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바람소리 - 34부

본문

-바람소리-




제 34 부 : 흐르는 강물따라




일행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자, 저 멀리에서부터 떼거지로 다가오는 무리를 상군은 지켜보며,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 자들도 방금 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일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주위의 심상찮은 공기로 인해, 자리를 뜨거나, 어디론가에 도움을 청하려고 전화기를 집어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요즘은 깍두기를 빡스루 다가니 새벽에 쟁이는 사람도 있나? 왜 이렇게 남산에 못쇙긴 야채들이 떼거지로 굴러댕겨?’




상군의 한마디에 다가오던 무리들이 흠칫했다.




‘어디루 갔냐?’




‘그건 알아 뭐허게? 알려주면, 쓰레기 수거 허는데 도움 쫌 줄라나?’




‘아니, 저 년이 째진 입이라구 씨부렁 대기는?’




‘야, 이 개좇방맹이 같은 쉐이들아, 누군 입이 없어서 고운말에, 표준말 쓴다디?’




‘어쭈구리? 한 똥폼 잡으시는데?’




‘아잣!’




대답 대신, 자세를 낮추면서, 마치 무용을 하듯이, 무리들 속으로 겁도 없이 파고드는 상군의 모습은 날카로운 비수, 그 이상 이었다.




‘퍽…퍽..파파팟..파파’




그건 주먹질 다툼이 아니었다. 무리들이 제대로 주먹질도 하기 전에, 상군은 날렵한 몸짓으로, 그 자들의 주변으로 다가가 가장 손쉽게 행동을 제압시킬 수 있는 혈도를 찍어가는 것이었다. 컥 소리 한번 못 지르고, 그 자리에서 볏단 스러지듯 널부러지는 남자들은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바닥에 고꾸라 졌다. 적어도 예닐곱 녀석을 거꾸러 트리는데 걸린 시간은 수초 밖에 안 되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기 보다는 기선을 제압당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무리들은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슈..욱..땡그렁….’




‘하이고, 니기미, 대가리에 빵꾸날 쇄이들 같으니라구! 그러니 너그들이 양아치 소릴 면칠 못하는 거이다, 알간? 보지 달린 년도, 맨 주먹으로 쌈질허는 이 마당에, 등치가 산만한 자슥들이 어따대고 칼질? 건달과 양아치는 그래서 대접이 다른 거이다, 알간? 아쟈, 아쟈, 아쟈쟈!’




어디선가에서 상군을 쓰러트리기 위한 비수가 날라 왔지만, 상군은 날렵한 발차기로 단검을 공중으로 차 올렸던 것. 그리고 나서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단검을 잡아 채서는,




‘날새벽 부텀, 깍두기 대가리에 국물 질질 새고 싶은 자슥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그라, 잉?’




그 고함에 무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왔던 길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곁에서 그 화려한 몸짓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폰카로 사진을 찍질 않나, 박수에다, 환호성까지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용감한 시민상이 남아 돈다는 요즈음,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는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단신으로 조폭들과 대면하면서도, 당당했던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헌데, 이 칼은?’




손에 쥐고 위협을 하던 작은 단검을 살펴보던 상군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쥐….’




상군은 손에 쥔 단검을 품에 넣고, 그 자리를 휭하니 떠 버렸다.






‘아니, 하라바이레 도사십네까?’




‘젊은이, 술법이 경지에 다다른다고, 이적을 눈감고도 행한다고, 결코 도사가 다는 아니네. 깨달음이 없고서는…..’




‘탱크야, 말조심 허지? 어르신, 초면에 저희들의 목숨도 구해주시고, 여러모로 폐가 많습니다.’




‘자네가 삼슈지?’




‘아니, 제 이름을 어떻게?’




‘그 옆에 달고 온 떨거지는 그래두 다행시럽게 눈이 떠져서 이곳으로 온 땡꾸 일테고, 이 분이야, 자네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진검사…서로 통성명들이나 허시지…..’




노인을 사이에 두고 둘러선 세 남자는 그제서야 이제까지 서로에게 인사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가 진검삽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보자고 하셨는지요?’




‘그게, 여기서 얘기하기는 쫌…..’




‘허어, 이 사람들이…..아니, 대명천지에 하지 못할 말이 무에가 있다구? 그러니, 세상을 구하려는 선인들께서, 모두 종적을 감추신 게야. 옳은 일을 전하려 해도, 가려 들어야 하는 세상…..쯧쯧. 내 한마디 험세. 삼슈, 자네가 갖고 온 물건 아무런 단서도 달지 말고, 진검사에게 드리고, 자초지종을 좌악 읊어야 할게야. 그러려고 만나는 거 아닌가?’




‘아니, 저…..’




‘물건이란 건 무엇이지요?’




삼슈는 노인의 말처럼 주머니에서 I-POD를 꺼내, 진검사에게 건넸다.




‘이건 민윤서씨가 황성을 통해 입수한 비밀 대화록의 일부 입니다. 저희의 처지로서는 현재 황성쪽으로 들어가서 이것을 연결하고,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 이렇게 찾아 뵙고, 전해 드리는 거외다.’




‘어째서 당신은 민윤서씨를 돕고 있는 겁니까? 공무를 방해하고, 자칫 살인자가 될 수도 있는 범인을 은닉시켰다는 혐의가 밝혀지면, 당신도 무사 하지는 못할 것인데….’




‘진검사! 어찌 정신을 못 차리는가?’




‘네? 제가 뭘……’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누굴 죽이자고 모인 사람 있는가? 아닐걸세. 한 사람이락두 더 살려보자고, 누명을 벗겨 보자고 모인 것을 그리도 눈치채질 못해서야……도가 별거고, 종교의 참뜻을 설파 하는 게 유별난 것인가? 아닐세. 만인을 사랑하면서, 그 존재를 귀히 여겨 주는 것 그게 설법이자, 깨달음이고, 진리 아니겠나?’




‘그럼, 이 증거물 안에 민윤서씨가 결백하다는 것이 담겨 있기라두 합니까?’




삼슈가 대답했다.




‘그건 아니오. 그러나, 다만 한가지, 민윤서씨와 부군인 강민기씨는, 그 날 일어난 살인 사건과는, 검찰에서 발표한 스토리와 전혀 무관하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은 거외다. 혹시 상록수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잘은 몰라도, 다른 검사 팀에서 오가는 대화 도중에, 들은 일은 있지요.’




‘저희 쪽의 판단으로는 민윤서씨가 건드린 그 부분이, 상록수의 비위를 진저리 나게 긁어 놓았지 싶습니다. 근데, 아까 우리들을 공격한 자들이 누군지는 아십니까? 저와 만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얘기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럴 리가요? 제가 문자를 받고 10분도 안되어서 집에서 나온 시각이 새벽 5시 40분 이었는데,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까두 보셨다시피, 저와 같이 동행한 비선이 엄마가 전부였지요.’




‘그랬군요. 이 얘기는 중요한 껀은 아니지만서두………옛 친구를 잃으셔서 가슴이 무척 아프시겠네여.’




‘아니, 그걸 어떻게?’




‘오늘 같은 자리에 발 끝을 디민, 그치들 처럼, 저희도 한가락 허는 구석이 있지요. 그 자들도 진검사님을 향한 모든 통로에, 감시의 손길을 뿌려 놓은 것처럼, 저희도 어느 정도는 눈을 크게 뜨고 살피고 있었다고 할까여? 암튼 그렇습니다.’




‘그럼 삼슈님께 이런 걸 여쭈어 봐도 될까요? 민윤서씨와는 어떤 관계 이신지?’




서로가 알고 싶은 것은 무궁무진 했지만, 뻘쭘하게 서서 개활지에서 나누는 대화라는 것이 밑도 끝도 없이 돌출적인 게 대부분 이었다.




‘뭐 별다른 관계는 아닙니다. 건너 건너로 알게 된 사이랄까요?’




‘그런 뜬금없는 사이인데, 목숨이 걸린 일을 도와 주고 있다? 이거야, 원….’




‘여기에 이렇게 나온 저나, 저를 대표선수로 내보낸 우리 측이나 간에, 이 증거물이 유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검사님께 아무런 제안 없이 넘기는 것은 단 한가지 때문입지요.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검사님만이 엄정중립의 의지를 갖고서, 이 사건을 이끌 수 있을 것 같다는 실낱 같은 희망 때문입니다. 이 증거물을 의미 없다고 버리셔도 그만이고, 아님, 상록수에게 떤져 주셔도, 저희로서는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 아닐진대, 거기다 억울한 누명까지야 지워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그 증거물, 혹여 아무런 도움도 되질 못하는 허접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희들은 검사님을 믿기에 이렇게 발 벗고, 목숨 걸고 나온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보지도 않은 저를 쉽사리 믿으십니까?’




‘진검사….이 양반아! 여기는 사람 속을 떠 보려고 모인 거이 아닐세. 보이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믿어야 할 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터…..’




노인장의 엄포에 세 사람 모두 말을 잊었다. 어떻게 보면, 만남의 목적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빌미나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끝끝내 속내를 드러내질 않는 대화를 그냥 듣고 있기에 노인장의 마음이 상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삼슈랑, 땡꾸는 이제 그만 가보게나!’




‘네, 어르신 또 뵈올수나 있을는지…..’




‘거럼, 사람은 지식을 통해 커나가는 것이 아닐세. 만남을 통해서 성장하는 게야. 그리고, 너, 땡꾸!’




‘하라바이, 와 나한테만 떨거지, 땡꾸 어쩌고 하시믄서, 윽박 지르십네까?’




‘니 놈이 하도 구여워 그러질 않느냐? 이제 손에 피 묻히는 백정들 대장질 그만치 했스믄, 사람 될 때도 되었지 싶은데…일간 찾아 오니라. 내 밥 술이락두 사주꾸마.’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인사를 꾸벅 날리고 사라지는 탱크와 삼슈……그 뒤를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정신이 든 진검사는 이렇게 경황없이 증거물 이랍시고 받아 든 상황이 납득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래두, 쫌 더 물어볼 거두 있었는뎅…..’




‘진검사, 그 증거, 아무 짝에두 소용 없는 걸세.’




‘에? 그럼 저 치들이 절 속였다는 겁니까?’




‘아니쥐. 자네도 알다시피, 예를 들어, 그게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해보자 이 말이야, 그럼 어쩔텐가? 관련된 사람들을 그 대화록만 갖고, 다 잡아 들인다? 굴비 부름 엮듯이? 예끼 여보슈! 그걸 바랬다면, 자넨 아직 공명심에 사로잡혀 설랑은, 땅을 딛고 제대로 발로 서있질 않고서리, 공중에 빙빙 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어쩌란 것인지여?’




‘그 증거는 품속에 고이 간직해 놓게나. 때가 되면 필요허게 될 테니….다들 살아가는 행색이 아직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네그랴.’




‘그런데, 아까부터 여쭈어 보고 싶었습니다만, 비선이 엄마와는 무슨 관계 이신지? 그리고,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될는지….’




‘나? 이름은 알아 무얼허게? 나 벽운(碧雲)일세. 상군이는 내 절친한 친구의 여식이구 말이야. 오늘 저녁에는 상군이 애비랑 곡차나 한잔 해야 쓰겠구만.’




‘아니, 윤택이의 장인어른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어왔는데, 어찌 만나실 수 있다는 얘기인지요?’




‘육신통(六神通)에,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게다가누진통(漏盡通)까지 꿰뚫어 아라한의 장벽을 훌쩍 타넘은 자가 이렇듯 허허롭고, 볼쌍 사나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될 턱이 없지. 자네 그거 아나? 상군이 애비는 죽은 것이 아니라네. 시해선(尸解仙)이라고들 허지, 시신이 분해되어 어디론가로 흩어진다는….상군이 애비를 장사 지내서 땅에 묻은 것은 빈 관이라네, 그 안에는 오만 잡동사니에다, 비싼 돈 주고 장만했던 수의 나부랭이 밖에 없지. 세상의 관습에 따라야 하기에, 가족들이 겉으로는 사망신고서를 받아 쥔 다음에, 가묘에다 입관식을 허고서, 따로 집 안에서 3일 동안 시체를 그대로 놔 두었었지. 시체가 촛농이 녹아 내리듯이 사그라 들면서, 생전에 그 인간이 좋아하던 꽃 향기가 십리도 넘게 떨쳐 나가드만….장관 이었지. 그 향기란 건 정말……. 이루 말 할 수 없이 감미로왔다네. 삼일 인가 뒤에, 시신은 수의만을 남긴 채, 좀약 날라가듯이 깨끗이 사라지고, 기어이 나를 찾아 왔었지. 자기는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이 좋아서 시신을 화향(花香)에 날려 버렸다고 하더군. 그 친구 생전의 아호가 화향이야. 자네가 배워오던, 혹은 생각해 왔던 존재의 의미와 영 뒤틀리지? 시신이나 묘소야 있스믄 어떻고, 또 없으면 또 어떤가? 가끔 그리울 때 곡차라도 기울일 수 있으니, 아니 기쁜가 말이야?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 넘은 자들에게 물질이나, 시간의 개념, 잡다한 감정의 곡절은 아무 의미가 없게 마련이지.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그렇게 조르더니만, 난 어쩌자고 이렇게 발을 못 떼고 있는 것인지, 내 참….’




‘그럼, 어르신도 그런 경계를 넘으셨드랬습니까?’




진검사는 작금의 상황도 잊은 채, 노인장의 얘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난 그 친구의 발 끝에도 못 미친다네. 술법이 제 아무리 경지가 높다 한들, 하늘의 도리를 깨우치지 않고서는 그건 단순한 기술에 불과할 뿐…..아무것두 아니라네. 나처럼, 아직도 세상의 질서를 조금치락두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시쳇말로 대가리를 들이대는 치들이 많이 있다네. 예전이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독립문을 단번에 뛰어 넘었네, 눈 앞에서 사라졌네, 온 몸에서 영채가 휘감기네 하는 얘기들, 자네도 들어 봤을 게야. 근데, 왜 요즈음은 없는지 이상하게 생각이 들지 않나?’




‘네, 그렇긴 하져.’




‘다 그게 세상의 만사가 가속이 붙고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 종착역을 향해가는 발걸음이 느리겠는가, 아님 빨라지겠나?’




‘당연히 급한 마음에 재촉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 와중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바로 잡질 못하고 지나치는 일들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지. 난 남산에 올라와 서울을 자주 둘러 보곤 한다네.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터에 자릴 틀었으니, 제대로 된 임금이 나올 리 없고, 물길을 그 지경으로 만드니, 세상의 인심이 그 것 밖에 더 되겠나?’




‘아니, 물길 이라녀?’




‘세상은 정해진 터에 인간이 자리를 틀면서, 삼라만상이 변하게 되지, 옛날에야, 청계천이 유일한 물줄기 였겠지. 그러던 것이 사람이 늘고, 사는 곳이 번창해져서 이제는 서울의 영역을 동서간 반으로 가로지르는 것이 한강 아닌가 말이야. 한강을 저렇게 멍청하게 만든 자들, 대대로 욕을 먹어도 싸지, 암…….’




그제서야, 진검사는 바로 이 분이 상군이 말한 그 분이라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비선이 모친이 저에게 물길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한 게 생각이 납니다.’




‘자네의 발꿈치를 붙들고 있는 것이 그것 일세. 바로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이기도 허지.’




‘아니, 물이 무슨 문제라도? 누가 물에 독이라도, 혹은 폐수라도 흘려 보낸다는 말씀 이신가여?’




‘그건 바로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허는 짓거리 들이고, 내가 하는 말은 풍수적인 의미에서의 물의 역할을 자네는 알고 있느냐는 말일세.’




‘글쎄여. 동체 그런 분야는 관심 밖이라서…..’




‘자고로 풍수에 의하면, 물은 재물을 의미하지. 그건 비교적 평범한 사람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이지. 한양을 터로 잡았던 조선 시대야, 도읍을 중심으로 한 물줄기는 청계천이 유일 했었네. 그러나, 청계천은 수심이 앝고, 수량이 적은 것이 가장 큰 결함이라고 볼 수 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로 인해 조선시대 동안, 백성의 살림은 필 사이가 없었지. 그러다가,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는 아시아의 용이라는 칭호도 받았었고, 625의 재난 속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의 힘이었다고 볼 수 있지. 어처구니 없게도, 서울로, 서울로 라는 기치아래 몰려든 사람들이 터를 트는 바람에 서울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나가다 보니, 도읍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로 한강이 부상한 것이지. 청계천에 비해 무지막지한 수량을 자랑하는 한강의 물줄기는 바로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부유함을 가져다 주었다네.’




‘잘 된 일 아닌가여?’




‘잘 되기야 했지.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게 아닌 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원래 물줄기는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을 감싸 안는 형상을 하여야 안정적이라 할 수 있다네. 한강은 그 형태로 볼 때 도읍의 중심부가 아닌, 상류 쪽에서 굽이치다가 중심을 지나면서 김포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도망가는 형상으로 되어 있지. 이를테면 끝에 가서 물길의 세력을 놓아 버리고 바다로 달아나는 형국 이랄까? 




이리 되면, 그 물을 등지고 있는 자들의 행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아나? 초반의 경제적 호황이 과소비로 이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 바로 재물을 함부로 쓰게 된다는 것일세. 주위를 둘러보게. 물질 만능 주의가 팽배하고, 때아닌 호황과 졸부들을 탄생 시켰던 강남 혹은 강변의 세력들…..돈의 중심세력은 굽이치는 강의 중상류를 타고 있는 지역, 삼성동 지역인 반면, 돈의 흐름이 달아나고 있는 하류는 점점 그 기력을 잃어가는 것도 모자라, 시끄럽고, 매연이 쏟아지는 공장과 공항지역으로 탈바꿈 되어 있질 않나? 소비 벽은 날로 하늘을 찌르고, 그에 따라 그 돈줄을 빨아 들이려는 암운은 강남을 떠날 줄 모르게 되지. 그러다 보니, 그 돈은 눈먼 돈이 되어, 투기를 불러 일으키고, 투기는 또 다른 부에 대한 욕구로 이어져, 이른바 악의 세습 내지는, 순환구조가 탄생하는 것일세. 




소용돌이의 시작은 미미하였을 지라도, 그것은 소리 소문도 없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마치 소비가 미덕인 것처럼, 돈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지게 되는 것…..모두가 그 단순해 보이는 물줄기에서 온 거라네. 만일에 한강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놔 두었다면 어찌 됐을는지…..




지금 한강은 강변의 자연적인 침식이 강제적으로 거부되어 있어. 시멘트로 막혀 있으니 말일세. 그러다 보니, 유속은 점차 더욱 빨라지고, 수심은 깊어져, 도망가려는 한강의 기세는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하게 만든다네. 1,2년 사이에 바뀌지는 않았을 테지만, 먼 시간을 두고 바라다 봤더라면, 한강변의 대규모 정리작업은 오히려 우리를 병들게 만들었다는 걸 이제사 느낀다는 것이지. 그대로 놔 두었더라면, 강의 순리상, 굽이치는 부분들이 유속으로 인해 강 양쪽의 변두리가 자연스런 침식을 유발했을 테고, 그로 인해 달아나는 형국의 수세를 조금이나마 붙들 수 있었을 텐데…..아쉽지…..’




‘그런데, 어째서 그게 이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설정을 하시는 것인지요?’




‘자네가 이 사건에 연루된 사실부터가 하늘의 뜻이란 걸 말해주고 싶었다네. 자네가 해오던 일들을 잘 한번 생각해 보게나. 떳떳하지 않았던 돈, 더러운 돈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네의 할 일 아니었나? 저 강의 변화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검은 돈들은 판을 치고 있는 이 마당에 이렇게라도 자네의 그 날카로운 동물적 본능을 끌어 들이려는 하늘의 뜻, 말일세.’




‘세상의 돈을 제가 전부 뒤져내서 꼬리표를 달 수는 없는 노릇 아닌지요?’




‘누가 그러라고 했던가? 자네가 해야 될 일은 과연 어떤 돈이 사람들을 종국에 파멸로 이끄는 돈인가를 알아내라는 것이지, 세상의 돌아가는 모든 돈들을 밝혀 색인 작업을 하라는 것은 아닐세. 재벌도 하늘이 낸다고 했네.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합법적인 그들만의 돈과 재운를 어찌 타박할 수 있으리…..’




‘그렇지만, 한강이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한강을 예로 든 것은 자네가 하도 풍수에 문외한 이길래 늘어 놓은 얘기였고, 이제부터 하는 얘기가 중요한 관건이네. 제일 중요한 핵심은…..’




‘핵심은요? 꼴깍…’




중요한 순간에 진검사의 침 넘기는 소리까지 커다랗게 들리고 있었다.




‘그건 물줄기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의도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일세.’




‘물줄기를 바꾸다녀? 댐을 짓는 걸 말씀허시나?’




‘이래 가지곤 얘기가 안 되겠구만. 어, 저기 상군이가 오는 구만.’




‘시간이 좀 지체 되었져?’




‘아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그래, 쓰레기들은 죄다 분리수거 했구?’




‘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돌려보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진검사가 우리의 얘기를 이해하기에 무리가 있지 싶다. 좀더 지켜보면서, 머릿속을 채워가야 할 것 같구나. 난 그럼 이만 가련다. 오늘 저녁에 니 애비랑 곡차나 한잔 허기로 했는데, 올꺼나?’




‘아니여. 가 봐야, 영안(靈眼)도 뜨질 못 허고, 친 애비도 몰라보는 멍청한 년이라구 치도곤을 내리실 게 분명헌데, 다음에 뵐까 싶네여. 다음에 뵐 때, 안부나 전해 주세여. 비선이도 보러 가끔 오시라고 전해 주시구여.’




‘저번에 그러던데, 아직도 비선이 아비는 수련을 그다지도 빼먹는다니? 그 꼬라지 뵈기 싫어서 안 간다고 침을 튀기드만. 비선이 아비, 정신 쫌 차리라고 내가 그러더라고 하렴…..’




‘네….. 근데……… 아까 그곳에서 저에게 날라온 게 있어서…..’




‘무언데?’




‘아니, 이건?’




상군이 품 안에서 내어 놓은 작은 단검에 벽운거사의 안색이 굳어져 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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