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39부
본문
바람소리-
제 39 부 : 누구나 그러하듯이
침대 시트에 싸여, 온 팔과 다리에 긁힌 상처로 인해 피를 철철 흘리는 채로 이슈의 등에 업혀 실려온 민여사를 받아 안은 것은 민기였다.
‘어서 여기루!’
울먹이면서, 어쩔줄 모르는 윤서와 달리, 희진은 침착하게 민여사를 안은 민기를 방으로 안내했다. 온 몸은 벌거벗은 채로 팬티 바람에 침대 시트만을 두르고 있어서, 민기 자신도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야?’
민기가 묻자, 금새 희진이 민기더러 욕실로 가서 더운 물과 수건을 가져 오라고 시키면서 자리를 비우라는 눈치를 주었다.
‘윤서씨, 걱정마요. 기력이 탈진하시고, 여기저기 긁히긴 했어두, 피만 닦아내면…..팬티 좀 갈아 입혀 드려야 할 거 같은데…..좀 붙들어 줄래여?’
민기가 욕실로 자리를 뜨자마자, 희진은 팬티를 내려 달라고 윤서에게 부탁했다. 이미 건전지의 힘이 닳아 버려 작동이 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민여사의 보지와 항문에는 그 구녕을 찢어 놓을 만큼 굵고, 긴 딜도가 박힌 상태인 것을 팬티를 내리면서 두 여인은 목격하고야 만다.
‘흑……’
그 모양새가 하도 흉측해서 숨을 몰아 쉬어 버리는 윤서. 온통 민여사의 씹물로 척척해질 대로 척척해진 팬티를 손에 들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세가 굳어져 버린 그녀 였다. 민여사에게서 두 개의 딜도를 뽑아, 바닥에 내동댕이 쳐 버리는 희진의 눈가에도 잔잔하게 눈물이 맺혀갔다. 간간히 기력이 다하여 손 끝하나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서도, 딜도가 빠져나가는 사이, 민여사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신음마저 흘러 나왔다.
‘이거….갖고 갈까?’
멀리서 분위기를 짐작한듯이, 대야와 수건을 들고서도 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묻기만 하는 민기는 사실 의사의 직분을 감안한다면, 자신이 나서서 상태를 감별해야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스스로에게 이유를 대고 있었다. 아무리 사위와 장모의 지간 이라해도 벌거벗고, 아무렇게나 가랭이마저 벌어져 있는 나신을 대한다는 것은 아무 연고가 없는 환자와의 상황과는 좀 별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자기야, 거기다 놓고, 잠시만 자리를 비켜 줄래? 나랑 희진씨랑 어느 정도 추스린 담에 봐 줘……지금은…’
‘알았어. 다 되면 불러…..’
민기는 침대 곁에 뜨거운 물이 담긴 대야와 적실 수건을 놔 두고, 방을 나왔다.
‘윤서씨는 부엌에 가서 어머님 드실 물 좀 떠와요. 아무래도 기진하신 거 같은데, 우선 물이라두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할께여.’
윤서는 희진의 말대로 물을 떠와서는 상체를 일으켜, 조금씩 물을 민여사의 입 안으로 흘려 보냈다.
‘꿀꺽..꿀꺽…컥컥컥컥……켁켁….’
‘천천히 자시게 하세여. 급하게 쏟아 붓지 말고…..’
사래가 걸린듯 기침을 하는 민여사에게, 기대 이상으로 많은 량을 먹이지 말라는 희진의 말에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희진은 우선 수건에 물을 적셔, 음부와 항문 주위를 닦아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상태로 인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온통 얻어 맞은 사람처럼 보지의 음순은 퉁퉁 부어 있었고, 음구조차 짜갈라져 째져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건이 닿을 때마다 찔끔대면서 오무라드는 항문은, 피범벅인 상태 그대로 였기 때문 이었다. 닦아 내기가 미안할 정도로 상처가 깊은 음부 주변과 항문은 그동안 어떤 고초를 당했는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싶었다.
‘내가 새 팬티를 입힐 테니, 윤서씨가 어머님 몸을 좀 닦아 드리세요, 가운이라도 입혀 드려야 민기씨가 들어와서 상처들을 소독할텐데….’
‘알았어여. 제가 하께여.’
윤서는 눈물을 훔쳐가며, 민여사의 몸을 닦아 나갔다. 팬티를 새것으로 입히고, 왠간히 손과 발에 묻은 흙과 피딱지를 닦아내고 나자, 두 사람은 거의 시체에 가깝도록 맥을 놓고 있는 민여사의 몸을 움직여 목욕 가운을 입혀 나갔다.
‘자, 이제 얼추 되었으니, 난 나가서 연하게 죽이라도 끓여 올께여.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거 같은데….민기씨 들어오라고 하께여.’
희진은 걱정말라고 하며, 방을 나왔다. 바깥에는 민기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정신은 드셨나?’
‘아직…..기력이 워낙 떨어지신 데다가….암튼 들어가서 심한 상처나 없나 좀 봐 드려. 난 드실 것 쫌 챙겨볼께.’
‘고마워….’
민기가 방안으로 들어가고, 부엌으로 갔지만, 쉽사리 무엇부터 해야할는지, 감이 서질 않고 있는 희진 이었다. 지금이야 그렇다 치지만, 정신이 드시고 나서, 자신의 존재가 과연 무엇이란 것을 아신 연후에의 일이 예상되니, 괜시리 마음만 무거워 지는 것이었다.
‘장모님은 좀 어떠셔?’
‘아직 정신이 없으셔….우물우물 몇 마디 하는가 싶다가, 또 정신을 놓으시구….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재수없는 소리는? 사람이란 그다지 쉽게 죽는 거 아니거덩? 이리 나와 봐. 내가 상처가 어떤지나 살펴보게. 탱크도 손가락이 몇 개 부러졌다고 하든데, 어디 골절이나 뭐 그런 상처나 없는지 봐 드려야겠다.’
민기는 목에서부터 팔과 다리, 곳곳을 누르고 조금씩 비틀면서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금이간 곳은 없었고, 긁힌 상처도 그런대로 빠른 시간 안에 아물듯이 보이고 있었다.
‘괜찮아….걱정은? 맘 푹 놓고 있어.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구 생각하고 말이야.’
‘알았어….’
그러나, 정작 장모의 정신이 돌아온 것은 옷을 갈아 입히고나서도, 거의 두 시간씩이나 움직임도 없이 의식을 잃고난 후였다.
‘으…으…으흐흐….으으….’
‘엄마? 엄마? 정신이 드우? 내 말 들려여? 나 윤서 에여, 윤서! 정신 쫌 차려 봐여…’
‘여, 여……여기가 어디?..으흐흑….’
몸서리를 떨면서 의식을 회복한 민여사는 아직까지 눈 앞에 생생한 그 악몽 같은 순간들로 인해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끝도 없이 덮쳐 오면서 쑤셔대던 그 무수한 좇대들….숨도 제대로 쉴 수도 없고, 말조차 할 수 없도록 줄을 이어서 좇물을 퍼멕이던 그 좇대의 행렬…..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을 좇으로 몽조리 막아버려 옴짝달싹 할 수도 없었건만, 그 사이에서 수치스러움을 뚫고서 용솟음 치던 자신의 음란한 욕구….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길 바랬지만, 그건 너무도 생생하게 민여사의 눈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사위와 딸 앞에서 자신이 당한 고통의 아주 작은 조각조차, 발설하고 토해 놓을 수 없는 그 답답함 마저, 민여사를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었다.
‘흑흑…..나 같은 년은 죽어야 돼. 천벌이지, 뭐…..천벌….’
‘아니, 엄마가 왜? 죽일 놈은 버젓이 살아 돌아다니면서 활개 치고 사는데, 왜 엄마만 이렇게 당하고 괴로워야 하는데? 응? 진정하고 말 쫌 해봐. 어쩌다 이랬는지?’
‘흑흑….아니야…아니야…..다 내 죄지…..’
민여사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약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나이마저 잊고서, 보지로, 항문으로, 입으로 덮쳐오는 젊은 녀석들의 휘돌림이 결코 싫지 않았다는 심리 저편의 혼란스러움이 더욱 자신을 괴롭게 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약에 의존하지 않고서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단연코, 쾌락에 몸부림 쳤을 자신의 음란함을 다시 한번 재삼 확인해 버리고야 말았다는 당혹감이 그것 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감정이 없는 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거두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 보다는 한도 끝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자신을 까무라 치게 만든, 그 딜도의 힘과 지속력, 그리고, 무모함에 오히려 맘이 끌리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온 몸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창자가 꿀럭 거릴 정도로 깊이 박혀 징징댔던 딜도의 쾌감은, 약에 의존한 상태도, 기력이 다한 상황도 실은 아니었었다. 그저, 그 쾌감에 목말라 절대로 누구도 딜도가 박힌 채로 입혀진 팬티를, 내리지 말아 달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망녕도, 노망도 아닌, 그저 여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음욕의 자연스러운 돌출이었음에도 민여사는 그것을 인정할만한 심정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저 민망하고, 수치스러울 따름 이었다고 밖에는…..
‘그래도 용케 강서방과 넌 피해 나왔구나. 그래, 니 회사의 상관이란 사람은 어떻게 되었구?"
기력이 다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눈만 겨우 껌뻑거리면서 물어 본 말에 윤서는 더 이상 할 말을 잇질 못했다.
‘그 사람….이 세상 사람이 아니야, 이제는….’
‘아니, 어떡하다가? 그 놈들이 그런거냐?’
‘그런 거 같아…’
‘여기는 도대체 어디냐?’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몸이나 빨리 추스리우.’
‘딸깍…’
‘어머, 일어 나셨네여. 마침 죽을 좀 끓여 왔는데, 일어 나신 김에 드셔 보세여.’
‘엄마, 인사해. 희진씨야. 이 집의 주인과 잘 아는 분이라 이렇게 신세 지고 있다우.’
‘뭘요. 저도 도망와 있는 건 마찬가진 데요. 어머니, 어떠세여, 몸은? 아프신 곳은 없구여?’
‘아냐, 다 늙은 게, 어디가 잘못된들 뭔 일이야 있겠수?....참 곱기두 허지…근데, 어떻게 우리 애들을 보살펴 줄 생각을 다 했누?’
‘나중에 얘기허고, 어여 희진씨가 끓여 온 죽이나 드셔. 식기 전에….’
희진과의 관계로 얘기가 옮아가자, 윤서가 나서서 말을 막아 버렸다. 방안에 둘러선 윤서와 희진, 민기의 어정쩡한 관계를 이 자리에서 다 토설한다고 해도 별 무소용 이라는 것을 윤서는 알고 있었다. 세대의 차를 극복하지도 못할뿐더러, 이렇게 엮이게 된 사연을 강변한다고 해도, 고정된 사고 방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를 단번에 이해시키기에는 세 사람의 관계가 너무도 부적절하게 보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 이었다. 윤서의 모친이 죽을 먹는 동안, 민기와 희진은 방을 나와, 정원으로 나갔다. 스산한 날씨와 더불어 눈까지 올 기세로 보이는 검은 하늘….민기가 희진에게 담배를 건넸다.
‘고마워. 이렇게 신경 써 줘서….’
‘뭘….윤서씨 어머님이면, 이젠 나에게도 어머님과 매한가진데 뭘….휴…..윤서씨가 그래도 한시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나두 맘이 조금은 가볍다.’
‘앞으로 어려운 일두 있을 거야.’
‘알고 있어. 예상두 하고 있고……어머님 세대야, 우리들의 관계를 이해나 하시겠어? 미친 짓이라고 하실 게 분명하고, 어쩌면 내 얼굴에 침이락두 뱉으실지 몰라. 나, 다 예상은 하고 있으니깐 걱정 하지마.’
‘희진이 니가 맘 고생이 크겠다.’
‘자기두 그렇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는지, 당췌 감이 없다.’
‘지금이야, 모든게 뒤죽박죽 이니까 그러려니 하실거야. 그렇게 기대보는 수밖에 더 있겠어? 모든 게 밝혀지고, 차츰 안정되면, 이해하실 구석이 생기지 않을까?’
‘말처럼 그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딸깍’
‘어찌 이리 추운데 담화를 밖에서 나누고 계십네까?’
‘어, 정말 수고 많았어여. 내가 손을 봐 주어야 하는데, 어여 들어 갑시다. 깁스할 재료는 마땅 찮아도, 젖가락이나 압박붕대 정도면 왠간히 지탱은 될거요.’
두 사람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도중에 지하에서 올라온 탱크가 끼어 들었다.
‘아래 층에서는 어떻게 얘기가 잘 되어 갑니까? 잡혀온 그 간호사는 누군지?’
‘누구긴 누구갔시요? 상록수의 끄나풀이지…..황당한 거이도 유분수디, 내레 어찌 하라구 뻰찌를 멕이나?’
‘뻰찌를 멕이다니?’
‘거져, 그 에미나이래 알고 보니끼니, 트랜수라 하지 안카습네까? 게다가 이슈셩의 둘도 없는 여친이라 하니, 도라버리디 안는 거이 이상할 따름 이디요.’
‘아니, 트랜스라면, 원래 남자?’
‘맞씁네다. 희진 누님이 생각하시는 거처롬 원래 간나새끼 였다 이기지요. 기거이 수술을 해설라무네, 거투루만 에미나이 폼새로 바뀐 거 말입네다. 지금 한따까리 하고설랑, 삼슈셩이 손수 그 에미나이 대가리래 밀고 있시요.’
‘아니, 머리는 왜?’
‘용서의 의미루 다가니, 그리 한다 하드만요. 길쿠 앞으로 뒈지드락두, 이슈셩을 위해 그리 하라는 삼슈셩의 지상명령이기도 하구여.’
‘그런 일이 있었구만.’
희진과 민기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여자 뺨치게 아리따운 얼굴과 용모, 목소리까지 완벽한 그녀의 존재가 트랜스라는 것도 그러했지만,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이슈의 숨겨진 연인이라는 사실이 더 그러했다.
‘민녀사 님이래 괜차느십네까? 내레 봇짐 두르드시 등에 업고서리, 산을 타는 바람에, 많이 까이셨슬 거인데….’
‘괜찮네. 지금 죽 드시고 계시니, 한번 들어가 만나 보지. 구출해 준 것에 대해서 무엇보담두 고마워 하실 분이 장모님 이신데…’
‘기럼 저 먼저 들어 가가시요.’
탱크는 민기의 장모를 뵙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누구세여?’
‘저 탱큽네다. 들어가도 되가시요?’
‘들어오세여.’
방 안의 민여사는 이미 죽을 다 먹고, 한시름 돌리면서, 침대에 누워서 윤서와 얘기를 나누는 중 이었다.
‘일어나디 마시라요….’
‘엄마, 저 분이 엄마를 구해오신 분이에요. 이름은 탱크라구…..’
‘아니, 이름이 왜 탱크? 고마워요. 이렇게 쓸모 없는 늙은이를 구해 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려.’
‘아닙네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인데…..거 무슨 과찬이신지 모르갔습네다.’
‘근데, 말투가…’
‘아하, 저 북에서 왔습네다. 겁 먹디는 마시라요. 저 그러케 무서운 사람 아입네다. 이제는 남쪽에서 살고 있구요. 탱크는 저를 거두어 주신 삼슈셩이래 붙여준 예명 입네다. 본명은 따로 있시요. 이거이 쑥쓰러워 서리……오랜만에 내 이름석짜, 내 아가리로 불러 보누만…..본명은 심호석 입네다.’
‘이름도 좋은데, 왜 탱크라는 이름을 쓰고 다니나?’
‘기거이, 다 아직까지……, 신분이 자리를 틀지 못해서리…뭐 사연이 쫌 깁네다. 안정 하시라요. 이만 나가 보갔습네다.’
‘잠깐, 이리 가까이 와 봐요. 어서……그 손 쫌 줘 봐여.’
민여사는 얘기를 하다말고, 퉁퉁 부은 채로, 아무런 처치도 하질 않은 탱크의 손이 보여 가까이 그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손을 보듬어 보니, 뜨끈뜨끈하게 열이 치솟고 있었고, 통증도 대단해 보였지만, 민여사가 붙드는 기색에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질 않고 있는 탱크였다.
‘많이 아플텐데……고마우이…..늙은 나 같은 걸 구해주러 호석이 총각이 욕봤네…..’
‘괜찬습네다. ……저….. 앞으로 오마니라고 불러도 되갔는지요? 북에 계신 제 오마니랑 너무 흡사해서리….’
눈물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탱크의 두 눈이 잠시 촉촉해 지는 것을 올려다 보는 민여사의 가슴이 짠하게 저며왔다. 탱크가 나가고, 민여사는 윤서와 나누던 얘기를 계속했다.
‘어쩐 일로 그 사람은 죽었다니?’
‘그 사람……우리를 해치려 하고 있는 무리들의 끄나풀 이었어. 그런데, 그 와중에 어떻게 일이 잘못 되어서 그렇게 되고…..아내 되는 사람이랑 같이 목숨을 잃었어…….흑흑….다 나 때문에……’
‘그래서 내가 너에게 말 했잖니? 그 사람이랑 그렇게 깊어진 관계 오래 끌다가는 누가 하나 다쳐도 다칠 거라구……강서방도 알고 있니?’
‘응……’
‘니가 얘기했니?’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나쁜 년은 나 같아. 언제나 엄마를 향해 그렇게 더러운 몸으로 세상을 치대며 살고 싶냐고 비아냥댔었는데, 알고보니, 그 중에서 제일루 더럽고, 못 되먹은 년은 바로 나였던 거, 이제사 알았수.’
‘아니다. 내가 애초에 몸을 제멋대루 굴린 대가를 이렇게 톡톡히 받고 있는 거지 뭐.’
‘아니야. 엄마야, 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거, 이젠 이해가 가. 나 정말 엄마를 용서하기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이번에 일을 겪으면서 엄마 생각 많이 했어. 우리 옆집의 그 죽은 그 여자를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났었거덩. 오죽하면 그렇게 몸을 뭇 남자들에게 열어야 했을까 하고 말이야. 그 여자도 불쌍하긴 마찬가지 였는데, 그땐 그 여자도 엄마처럼 똑같이 미워하고 있었어. 니가 그러니 그 모양 그 꼴로, 이 남자, 저 남자 품에 안겨서 그 똥꾸녕에서 삐져 나오는 돈에 감사하며, 살고 있지 하면서 말이야. 그때 그 여자의 입을 통해서 그 이름만 나오지 않았어도 그렇게 피가 거꾸로 솟지는 않았을 텐데…..’
‘윤서야, 다 지난 일들이다. 세월 속에 묻어야 될 일들이 천지란다. 너나 나나 이렇게 쫓겨 다니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니? 어여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난 일은 잊자꾸나. 모두 정리되고 나면, 니 상관 이라는 사람 천도제나 올려 줘야겠다. 얼마나 이 생에서 맺힌 게 많겠니?’
윤서는 불현듯, 잊고 지내려고 애쓰던 현석의 그 부드러운 미소가 생각나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자신의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참을 수 없는 분함으로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을 아내 이상으로 살갑게 아껴주고, 보듬어 주었다는 기억만은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사내가 들썩일 정도로 유명한 플레이보이 였어도, 그를 거쳐간 어느 여자 한 사람도, 그를 가리켜 나쁜 소리를 하는 것을 보질 못했던 것이, 그에 대한 관심이 불거진 원인 이기도 했다. 그와 깊은 관계에 빠져 들어가는 도중, 화장실에 앉아 볼 일을 보다가 밖에서 수근 대는 두 여자의 대화속에서 조차, 그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변함없는 선망의 대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도 보기좋게 차버린 여자들 사이에서 말이다.
&요즘은 팀장님한테 연락 없니?&
#응, 바쁘신 가봐.#
&너두 한, 두달 만났나?&
#두달 하구 5일…..#
&기집애, 기억력 하구는….요새는 또 누가 낙점이래니?&
#또 누군가…..#
&너, 우니? 우는 거야? 매친년….팀장님 붙들 수 있는 건 아무 것두 없다는 말 몰라? 넌 약혼자 까지 있는 년이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냐?&
#그래두,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좋니?....자주 안만나 줘두 좋으니, 한달에 딱 한번 만이락두, 단 한 시간 만이락두….아, 너두 그랬다며? 이제까지 만나본 남자들과는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가 없었다며? 우리 자기야, 기냥 쑤시기만 하지, 여자를 기쁘게 하는 걸 알기나 하는 건지, 원…..나 팀장님이랑 섹스하는 첫날, 오르가즘 때문에 오줌까지 쌌잖아? 옷을 다 갈아 입으시구, 정신을 잃고 해롱거리며, 침대에 누워 있던 나를 바라보시며, 담배를 피우시던 그 모습…지금 생각해두 잊을 수가 없다. 그 그윽한 눈매…포근한 미소…..#
&정신차려, 이년아! 나라고 생각 안나겠니? 만나면 만날수록 더 가까이, 오래도록 붙어 있고 싶은 거, 모두 하는 말이잖아? 그러니, 욕하는 인간들이 없지…..생각 같아서는 팀장님이 꿰뚫은 년들끼리 연합해서 떼사리로 팀장님께 마지막으루다가니 한번만 쑤셔달라 해도, 쌍수들고 나갈 판인데……그 팀장님을 오로록 가로챈 그 년은 도대체 누구래니? 보지에 금띠를 둘렀나, 아님, 그 코끼리 코 같은 팀장님 물건에 코뚜레를 뀄나….참, 재주도 좋아……&
#그 얘긴 들었어?#
&뭐?&
#안약통 얘기….#
&팀장님이랑 살 섞은 년들치고 그 얘기 모르면 간첩이게? 그게 그 얘기 아냐? 어떤 년이 팀장님이랑 하고 나서, 언제나 쓰레기통에서 팀장님이 버린 그 콘돔 찾아 서는, 지가 가지고 다니던 소형 콘텍트 렌즈 식염수 통에 콘돔속에 남아 있는 정액을 모아서 담고, 담아서는, 식욕이 없을 때나, 팀장님이 그리울 때, 혀에 몇방울씩 짜서 먹는다는 그 얘기? 유명 하지…나도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 언제나 팀장님이랑은 첫날만 좇물 맛을 보여 주셨다는데, 너두 그랬겠지……&
윤서는 좌변기에 앉아 패드를 갈다말고, 흐뭇한 마음에 오금이 저려왔던 그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자신이 그렇듯 수 많은 여자들이 갈망하고 부러워하는 그 여자 였음에도, 겉으로는 전혀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배려했던, 그의 자상함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윤서의 씹구녕을 그 굵고 긴 코끼리 코 같은 좇으로 마구 쑤셔박고 나면, 씹구녕 주위가 온통 째져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그냥 지나치는 법도 없이, 섹스 후에 언제나 그 씹구녕과 항문 주위를, 갖고 다니던 물휴지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연고를 발라 집으로 돌려 보내던 그의 자상함이 기억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도 제일 가슴에 남는 것은 섹스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로서 가슴 뿌듯한 생각으로 나날을 보내게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충분히 여자로서 대우 받아야 마땅하다는 듯이, 곁에서 연애감정이 식지 않도록 신경 써주던 그의 이벤트들…매너리즘에 빠져, 박고 싸는 것에 일관되어 버리는 남편과의 섹스와 다르게, 어떤 때는 격정적으로, 어떤 때는 온 몸이 지리리할 정도로, 혀가 다 닳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윤서 자신의 온 몸을 핥아주고, 빨아주던 그 오묘한 여유로움……민여사와의 대화 속에서 윤서는 죽은 현석의 그런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괴롭기가 그지 없었다. 같이 있을 때에는 느낄 수 없었지만, 이렇게 생과 사의 갈림길로 서로의 처지가 다르게 변하고 나니 그리움이 더 사무치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억에 떠 올려서도, 그리워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잘 알고 있는 윤서 였다. 새롭게 관계를 모색하기로한 희진과의 상황속에는 남편이 있는대도 불구하고, 불륜의 바람을 끊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용서의 읨도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어디 좀 보자구…..’
민기는 거실에 앉아서 방에서 장모를 대면하고 나온 탱크의 손을 보기 위해 그를 불렀다. 그가 눈가를 훔치며,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본 민기는,
‘’너무 많이 다치신 것 같아? 그냥 상처가 그래서 그렇지, 그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닌데…’
‘아닙네다. 민녀사님이래 뵈니끼니, 북에 두고 온 오마니 생각이 나서리…..지금쯤 돌아가셨슬 겝네다. 혁명투사에서 하루아츰메 반동의 자슥을 거느린 부모가 되 게지구서리, 옳게 살아 계실리가 없디요…….’
‘그게 그런가? 이리 와 봐. 뼈는 누가 맞춘거야?’
‘야전에서는 꼭 필요한 응급조치 이디요.’
민기는 그 통증을 무릅쓰고, 본인 스스로 부러진 뼈를 틀어 맞추었다는 것과 깁스도 하질 않은 채, 이렇듯 견디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 모두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듯 탱크는 군인의 자세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 이었다. 젓가락과 갖고 온 압박 붕대로 손등을 단단히 감싸고 나자,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탱크….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민기는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빈 죽그릇을 들고 나오는 윤서조차 눈가가 촉촉한 것이 멀리서도 보이고 있었는데,
‘왜 그래? 너, 울었니? 장모님께서 뭐라 하시니?’
‘아니, 그냥….눈물이 나네……’
‘그럴 때 있시요. 마냥 흐를 때는 기냥 놔 두는거이 상책 입네다.’
집안은 용서와 화해, 재회의 여러 헤프닝 들이 뒤섞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 뒤켠으로 버티고 있는 현실과의 쓰라린 기억들 때문에 그 본연의 빛을 잃고 있음이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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