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후속편) -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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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후속편) 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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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지는 일 때문에 지원은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야 했다.
출입이 통제된 부서이다 보니 잔 심부름부터 업무연락까지 혼자서 도맡아 하는 일이 많아졌고 하다못해 과장들 개인 심부름까지 도맡아서 처리해야 할 정도로 밤낮없이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다.
평소였으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지원으로서는 아무런 불만을 표시할 수 없이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변변한 데이트 한번 못하는 지혜의 성화도 있었고 지수와의 약속도 미룬 채 지원은 토요일 오전에 과장들이 묵고 있는 연수원으로 이동을 하고는 끔찍한 주말을 보낼 거라는 생각에 맥없는 표정으로 현관밖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제법 싸늘해진 바람에 겨울이 멀지 않은 듯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고 높아진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짓고 있을 때 언제 나왔는지 심과장이 지원을 발견을 하고는 다가오기 시작한다.
“뭐하니……..??………자아식…..심란한가 보구나……..”
“아…..과장님……..아닙니다………”
“아니긴….얼굴에 다 씌여 있는데 뭘……..”
“………………..”
“너무 심란해 하지 마라……..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잊혀 질 테니……..참…그리고 오늘은 집으로 들어가라……니가 있어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예에…..??…..정말요……??…..”
“후후후….자아식….금방…얼굴색이 달라지는구만……….”
“그게 아니고…….주말인데…갇혀 있을 생각을 하니…좀 답답해서……….”
“하하하……총각인데….오죽하겠냐………..”
“언제쯤이면 끝날까요……과장님…..??…..”
“글쎄…….한 수요일쯤이면 마무리가 될 것 같다…..그때까지만 힘들어도 참고 있어라…….”
“예………”
조금은 차가운 인상의 심과장이였지만 보기보다는 다르게 인정은 있는 듯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지원이 곤란해 할 때면 아무런 말없이 도움을 줄때가 많았고 말 한마디에도 남다른 표현으로 지원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는 게 지원으로서는 좋기는 했지만 이번일과 같은 냉정한 판단을 할 때에는 차갑게도 느껴졌다.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를 일어선 심과장이 집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라며 운동장으로 내려가고 지원은 반가운 마음에 숙소가 있는 2층으로 걸음을 옮길 즈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여기 있었군…계속 찾아 다녔는데…..…정지원씨….내 심부름 좀 해라……..”
“예….과장님….무슨….??……”
성질 급한 김과장이었다.
연수원을 숙소로 사용하면서 통제 받는 게 많았는데 불만을 터트리며 강한 반발을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본부장의 지시로 개인 휴대전화 및 인터넷 사용까지 통제를 받으며 생활을 해야 했기에 다소 불편한 것은 있을 수 있겠으나 김과장은 공개적으로 반발을 하고는 부장의 제지로 겨우 무마 될 수 있었던 것도 급한 성격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또한 개인적으로 비밀스런 통화가 잦았던 걸 보면 사생활쪽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칸의 마담과도 애인처럼 지낸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바람기가 심한 건지 사내에서도 여직원과 불미스러운 관계라고 알려지며 수근거리는 대상이기도 했다.
간단한 복장으로 갈아 입은 채 지원에게 다가 온 김과장이 지원의 어깨를 만지며
“우리 집에 좀 다녀와라……..내일이 장인 생신인데…..나 대신……뭐 좀 사서 전해주기만 하면….돼……..”
“선물요……??……”
“그래……돈은 내가 줄 테니…….적당한 양주 하나만 사서……포장하고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그리고…….”
“………??…………..”
“저기 말야…….집사람에겐 다음 주말에야 들어 갈 수 있다고 얘기 좀 해주고……..”
“예에….??…..주말에요…..??……”
“그래…..어디 갔다 올 데가 있는데…….이건 얘기하지 말고 니가 적당히 얘기를 좀 해줘…..알았지……??…….”
“예……알겠습니다……..”
“그래…..부탁 좀 하자……나중에 내….술 한잔 살게………”
지원의 어깨를 치며 등을 돌린 김과장이 숙소로 돌아가고 지원은 김과장의 행동에 이해가 안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숙소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지원없이 보낼 주말이 맥없이 느껴졌는지 지원의 전화를 받는 지혜의 목소리가 힘없이 들려왔다.
연수원에 들어가며 맡겨 놓았던 휴대폰을 받은 지원은 연수원을 벗어나자 지혜에게 전화를 걸었고 지혜는 며칠째 얼굴 한번 볼 수 없는 지원이 보고 싶은지 볼멘 소리를 하며 투정마저 부리기도 했다.
“……남들은 단풍구경 간다고 하는데…..자기 없으니깐 너무 심심하다…….언제 끝나……??..”
“하하하……우리 공주님이 무척이나 심심한가 보구나……..??…….”
“그럼…자기가 없는데……재미 있겠어…….치이……”
“하하하……어디서 만날까……??………”
“………어?……무슨 얘기야……??……..”
밝아지는 목소리에 설마 하는 느낌이 전해져 오고
“나……주말은 쉴 수 있게 됐어…….나보고……그냥 돌아가도 좋데……..”
“정말…..??…..”
“그럼……맛있는 것도 사먹고…….놀러도 가자…….”
신나 하는 지혜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원도 오랜 만에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 사정상 데이트 한번 못하는 게 조금은 미안스럽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 점점 자신에게 길들여지는 지혜를 보는 것도 낙이 되는 듯 생각이 든다.
조금은 차가워진 바람이였지만 차창 문 사이로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에 지원은 상쾌함을 느끼며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른 잎으로 변해가는 나뭇잎들이 차창으로 스치며 가을이 깊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혜는 며칠 만에 만나는 지원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눈물마저 글썽였다.
같은 회사이다 보니 지원의 사정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점점 깊어지는 사랑에 한시라도 못 만나면 못 견딜 것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 짧은 나날이었지만 몇 달 만에 만나는 듯한 표정으로 지원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껴안고 입맞춤이라도 해주고는 싶었지만 만나는 장소가 사람들이 많아진 대로변이다 보니 손을 잡으며 어깨를 어루만지는 행동으로만 대신 할 뿐이다.
“…..어디 봐…..자기….얼굴 많이 상했다……….어디 아픈 데는 없지…..??……”
“하하하…..내가 어린애냐….??…….괜찮아….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나…자기 많이 보고 싶었단 말야……..”
“알아…….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지혜의 눈에 반짝이는 기쁨의 물결이 보이며 밝아진 미소가 떠오르고 혼자만의 짝사랑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오랜만의 데이트에 지원과 지혜는 함박 웃음을 지은 채 쇼핑도 하고 팔짱을 낀 채 거리를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신촌거리를 거닐던 지혜에게서 전화벨이 울린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의 물결로 가득 찬 듯 보였고 다소 소란스러운 가운데 지혜가 가방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고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으응…..언니………왜…??………뭐라고……??…..”
좋지 않은 일인 듯 지혜의 표정이 변했고 걸음을 멈춘 채 지혜는 굳어진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어 갔다.
“………그래….알았어……들어갈께……”
힘없는 표정의 지혜가 지원을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원씨…..나 들어가 봐야 겠어……..”
“집에….??……왜…..무슨 일이 있어….??…..갑자기…….”
“엄마가 아프셔서…….가 봐야 될 것 같아……….자세한 얘기는 나중에…..할께…….”
얘기가 하기가 거북한지 지혜는 말을 아끼며 아쉬움을 나타냈고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원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할 수 없지…..얼른 가봐……다들 기다리시겠다……..”
“미안해……나 때문에 주말 다 망치고………”
“아냐….그런 말마……집에 일이 있다는데…..어떡하겠니……….내 걱정은 마……”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지원과 지혜가 길거리로 나왔고 다행히 비워지는 택시를 잡고는 지혜를 태울 수 있었다.
아쉬움이 묻어나는 눈빛을 보이던 지혜를 태운 택시가 출발을 하고 한동안을 멍하니 선채 지혜가 간 방향만을 바라보던 지원은 씁쓸한 표정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지원이 해가 질 무렵 찾아간 곳은 김과장의 집이었다.
연수원을 나오며 부탁 받은 일이었기에 지원은 빨리 처리하고는 집으로 들어 갈 생각이었고 김과장의 주문대로 제법 가격이 나가는 양주 한 병을 사가지고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섰다.
예전 한번 와 본적은 있지만 그때는 늦은 저녁이었고 회식 때 취해서 인사불성이 돼버린 김과장을 부축하고서 왔을 때였다.
화가 난 듯한 김과장 부인의 표정을 보면서 괜히 미안한 생각만 들었던 기억이 났고 어색한 기분도 느껴졌다.
김과장이 알려 준대로 지원은 호수를 찾고는 벨을 눌렀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인터폰을 통해 여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소 톤이 높은 듯한 목소리와 회사 동료로서 심부름을 왔다는 얘기에 맥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느껴졌다.
문이 열리며 짧은 커트 머리에 제법 큰 키의 김과장의 부인이 모습을 보였고 지원은 다소 주눅 든 표정으로 김과장의 심부름을 왔다고 말을 건낸다.
방문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 김과장 부인은 당황스런 모습을 보이며 지원에게
“어머….미안해요……괜한 일을 만들어서요……”
“아닙니다……과장님이 나올 수만 있었으면 직접 오셨을 텐데…..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네..에……언제쯤 올 수 있다고 하던가요 …..??….”
“글쎄요…..다음 주말까지는 우리 부서는 심한 통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음 주말요….??… 전혀 나올 수가 없는 건가요…..??……”
“네….아마도 과장님도 그렇지만…다른 분들도 ……”
실망스런 기색이 김과장 부인의 눈가로 번져 나왔다.
평소에도 늦는 일이 많았지만 자신의 친정 집에 오랜만에 나들이를 생각했던 은아는 맥이 빠지는 듯 기운이 없었고 아무리 회사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전화 한번 없이 직원들을 통해 소식을 전하는 남편이 밉게도 생각됐다.
가정에도 소홀했지만 자신의 친정 일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항시 보여주는 모습에 실망하기는 했지만 이번 만큼은 설마 하며 한가닥 기대를 가졌었는데 또 한번의 실망을 안겨 다 주는 남편에 대해 은아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참을 수 없는 분함에 열기가 오르는지 은아는 손으로 얼굴을 부치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지원은 난처했다.
문밖에 선채로 김과장 부인의 심각한 얼굴을 봐야만 했고 얼굴을 굳히는 모습에 괜히 당사자라도 되는 듯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저….이거는…..선물이라며…과장님이…….”
지원의 내미는 상자를 바라보며 은아는 마른 한숨을 토해내고 난처해 보이는 지원을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우며
“미안해요….괜히 시간만 뺏어서……잠시 들어오세요…….차라도 대접 할께요……..”
“아닙니다…..저는 됐습니다……그냥…..”
“그냥 가시면 제가 미안해요……어서 들어오세요…….”
상자를 손에 든 채 김과장 부인이 안으로 들어 가고 잠시 머뭇거리던 지원은 할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런 동작으로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벨 소리에 궁금했던지 거실에 나왔던 김과장의 자녀들이 엄마의 나무라는 말투에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지원은 텅 빈 거실에 혼자 자리를 차지한 채 거실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한 동안의 시간이 흐른 후 찻잔을 든 김과장 부인이 탁자로 커피 잔을 내려 놓으며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아직도 할 일이 그렇게 많은가요…..??….집에 안온지가 벌써 이주가 넘었는데….??….”
지원은 알 수 없는 냉기가 가슴 속을 훑고 가는 걸 느끼며 잠시 뜸을 들이다
“…아…….예…..그게…생각대로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저야…그냥 심부름이나 하고 …보조 역할만 하고 있지만……저 역시도…요즘 거의 집에 못 들어 갔으니까요…..”
고개를 끄떡이는 은아는 화가 나면서도 무슨 말을 어떻게 물어 봐야 할지 생각이 떠 오르질 않았고 남편이 요즘뿐만 아니라 가끔씩 외도를 하고 있음에 단체 합숙을 한다는 사실에도 별다른 믿음이 생기지가 않았다.
아예 신뢰를 할 수가 없었다.
바람을 피우는 것 같기는 한데 남편의 옷가지나 소지품에선 흔적이라고는 없었고 오히려 너무 깨끗하다는 게 불신만을 더 키울 뿐이었다.
“저기….요즘 저희 남편에게 별다른 일은 없지요……..”
“……별다른 일이라면….무슨……??…….”
“아….아녜요……그냥 걱정이 되서요………”
“예에……요즘 고생들 많죠 뭐…….연락 할 수 있는 통신 수단마저 끊겨 있어서….좀 그렇습니다……..”
지원은 김과장부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집에서도 김과장의 행동을 알고 있는 건지 그녀의 물음 속엔 알 수 없는 덫이 있는 듯 느꼈고 지원은 함부로 아무 말이나 꺼냈다가는 자신이 난처해지리라는 생각에 말을 아끼며 그녀의 행동을 지켜 보기만을 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그녀의 얼굴엔 계속적으로 움직이는 눈동자만이 바쁘게 움직일 뿐 소파에 앉은 자세로 그대로 굳어진 듯한 모습은 긴장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짧은 반바지에 반팔 티를 입은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커피 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지원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어떤 물음이 자신을 난처하게 만들까 하며 당혹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깔끔해보이는 이미지때문인지 조금은 깐깐할 것 같은 성격일 것 같았고 남편의 부하 직원이라서 어쩌면 유도 질문을 할 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자 은아는 내심 답답하기는 했지만 남편의 부하 직원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고개를 들며 지원을 바라보았다.
긴장된 듯한 지원의 모습이 보여지고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쓴 웃음도 떠오른다.
“불편하세요……..??….”
“아…..아닙니다…….”
보기보다는 순진한 면도 있었지만 훤칠한 키에 뚜렷한 마스크가 꽤 보기가 좋으면서도 알 수 없는 부러움도 생겼다.
다정할 것 같은 느낌이 은아의 뇌리에 각인되며 요즘 젊은이치고는 꽤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애인이 어떤 사람일지는 몰라도 자신보다는 행복하리라는 생각에 쓸쓸한 표정을 남긴다.
지원은 김과장이 2주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소문으로만 들리는 불륜설이 확실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시간을 보냈는지는 몰라도 그 긴 시간을 호텔등을 전전하며 지내지는 않았을 것 같았고 요정 칸의 마담보다는 사내 여직원일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지만 볼륨 있는 몸매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부인이 있는데 김과장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지원은 자신을 바라보는 김과장부인에게 시선을 맞추고는 어색한 듯
“…..며칠만 고생하면 끝날 테니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네……할 수 없죠…뭐…그나 저나……..오랜만에 오셨는데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세요….어차피 시간이 저녁이 다 되어가는데……..”
“아…아닙니다…..집에 가 봐야죠……..”
“하여튼 고마워요……그리고….들어 가실 때 잠시만 들려주시면 안될까요…??…..남편 옷가지라도 챙겨야 될 것 같아서요…….”
“아…예….그렇게 하겠습니다….일요일 저녁에 들리겠습니다……”
자리를 일어선 지원은 현관까지 배웅하는 김과장 부인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고 무사히 넘어 간다는 안도감도 생기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일요일 저녁에 오겠습니다……그럼…안녕히 계십시오…..”
“네…안녕히 가세요…….”
미소를 지은 김과장부인을 보며 처음보다는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
“잠깐만요………저기요………”
“예에……??……….”
“혹시….이름이라도….얘기 해 주셔야……..”
“예에…..정지원입니다………”
“네에…..그럼 안녕히 가세요…지원씨…. “
알 수 없는 느낌이 지원에게 전해졌다.
차갑게 보였던 이미지가 금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변한 게 신기한지 지원은 당혹스런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며 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트 안으로 들어서고는 문이 닫히길 시작했다.
연락이라도 있을 법 하건만 지혜에게서 소식이 없다.
몇 번을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봤지만 어제 밤부터 전원을 끈 채로 일요일 낮이 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무슨 일일까 하는 의구심에 지원은 초조한 마음만 들뿐 어떻게 하루가 지나는지 시간을 잊은 채 집안을 벗어나지 못하고는 서성이는 동작만을 되풀이 할 뿐이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며 늦은 오후의 마른 햇살은 미약한 온기만을 남기며 콘크리트의 숲 사이로 점점 기울기 시작한다.
오후 6시가 될 무렵 지원은 김과장의 아파트로 들어섰다.
답답해진 마음에 울적하고 초조한 기운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부탁 받은 일은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간단한 복장으로 아파트에 들어서고는 김과장의 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싸늘해지는 기온과 낙엽에 섞여 날리는 마른 먼지때문인지 다소 한산한 모습이 보이며 아파트 안은 고요한 듯 느껴진다.
복도를 지나 김과장댁 문 앞에 선 지원은 심호흡을 하고는 벨을 눌렀고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어제처럼 김과장의 부인이 문을 열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어제보다는 밝아진 얼굴이었고 얼굴에 잔잔한 웃음마저 띄운 채 지원이 현관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며 지원을 안으로 맞아 들였다.
“안녕하셨어요……”
“어서 와요……괜히 저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어제처럼 반바지와 반팔 티를 입은 채 김과장의 부인은 거실로 오르는 지원을 따르며 제법 다정한 말투로 빈말을 건네왔다.
음식을 만들고 있었던 듯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배어 있었고 지원은 그녀가 권하는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며 마른 웃음만을 내보이고 있었다.
“…..애들 줄려고 과자를 좀 만들었는데…..아직도 냄새가 가시질 않네요…….”
“예…..그랬군요………..애들은……??……”
“일요일이라 놀러들 나갔어요…….아빠라도 있었으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 올만 하겠지만……어쩌겠어요……지들도 답답한지 집에 붙어 있질 않네요……”
지원은 김과장 부인으로부터 권태로운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무런 즐거움도 없는 것 같았고 매일 매일을 시간만을 때우며 무료한 일상만을 보내는 것처럼 단조로운 삶을 사는 듯 느껴졌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의미 없는 인생을 보는 것처럼 지원은 측은한 마음도 생긴다.
“과장님이 이번 일만 잘되면 …앞으로는 시간이 많아 질 겁니다……조금만 참으세요….”
고개를 숙여가던 그녀가 지원의 말에 뚫어지듯 바라보았고 보여지는 눈 속엔 의미 모를 눈빛이 흐르며
“그렇게 생각하세요…..??…..”
“………??…………..”
조금전과는 다른 의도적인 눈빛이 보였다.
“결혼하고 그 사람은 집에는 관심이 없었어요…….오직 일과 골프….그리고 아마도 여자가 있었겠죠…….아무도 말은 안해 주지만 ……..난 알 수가 있어요…….”
“………………..”
“지원씨라 그랬죠…..??…….”
“……….예…… “
“얼마 없으면 지원씨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나을 테지만……..지원씨가 보기에도 저희 남편 한심해 보이지 않던가요…….??…….후후….이젠…남아있는 정도 없어요……”
그녀의 눈빛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건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향한 증오의 눈빛이었고 권태롭고 무미건조한 회의 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즈막히 말을 뱉어낸 은아는 얼굴을 굳히고 있는 지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흘려 낸 말이었지만 역시나 젊은 부하직원은 남편의 행실을 어느 정도 아는 것 같았고 자신의 유인에 얼굴 가득 놀라움을 표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원의 표정을 보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심방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것도 느낀다.
“어차피…..그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던 것 같아요……비록 연애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저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나네요….애들만 아니면…..벌써………”
마른 한숨을 내뱉는 김과장 부인을 보며 지원은 마른침 만을 삼키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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