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바람소리 - 13부

본문

바람소리-




제 13 부 : 허물벗기




아침에 일어난 현석은 그다지 몸이 상쾌하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편안한 잠이 들까 싶은 차에 이루어진 진검사와 아내, 미주 사이의 찜찜한 분위기 때문도 그랬을 뿐더러, 윤서를 찾기 위해, 회사를 뒤지게 될 거라는 진검사의 계획 때문에, 출근하고 싶은 마음이 애저녁에 가셔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야? 눈이 퉁퉁 부었네? 어제 밤, 잠도 못자고 계속 뒤척이더니만….’




‘내가 그랬어?’




‘아니, 잠들지 않은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알랑가? 어여 씻고, 밥 먹어. 늦겠다.’




아침을 먹는 내내, 들고 있는 조간 신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는 매한가지 였다.




‘자기야, 정말 이번 일이랑…….., 자기는 관계 없는 거지?’




‘아니,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검사 양반까정 데불고 집에 온 거 보면 모르겠니? 거 사내 직원이랑 섹스 쫌 했기로서니, 수갑차는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구….’




‘으이그, 그게 자랑이다! 자랑이야!’




차를 회사에 두고 온 것을 후회하기는 여느때와 마찬가지 였다. 회식이라도 있을 때는 대리 운전이라도 시키지만, 오늘 아침처럼 어쩔 수 없이 차를 세워두고 왔을 때, 대문을 나서는 심정은 막막함 보다 더한 짜증이라고 밖에는 말 할 것이 없어 보였다.




‘오늘 일찍 올꺼지? 어제 못다한 숙제 해야 되걸랑, 알쥐?’




‘알았어. 알았다구! 이건 뭐 빚쟁이도 아니구설랑…..갔다가 올께. 어제 진검사 얘기가 사내 전체 수색이 있을 것 같다고 그랬거든? 아마 개점휴업이긴 마찬가지 일꺼야. 대강 눈치 때리다가니 튀어올께.’




아내는 어제 이후로 한껏 밝아진 표정이, 진검사와의 관계를 뿌풀려 상상했던 현석 자신을 오히려 계면쩍게 하고 있었다. 만일에 자신의 상상대로 깊은 선까지 넘나들었던 사이라면, 저런 표정은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니, 현관에 왠 줄나래비?’




전철에서 내려 회사의 입구로 다가갈수록, 입구를 빼곡히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전경들이 도열해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었다. 회사로 들어오는 인원들을 하나하나 소지한 ID와 얼굴을, 대조 확인한 후에야 들여 보내고 있어서, 가뜩이나 번잡한 현관 로비는 떨이 물건으로 손님을 호객하는 남대문 시장 통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오늘은 정말 일찍 오셨네여. 간밤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현석은 로비 입구에서 무전기를 들고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검사의 인사에, 어정쩡한 답례를 하고 있었다.




‘아니, 뭐, 별로…담배 가게에 마침 제가 피우는 게 떨어졌다고 해서, 시간이 쫌 지체되었었는데, 그새 그냥 가셨드만여. 집사람이 담번엔 저녁이라도 대접하게 꼭 시간 쫌 내어 주십사 하대여.’




‘아니, 뭐 식사 까지야…. 사건이 종결되고 난 후에라야 찾아 뵈어도 뵈어야지, 남들의 시선이 엉뚱한 화살이 될 수도 있어서, 당분간은 좀 어렵겠네여. 말씀만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시간이 꽤 소요될 것 같으니….’




‘언제부터 이렇게 통제가 되었었는지?’




‘새벽부터 입니다. 현재 들어오고 있는 인원을 2시 이전에 다시 소개시키기로 회장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잠시 업무에 차질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공적인 임무수행이 우선 이시라며, 아주 감사히 허락을 해 주셨더군요.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는 그 성의를 감안 하더라도, 속히 마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맘은 저희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랬군요. 이렇게 로비에서만 통제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내 보안관리실에 요원들이 배치 되어서, 사내의 센서 위치 파악과 CCTV 집중감시에 이미 들어가 있고, 사내의 인원이 소개 되면서, 발생될 수 있는 사태에 대비하고 있져.’




‘사태라녀?’




‘만일에 범인이, 아니 민윤서 양이 사내의 어느 곳에 숨어 들어가 있다면, 이렇게 벼락같이 접어든 우리 팀의 건물수색 의도를 알아차리고, 필사의 도주를 할 것이 분명하다란 결론 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건물이 통제 되었으니, 빠져나갈 길은 막막하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람들이 소개되는 시점을 이용해서,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져. 그걸 원천봉쇄 하겠다는 것이 저희들의 의지입니다. 맞불을 치는 거져. 퇴로를 막아놓고, 반대편에서부터 토끼몰이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참 철저 하시네. 그럼 수고하세여.’




현석은 이미 윤서를 다 잡아 놓은 것처럼 으시대는 말투가 열나 구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 눔이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제까지 잡히질 않고, 용케 숨어있는 윤서를 한 큐에 잡을까라는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사실, 건물에 남들의 눈에 띄지도 않고, 게다가 곳곳에 장치되어 있는 보안 카메라를 무력화 시키면서 활보하고 안주할 수 있는 정도라면, 진검사의 뻐대김 처럼 그렇게 만만하게 잡힐 윤서라는 생각은 하고 있질 않은 현석이었다. 오히려 속으로나마, 




‘윤서야, 어여 도망쳐, 잡히지 말고…..니 죄없는 거, 내가 알고, 하늘마저 다 알고 있는데, 저런 허접한 땅딸보에게 잡혀서야 쓰겠니?’




라는 기원마저도 해대고 있었다.




‘좋은 아침!’




줄을 서서 신원확인을 끝내고, 느즈막하게 실내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날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무실은 냉랭한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을 애써 외면한다라기 보다는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은 듯한 퉁명스러움이 넘쳐나고 있는 것을 금새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현석은 자신의 책상에 다가서면서 알 수 있었다.




‘아니, 이기, 무신?’




현석의 책상 위에는 어제 저녁 끝끝내 찾지 못했던 조 이사의 것으로 보이는 팬티가 올라와 있었다. 오줌 지린 흔적과, 말라 붙은 씹물 자욱도 선명한 그 팬티….감히 어떤 씨방쉐이가 이 따우 껄 올려놨냐고 소리치기에도 뒤꼭지가 가려운 지라, 현석은 아무런 소리 없이 팬티를 말아 쥐어, 슬그머니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걸 유독 현석의 자리에 올려 놓은 의도는 지금 상황이 어느땐데, 빈 사무실에서 아직도 오입질이냐는 성토성 시위의 의미와, 이젠 누가 그런 짓거리를 하고 댕기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다는 놀림의 의미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고 보였다. 게다가 오늘 아침의 번거로운 출근길의 짜증나는 검색 과정은, 가뜩이나 냉랭해진 사무실 분위기를 더욱 초토화 시키는 작용을 한 게 뻔했다. 우리가 누구땜시롱 이렇게 고역을 치루는지 알고나 있으라는 경고성 의미도, 더불어 포함되어 있는 것을 현석은 직감했다.




‘누구 커피 마실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며, 애써 태연한 척, 멘트를 날렸지만, 평소처럼 저요, 저요하면서 손을 드는 직원들은 없었고, 저마다 자신의 일들에 바쁜 척을 해대고들 있었다. 그 사이 현석의 눈에는, 자신의 옆자리에 담화용으로 놓여진 의자의 좌석 정면이 얼룩져 있음을 발견하고야 만다. 경황이 없던 터라 미처 닦을 여유도 없이, 가랭이를 벌리고 자신이 싸 놓은 좇물을 줄줄 흘리며, 맥을 놓고 있던 조 이사의 그 모습이 겹쳐져 연상되고 있었고……




‘아이구, 두야!’




현석은 이마를 쓸어대며, 복도로 나갔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휴게실로 갔지만, 아무도 같이 커피를 들자는 사람들은 없었다. 군중속의 고독은 아닐 지라도, 현석은 자의였던, 아니었던 간에 벌어진 사태로 인해 당하게 되는, 이른바, 이런 것이 바로 형태없는 이지메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볼 뿐이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바지주머니에 볼록하게 도드라진 느낌 때문에, 현석은 아래를 내려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팬티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까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본인에게 돌려 주면서, 못을 박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안내방송 드립니다. 사내 전 직원은 금일 오후 2시까지 모든 업무를 마감하고, 전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퇴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사내 전 직원은 번거로우시더라도 업무를 오후 2시까지 마무리하여 주시고, 퇴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명일은 정상출근과 퇴근이오니 착오 없으시길 아울러 당부드립니다. 지금까지 총무과 였습니다.’




휴게실의 사람들은 때 아닌, 조기 업무 종결에 쾌재를 올렸다. 이게 웬떡이냐 하는 사람도 있었고, 간만에 새끼줄이나 꽈야 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때리는 사람들 천지였다. 현석은 그러나, 그런 조치가 하나도 반갑질 않았다. 예전 같으믄야, 윤서와 은밀한 눈짓이라도 주고 받으면서, 오늘 어디가서 열나 쑤실까 하는 신호를 건네며, 희희낙락 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조치 자체가, 괴로운 심경에 다시금 불을 지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쫌 도와주까?’




복도에서 빈 파일박스를 한아름 안고 가는 경리파트 미스 주에게 현석이 손을 벌렸다.




‘됐거덩여? 팀장님 일이나 신경 쓰세여.’




뭐라고 나무라지도 못할 기세였다. 그때 였다. 복도에 우르르 쏟아져 밀려 오는 전경들의 무리로 인해, 앞이 잘 보이질 않는 미스 주가 그들과 부닥치면서 안고 있던 비품을 와르르 바닥으로 쏟고 말았다. 현석은 툴툴 대든가 말든가, 넘어진 미스 주의 옆에 주저 앉아 바닥에 흩어진 비품을 같이 줍기 시작했다. 미스 주도 귀찮다는 듯이 신경질을 버럭 낸 것이 미안하기도 했던지, 현석의 손길에 이번에는 뭐라고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건 다 아그러 졌네, 비품실에 도로 원위치 시키고설랑, 새것으로 내오자.’




현석은 일부분 바닥에 흩어져, 사용하기 껄끄러워진 비품을 받아들어 비품실로 향했다. 미스 주는 들고 있던 나머지를 사무실에 놓아두고 나서, 열쇠를 들고, 현석의 뒤를 바로 쫓아 왔다.




‘팔 떨어지겠다. 어떻게 이렇게 무거운 걸 한번에 들고 왔다니? 기운도 장사네!’




미스 주가 열쇠로 문을 여니, 비품실 특유의 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이, 비품으로 가득 찬 그 방은 낮이라 해도 혼자서 들어가기는 선뜩한 구석이 있어서, 여 사무원들은 곧잘 남자 사원을 끌고 가곤 하는 곳이었다.




‘팀장님…아까는 지가 지송해….ㅆ…..’




‘괜찮아. 다 그렇지 뭐. 욕먹어 싸지. 내가 한 짓이 있는데……’




이젠 숨기고 자시고 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까발려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도 여겨졌다.




‘근데, 팀장님, 오늘 왜 경찰들이 이렇게 들이닥쳤데여?’




‘글쎄, 나도 잘 몰라. 경찰에서 민윤서씨 실종 때문에 뭔가 수사할 꺼리가 있는갑지, 뭐. 우리야 뭘 아나?’




그 때였다. 딸깍 하면서 누군가 비품실의 문을 열었다. 조용한 비품실 안에 별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남녀가 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 상대가 미욱스럽게 생긴 미스 주라고 할지라도 좋은 소문은 되지 못할 것 같아, 순간 현석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 안에 계신분들 누구십니까?’




그 사람은 전경 복장의 남자였다. 




‘업무 장소 이외에는 퇴근 전에 모두 잠그라는 지시 입니다. 어서 돌아들 가시져.’




‘여기도 업무의 연장선상 입니다. 어떻게 비품 없이 일 할 수 있소? 알아서 갈테니 걱정 마슈.’




‘그게 아니고, 2시 전까지, 부득이 하게 인원이 머무르는 곳은 몰라도, 총무과에서 일찌감치 잠그는 곳은 청소를 마치라는 지시가 내렸단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어서 돌아들 가세요. 이런 상황에 일은 무신 일….’




현석은 새로이 미스 주에게 비품을 들려 내보내고, 망실 분량을 체크해서 반납함에 넣은 뒤,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기 위한 발판에 털썩 걸터 앉았다. 어차피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차갑고 냉랭한 시선과 툴툴거리는 직원들의 신경질을 받아 줘야 한다는 생각이 치밀자, 갑자기 이런 조용한 장소에서, 조금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지는 걸, 어쩔 순 없었다.






‘이 형사, 그 쪽 상황은 어때? 김형사로부터 상황실로 들어온 건 없구?’




진 검사는 조금씩 당황 되기도 하고, 조바심이 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안함이라고 표현되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상부에 자랑스럽게 올린 수색영장이 제꺼덕 허락이 떨어진 것 하며,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져, 오늘 내로 민윤서를 검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2시가 거지반 가까와 지도록, 허튼 기미조차 밝혀내질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쩐다?’




만일 오늘의 범인 색출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면, 당분간 민윤서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돨 것은 뻔한 이치였고, 자신의 수사 방향도 상당부분 위축되고, 제어를 당할 것은 불을 보듯 확실한 참이었다.




‘딩딩딩딩…..’




어디선가 전화가 울려왔다.




‘뉘기야? 전번도 가리고….누구세여?’




‘진검사님 이시져?’




‘네, 그런데여…..누구시져? 번호가 뜨질 않아서….’




‘아하 그것까지는 아실 거 없고…..’




진검사는 가뜩이나 일이 풀리질 않고 있어 신경이 곤두서 있는 마당에, 왠 싸발놈이 장난 전화질이냐는 식으로 대뜸 언성을 높였다.




‘당신 뉘기야? 당신 대한 민국 검사 한테 장난 전화할 생각이면, 아예 곱게 끊는 게 좋아. 나중에 디리 터지지나 말고서리….’




‘장난 전화라녀? 무신 섭섭한 말씀을…..저 혹시 강민기라고 아시는지여?’




‘강민기? 알긴 압니다만, 댁은 실례지만 뉘기신지…..’




‘아! 그건 알거 없다고 그렇게 누차 말씀 드렸는데, 오늘 수색 작전이 맘대로 잘 안되는 모냥 이시져? 그래서 전화 드렸는데, 이것도 장난 전화로 들립니까? 끊을까요, 그럼?’




‘아, 아니, 아닙니다. 혹시, 무슨 제보락두?’




‘캬! 역시 대단한 검사님 이시라니깐? 목소리만 들어보시고도 내용을 간파하고 계시니….그러니 드리는 말씀인데, 년을 못 잡고 계시면 놈이락두 잡으시게 도와드릴까 해서 이렇게 전화 드렸져, 뭐. 지금 그년 남편되는 놈팽이가 숨어 있는 곳을 오늘 점심때 되서야 겨우 알아냈습니다. 거기가 어딘고 하니….’




‘……네….네…압니다…..00빌라…….0동……. 예, 에…… 하이구…...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시간 나시는대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존안을 한번 뵈었으면 싶은데여. 이거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런지…..’




‘아,아, 됐구여. 어여 용의자나 때려 잡으러 아랫 것들이나 보내시징? 사람 때려 잡으려면 백정질 손도끼 자루로는 어림도 없을텐데…낄낄낄……’




기분 나쁜 웃음 소리도 소리였거니와, 자신을 가리켜 백정 어쩌구 지껄여대는 아가리에다, 쌍욕을 디지게 퍼부어 주고도 싶었지만, 차마 귀중한 제보를 하는 공로자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목구녕을 치미는 욕지기를 꿀꺽 삼키고 있던 진검사 였다. 진검사는 곧바로 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이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형사야? 어서 빨리 긴급 체포 건으로 애들 쫌 풀어…..응…응….체포영장? 미쳤어? 한시가 급한 와중에, 뭔 놈의 요식행위? 선참후수라구, 먼저 잡아들이고 나중에 올릴 생각해. 근데 누구냐구? 민윤서 남편, 강민기…응..응….. 방금 오늘에서야 강민기의 소재를 우연하게 알게 됐다구, 고마우신 어떤 분이 제보를 했다니깐? 어여 튀기전에 애들 빨리 보내, 알았지? 상황 종료되면 이리로 바로 연락 떄리고….수고! 참참참, 주소가……….’




진검사는 꿩대신 닭이라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만일 오늘의 수색 작전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다손 치더라도, 빈손으로 돌아가느니, 강민기라도 체포해서 돌아간다면 수사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줄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까져버린 체면을 어느정도 세워 줄 수 있질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 이었다.




‘수색조, 1팀, 2팀,3팀, 현 상황 보고하라.’




진검사는 시계를 쳐다보며, 이제 물밀듯이 1층으로 내려올 직원들의 물결을 상상하며, 현재 내부 수색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하라고 채근하기 시작했다. 수색팀들은 지하 주차장, 옥상, 창고등을 중심으로 수색을 진행 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질 못했고, 현제 건물내에 들어와 있는 ID패용 인물들 중에 민윤서에 대한 것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질 않다는 보고였다.




‘그럼, 어떻게 된거야? 땅으로 꺼졌어, 아님, 하늘로 솟은 거야?’




진검사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분명히 회사 내부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무실과 사무실 사이에도 저마다 ID카드를 긁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당연히 그 사이를 피해다니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복도에 나와 앉아 있거나, 사람이 없는 창고, 주차장, 화장실 등에서 배회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미 그곳은 수색조들이 샅샅이 뒤진터라 진검사는 난감하기만 했다. 곧바로 철수명령을 내린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은 수색작업, 죽은 자식 불알 붙들고 통곡하는 격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섣부른 결정을 차마 내리질 못하는 진검사 였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검사님, 여기 보안 관리실인데여…’




‘근데, 박형사 무슨 일로…..’




‘수색 3조에서 이미 마치고, 직원들이 다 빠진 걸로 나타난 회장실 최상층에서 센서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보곱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부터 빠져 나가는 인원들이 승강기를 이용해서 1층 로비며, 주차장으로 가려고, 벌떼처럼 몰려들텐데, 어떡하져?’




‘어떡하긴, 입질이 오는 것 같은데? 1층 로비는 수색 2조랑, 1조가 맡기로 하고, 3조는 다시 그 층으로 올려 보네, 얼릉!’




진검사는 이제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내에 민윤서를 보호하는 세력들이 있을 것도 같았고, 수색 작업이 종결될 때까지, 숨켜 줄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이야말로, ID카드로 긁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누군가 문을 열면서, 그녀와 같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어디엔가에 숨었다면, 사무실을 제외하고 수색작업을 벌이던 자신들의 시야에서 유유히 벗어나 있을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검사는 사람들이 조기 퇴근으로 빠져 나가는 사이, 그 와중에 1층으로 다시 탈출하기는 불가능해진 와중에 가장 먼저 수색이 끝난 회장실 부근으로 숨어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해 볼 뿐이었다. 그래도 의문으로 남는 것은 그 많은 사내 CCTV 카메라를 피해, 누군가의 도움 없이, 발각도 되질 않고 어떻게 회장실 부근까지 갈 수 있었겠느냐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 1층의 로비 부근은 밀려 내려오는 직원들로 다시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아침과 같은 그런 수순으로 했다가는 쌈이라도 날 판이었다. 그저 훑어보는 식으로 직원들이 들어 보이는 ID를 건성 대조하면서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 진검사는 수색 3조의 쾌보를 기다리며, 실제로 맘은 콩밭에 가 있었다. 그건 강민기의 체포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직 안 끝났나여?’




진검사의 앞에 누구 약을 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현석이 다가오며 물었다.




‘아니, 주차장으로 안 가시고, 왜 현관 쪽으로?’




‘검사님 수고하시는 마당에 인사라도 드리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뭐, 저야,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




그 때였다. 진검사의 무전기가 다시 신호음이 떨어졌다.




‘여기는 3조, 3조 수색 완료 했음.’




‘완료? 완료 뭐?’




‘완료 했다니깐여?’




‘했다니깐여? 어떻게 됐냐구? 누가 그리로 튀었다며?’




‘그럼 수고 하십시오. 전 이만 바빠서…….’




무전기를 받다말고, 뻗치는 울화를 겨우 참아가며, 진검사는 현석에게 목례를 했다.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현석의 뒷모습을 바라다 보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목청만 돋우며, 일성을 날리는 진검사…..




‘우째 됐느냐고? 잡았어? 못잡았어?’




‘누굴요? 아무도 아니었다니깐여!’




‘아무도 아니라니? 그게 뭔 말이야…..좀 자세히 얘기해 봐. 무브먼트 센서가 요동을 치고 지랄이 났다며? 아무도 없는 회장실 근처에서, 응?’




‘그게, 그러니까, 용의자가 아니고설랑, 청소하는 청소부 아주머니 들이 똥깐이며, 복도며, 만장을 떨며, 청소하는 와중 이었다니깐여? 낼 아침에 회장님 나오셨을 때, 청소 안해 놓았다가는 치도곤을 맞을 거라면서, 나가라고 해도 원 말을 들어야져…..별 다른 특이사항 없었습니다요.’




진검사는 다급한 마음에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며, 무전기를 받고 있었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지친 표정의 수색 3조가 진검사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아무 것두 건진 게 없다 그 말이야?’




‘깨끗합니다. 천장이고, 어디고 들추고 살피지 않은 곳이 없어여.’




‘그래? 정말 이상하네…어디로 샌거지?.....어디로……’




난관에 봉착한 진검사의 양미간이 찌푸려 졌다.




‘저…저쪽으로 쫌 비켜 주실라우? 청소기 쪼까 밀어야 쓰겄는디…..’




‘아?, 예!….’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부탁에 비켜서던 진검사……




‘잠깐만!, 아주머니들은 ID를 어디다 패용하고 다니십니까?’




‘아이디가 뭐여? 짠돌엄마, 아이디가 뭐여? 그런 거, 지들은 모르는 디유. 그저 이 복장이 저희 유니폼인가 뭔간디, 별 게 있겠슈? 요 가심에 달린 뿌라스틱 명패가 단디, 뭐가 더 필요 하남유?’




‘아차, 그거야….청소부들은 아이디 없이, 사내 어디고 다닐 수 있는 것을…..청소 하겠다는데, 안에서 문 열어주지 않을 또라이는 없을테지……밤에는 아이디 구분 없는 통합키로 어디고 열어 제끼고 들어가 청소를 할테니, 관리실에서 누군지 알 도리도 없을 거고…..,내가 왜 그걸, 내가 왜 그걸…..’




진검사는 식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승강기 쪽으로 튀어갔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에는 몇명의 수색조가 동승하고 바로 주차장에 도착하는 대로 진검사의 발길을 따라 잡았다. 진검사의 발길이 멈춘 곳에서 뒤따라 간 수색조는 얼음처럼 그 자리에 못박혀 버렸다. 이미 차가 빠져나가 버린 주차 공간 옆 구석에는, 누가 방금 벗어 놓은 듯한 청소부 유니폼과 머리수건, 그리고 가발이, 뱀이 허물 벗어 놓은 것마냥,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자리는 현석의 차가 주차 되어 있던 자리가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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