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도록 아름다운 - 12부
본문
“아아악-! 어떡해! 말하고 말았어-!”
아영은 절정을 느끼던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말에 이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다.
[선배! 선배! 너무…. 너무너무 좋아해요!]
자신도 모르게 선배에게 고백해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아름다운 고백도 아니고 섹스 중에 터져 나온 어이없는 고백….
아영은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방을 뒹굴었다.
‘못 알아들었겠지? 못 알아들었을 거야. 그때 신음소리에 섞여 이상하게 들렸으니까. 하아…. 제발 못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선배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아영. 나이트에서 만나 모텔에서 관계를 가지고 나중에 선배와 후배관계로서 찬승에게 다시 몸을 허락한 그녀. 그녀 스스로도 그저 섹스파트너로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던 사이 조금씩 찬승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하는 가운데서도 한 편으론 선배가 알아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조금, 아주 조금 있는 아영이었다.
*
목요일. 찬승이 영어 학원에 도착하니 이미 미경이 와 있었다. 이제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 미경도 예전과 달리 꼬박꼬박 웃으면서 인사해준다.
수업이 시작하자 진도가 꽤 나간 것이 화요일에 나오지 않은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화요일 날 둘 중에 한 명은 왔어야 했나 보네요.”
미경이 수업시간 도중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이렇게 미경은 이제 수업시간에도 가끔 잡담을 나눌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쉬는 시간에는 항상 음료수를 같이 마시거나 얘기를 나눴고, 수업이 끝나도 바로 헤어지지 않고 역까지 같이 걸어갔다. 이렇게 보면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었다.
그 날 역시 수업이 끝나고 같이 나가려는 순간에 미경이 찬승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 7, 8월 영어 강의는 등록 안하세요?”
미경의 말에 찬승은 벽에 걸린 달력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6월의 막바지를 지나 7월의 문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7, 8월? 음….”
두 달 정도 가지고는 영어 실력이 향상되진 않는다. 영어는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에 따라 그 성적이 나오니까. 학원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주말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모아두었으니까 학원비 한 번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찬승이 말없이 잠시간을 고민하자 미경이 그를 설득했다.
“두 달 다니고 그만 두면 그 두 달이 아깝지 않아요? 다음 단계 수업 등록해서 꾸준히 해야죠. 가, 같이 들어요.”
미경은 같이 듣자는 말에서 자신도 모르게 더듬어서 움찔했으나 다행히 찬승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 등록하지. 뭐….”
찬승이 그렇게 결정하자 미경이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내려가서 어떤 수업 들을지 같이 봐요.”
둘은 건물 1층으로 내려가 유리로 덮여있는 테이블에서 다음 달 강의 시간표를 보기로 했다. 찬승은 미경과 같이 테이블에 두 팔을 올려놓고 시간표를 내려다봤다.
“선배. 이 수업 어때요?”
미경은 유리로 덮여있는 시간표 중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찬승이 고개를 들어 미경을 바라보며 대답하려는 순간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상체를 살짝 숙인 탓에 헐렁한 그녀의 티셔츠가 아래로 내려가 뽀얀 가슴골이 살짝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찬승은 그 장면을 목격하고 순간적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하얀색의 브래지어로 감싸인 뽀얀 가슴은 아영보다는 작았지만 지현보다는 큰 것 같았다. 지현의 가슴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가슴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영의 가슴도 크다고 할 수 있는 편은 아니었다. 딱 보기에 섹시할 정도로 적당한 크기여서 그보다 작은 미경의 가슴은 굳이 큰 편, 작은 편을 고르자면 후자에 들어갈 정도였다.
찬승이 아무 말이 없자 미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미경의 고개가 살짝 움직인 순간부터 찬승은 재빨리 눈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들키진 않을 수 있었다.
“선배?”
“응? 응? 아 다른 수업도 살펴보느라고…. 미안. 그 수업 괜찮데?”
“예. 제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초급 다음에 여기가 제일 좋다고….”
“그래. 그럼 그걸로 하자.”
둘은 내일 등록하기로 하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9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종로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미경과 함께 지하철역을 향해 걷는 내내 찬승의 머릿속엔 아까의 장면이 잊히질 않았다. 미경은 아영보다 노출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거의 달라붙는 청바지나 정장에 가까운 바지를 입곤 했는데 치마를 입을 때도 그 길이가 짧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찬승의 머릿속에 있는 미경의 이미지는 항상 우아하고 세련되어 자신을 잘 노출시키지 않는 그런 여자 상사 같은 이미지를 받곤 했었다. 근데 그런 그녀의 브래지어로 감싸인 뽀얀 가슴을 보고 나니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게다가 지금 조금씩 자신의 자지가 발기하기 시작한 것이 지하철역까지 쉽게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찬승의 귓가에 미경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떡볶이 먹고 싶으세요?”
찬승은 그녀의 말에 웬 떡볶인가 싶었더니 자신이 계속해서 종로에 있는 노점 쪽을 보면서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녀에게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고 이 어색한 상황을 좋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찬승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하. 그래 아 맞아.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눈치 챘구나. 먹고 갈래? 내가 사줄게.”
결국 둘은 그렇게 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찬승은 맛있는 떡볶이와 순대, 튀김 등 각종 분식들이 배에 들어가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슬쩍 옆을 보니 미경은 너무나도 맛있게 떡볶이 등을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이미지에 이런 음식들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미경에겐 스테이크나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이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떡볶이 좋아해?”
찬승이 너무나도 맛있게 먹고 있는 미경에게 묻자 그녀는 입을 가려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학원 근처에서 파는 떡볶이 되게 좋아해요. 학원 끝나고 가끔씩 혼자 먹을 때도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찬승은 살짝 놀랐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혼자 노점에 서서 떡볶이와 순대 등을 주문시켜 먹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녀가 혼자 노점에 서서 먹었다면 지나가는 남자들이 꽤나 쳐다봤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찬승은 그녀가 무척이나 밝아졌음을 느꼈다. 전에는 말도 안하고, 웃지도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때도 나름대로의 시니컬한 매력이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지금껏 봉오리로 있었던 붉은색 장미가 활짝 핀 것 같은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이런 아름답고 착한 후배에게 가슴을 조금 봤다고 혼자 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찬승은 자신을 질책하며 입을 열었다.
“많이 먹어. 다음에 또 사줄게.”
찬승의 말에 다시 한 번 입을 가려 살짝 웃는 미경이었다.
*
찬승은 방학 시작하고 처음 맞는 월요일이지만 늦잠을 자진 않았다. 항상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서 오히려 늦게 일어나는 것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찍 일어난다고 마땅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 목, 금요일에만 학원을 나가고 토, 일요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니 월, 수요일에는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월, 수요일에는 항상 지현과 아침 일찍 만나 학교에 가고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지현이는 방학인데 뭐하고 지내려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방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인터넷을 하는데 영화 예고편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 일도 없기에 그냥 예고편이나 주욱 보던 도중 정말 눈에 확 들어오는 영화가 있었다. 일본 영화였는데, 찬승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였다.
‘오오. 재밌겠다. 보고 싶어….’
그러나… 마땅히 보러 갈 사람이 없다. 지현이나 아영을 떠올려 봤지만 따로 만나서 봐야하니 잘못하면 그날 하루를 데이트에 써야 했다. 예쁜 후배들과 데이트하는 것은 싫지 않았지만 선후배 입장으로 만나는 것이니 선배 입장에서는 왕창 돈이 나가리라….
적당히 영화 보여주고 간단하게 헤어질 수 있는….
‘미경이가 있잖아….’
종로에서 같이 영어 수업을 듣는 미경이가 있었다. 어차피 종로에는 극장도 많고 영어 수업도 7시니까 그 전에 만나서 함께 영화를 보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학원에 가면 되는 것이다.
‘근데 말해도 되려나….’
그렇게 마음먹고 핸드폰을 들어보니 여간 떨리는 것이 아니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약속을 잡아 영화를 볼 정도로 친해졌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말이나 좀 해보자.’
결국 연락하기로 마음 먹은 찬승은 핸드폰을 들어 미경에게 연락했다. 잠시간의 신호음이 울린 후 미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받긴 했으나 굉장히 의외라는 목소리.
“응. 어. 안녕? 방학 잘 지내고 있어?”
[예…. 근데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하하. 그냥 뭐 그렇지…. 저기 근데 혹시 내일 무슨 일 있니?”
겨우 용기를 낸 찬승의 말에 핸드폰 너머로 잠시간 고민하는 미경.
[아뇨. 학원가는 거 빼고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저, 저기….”
찬승은 망설였다. 말할까 말까. 그러나 결국 용기내 말을 이었다.
“내, 내일 나랑 영화 볼래? 학원가기 전에?”
[예…?]
핸드폰에선 미경의 반문 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녀도 약간 놀랐음이 분명하다. 미경의 반응에 당황한 찬승은 서둘러 수습하려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냥 영화 보자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내가 보여줄게. 같이 보자….”
그러나 찬승의 의도와 다르게 같이 보자라는 말은 미경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핸드폰 너머로 우물쭈물하던 미경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예? 예…. 알겠어요.]
미경의 수락 후 찬승은 종로에 있는 극장에서 2시에 만나기로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찬승은 미경이 수락하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선배랑 영화를 보냐고 화를 낼 줄 알았지만 다행이도 그런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경은 지금 혼자서 두근거리며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찬승의 말에 두근거리는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하면서….
*
다음 날 찬승이 약속장소에 나가자 잠시 후 미경이 나타났다.
“아….”
허리부근을 리본으로 묶어 섹시한 허리라인이 잘 살아난 밝은 하얀색의 블라우스와 길고 가는 다리의 늘씬한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는 검정색 정장바지를 입은 미경. 그리고 보통 길게 늘어뜨리던 머리는 평소와 다르게 머리 뒤쪽으로 틀어 올려 묶은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그녀의 가늘고 새하얀 목덜미와 어깨로 내려가는 부분의 새하얗고 매끄러운 라인이 나타나 너무나도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미경은 멍하니 서있는 찬승에게 다가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아, 아, 안녕….”
찬승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심하게 말을 더듬어야 했다. 평소에도 예뻤지만 오늘은 유독 어른스러운 옷을 입은 상태에 헤어스타일도 평소와 달라 훨씬 성숙한 이미지의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멍하니 있던 찬승은 그녀가 너무나도 예쁘게 차려입고 나오자 무슨 약속이 있나 하고 물었다.
“오, 오늘 어디 가니?”
“예?”
“아, 아니 너무 예쁘게 차려입어서….”
찬승의 칭찬에 잠시 가만히 있던 미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화 보러 가죠.”
그러나 그녀가 방금 지은 미소는 평소의 우아한 미소가 아니라 왠지 싸늘한 한기가 살짝 풍기는 미소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경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화는 자신도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이다. 사실 미경도 어릴 적부터 이 감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미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까 찬승이 했던 말이었다.
[오, 오늘 어디 가니?]
분명히 찬승과 영화를 본다고 해서 어제 고르고 고른 옷이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이렇게 머리를 틀어 올린다고 얼마나 애를 썼는가. 그런데 고작 하는 말이라고는 어디 가냐는 말이라니…. 그러나 미경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왜! 왜! 왜! 내가 왜! 저 선배 만난다고 그렇게 옷을 고르고 아침부터 고생하면서 이 머리를 했냐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에게 낸 화는 또 다시 꼬리를 문다.
‘왜! 왜! 왜! 저 선배가 나한테 그런 말 했다고 내가 왜 화가 났냐고!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데. 어휴 정말….’
그렇게 화를 내다 슬쩍 옆을 보니 영화의 아름다운 화면에 완전하게 빠져든 찬승이 보였다.
‘…뭐야. 정말 보고 싶어 했던 영화인가 보네.’
결국 미경은 스스로에게 웃음이 났다. 선배는 그저 좋아하는 영화 보고 싶어서 자신을 부른 것인데 괜히 혼자 오버하면서 난리 친 자신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편으론 약간 아쉬우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미경이었다.
*
토요일 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요일이 막 시작되는 시간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와 피곤한 찬승은 거실에서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직 여동생이 들어오지 않아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늦게 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부모님은 동시에 찬승을 쳐다봤다. 너가 기다리라는 뜻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에서 혼자 졸고 있는 찬승이다.
띵동-!
“으앗-!”
찬승은 갑작스레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다. 왠지 아영에게 된통 쫓기는 꿈을 꾸며 괴로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헉…. 꿈이구나.”
거친 숨을 몰아쉬는 찬승은 스스로에게 안도하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오, 오빠? 나야.”
서희의 목소리는 마치 오빠가 있었을 줄 몰랐다는 듯 살짝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나 찬승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문을 열어주었다.
거실로 들어서는 서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주무셔. 너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치, 친구들이랑 놀다가. 나 들어간다.”
그렇게 둘러댄 서희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이 더욱 이상했다. 무언가 억지로 자연스러운 동작을 만들어내려는 듯한 모습.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해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고, 무언가 다리가 아픈 사람처럼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 분명 서희는 그런 모습을 숨기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어색한 동작 속에서 그런 모습들이 나타났다.
그런 일련의 모습들이 찬승의 눈에 감지되자 머릿속에서 왜 저런 모습을 보이느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여러 가능성들을 종합하다가 결국 한 결론에 도달한다. 설명은 길었지만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아, 아….”
찬승은 방으로 들어간 서희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입을 뻐끔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서, 설마….”
서희의 첫 경험…. 분명했다. 평소와 다른 늦은 시간. 기다린 자신을 보며 당황하고, 늦게 온 이유를 더듬거리며 둘러대는 서희. 그리고 저 걸음걸이. 첫 경험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저렇게 걷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찬승 자신이 저런 경험이 없었기에 지레짐작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동생 주위의 모든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번 그런 종류의 상담도 해주질 않았나? 결국 올게 오고만 것이다.
찬승은 슬쩍 여동생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무언가 후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오빠야?”
“응. 잠깐 얘기 좀 하려고.”
“무, 무슨 얘기. 나 잘 거야!”
심하게 당황하는 서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그냥 잠깐만….”
잠시 후 살짝 문이 열린다. 문까지 잠거 놓은 모양이었다. 여동생이 방문 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왜…?”
“음. 아니 다음 주에 너 남자친구 한 번 볼까하고….”
그러자 특유의 큰 눈망울이 더욱더 커진다.
“왜, 왜, 왜? 내 남자친구를 왜?”
“뭘 그리 놀래? 그냥 한 번도 못 봤잖아. 만나서 밥 한 번 먹으려고. 너 남자친구 어떤 사람인가도 보고…. 다음 주 수요일 날 볼래?”
“알았어. 알았어. 나 잘 거야. 어서 오빠도 자.”
서희는 말을 마치고는 재빨리 방문을 닫는다. 그리고 딸깍 소리가 나는 것이 또 다시 문을 잠근 모양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문을 잠그지 않던 서희였다. 분명히 오늘 서희의 첫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다.
방으로 돌아온 찬승은 침대에 누우며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결국 여동생에게도 이런 날이 오고만 것이다. 왠지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 같은 쓸쓸함이 들었다.
‘쳇…. 잘 사귀렴.’
다음 주에 남자친구를 본다. 봐서 괜찮은 놈 같지 않으면 깽판까지 부릴 생각이다. 아니…. 생각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여동생이 좋아하는 남자이니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 남자친구가 여동생을 사랑하는 마음만 알고 싶었다. 그럼 얼마든지 서로 행복할 수 있기에….
*
방학 후의 월요일과 수요일은 찬승에게 하루 종일 인터넷만 하는 날이 되었다. 내일 모레는 여동생과 약속을 잡았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할 일이 없는 오늘 월요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터넷만 줄곧 하게 된다.
영화를 다운 받아 보고 인터넷 게임을 해도 심심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다 문득 싸이월드가 떠오른다. 그때 지현의 소개로 가입해 놓고 몇 번 들어가지도 않았었다.
생각난 김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접속했더니 총 방문자수가 30이 조금을 넘는다. 그러고 보니 전에 여동생의 엄청난 방문자수를 따라잡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일촌이라고 해봐야 지현과 여동생 두 사람. 게다가 사진도 없고 꾸민 것도 없는 미니홈피. 이런 미니홈피에 사람들이 올 리 없었다.
찬승은 자신의 일촌 중 한 명인 여동생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그러자 남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메인사진이 나타난다. 엄청 잘 생겼다. 여동생이 자신의 남자친구가 인기 많다고 했는데 정말 여자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외모였다. 대충 둘러보고 남은 일촌인 지현의 미니홈피에 들어갔다.
총 방문자수는 오만이 넘어가고 있었고,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투데이가 30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촌평은 스크롤이 한없이 내려갈 정도로 많았고, 방명록에는 거의 다가 남자 이름이었다.
‘여전히 인기 많구나…. 이 녀석은.’
찬승은 우선 그녀의 일기장을 클릭해봤다. 그러자 그녀가 요즘 뭐하고 지내는지 대충 알 거 같았다. 일기의 대부분은 오늘은 무슨 요리를 했다이다. 간단한 일기였지만 그 일기에 달린 남자들의 댓글은 열광적이었다. 자기도 먹고 싶다느니 나도 해달라느니 등…. 저번에 요리책을 사가더니 정말 요리를 만들며 방학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았다.
사진첩을 눌러보니 최근에 찍은 사진은 거의가 자신이 만든 요리였다. 찬승은 그렇게 사진을 보다가 예전의 사진까지 클릭하게 되었다. 종종 그녀의 미니홈피에 들어갔을 때는 그저 클릭해서 잠깐 보고 나왔지만 굉장히 심심한 지금은 계속해서 사진을 넘기며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어느 정도 뒤로 넘기자 태권도 도복을 입은 한 사람이 발차기를 멋지게 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각이 살아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려하고 아름다운 동작.
‘누구지?’
궁금한 생각에 지현이 써놓은 사진의 내용을 보자 찬승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등학교 때 찍은 자신의 사진이란다.
‘지, 지현이잖아!’
찬승이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짧은 단발머리 때문이었다. 지금의 등을 덮을 정도로 긴 생머리와는 대조적인 모습….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웠다. 머리가 짧아도 무척이나 예쁜 그녀였다.
결국 지현의 옛날 사진을 몇 개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찬승은 곧 새로운 인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서 찾아 들어갔다.
그러자 뜨는 남자친구와의 사진. 이번엔 남자친구의 볼에 여자가 뽀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찬승은 그 사진을 보고 바로 닫기 버튼을 눌러 미니홈피에서 빠져나갔다.
‘내가 왜 또 들어갔지…. 후우. 정말….’
은설의 미니홈피였다.
*
“오빠 걔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마!”
“자꾸 내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거야.”
“몰라! 아무튼 이상한 소리 하지마.”
수요일 날 찬승과 함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내 서희는 계속해서 그렇게 말을 했다. 결국 신촌에 도착해 남자친구를 만난 후에야 조용해지는 서희였다.
남자친구는 사진에서 보던 대로 굉장히 잘 생겼다. 게다가 키도 크고 옷 입는 스타일도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었다. 찬승은 셋이 밥을 먹으면서도 남자친구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안 드는 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에 든다고 봐야 했다. 자신에게 여자친구의 오빠로서 예의를 갖추면서도 여자친구에게도 세심하게 신경써주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여자친구에게만 신경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만 신경 써서 점수를 잃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희의 남자친구는 양쪽 모두에게 신경을 잘 쓰고 있었다.
‘뭐 좋잖아….’
찬승이 보기에도 여자친구인 서희를 굉장히 아끼고 좋아하는 거 같아 밥을 먹고 나와서 이만 헤어지려고 했다. 둘이 놀라고 자리를 피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서희의 남자친구가 후식을 자기가 사겠다며 근처의 작은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카페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신촌이었지만 수요일인데다가 중심가가 아닌 꽤 외곽에 위치해 있는 작은 카페였기에 사람이 있는 테이블은 한두 테이블뿐이었다.
서희와 남자친구가 앉고 그 앞에 찬승이 앉아 대화를 하는데도 어색함이나 지루함이 없었다. 찬승도 이상하게 서희의 남자친구가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읏…. 꽤 재밌는 녀석이잖아.’
찬승의 생각대로 서희의 남자친구는 꽤 재밌는 녀석이었다.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특히 듣는 사람 모두가 알고 공감할 수 있는 화제로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잠시 얘기를 나누다 찬승은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잠시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볼일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로 서희와 남자친구가 키스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서로를 다정스럽게 안고 혀까지 섞어가며 하는 진한 키스….
‘뭐, 뭐야….’
찬승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있던 손님들은 다 나가고 카페에 자기들 밖에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카운터 쪽에선 서희가 있는 테이블이 보이질 않고, 카페 내부엔 곳곳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키스하기 딱 좋은 순간과 위치였다. 찬승이 그렇게 잠시간을 지켜볼 때 남자친구의 손이 서희의 티셔츠 안으로 들어갔다.
‘헉….’
찬승은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그리고 칸막이 틈으로 몰래 보는데 남자친구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서희의 분홍색 티셔츠는 한껏 올라가 새하얀 배를 드러내놓고 있었고 가슴 부근에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신나게 여동생의 커다란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서희는 전혀 거부하는 기색 없이 남자친구를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가슴 쪽에서 놀던 남자친구의 손은 여동생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청치마 밑으로 드러난 서희의 새하얀 허벅지를 살며시 벌리더니 거침없이 손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저, 저 새끼가….’
찬승은 깜짝 놀라 일어서려 했지만 여동생의 표정을 보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애무당하는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 그리고 살짝 입술을 벌리고 옅은 신음소리를 흘리는 것이 정말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칸막이에 가려 여동생의 팬티나 은밀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껏 벌리고 있는 허벅지는 보였기에 남자친구의 손이 어디서 놀고 있음은 짐작키 어렵지 않았다.
‘쳇…. 서희도 정말 좋아하잖아….’
결국 둘 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찬승이 깨부순다면 여동생의 상심은 매우 클 것이다. 게다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니 한, 두 번 했던 일이 아닌 모양이다.
‘…후우. 그건 이제 됐고. 근데 문제는 그게 아냐….’
이제 찬승에겐 둘이 무얼 하든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머릿속에 자꾸 남자친구의 손이 여동생의 보지를 마구 쑤시는 장면이 상상이 돼 미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의 손이 서희의 보지를 벌려서 물이 튀도록 마구 쑤시면서 여동생은 입을 벌리고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다…. 이런 상상으로 흥분이 되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벌써 자신의 자지는 한껏 발기해 흥분하고 있었다. 여동생의 보지 생각으로….
찬승은 둘의 애정행각이 끝난 후에도 잠시간을 기다린 후 테이블로 갔다. 여동생은 언제 남자친구의 손에 의해 보지를 공략 당했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찬승을 맞이했다.
그렇게 카페에서 나온 후 이번엔 서희의 남자친구가 술을 마시자는 것도 뿌리치고 찬승은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다. 지금 흥분한 상태에서 여동생을 보니 아까의 장면이 떠올라 스스로에게 죄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 흥분을 풀어야 했다. 이 흥분을 풀지 않고 집에 들어가면 들어오는 여동생을 보고 또 다시 무슨 생각을 할 지 몰랐다.
잠시간을 그렇게 고민하던 찬승은 굳게 마음먹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응…. 아영아….”
*
아영의 집에 가는 찬승은 소주 세 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몇 개 사갔다. 술이 생각났다. 그냥 마시고 싶다.
아영의 집에 가면서도 그녀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다. 이렇게 찾아가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녀에게….
집에 도착하자 편안한 옷차림의 그녀가 찬승을 맞이했다. 평소 어깨까지 내려오는 다듬지 않은 듯한 스타일의 샤기컷 머리는 단정하게 묶은 상태였고, 특유의 진한 스모키 눈 화장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영이 찬승이 가져온 봉지를 보고 물었다.
“웬 술이에요?”
“응. 같이 마시고 싶어서. 왜 싫어?”
“아뇨. 좋아요.”
아영은 웃으면서 금세 자리를 만들었다. 아영은 찬승과 술을 마시며 자신의 주량이 별로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 병 조금 넘어가면 취한단다. 결국 두 병은 찬승의 몫이란 소리다.
둘 다 조금씩 술이 들어갔을 때 찬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말야….”
찬승은 그렇게 운을 뗀 뒤 여동생의 일을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나 스스럼없이 몸을 섞는 사이인데다가 자신이 온다고 해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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