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19부
본문
바람소리-
제 19 부 : 운명의 도돌이표
진검사는 마음이 급하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위로부터 된소리를 하나 가뜩 먹고 내려 왔음에도, 별로 마음이 상하진 않았음이 이상하기도 했다.
‘뚜르르…..’
‘여보셔, 한민일보 소기잡니다.’
‘나다….’
‘알고 있어. 눈까리 달렸는데, 니 전번도 모를까 봐?’
‘근데 어쩌자고 통성명? 그 놈의 소기자, 내 하지 말랬지? 좋은 껀수 있어도, 니 눔의 속이자 어쩌구 하는 소리에, 역시나 기자들은 누구나 속여대는 설레발에, 뻐꾸기 하나는 죽이는 인간들이야 라고 안 하겠냐?’
‘그렇다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어쩌라구? 이름값 허게 또 속여? 예끼 이 사람아! 근데 무신 일로 이렇게 힘없는 기자 한테 전화를 다 주삼?’
‘곱창이나 채우게 나와라.’
‘하이고, 어디서 돈봉투 돌았나? 어쩐 일루?’
‘뜰래?, 안뜰래?’
‘야! 밥 처먹는 게 무신 맞짱이냐? 좀 고운 말 쫌 써 보지? 그 바닥은 표준말도 안 쓰남?’
‘올래? 안 올래? 안 오면 나만 푸고……’
‘허어, 이 사람이 푸긴 뭘 퍼? 똥 퍼? 트웬티 미니또, 오케이?’
‘알았쓰…그 부대고기 집에서 보자.’
‘그 말 왜 안나오나 했다. 내가 그랬쥐? 맨날 그 놈의 부대찌게만 처먹었으니, 영양 불균형이 되서리, 키는 안 크고, 수채구녕 멕히듯이 좇대가리만 심통맞게 굵어 졌다고…..’
진검사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던 차에, 고향 친구인 윤택이를 불러내며, 때 늦은 시장기를 느끼고 있었다. 검찰 출입기자는 아니었지만, 소기자는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제법 발도 넓고, 주어듣고 다니는 것이 많아,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 적이 많은 친구였다.
‘여기다! 트웬티 미니또?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나 먼저 소주 깠다. 찌게 끓은 지가 은젠데, 이제사 세수대야를 디밀어?’
‘쌍판을 보아허니 너 또 밥도 안 처먹고, 애국허러 다녔냐? 하이고, 그렇게 식비 아끼다가, 너 길바닥 에서 허기져 뒤진다, 알아? 그건 그렇고…왜 이렇게 복작댄다니? 저치들 밥 해 주는 마누라, 다들 팔아 먹었나, 왜 이렇게 복작들 대?’
사실, 주말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식당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저마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해야 될 법한 얼굴과 차림새에다, 나이들로 보이고는 있었어도, 뭐가 그리 바쁜 업무가 밤중까지 이어지는지, 주변의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허기를 채우거나, 속도전으로 술에 취해 가려고 안달들을 떨고 있었다.
‘진검사, 너 요즘 스타 됐드라? 아주 TV뉴스에 도배를 하드만. 그렇게 유명세 타다가 바닥으로 잘못 떨어질 때면, 날개도 없고, 약도 없어서리, 졸나게 까인다며? 대강대강 해라. 눈이 많으면, 적도 많아지는 법……’
‘윤택이 너 이시키, 맨날 내 이름 빼고, 알로 깐 진검사, 진검사 부르는 이유는 뭔데?’
‘그걸 몰라서 묻냐? 너랑 이렇게 마주 앉아서, 아무런 소리 없이 밥 처먹어 보라 말이지. 누가 너더러 검사 양반 인줄 알겠냐? 어디서 카드값 몰린 나처럼 선량하게 생긴 인간이, 니 눔처럼 우악시럽게 생긴 인간 앞에, 죽여줍셔 하면서 접대 허는 줄 알지. 니 쌍판, 넌 세수할 때, 쳐다도 안 보냐? 꼭 생긴 건 고리대금 업자 처럼 생겨 설랑은…..가슴패기에 쯩만 떼보지? 영락 없이 그 부류로 보이는데, 내가 진검사리고 불러주는게, 얼마나 니 인생에 기깔난 도움을 주는지, 이제는 이해가 가실턴데, 그 호칭 하나에 사람이 달라 보인다 말이쥐…..’
‘한잔 받아라. 이게 얼마 만이냐? 보자, 보자 하면서도 그게 그러니까, 벌써 3년됐나?’
‘2년 9개월이다 정확히 짚으면……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얼추 맞추긴 허네? 나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는데, 그 놈의 중국 무협 비디오 있잖어? 그거 보면 꼭 나오는 게 있거덩? 주인공이 열나 깨진 담에, 나쁜 쉐이들 보구서, 10년후에 보자, 5년후에 보자 허면서 발르는 장면? 난 첨에 뙈놈 쉐이들, 뭐 세월이 그렇게 지를 위해서 엿가락 늘이듯이, 죽죽 쳐지면서 흘러가는 줄 아느냐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이젠 그 짝이 났다는 거 아냐! 금새 눈 감으면, 2,3년 후딱, 5년은 기본이고, 10년전도 엊그제 같고……세월이 쒸발, 날개를 달아도 분수껏 달아야 쥐, 느느니 카드 빚이고, 처지느니 좇대가리 라고, 영 세상 살 맛 없다. 요즘…넌 어떠냐?’
‘어여 한잔 털고, 나 한잔 줘야쥐?’
‘왠일로?’
윤택이 빈속에 소주를 털어넣고, 잔을 내민다. 온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찌게 국물을 들이키면서,
‘내 생각에 소주는 목으로 넘어간 담에, 그 뒤를 조져대는 안주 땜시롱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거 같단 말이야. 근데, 뭔 일로 그렇게 장엄한 표정으로 술을 까시남? 내가 잘 못 봤나? 누구에게 돈 아까와서리, 시킨 술 빨리 닳지 말라고, 권주라는 단어는 아예 지 사전에 키우지도 않는 인물이……’
‘일이 쫌 그렇다. 맘 같이 잘 안 풀려서리…..’
‘진검사, 내 이런 말 한다고 고깝게 듣진 말고…..너 지금까지 너무 숨가쁘게 달려 온거 알고는 있냐? 누구나 사는 거 힘들지, 그렇긴 한데, 앞만 보고, 누가 니 발밑에 깔리네 어쩌네도 돌아보질 않고, 무작정 달려온 걸, 이제는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이야. 내 친구로서 한마디 한다면 말이야.’
‘니가 보기에도 내가 그렇게 무지한 놈으로 보이냐?’
‘뭐 무지하다라기 보담은……한마디로 불쌍허지.’
‘아니, 내가 어디가서 구걸을 해, 출세를 못했어, 인물이 남보다 못해, 좇대가리가 부실해, 불쌍허긴 뭐가?’
‘그래? 진검사, 넌 살아가는 목적이 뭐냐?’
‘살아가는 목적?’
‘그래, 무얼 위해서 밥도 안 처먹고, 애국허면서 돌아댕기느냐 이거요! 행위의 근본이 되는 동기 말이오, 동기…..’
‘글쎄, 이 일이 나의 삶의 전부라서가 아닐까?’
‘진검사, 이기 무신 기자회견장 아니거덩여? 좀 솔찍해라 말이지. 나야, 마누라랑, 새끼들 등쌀에 뼛골이 다 휘어질 지경이지만, 그 안에서 가족이란 소사회를 일구면서, 그나마 기쁨을 느끼며, 살아 대는데, 너의 인생에는 아무런 건덕지네, 미련도 없이, 그저 일 뿐이라는 말은 납득도 안 될 뿐더러, 이 평범한 대가리로는 적응이 시방 안되고 있다, 이 말이야.’
‘난 지금, 윤택이 너 한테, 일이 잘 안풀려서 도움을 구하려고 아가리를 놀리고 있는데, 왠 뜬금없는 가족 타령? 너 가족탕 이용할 수 있다고, 나 헌테 지금 자랑까는 거야, 그런 거야?"
‘니 얼굴을 보아허니, 여난이 시작되고 있네. 예전에 그 살이 끊어져야, 니가 장원급제 한다고 했을 텐데?’
‘또 그 놈의 운세 타령? 어디가서 자리나 펴고 앉았지, 뭔 놈의 기자질?’
‘조심해라. 그 여자 가까이 했다간 니 운세에 어떤 벼락이 칠지 누구도 모르니…..미주라고 했던가? 너 시험 붙기 전에 열불 내며 돌아 댕기던 그 보지에 금띠 두른 년…..’
‘내 얼굴에…그렇게 씌어 있냐? 정말로?’
‘내가 운세를 모른다고 치자, 기자 생활 이정도 짠빱 이면, 단어 하나만 날라 댕겨도 뭔 이바군지, 좌르륵 꿰차는 거 몰라서 물어? 기자질? 그거야, 먹고 살자고 댐비는 짓거리지, 내가 그걸로 인생 탱글거리며 보낸다고 생각했다간 오산이쥐, 암. 오산 이고 말고….보이는 걸 다 믿을 수 없는 요즘 세상 이라고는 해도, 내거 널 두고 뵈지도 않는 걸로 이바구질 허겠냐? 너 한테는 성잔가 뭔가 허는 그 여자가 제 격이라구. 혼인의 끈이 아직은 뵈덜 않기는 해도….내가 틀렸냐? 너 외롭고 지치면, 가서 몸 풀고, 맘도 풀고 오는 곳이 그 곳 아니야? 그 여자 말고, 널 그다지도 이해해 주는 여자 봤냐? 내가 전에도 얘기 했지? 니 전생이 하도 드러워서 그렇다고……’
‘그 놈의 전생…..이건 무신 드라마도 아니고설랑……’
‘니 놈은 전생에도 칼을 물고, 이생에서도 칼을 든 인간이야. 알어? 아주 가까운 전생의 니 역할, 내 얘기 했었지? 망나니라구……줄창 남의 목을 베어댔으니, 그 손에 담긴 업과 살을 누가 어루만져 줬겠냐? 그 여자 말고는 없쥐. 게다가 이생에서 조차, 또 검사질 이네 뭐네 하면서 손에 또 칼을 들어? 아서라. 입신양명이란 허울이나 뒤집어 쓰고서, 너 지금 애국헙네 허면서 돌아댕겨도, 니 손에 남은 게 뭔데? 진검사 너, 고등학교 때, 연극 허다가니, 주인공 하던 김삿갓이랑 대판 붙어서, 일 낸 거 기억허지? 이제사 생각해 보니, 니 놈의 전생이 그 분란을 일으킨 게야.’
‘아니, 고딩끼리 쌈박질 쫌 한 거 가지고, 왠 운명쪼?’
‘너 그 삿갓이 언뜻 보면 뭐랑 비슷헌지 알기나 아냐? 용수야 임마, 용수….’
‘용수라니?’
‘예전에 죄인들을 외방으로 데불고 다닐 때, 얼굴에 씌우는 바구니 처럼 생긴 거…못 봤겠지. 어련했겠니? 죄수들만 보면, 내가 저 시키들 땜시롱, 맘에도 없는 피를 손에 묻힌다는 울분이 평생 속에 쌓여서리, 니 영혼의 석판 위에 깊게 각인되어 있질 않았겠느냐구! 그래도 내 말이 이해가 안오고, 오해가 대신 와?’
‘그건 억지야, 임마.’
‘억지긴? 내가 또 얘기 해 줘? 내 눈에 보이던 것에 의하면, 넌 망나니 중에서도 개망나니 였지만, 신분과 맞지않게 애국심도 있었다구. 본의 아니게, 충신의 목을 날린 게 하도 억울해서 그 무어냐, 그래. 전패를 뚜드려 부순 죄로, 니 칼에 니가 목숨을 잃었다는 거 아니냐!’
‘전패는 뭐였지? 니가 허던 말, 듣긴 했는데….’
‘전패는 이를테면, 관공서에 달려있는 대통령 사진이라고 볼 수 있지. 옛날에 임금을 대신 헙네 허면서, 외방의 수령이나 관리들이 때 되면, 임금을 배알 허는 것처럼, 하례를 올리는 나무로된 기념패를 말하는 거지. 간신배의 감언이설에 속고 있는 임금의 귀때기가 당나귀 귀가 아니라, 똥꾸녕 자루만도 못하다고 부셔 놨으니, 니가 죽지, 배기기나 했겠냐? 그 신분의 제약과 울분을 이생에서나마 풀려고, 악다구니로 공부를 허긴 했는데, 그 씨부럴 년의 살이 끼어서, 그때까정 입신양명 못했다는 거, 내가 예전에 다 야그 해줬을 텐데….’
‘그런 씨잘데기 없는 소리는 됐고…..요즘 뭐 들은 거 없냐?’
‘들은 거? 들은 거야 많지. 니 놈 똥플레이 허는거, 헛다리 짚는 거 하며…..’
‘헛다리?’
‘넌 씹쉐이야, 영화도 안 보냐? 언제나 주인공이 티미허게 헛지랄 떨 때, 누군가 나타나서 허는 야그 몰라? 이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면, 결론은 쉽게 풀린다고 뻥치고 사라지는 장면…..니가 주인공은 아니라 해도, 친구로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라 이거야. 누가 이 상황에서, 무슨 이득을 보기 위해, 또 바꿔 말하면, 무슨 좇겉은 결과를 피할려고 그 지랄을 떠느냐를 알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다 이거지.’
‘아쭈구리?’
‘잘 들어, 진 검사……먹이가 맥을 놓고 있는데, 놀고 있을 승냥이는 없다. 들러 붙는 것들은 모두 무언가 뜻이 있기 때문이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함도 있을 수 있고, 먹이 사슬의 고유한 체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숭고한 의의도 있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배고픔과는 상관 없이 시체의 피로 떡칠을 하는지도…..’
진검사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불알 친구 이면서도, 자신의 폐부를 속속들이 들여다 보고 있는듯한 윤택을, 되도록 의도적으로 멀리하려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요 근래, 너무 힘들다. 미주를 다시 만나서, 내 자신이 너무 흔들려 버리고 있어서….’
‘옛말에도 있다. 유혹은 달콤한 독약과 같다고….첫 맛이야, 졸나구 달착지근 해도, 목구녕을 넘기는 순간, 독약임을 알아차려도, 때는 이미 늦은 거라는 사실…..그 년….막말로 악연이라구. 조심해라. 널 도와줄 의인은 따로 있어, 알고는 있냐?’
‘내가 너처럼 뭐가 뵈길 허냐, 그렇다고, 너처럼 신문 모아다가 짓거리를 할 쭐 아냐? 너 요즘도 그거 허냐?’
‘먹고 살자고 허는 기자질인데, 그거 쉬면 되겠냐?’
‘신빙성이나, 적중률은 있는 거야?’
‘요즘 컴터 성능이 쫌 좋아져서, 그 덕 쫌 보고 있기는 허지. 기자들이 허는 짓…..무시허면 못써여. 세상에 뭔일이 일어나느냐 하면서 굶주린 사자처럼, 상한 심령을 찾아댕기는 거이 아니고, 뒤틀린 진실이 뭐냐 허면서, 눈에 불켜고 다니다 보니, 반 사냥꾼이 다 되어 가거덩. 짠빱이 늘기 시작하면, 손으로 놀려대며, 써 내려가는 자신의 기사의 곳곳에, 자기도 모르게 앞 일에 대한 예지부분이 톡톡 튀어 나온다구. 마방진의 현묘한 진실처럼, 세상사에 짜 맞추어 돌아가는 일종의 방정식을 몸소 본능이 풀어간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연예부문 기사만 줄창 모아서 반복되고, 강조되는 단어들을 추출해서 배열 하다보면, 정확한 날짜까지는 몰라도 왠 잡것들이 씹빠빠 허다가니 뽀록나겠구나 하는 등의 일이 앞으로 벌어지겠넹 하는 것쯤은 과학적으로나마 검증해 낼 수 있지. 그건 정치부문, 외교부문, 사설, 논설, 심지어는 4단비평만화의 지문까지도 그 깊은 자연의 진리가 담겨 있다는 거, 믿어지냐? 그래서 기자들이 허는 이바구, 무시허면 경쳐요.’
‘그래, 요즈음 니가 바라보는 핫 이슈는 뭔데?’
‘글쎄 이 고매한 이상을 논한들, 너 같은 망나니가 이해나 헐 수 있을런지…..’
‘참, 너 먹고 싶은 거 많아서 제수씨에게 혼 안나니? 아는 게 그리도 많으니, 먹고 싶은 건 또 월매나 많을꼬?’
‘근데, 제일로 무서운 것은 너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지…..그건 파도 이기도 하고, 메아리 이기도 하고, 부메랑처럼 보이기도 하고, 언제나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수레바퀴 이기도 하지…..’
‘그게 뭔데…..’
‘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애국인지, 모반인지, 니 스스로 판가름이 되면, 내 얘기해 주지. 다만, 내가 진정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너를 도와줄 귀인을, 절대 적으로 만들지 말라 이거야, 알겠니? 오늘은 여기까지……야, 찌게 따 쫄았다!.....아주머니…여기 육수 쫌 부어주시징!’
진검사는 윤택이의 말이 가슴에 와 깊이 꽂히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현재 위치가 적이 될 수도, 혹은 아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리고 있었다.
‘윤택아, 한가지만 묻자, 니가 무신 신통방통해서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지금 가장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손아귀에서 놓친 걸 다시 찾으려면 어찌 해야 될까?’
‘니 손아귀가 안전하다고 느꼈다면, 놓쳤다고 생각했던 그 새는 도리어 니 손으로 돌아올 꺼고, 정작부터 니껏이 될 물건이 아니었다면, 손에 자물쇠를 꽁꽁 채워놓았다고 해도, 바람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갈 건 뻔한 세상 이치 아니겠니? 강태공은 고기를 잡으려고 낚싯대를 드리운 게 아니라 이 말이쥐, 세상을 낚고자 했으니, 미끼도, 찌도, 바늘도 필요 없는 거라구. 적이냐, 아군이냐, 돌아오냐, 아니냐, 잡을 수 있느냐, 놓치느냐? 그런 소소한 것들에 연연해 하덜 말고, 기다리면서 한가하게 낚싯대를 한번 드리워 보는 건 어떨까? 남들은 모두 니가 공명심에 사로잡혀 품속으로 앙심을 품고서, 칼을 갈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넌 이 시점에서 다른 관점을 통해, 기다림과 침묵의 미학으로 대응 하는 거야. 그로 인해, 너를 바라보는 자들의 경계심이 무뎌지고, 너쯤이야 하는 방만한 심사가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절대 칼을 뽑질 않는거지. 어때? 할 수 있겠어? 그 시기가 오면, 넌 알게 될거야. 누가 적이고, 누가 너의 편인지…그리고, 너의 앞에 가로 놓여진 운명조차도…..’
진검사는 속이 후련하게 뚫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너무 편협하고, 좁은 시각으로 이 사건을, 자신의 삶을 후려치고 있었다는 후회와 더불어, 관조의 여유로움을 이제는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고 있었다.
‘띵동……’
‘누구세여?’
‘나야…꺽…꺼윽……나라구!’
‘아, 난 또….’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사람은 진검사가 울적할 때마다 찾는다는 바로 그 여자였다.
‘꺽…끄윽…일 안 나갔니?’
‘오늘, 낼즈음, 오빠가 올 꺼 같아서 그냥……’
‘몸조심 해야지….꺽..끄윽……그러다 잡혀 들어가도, 내가 어찌 손도 못 써보는 거 알고는 있쥐?’
‘네. 조심하고 있어여. 어디서 이렇게 술을 드셨남? 보아하니, 오빠 또 부대찌겐지 뭔지, 먹었져? 밥도 안 드시고 설랑…..금방 밥 차려 올께여.’
그러나, 그녀는 밥을 차린다면서 방을 나갔다가, 바로 수건과 더불어 세숫대야에 물을 받쳐들고 들어섰다. 벽에 기대어 꺽꺽대며, 술에 취한 진검사의 웃저고리를 찬찬히 벗기고, 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고, 팔과 손, 그리고, 마지막에는 땀에 찌들은 양말까지 벗겨, 발까지 씻기우고야 마는 그녀였다.
‘꺽….나 밥 안 먹는다. 윤택이 쇄끼가….. 얼마나 찌게를 들구 퍼 멕였는지…꺽…끄윽…목이 졸나구 타네…짜게 먹었는 갑다. 냉수나 쫌 주렴…..’
‘네…..’
그녀는 얼른 다 찌그러져 가는 냉장고에서 물을 따라, 진검사에게 건네고, 담배에 불을 붙여 손에 들려 준다.
‘휴……밥은 먹었니?’
‘네.’
‘……일은…. 요새 어때?’
‘그 날이 그 날이져, 뭐. 숨바꼭질에다…..떴다 하면, 꽁지 감추고 내빼기 바쁘고….’
‘성자야…….. 나…… 그 여자 만났다.’
‘그 뭣이냐, 날 닮았다는…..’
‘응….’
‘얘기해….봤어여?’
‘얘기는…..그냥 먼 발치에서 보기만…..이젠 딴 사람 부인 됐는데, 뭘……’
‘그랬구나…..’
그러나, 그녀의 눈가에는 안도의 빛이 감돈다.
‘오빠, 제가 주물러 드릴께여. 국 끓을 동안만….’
‘안그래도 돼.’
‘아니에여. 나 오늘 TV에서 오빠 봤는뎅…..얼마나 목소리가 우렁차던지…..’
‘성자야!’
‘왜 자꾸 오늘은 이름만 부르고 말씀을 안 하실까? 빨아 드려여? 아님, 국 내려 놓고 와서 바로 옷 벗으까여?’
‘아니, 오늘은 그러지 마라.’
‘왜여? 오빠, 그거 좋아하잖아여. 나 덮치는 거, 그리고, 내가 아파서 질질 짜는 거…..나 그거 잘할 수 있는뎅…..’
‘그거 말고…..성자, 너 몇 살이지?’
‘음….속여서여, 아님, 진짜루?’
‘진짜루…’
‘스물 둘이여. 에이그….한 것도 없이 나이만 처먹었넹. 그쳐?’
‘너 언제부터 이 바닥에 나왔다고 했지?’
‘음, 그러니까….열 여섯이여. 이제 고물 소리 들어여. 아니, 오빠 그걸루다가 나 잡아 넣으려구여? 나 아직 적금 부을껏두 남았는뎅….아니져?’
‘내가 우리 착한 성자를 왜 집어 넣어? 이리 와봐.’
‘이상하시다. 오늘은….오자마자, 바지도 벗기전에, 내 옷도 찢다시피 하면서, 그거 하셨었는데, 왜 오늘은 이다지도 뜸을 들이실까? 오늘은 뭐 다른 놀이 해드려여? 뭐가 재미있스까?’
‘아니, 오늘은 우리 성자 얼굴 쫌 찬찬히 보려고…..’
‘봐 봐야, 화장도 안한 민한 얼굴 그대론뎅…..뭐 볼 꺼 있다구….에그그, 국 넘치나봐여.’
방에 딸린 부엌으로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진검사는 올려다 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나, 그 여자랑 했다? 남편 없는 사이에 도둑괭이처럼 집에까지 가서, 남편 내 놓으라고 을러대면서 마구 했어!….마구!…..나 나쁜 놈이지?…..’
그녀도 진검사를 내려다 보지도 않고 얘기를 이어 나간다.
‘아니여…..잘 하셨어여. 무진장 보고 싶어 하셨잖아여. 보고 싶었다고는 하셨어여? 꽃을 사들고 가고 싶다고 하셨는뎅……그러셨는가 몰라. 저 부엌에 갔다 올께여. 국 다 넘쳤겠당….’
그에게서 손을 슬며시 빼어, 부엌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살냄새가 훅 하며, 진검사의 코끝을 스치고 있었다.
‘으이그, 다 눌어 붙었네….어쩌지?’
그녀가 좀처럼 방으로 상을 들고 들어올 기미가 없자, 진검사가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을 발끝으로 열어 재꼈다.
‘괜찮아. 나 배 안고프다….뭐하니?.....너?....... 우니? 우는 거니?’
그 좁은 부엌의 구석에 쪼그리고 등을 돌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외소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진검사는 하고 있었다. 몸을 틀어 문지방에 엉덩이를 걸치고, 꼬리 흔드는 강아지 새끼 부르듯이, 진검사가 두 팔을 벌렸다.
‘우리, 착한 성자를 뉘기 울렸대? 누가? 어여 일루 와 봐. 얼릉? 자꾸 그럼…… 나 간다? 삐져서 가뻐린다?’
그제서야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로 울먹이는 그녀가, 등을 돌려 진검사에게 다가선다.
‘오빠, 아직 그 여자……. 무지 사랑하져?’
‘아니! 이젠 아니야. 나한테는 성자, 니가 있잖아? 좀 껴안아 보자. 얼릉?’
그러나, 도리어 그녀는 부엌 문턱에 발을 걸치고 있는 진검사의 아랫도리에 무릎을 꿇고,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이런 거 말고….오늘은 그냥 껴안아 보자니깐?’
‘아니에여. 하던대로 해여. 그래야 오빠 맘이 풀리는 거, 나 다 알아여. 그 여자가 미치도록 보고 싶으면서두, 품에 없어두 안고 싶어서, 나라도 대신 건드리는 거……나두 다 알아여. 괜찮아여. 어차피 밖에 나가도 허는 짓인데여 뭘….괜찮아여. 쭙쭙..쭙쭙…..’
그녀는 만류하는 진검사의 손길을 뿌리치며, 기어이 진검사의 좇을 입에 물고야 만다. 진검사는 술기운과 함께 덮쳐오는 아랫도리의 잘근대는 느낌으로 인해, 정신이 아득해져 오고….그녀의 머리를 붙들고, 눈을 감았다.
‘으으…으으….으으…..성자야…..성자야…..성자야….으으으’
‘쭙쭙…웁웁..괜찮아여, 그 여자 이름 부르세여. 제가 예전처럼 대답하께여. 웁웁…쭙쭙….쭐쭐…저 아무렇지도 않아여….어서여…..웁웁웁웁….’
그러나, 진검사는 그녀의 침이 아니라 뜨끈한 무엇이 계속 자신의 샅으로 떨구어 지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야. 이리 와봐. 우리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오늘 살아보자. 이리와 봐. 이불도 깔고, 불도 적당히 맞추고…..이부자리에 들어가서 이야기도 알콩달콩 하다가, 그래도 하고 싶으면, 그때가서 하지 뭐, 어때?’
‘오빠, 괜찮아여. 저 창녀 맞아여. 돈만 주면, 마구 가랑이 벌리고, 남의 좇도 마구 빨아대는 더러운 년이라구여. 벌써 그렇게 살아온 지 6년이 다 되어가여….. 저 한테 이렇게 안 하셔도 되여…… 예전처럼 뺨도 때리고……, 침도 뱉으시구……, 욕두 하세여. 그래야, 편하시잖아여? …….그렇게라두 해드려야….., 그렇게락두 해야……, 오빠가, 날 보러…… 올꺼구. 그게 아니면, 절 보러 올 이유가….. 없어지잖아여…….. 난 너무 보구 싶은데……그렇게라도……’
‘우리 성자…요 착한 거…..’
진검사는 아랫도리를 벗은 채로 그녀를 껴 안았다. 평소에 항상 대하던 그녀의 벌거벗은 엉덩이와 보지 대신, 껴 안아본 그녀의 가슴과 어깨는 파들거리며, 곧 부서질 것처럼 떨려왔다.
‘아니야, 오늘은 넌 가만히 있어.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남자가 여자를 이렇게 해주는 거야. 이건 돈 받고 하는 짓거리가 아니야, 알어?’
진검사는 그녀를 끌어내다 시피 하면서, 부엌에서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구석에 개어져 있던 이부자리를 펴고, 베개를 나란히 놓은 뒤에, 진검사는 선채로, 멀뚱하게 있는 그녀의 옷을 찬찬히 벗겨갔다.
‘오빠…..괜찮아여. 벗기기 싫음, 찢어두 되여. 이거 시장통에서 떨이루 산 거에여. 찢어지면, 버리죠 뭐….’
그러나, 진검사는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하나하나, 쵸컬릿의 은박지를 벗겨 내듯이, 서두름도 없이, 그녀를 발가벗겨 갔다. 예전 같으면, 그의 분노에 보조를 맞추며,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것이 더 몸에 익숙한 그녀 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진검사의 부드러운 손끝이 닿을때 마다, 그녀는 그 손끝에서 전기가 오른다는 생각을 했다. 온 몸이 움찔거리며, 소름이 돋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또다른 의미의 공포….그건 공포가 아니라, 진검사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으로 인한 그녀의 흥분임을 그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오빠….나 어지러워여….’
그녀가 그의 손길로 인해 느껴지는 흥분을 가눌 길이 없어, 그만 다리가 풀리고 만다. 그녀를 바로 누이고, 천천히 옷을 벗는 진검사는 그 사이에도,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아담한 젖몽우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젖꼭지의 멍울이 하도 작아, 그래가지고 애 젖이나 멕일 수 있겠냐며, 그러니 니년이 보지나 싫컷 후둘르는 거 아니냐며, 뺨따구 휘갈기듯이 손으로 후려쳤던 그 젖을 오늘, 진검사는 애기 볼 쓰다듬듯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떨려 나오는 호흡 때문에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이 상체가 들썩였다. 그녀에게 상체를 기울여 입을 맞추며, 체중을 실어가자, 그때까지 머뭇머뭇하던 그녀의 두 팔이 와락 진검사의 등을 껴안아 버렸다.
‘오빠…오빠…..나 이렇게 안아달라구, 이렇게 입맞춰도 되냐구 얼마나…얼마나 물어보고 싶었는데…..나도 오빠한테 그 여자 대신이기는 해도….여자가 맞긴 하냐고 묻고, 묻고, 또 묻고 싶었는데……아흑……’
‘여자 맞아. 이젠 알지..성자, 널 버릴 수 없을만큼, 욕도, 매질도 못할 만큼 사랑하고 있는 걸…..’
‘오빠, 편하게 욕 해도 되여, 예전처럼 얼굴도 뵈기 싫다고 옷가지 뒤집어 쓰고, 애무도 없이…..뒤에서 마구 쑤셔두 되여. 나 아무렇지두…..아니, 아무렇지두……아니…….아니….사실은….사실은………나 그 동안 너무, 너무 가슴이, 이 가슴이 아프고, 아파서 말도 못했어여….사실은….난 오빠한테 그 여자의 거죽일 뿐인데……, 아무것두 아닌 창녀 나부랭인데…뭘 어쩔거냐구……사실은…..나 오빠 무지무지 사랑하는데……, 날 미워하듯이, 때리고 짓밟고, 욕하고, 침 뱉아도, 그게 오빠의 사랑 이겠거니 하면서, 참았는데……나 오늘 너무 기뻐서, 기뻐서 죽을 꺼 같아여. 오빠! 나, 이 말 해두 되여?’
‘응.’
진검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진검사는 그녀의 귀 옆에 입을 대고 살며시 되뇌였다. 그녀는 진검사의 속삭임에, 결국 할 말을 못했다.
‘성자야. 사랑해….사랑해…..’
‘오빠가…오빠가….오빠가….날….날…사랑한대….사랑한대…..사랑……흑흑흑…끅끅끅……흑흑흑…….’
진검사가 그녀와 살을 섞기도 전에 방안에는 그녀의 통곡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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