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11부
본문
바람소리-
제 11 부 : 시집가는 날
그렇게 민기의 품에 안겨, 민기의 냄새에 흠뻑 취해 잠이 들어 버린 희진의 가슴속은 마냥 따스하기만 했다. 언제나 바랬던 것은 큰 것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 옆에서 아침을 같이 맞이 할 수 있는 작은 소망…..그 어중간한 정신 상태에서라도, 잠꼬대처럼 옆을 더듬었을 때, 그의 따스한 가슴을 만질 수 있다는 안정감을 원했던 것 뿐인데….세상이 그걸 들어 주기에는, 너무도 지켜야 할 선과 장애가 많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 했었다. 그녀는 홈빡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녀를 껴 안고 있는 민기의 팔은, 좀처럼 풀릴 줄을 몰랐다.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해질 대로 끈끈해진 다리와 팔은, 서로를 향해, 칡넝쿨처럼 얽혀 있었고, 그건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혈관의 흐름처럼, 그냥 그대로 서로의 체온 속에서 녹아들어가는 느낌 이었다.
‘민기씨, 깼어?’
‘더 자지, 왜?’
민기의 품에 안겨, 그의 파랗게 돋은 수염을 올려다 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비음이 한 가뜩 섞여 있었다.
‘방에는 언제 들어왔어?’
‘품에 안겨서 몇번 돌지도 못하고, 그냥 곯아 떨어지던데 뭘….’
품 안에서 맥을 놓은 그녀를 안아다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가운을 벗기고, 서로 벌거벗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도, 그것을 그녀는 기억하질 못했다.
‘아! 좋다…따뜻해…..자기 가슴…참 좋아…..섹스보담 더….’
‘그래? 왜 그렇지?’
‘자기 그거 알아? 사랑을 많히 받아보지 못한 여자들 일수록 남자의 가슴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는 거. 나 사랑에 많이 굶주렸는 가 봐.’
‘그 나이 되도록, 너 아직 사랑이랑, 섹스랑 구분하고 사니?’
‘글쎄…아직 어린가 보지…’
그녀는 그의 대답에서 자신이 아직도 유치한 사랑 놀음에, 정신이 팔려 있음을 깨닫는다.
‘더 자……’
민기는 자신의 품속에서 아직 자근대는 그녀의 몸을 차근차근 다시 보듬는다. 등 뒤로 두른 팔로 벗은 등을 쓸어 내리면서도, 그 밑으로 팔을 내리기에는 무언가 어색한 분위기….그래서 민기는 평소처럼 손가락을 찔러대며, 그녀의 보지속을 휘젖는 대신에 허리를 옥 죄며, 감아틀었다.
‘으응…그렇게 꼭 죄는데, 잠을 어떻게 자남? 자긴 잠이 와?’
‘그래도 자 둬. 오늘 갸들이 닥치고 그러면, 정신 없을 거 아냐?’
‘그래두……’
‘그래두는, 뭘, 그래두?’
그녀는 언제나 처럼 말을 듣질 않는다. 무던히도 뺀질대며 말을 듣질 않는 고양이의 청개구리 성질 때문에,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일본 사람들의 습관처럼, 민기 또한 그녀의 그런 어리광과 버릇없음이, 오히려 싫지 않게 느껴지는 아침 이었다. 그녀는 기어이 민기의 두른 팔을 풀고, 이불 속으로 도망치듯이 숨어 들어간다.
‘어으흠…..’
그녀가 시트 속으로 몸을 틀어, 민기의 아랫도리로 얼굴을 들이밀면서, 서지도 않은 좇을 물어대자, 바로 느낌이 번져왔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불속에서 꿈틀거리는 희진의 고개짓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민기의 한가로움……그건 아침 나절의 기지개 보다 아득한 느낌이 분명했다. 민기는 이불을 젖혀 벗겨 버렸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좇을 하늘 끝까지 세워 놓은 뒤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 웅장한 자태를 감상하느라 빠는 것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다짐 했었는데….’
그녀가 민기의 시선으로 눈빛을 흘리면서 되뇌였다.
‘벌려 봐.’
‘안돼….나 어제 이후로 안 씻었어. 냄새 난다구…..’
‘괜찮아. 니 꺼, 냄새랑, 맛이야, 내가 젤루 잘 아는데, 뻐팅기기는? 얼릉?’
그녀는 마지 못해, 엉덩이를 돌려 그의 상체로 가랭이를 벌려 온다. 그래도 못 미더운지, 뒤를 돌아다 보면서,
‘그럼, 공알만 빨아줘, 구녕은 말고…..더럽잖아? ‘
‘괜찮아. 내 혓바닥은 자기 보지를 빨고 있는 거지, 남이 싸 놓은 좇물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구, 알아?’
‘그래두…..’
그녀의 애교어린 목소리가 신음으로 인해, 금새 갈라져 버린다. 그녀와의 대화는 그걸로 의미를 마감했고, 민기는 훤히 밝아진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로 인해, 눈빛으로 반사되는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좇물과 씹물로 말라붙어 허옇게 굳어 버린, 그녀의 보지로 혀를 들이댔다. 그건 그녀를 위한 수채화를 그리는 일의 하나였다. 말라붙은 포스터칼라 물감 위에, 적당한 물기를 떨어뜨려 색깔을 건져내는 작업처럼, 민기는 천천히, 서두름이 없이 그녀의 공알을 사탕 녹혀 먹듯이 구스르면서, 침을 발라갔다. 그녀의 고개가 순간순간, 번쩍번쩍 들려진다. 그녀는 공알의, 그것도 좌측부위의 주름 부위를 혀로 공구르면, 바로 자지러 진다. 예전에도 더 오래도록 그녀와 섹스를 하고 싶어, 그 부위가 그녀의 아킬레스 건 임을 알고 있기에, 끝끝내 혀로 피해 가다보면, 그녀는 자기를 놀리지 말라고, 민기가 빨아대는 혀를 향해 지시봉을 내둘렀다.
‘쪼금만 옆에, 아니, 그 위로, 아니 쪼금만 더 옆으로, 아니, 쪼금 아래…그래..거기…아흑..아흑…미치는 거 뻔히 알면서…윽윽…왜 옆으로만 뱅뱅 돌면서 사람 약을 올려?’
그러나, 오늘 아침, 그녀는 예전같은 불평이 없다. 민기의 의도를 알기 때문일까? 하루종일 보지를 빨리울 것처럼, 허리를 틀어대는 법도 없이, 벌렁 거리는 씹살의 토해냄도 가까스로 참아내며, 그녀는 두 넓적다리를 부르르 떨어가면서, 민기가 빨고 싶을 때까지, 그렇게 놔두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가 까칠해지기 시작한다. 땀을 흘리는 게다. 호흡이 점차 격해 지면서, 보지를 통해 전해지는 그 격렬한 느낌으로 인해, 그녀는 민기의 가랭이 사이에 얼굴을 묻고서, 신음하면서도, 민기의 좇을 끝내 계속해서 빨지는 못했다. 그저, 한 손에 쥐어진 민기의 좇대를 붙들고, 쑤걱대며, 딸을 잡듯이 상하로 쓸어대기만 했고……
‘어떡해…윽윽….나….어떡해…..나 이렇게 좋으면 안 되는데….나 이렇게 좋아하면 안 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숨소리에 섞여, 그 의미가 분명해지고, 민기는 그녀를 향해 찍어올린 물감을 혀끝에 묻혀, 그녀의 씹구녕 주변에 그림을 그려댄다. 그녀의 캔바스는 물감을 채 머금기도 전에, 그 물감을 주체 못하고, 바닥으로 흘려 버리기 시작하고, 그게 그녀의 화풍인 것서처럼, 민기도 거침없이 물감을 혀끝으로 내뿜기에 바쁘다.
‘그렇게 빨지만 말고, 좀 쑤셔주지..제발….’
민기는 엎어진 그녀의 몸 밑에서 고치에서 빠져 나오는 애벌레처럼 몸을 잡아 뺐다. 그녀가 엎드려, 고개를 시트에 파묻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언제 보아도, 그 호리병같은 그녀의 완곡한 허리는, 그에게 감탄의 대상이 분명했다. 두 손으로 움켜 쥔 그녀의 엉덩이 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찰진 떡살 사이로 파묻히는 절구공이 처럼 자죽을 드러내고, 민기는 쑤셔 넣지도 않은 그녀의 보지를, 양 옆으로 엉덩이 살과 함께 좌악 벌려 본다.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리는 그녀의 씹살…..의례 그렇듯이, 낡은 그녀의 캔바스는 또다른 화풍을 그려내기 위해 스스로 화폭을 찢어 간다.
‘악! 으그극……윽윽…….나….나, 미쳐…….억억…..’
민기의 좇대가 쑤걱쑤걱 그녀의 보지 사이로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그녀가 미련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듯이, 시트를 댓돌삼아, 방망이로 그녀의 머리를 물먹은 빨래감 마냥, 처박아 대고…..민기는 그녀의 보지에 담기워 졌다가, 밖으로 밀려 나오는 찔걱대는 자신의 좇대에 발라진 그녀의 씹물이, 허공에서 식어가는 한기로 인해, 온 몸에는 소름이 돋고 있었다.
‘우리…윽윽..우리..이대로 죽었으면….좋젰다….죽었으면…..’
그녀의 보지에 좇을 박아대면서도, 민기는 이것이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자신과의 사이에 놓여있는 인연의 끈을 태우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그런….
‘억…윽…..윽윽…….제발…..제발……’
그녀는 이제서야 민기에게 용서를 빈다. 아니, 그것은 용서를 비는 구걸은 결코 아니었다. 그를 향해 끓어 올라, 용솟음치고 있는 그녀의 욕망에 대한 그의 허락을 구하는 애절함 이었다. 그건 섹스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나 절절히 가슴 아픈, 두 사람 사이의 말없는 수채화의 마무리 였기에……
‘윽윽…억억…흑흑…흑흑…희진아…..나도….나도.그냥 죽고 싶다…너랑..여기서..지금……악!’
민기는 그 자세 그대로, 예전같은 다채로운 변형도 없이, 한 자세로 그녀의 씹물이 말라붙어, 허연 비듬 같은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뿌려질 때까지, 계속되는 펌핑을 멈출 줄 몰랐다.
‘민기씨…민기씨….나 죽어도 좋아…..아! 아! 행복해…날 제발….. 찢어 죽여….당신 껄로…그렇게…그렇게…악악악악악……나 미쳐……그렇게…그렇게….미치도록 행복하게……..’
그녀의 허리가 다시 힘을 풀었다. 풀썩 하며, 그녀는 다시금, 지난 밤 환락의 열기가 스쳐 지나간 침대에 몸을 풀고 정신을 놓는다. 그녀는 침대가 진흙구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그건 늪과도 같았다. 한없이 빠져들어가는 그런 늪…..자신의 보지에 박혀, 아직까지 꺼덕거리며, 마지막 남은 좇물마저 짜내고 있는 민기의 좇대가 낚시 바늘처럼 꿰어져 있어, 무작정 먹이감을 기다리며, 건들거리고 있는 미끼처럼, 그녀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속에서, 그 진한 늪 속에서 한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해? 그런거야?’
언제나 섹스 후에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괜찮았냐며 살갑게 물어주던 것과 달리, 아무런 말도 없이 씩씩대는 호흡만을 흘리며, 그녀의 등위로 엎어진 민기의 태도 때문에 물어 본 말이었다.
‘아냐, 그런 거……암만 생각해도, 나란 놈…정말 못됐다.’
‘자기가 왜, 어때서?’
‘이래서는 안된다고 했으면서도, 기어이 이 짓거리에 목숨거는 놈처럼 해대고 있잖아!. 지금이 어느 땐데….내 참…’
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다 보면서, 민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서로가 반대 방향으로 누워 있어 서로의 발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 조금 우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옆으로 누워 민기의 발목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자긴, 어떨 땐 동물 같구, 어떨 땐 너무 착하구….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언제는 나랑 영원히 살아줄 것 처럼 덤비구, 어떨 땐, 나를 헌신짝 취급하면서, 섹스하기 바쁘게 돌아가 버리구……난 그 안에서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하는지, 한번도 가르쳐 준 적도,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나쁜 놈이야.’
‘그러지마, 그러면 내가 더 나쁜 년 같잖아?’
그녀가 그의 벗은 가슴에 다시 자세를 틀어 안겼다. 물컹하는 그녀의 가슴 사이로 젖꼭지가 그의 못된 가슴을 손 끝으로 나무라는 듯이 찔러대는 것을, 그는 간지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민기와 희진은 아침 나절을 서로 껴 안은 채로 보냈다.
‘어제 반찬 그대로라도 먹어, 알았지?’
‘누가 뭐랬나?’
두 사람은 어제 저녁과는 사뭇 달라진 느낌으로 밥상을 마주했다. 숙제를 끝마친 학생들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가로 놓여진 것이 없었고, 식욕은 이미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민기가 자청해서 설겆이를 하는동안, 내내 희진은 그의 뒤에 붙어서서 허리를 붙들고,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계속해서 뺨을 비빌 뿐이었다.
‘그러다 내 등이든, 니 뺨이든 양단간에 구멍 나겠다.’
‘나면 쫌 어때?’
‘그렇게나 좋아? 예전에도 오늘처럼?’
‘……’
‘왜, 말이 없어? 예전에는 별로 였어?’
‘아니, 말할 수 없었어. 그랬다가는….. 자기 곁을……. 영원히 떠날 수 없을 거 같아서……’
‘띵동!’
초인종이 울리면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어졌다. 문을 열기 위해, 희진이가 나서고, 곧 이어 그것은 슈샤인 보이즈 임을 알게 되었다.
‘하이구, 왠 앞치마? 완전 노력 봉사 구뎅이구만. 누님….저렇게 부려 볼려고, 보자 했수?’
‘너 일슈? 그러다 디진다!’
세 사람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복장들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일슈와 이슈는 양 손에 가방을 들고서 들어왔다.
‘뭔 짐이 이렇게나? 너희들 일루 이사오니?’
‘이사는? 다 이기 저 유부남 아쨔씰 위한 거 아뇨?’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고, 능숙한 동작으로 일슈가 가방을 열어재꼈다.
‘요건 내 컴터…그리고, 요건 추적우회 장비, 그리고, 요건 분장 도구, 그리고, 요건 의상, 가발..그리고 잡다구리들….’
일슈의 설명대로 그들은 민기를 희진의 집에서 이동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누님, 우리가 너무 일찍 왔수? 회포 풀라면 더 있다 와야 쓰남?’
‘됐네, 일없네…..’
‘모르긴 몰라두, 우리 누님이 그 꿈에도 그리는 저 아쟈씨, 밤 사이에 잠만 재우진 않았을 꺼 같은데……’
‘일슈야, 그만 해라.’
가장 점잖은 샴슈의 일성에 일슈가 그만 말문을 닫았다.
‘강선생,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쇼. 여기서 나가는 순간부터 어떻게 될른지는 우리도 잘은 모르오. 일슈야, 설명 쫌 해 드려라.’
‘누님, 어제 부터 쭈욱,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 이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란 말씀이지.’
‘아니, 이상하다니?’
‘이미 저 아쟈씨랑, 부인 되는 분의 전화기는 디져서 사용한 적이 없는데, 왠 그리도 그 번호로 전화들을 걸어대는지, 대가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니깐? 이미 짭새들에게 통화기록이 넘어간 건 물론이고, 우리가 아닌 다른 쪽에서 벌써 전화기가 작동되기 무섭게 받아 재끼려고 추적하려는 인간들이 하나 둘이, 아닌걸 알아 냈거든? 저 아쟈씨, 의사 맞어? 혹시, 무슨 스파이나, 간첩단에 일원은 아니구? 이렇게나 신속하게 수사 선을 좁혀 들어가는 건 본 적이 없사와요. 우리의 굼벵이 느림보 검찰 헹님들께서 말이쥐. 이건 꼭 매 맞기 전에 엄살 떨어가면서, 기선 제압용으로 설설 기는 거랑 영판 다름 없거덩?’
‘그래서?’
‘우리가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우리도 꼬질대가 날라가는 게 아니냐 하는 게 우리 샴슈 형님의 걱정이란 말쌈…..’
‘그렇지만 무작정 희진이 집에 있는다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 아닙니까?’
민기가 샴슈를 바라보며, 말했다.
‘위험합죠. 그렇지만, 무작정 강선생을 옆에 꿰차고 데불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만에 하나, 강선생의 뒤를 밟고 있는 자가 우리 손에 강선생의 거취가 이동되었다는 소식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우리나, 누님이나 위험하게 목숨 내어 놓는 건 마찬가지라 이 말이외다.’
‘그럼 어쩌자는 거요?’
‘형님, 얘기 해야 되는 거 아니우?’
조용한 이슈가 삼슈를 바라다 보며, 물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알려 주려고 온거요. 이미 이 아파트 주변에 요상한 인물들이 깔려 있어서, 변장을 한다손 치더라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장담을 못하겠다 이 말이오.’
‘경찰이 벌써?’
‘그건 아니라고 봐여. 경찰들은 척 보면 알아여. 우리가 맨날 겪는 게 그런 짭새들인데, 척하면 모를까? 암만해도 우리랑 부류가 비스무그리한 것 들 같걸랑여?’
‘차에만 타믄야….’
이슈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차에 무사히 오르기만 한다면 목적한 장소까지, 어렵지 않게 따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의 표현 이었다.
‘그럼, 윤서는, 아니, 우리 집사람은 경찰의 추적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 인가여?’
‘일슈야, 대강 설명 쫌 드려랴.’
‘자, 잘 들으서요.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증거가 검찰로부터 흘러온 바에 의하면,…’
‘아니, 검찰은 아무런 보안장치도 없이 수사 하는 거요?’
‘아하 모르시는 말씀….다 공생관계 아니우? 다 가는 게 있으믄, 오는 게 있쥐. 서로 죽자는 게 아닌 바에야, 그깟 정보쯤이야, 대통령 귀에만 들어가는 것도 다 까발려 지는 세상, 모르셨어여? 당신 부인도 끝내주긴 한 게, 어제 집에서 튀었을 때, 그 퇴로를 확보하고 도와준 인물이 있었는데, 혹시 선우현석 이라는 사람 아서여? 아시겄지! 회사 상사 인데 모를리가 있남? 그 사람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그 살수들의 흉계에서 벗어났다는 말쌈이쥐요. 게다가 모종의 장소에서 새벽을 넘기고, 그 선우현석이란 인물은 회사로 직접 복귀했고, 그 사이 강선샹의 샥시 되시는 분은 사라졌고….근데 이상한 것은 자기가 몰지도 않은 자동차를 누군가 몰고, 사내로 진입했다는 사실이 특기 사항 이라고 할 수 있져. 아직 그게 댁의 쌰모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암튼 지금 이 시각, 쌰모님이 재직했던 황성그룹 본사는 새벽부터 철통같은 경비태세로 들어갔고, 이 잡듯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데,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돈빨 검사가 무언가 냄새를 맡고설랑 설치고 있다 하대여.’
‘돈빨 검사는 뭐고, 냄새는 또 무신?’
‘우리도 다각도로 알아 보고는 있는데, 암만해도 댁의 쌰모님이 그 회사의 내부로 숨어든 것 같다 그 말이져, 뭐. 근데, 엉뚱하게도 살인 사건의 담당 검사가 공교롭게도 돈이라면 만장을 떨며, 악랄하게 수사를 하는 그 돈빨 검사가 맡았다지 뭡니까?’
‘돈빨 검사가 뭔데?’
‘아주 독종으로 소문난 친데, 대선 비자금이나, 경제계 거물들의 비자금 조성 경위, 불법 적인 돈세탁 등에 탁월하다 못해, 숨켜진 돈들을 쪽쪽 빨아 자신다고 혀서 돈빨이란 별명이 붙은 검사 양반 인데, 어째 이런 허접한 살인 사건에 수장을 맡았는가가 의문이란 말이져. 냄새가 쪼께 시큼허게 나져? 이렇게 정도 이상으로 서두르는 것 하며……’
‘그런 일들은 일반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거 아닙니까? 다 믿을 수도 없는 거고….’
민기는 윤서의 개입이 너무 커다란 규모로 확장되는 듯한 우려로 인해, 믿기지가 않고 있는 것이 사실 이었다.
‘그럼, 벌써 윤서의 행방이 잡혔다는 얘긴가여?’
‘지금으로 봐서 아직 잡힌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추측하기에도 댁의 쌰모님은 겁대가리 없게도, 자신의 회사로 다시 숨어들었다고 보여지거덩여. 미안 시럽게도….’
민기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희진과 사랑 놀음에 빠져 있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럼, 어떻게 하져?’
‘일단 여기를 떠야합죠. 누님이 위험해 질 수도 있으니….’
삼슈가 일어나면서, 민기를 노려보듯이, 바라보며, 외쳤다.
‘일슈야, 시작해라. 안되겠다. 여기서 이렇게 더 있다간 좇되겠다. 얼릉?’
‘예…썰!.....자, 의사 양반, 옷을 홀랑 벗어 주실까?’
희진은 차마 그 꼴은 못 보겠다는 듯이, 방안으로 들어 갔다. 희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민기는 옷을 마저 다 벗었다.
‘아니, 그..그건 왜?’
면도기를 들이대는 일슈의 동작에 잠시 긴장한 민기…..
‘아니, 여장하는데, 온몸의 털을 그냥 남겨 두시려구? 예끼 여보슈! 수술 헐때, 털 깎아야 되는 것, 잘 아실턴데….왜 이러실까? 다 아실 양반이?’
일슈는 거침없이 다리와 팔, 목 뿐만이 아니라, 얼굴면까지 샅샅이 털을 밀기 시작했다.
‘얼굴은 그래도 쫌, 수염 이라면 몰라도…..’
‘여자의 솜털이랑 남자의 솜털은 다르다니깐여? 화운데이션이라도 멕이고 나면, 남자의 솜털은 빳빳이 일어나고, 여자들 것은 축축 늘어지니, 아예 밀어버릴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져. 어여 대기나 허세여.’
능숙한 솜씨로 털을 밀어내고, 그 위로 크림을 발라, 그 크림이 스며들 때까지, 잠자코 있으라고 눈치를 주고 있는 일슈.
‘이 크림은 뭐여?’
‘모근의 성장을 일시적으로 늦춰주는 크림이여. 보아하니, 수염깎고, 반나절만 지나면 강아지 풀처럼 푸릇푸릇 솟아 오를 그 수염이네, 털이네를 그냥 두란 말씀이우? 다 이렇게 발라 놓으면, 모근이 축허니 취해서, 잠시 자라는 걸 까먹으신단 말씀…그래도 정성들여 화장 했는데, 하루는 가야 될 꺼 아니우? 아니, 그 놈의 뻐쩡한 수염 땜시, 일껏 화장한 바닥을 때도 되기 전에 지워야 속이 시원 하시겠수?’
그 담으로 일슈는 핀을 수북하게 꺼내놓고, 파마하는 아줌마 머리처럼 이리저리 핀을 꽂아 넣어서, 머리카락을 두상의 굴곡처럼 바짝 붙여서, 고정해 가기 시작했다.
‘다 이렇게 해야, 가발이 뜨질 않는 벱이우. 찝찝 하다구, 비듬 긁듯이 손 댔단 경치게 될껄?’
발가벗고 있는 민기의 모습이 조금 처량 했는지, 일슈는 가방에서 여성용 내의와 옷가지를 꺼낸다. 그리고, 작은 공구함 까지 더해서 꺼냈는데, 그건 악세사리 함 이었다.
‘여자들의 치장은 장신구로 완성된다는 말이 있져. 화장빨 잘 먹고, 옷도 깔끔하게 차려 입었는데, 시계는 남자시계에다, 반지는 씻누런 금반지 떡하니 찼다? 이거 완전 초치는 거지 뭐겠어여?’
일슈의 지시대로 민기는 T팬티에서부터, 팬티 스타킹, 그리고, 가죽 타이트 스커트와 풀 오우버, 그리고 뻥이 제대로 들어간 브레지어까지 얼굴을 제외한 다른 부위들을 여성으로 치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 이제부텀 화장할 거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셔.’
그러나, 유달리 지시에 따라 할 것은 없었다. 워낙 섬세한 손길과 텃취로 해나가는 전문 화장술은 별다른 주문이 필요 없어 보였다. 일슈는 경험이 많은 듯, 우선 쪽집게를 이용해서 민기의 눈썹을 다듬어 나갔다. 그냥 숯검댕이처럼 굵기만한 눈썹을 살짝 치켜 올라가는 묘한 곡선으로 빼어내는 그 재주는 정말 감탄 스럽기 짝이 없었다. 화장하기 전, 피부의 탄력도를 높히고, 모공을 열어주기 위해서, 귀찮기는 했지만, 크림 맛사지와 스팀타올 찜질로 민기는 얼굴 피부가 호강을 해도 된통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해댔다.
‘턱선이 가름허셔서 짙은 색조 화장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으여. 누님 않그렇수?’
그제서야, 방안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어 밀면서 거실에서 벌어지는 여장 작업을 살펴 보는 희진….가발을 씌우기 전에 소파에 누워, 화장을 하고 있는 민기의 모습을 차마 가까이에서 보질 못하는 그녀는 연약한 심성의 소유자가 분명했다.
‘아효…입술 라인이 여자라고 해도 믿겠네. 요, 요, 갈매기 입술 쫌 보지? 요런 입술은 뻐꾸기를 날려도 연발로 날린다던데….누님이 그래서 뻑이 가셨남?’
‘어허, 일슈! 말이 많다. 어여 서두르라니깐?’
삼슈가 역시나 나무라는 목소리로 일슈의 비아냥을 눌러 버렸다.
‘자, 다 됐수, 일어나 앉으시지. 이제 가발만 고정하면 되니깐 두루…캬! 영판 여자네. 어째 남자처럼 턱선도 각진 게 없고, 정말 직인다. 누님 안 그렇수?’
‘찰카탁!’
눈을 감고 까칠한 가발의 감각을 애써 뿌리치려고 있던 민기의 눈 앞에서 사진기의 셔터음이 들렸다. 연이어 찰칵대며, 터지는 후레쉬와 셔터의 행진…그녀가 민기를 찍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 천천히 눈을 떠 보시와여.’
민기의 앞에 손 거울을 들려주는 경황에도, 희진이의 사진기는 계속해서 셔터소리가 줄을 이었다. 민기는 어떠냐는 듯이 희진이의 렌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진기를 내리는 희진…..그녀는 울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를 찍으면서, 도저히 북받쳐 오르는 심정을 가눌 길 없었던지, 그렇게 울면서 셔터를 미친듯이 눌러대고 있었던 모양 이었다.
‘울기는? 어때 여자 같애?’
‘응…아주…..그것도 아주 예쁜……’
그녀는 못내 대답했지만, 그 표정은 엄한 곳으로 사랑하는 딸내미를 시집보내야 하는 친정어머니의 표정과 너무도 흡사한 감이 있었다.
‘와! 덩말 끈내즈네.’
혀 짧은 이슈조차 탄성을 올렸다.
‘띠띠띠띠….’
‘왔는가 보다.’
샴슈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부터 펴 놓았던 무슨 시한폭탄 장치 처럼 생긴 일슈의 노트북에서 무슨 신호음이 계속 흘러 나왔다.
‘일슈, 이슈! 어여 장비 챙겨라, 튀자.’
그 신호음은 지금 그 시각, 진검사가 황성그룹의 내부 수색을 지휘하면서, 던지는 비상 호출 신호 였는데, 수색 작업 도중 무언가 포착되었다는 긴급 신호가 분명했다.
‘누님, 우리 가우!’
‘이렇게?’
사진기를 들고 망연히 서 있는 희진을 뒤로 하고, 사전에 지시한대로 민기를 삼슈의 깔치인양, 허리에 양 팔을 두르게 하고서 문을 나서는 그들…..삼슈가 돌아보며 말했다.
‘밖이 보통이 아니우. 내가 연락 때리면, 누님도 튀는 거 알고 계시져? 우리가 예전에 말했던 그곳으로….’
‘응….잘 부탁해.’
그녀는 갑자기 배웅을 하다말고, 거실의 티슈를 가져 오려고 냅다 뛰었다.
‘자기야. 화장 지워져, 울지마. 얘들이 알아서 잘 데려 갈거야. 내 걱정은 말고…죽기야 하겠어? 너그들 몸에 흠집이락두 났다간 아작 날 줄 알어?, 잘 들었쥐? 어여 빨리 가. 아무래도 사태가 영…..’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졌다.
‘자기야. 사랑해….’
삼슈의 옆에 둘러선 민기의 붉은 자주색 입술에 입을 맞추는 희진의 모습이 묘하기만 했다.여자끼리 처럼 보이면서도, 그 입술의 사이에는 그리움의 느낌이 가득한 그 애절함……메니큐어를 바르고, 손톱을 길게 붙인 민기의 손끝에서 그녀의 손이 쉽사리 떨려 나오질 않고 있었다.
‘누님 우리 가야 하우. 어여 손 쫌…..’
문이 열리고 바람이 쇡하니 밀쳐 들어오면서, 민기의 긴 머리가 휘날렸다. 차마 말도 못하고 입을 막은 채, 떠나가는 민기를 바라다 보는 희진은 계속해서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사라져 가는 민기의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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