혀진 채로 살아대고 있는 그녀에게 한치라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진검사. 온 몸의 힘이 한꺼번에 쭈욱 빠져 나가는 것 같은 허망한 느낌만이 가득했다. 시동을 켜는 것과 동시에 CD플레이어에 들어가 있는 CD의 음악이 틀어졌다.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멀어져 가는 그댈 바라보다,


눈뜬 난 어지럽죠.


사랑도 사람이 만드는 일,


못믿을 마음이 치는 장난.


야속하지만, 못내 서럽지만,


이럴 수도 있는거죠.




알고 있어요, 그대란 사람….


그런 사람 이잖아요?


후회같은 건, 하기 싫어서, 차라리 잊는…..


그 한걸음, 한걸음, 나를 지워가나요?


그대 걸은 만큼 나는 무너지죠.


꼭 한번만, 한번만, 돌아볼 순 없나요?


그대 말이라도 해줄 순 없나요?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멀어져 가는 그댈 바라보다


눈뜬 난 어지럽죠……’




그녀는 아무런 마음의 짐도 없는 것처럼, 훌훌 털고, 그 날 사라져 갔다. 진검사는 그녀가 한번은, 정말 한번은 자신을 돌아볼 줄 믿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차갑게 돌아 서더니만, 핸드백에서 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달뜬 목소리로 일성을 띄우면서, 뒤에 남겨져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족쇄가 채워져, 세상이 마냥 그 상태로 정지되어 버린 진검사를 뒤로 하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난 기억을 그는 다시 곱씹고 있었다. 그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오면서, 진검사는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면서, 그녀도 자신처럼, 구질구질한 얘기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긁는, 유행가 가사 같은 과정을, 이미 맘속에서 거절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진했던 만큼, 그에 상응하는 진검사의 미움과 증오도 만만치는 않았다. 기어이, 꼼짝할 수 없는 옭가미로 그녀의 남편을 잡아 넣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고, 어차피 수사의 가닥을 잡아 나가는 과정 선상에서 피할 수 없는 과녘으로 등장한, 그녀의 남편을 어떻게든 엮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딸깍….띠뚜띠띠따띠또…’




그는 운전중 이었지만 그 늦은 시각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김형사야? 난데….지금 이 시간 부로 민윤서씨가 재직하고 있던 황성그룹, 그래, 그 황성그룹……탈탈 털어…..아무래도 낚싯대 날리기 전에, 찌가 날라갈 곳을 정해야 하질 않겠어?...응..응….그래 재성케미칼이랑, 만수데이타 모두 엮어서 말이야.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 그리고, 대주주랑, 유산 상속 가능 인물들에 대한 불법 증여나, 불법주식 거래 내역 같은 거 발견되면 바로 걸어버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현 정부 임기내에 이미 이루어 졌던, 대 정부 관련 특혜성 프로젝트로 어떤 것이 있을런지, 밥상에 쫌 차려 놔 봐. 그 사이에 비자금 빠이쁘가 새는 기미가 포착되면, 바로 추적해 버려. 볼 것도 없이…….그리고, 내일 새벽 05시 부로 개시될 황성그룹 본사 수색작전, 차질 없도록 지금부터 바로 점검 들어가구…응….응…알았어. 지금 들어가니까, 브리핑 준비해 놓고….응….응..…알았어….알았다구…..수고!.…’




진검사는 일을 크게 벌릴 작정을 하고 있는 모습 이었다. 




‘미주, 네 요년! 니가 돈 따라서 그렇게 세상 모르고 좋아서 찧고 까불고 있겠다? 어디, 돈 때문에 눈에 피눈물 쏟으면서, 내 발 밑에서 잘못했다고 질질 짤때가 곧 올게다. 내가 어째서 이를 악물고 이 자리까지 기어 올라 왔는지, 시간이 갈 수록 알게 될테지. 네 가족, 친인척 할 것 없이, 내 손아귀에 딸려나올 자슥들, 모두 골로 보내줄 테니…….’




그는 역시 무엇엔가 포한이 진 사람이 분명했다. 그의 손에 칼을 쥐어준 사람이 감히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포악함과 잔인함을 은밀히 숨기고 있는 그런…….




-계속-




P.S.: 11부로 이어지는 다음주부터 겨우, 민기와 희진, 윤서와 현석, 그리고, 진검사 팀, 슈샤인 보이즈, 아직 정체가 드러나고 있질 않은, 감춰진 세력과의 초반전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질질 끌리는 것 같아 글을 써가는 입장에서 저도 조금 조바심이 나긴 하네요.




-블루스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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