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같은 사랑 - 7부
본문
이른 아침. 교회 주차장에 교회 대학부, 청년부 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대절한 버스와 교회의 20인승 미니 버스 두대가 수련회 참가자들을 태우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세 버스에는 대학부 부원들이 올라탔고 청년부원들은 두대의 교회 버스에 나눠 탔다. 효정과 나는 좀 낡아 보이는 황토색 포드 밴 뒷자리에 짐을 실고 중간 자리에 몸을 실었다. 효정이 다른 청년부원들의 눈치가 보이는지 "기현아. 넌 대학부니까 대학부들하고 저 버스에 타지 그래?" 청년부 전도사가 나를 보더니 효정을 거들었다. "기현이 형제는 대학부잖아. 저 버스에 타지 그래? 저 버스가 더 편하고 좋을텐데..."
"아니에요. 그냥 이거 타고 갈게요. 대신 그럼 뒷좌석에 가서 앉을게요. 아무래도 뒷좌석은 불편하고 많이 흔들릴테니까." 그러면서 나는 효정의 옆자리에서 맨 뒷줄 구석 자리로 옮겨 앉았다.
대학부, 청년부 부원들이 모두 3대의 버스에 올라탔고 조수석에 앉은 청년부 전도사라는 사람이 기도를 했다. 주님,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는 동안 지켜주시고 안전하게 수련회장에 도착하도록 인도해 주소서....
3대의 버스가 나란히 출발을 했고 91번 프리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한참을 달리다가 15번 프리웨이 북쪽 방면으로 갈아탔다.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차 창밖으로는 캘리포니아 특유의 벌거벗은 민둥산과 황량한 사막 만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을 하던 집사라는 사람과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던 조수석의 전도사가 우리 찬양하며 갑시다~ 라고 제안을 했고 조수석 뒤에 앉아 있는 청년부 회장이라는 형이 기타를 꺼내 들었다.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집. 내 아버지집. 내 아버지집.
함께 갑시다. 내 아버지집. 참된 기쁨 있는 곳 ~ ♬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깃발을 높이 들고 흔들며
힘껏 찬양해.
위대하고 강하신 주님. 우리 주 하나님 ~ ♪
버스 안의 청년부원들은 손뼉을 치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가사도 모르고 멜로디도 모르니 그저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청년부 전도사라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기현 형제. 기현 형제가 이 장로님, 이 집사님 큰 아들이지?"
"아, 네."
"이 장로님은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봉사하시는 장로님이신데, 기현 형제는 그동안 어느 교회 다녔어?"
"아. 네. 저는 교회 안 다녀요."
"아. 그래? 그럼 예수는 믿고?"
"네? 아, 네. 믿죠. 믿죠."
나는 성의 없이 대답을 했다. 예수 안 믿는다는 말을 전도사 앞에서 했다가 또 무슨 설교를 듣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침묵이 흐르자 기타를 잡고 있던 청년부 회장 형이 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그 사모하는 곳에 가고자
먼 길을 나섰네~ ♬
모두들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순간 맨 앞의 버스를 쫓아가던 가운데의 교회 미니버스가 갑작스럽게 회전을 하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 어엇~! 하며 괴성을 질렀지만 모두들 목청이 터져라 찬양을 부르고 있던 터라 내 고함을 못 들었다. 운전대를 붙잡고 노래에 심취한듯 노래를 따라부르던 집사가 뒤늦게 앞에 가던 미니버스가 급회전을 하는 것을 보고 급하게 운전대를 꺾었다.
휘익~ 끽 끼기긱~
우리가 타고 있던 미니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차체가 빙빙 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벽이 온통 하얀 방 안이었고 나는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눈을 돌려보니 제일 먼저 링겔병이 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로 매달려 있는 호스가 내 팔뚝까지 내려와 있었다. 내 오른쪽 다리는 딱딱한 붕대에 감겨 천정에 있는 고리에 하얀 줄로 매달려져 있었다.
뚱뚱한 흑인 간호사가 엉금엉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정신이 듭니까? ARE YOU AWAKE NOW?"
"여기가 어디죠? WHERE AM I"
"교통사고가 났어요. 당신은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구요. IT WAS A TERRIBLE ACCIDENT. YOU BROKE YOUR RIGHT LEG."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번쩍하고 머리속에 떠올랐다. 차가운 겨울 사막 바닥에 뒹글던 미니버스. 효정! 효정이는? 벌떡 일어나 앉아 주변을 살펴보려 했으나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 몸 구석구석,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낯이 익은 중년 남자가 내 곁으로 걸어왔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였다.
"기현 형제. 정신을 차리셨네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기, 효정이는요? 아니, 효정이 누나는요?"
담임목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효정이 누나는 많이 다쳤냐구요? 지금 어딨어요?"
다급하게 달려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구. 기현아~"
어머니는 내 침대를 붙잡고 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모습을 내려다 보시며 긴 한숨을 내쉬셨다.
"아버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요? 효정이는 많이 다쳤어요?"
"기현아. 효정 자매는 목숨을 잃었다."
갑자기 눈 앞의 모든 광경들이 사라지더니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정신이 멍해졌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쩌렁쩌렁 머릿 속에서 울렸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운전하던 개세끼 어딨어?" 나는 미친듯 소리를 질렀다.
"그 운전하던 개세끼 어디 있느냐고?"
담임 목사가 다시 내 곁으로 달려왔다.
"기현 형제, 이성을 찾으세요. 운전하시던 박 집사님, 청년부의 최 전도사님, 그리고 효정 자매, 진철 형제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뭐라구요? 말도 안돼.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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