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일기 - 1부 19장
본문
뭘 그렇게 빤히 봐요? "
물이 담긴 컵을 입에 댄 채 빤히 쳐다보는 윤아영에게 말했다.
" 가만 생각해보니까 수상해. 남의 반지 호수는 왜 물어봐? "
" 남이라니, 서운하게 그게 무슨 말이람. 내것도 알려줄게요. 17호에요. 히히히... "
누나는 코를 예쁘게 찡그리며 짐짓 화난 표정을 지었다.
" 그런거 말고 좀 학술적인 질문을 해봐. 나중에 이력서에 이름 석자 말고 적을게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니까. "
" 뭐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육도, 육이오.. 이런거요? "
20대 태반이 백수.
38세면 조기퇴직선.
45세면 정년퇴임.
56세까지 회사에 붙어있으면 도둑놈.
62세까지 일하면 오적五敵.................
" 그게 뭐가 학구적인 질문이야! "
" 그럼 여자친구랑 밥먹는데까지 와서 딱딱하게 그래야해요? "
" 여자친구의 순기능적인 작용이라고 봐. "
" ................. "
나는 애꿎은 돈까스만 포크로 쿡쿡 찔렀다.
" 아무튼... 커플링 맞추고 싶었어? "
" 누나 커플링 껴본적 있어요? "
나는 대답 대신 반문을 택했다.
남한테는 대수로울것이 없는 질문이라 해도 나에게는 은근한 일침이 될 수 있는 문제..
나도 팔불출인가? 아니면 좀.. 아니, 많이 편협한건가?
" 음.. 없어. 커리어가 엄청 신선하지? "
" 나도 처음 맞춰보거든요. 또 누가 채갈까봐 도장찍어놓고, 임자가 있다는걸 표시하려는 시치미같은거... 누나 오고나서 집에 볕이 드는거같아서 혹시라도 누나가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같은게 자꾸 생기고.. 아무튼 내 맘 알죠? "
" 요게 벌써부터 무게를 잡네. 무슨 의부증 환자마냥 왜 그래? 어디 안 도망가니까 혼자 끙끙대지 말고 지금처럼 다 털어놔. "
" 윽, 하늘같이 지엄하신 서방님한테 의부증 환자라는게 가당키나 한 소리? "
누나는 어느새 일어나 아줌마한테 식대를 내고 있었다.
*
워밍업 운동을 하고 처음 보는 coc악력기가 있어서 쥐어보니 순식간에 손에 땀을 쥐게 될만큼 장력이 대단했다.
" 뭐야 이거? "
" 그동안 왜 빠지셨어요? "
코치가 슬그머니 뒤에서 말을 건다.
나는 놓을 핑계가 생각나서 살펴본 척하면서 대답했다.
" 일이 여러가지로 생겨서 스케줄에 파탄이 생겨가지구요. "
" 운동이란게 쉬면 안되는거거든요. 뭐 찾아뵈려다가.. "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이라서.
" 집에 손님이 오셨거든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
악력기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손에 난 식은땀을 슬그머니 바지로 닦았다.
뭔 놈의 장력이...
" 오늘 수요일이니까 어깨랑 삼두 그대로 하시구요.. 밀리터리 프레스는 음.. 빈봉 무게는 아시죠? 비하인드 넥 프레스랑 덤벨 숄더 프레스랑.. 체크해야되는데 볼펜이 없네. 아무튼 다음부터 빠지시면 제가 이렇게 바빠집니다. 하하.. "
보통 헬스 트레이너들이 여자한테나 붙어서 트레이닝 요령을 알려준다면서 말이나 붙여볼까 집적거리는것과 달리 상당히 충실한 사람이다.
생긴것도 굉장히 호남형이고.. 무엇보다 덤볐다가는 정말 일격에 주님곁으로 갈것같은 저 말근육.
" 다음에 펜 하나 사다가 드릴게요. 오늘 스케줄 한 두시간 안팎으로 되겠네요? "
" 뭐.. 그정도 되시겠는데 6회 7셋 15회 5셋하시고.. 무게는 가볍게 하세요. 50~60 이상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그 소리를 들으니 한번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헬스에서는 절대 자신을 과신하거나 귀가 얇으면 안된다. 믿을만한 소리만 수용해야된다.
" 그쯤이야 당연히 알죠. "
" 아 맞다. 저거 장력 88kg인가? 그럴거에요. 왠만한 사람들은 절반도 못해요. "
" 그럴것 같아서 살펴보기만 했죠. 하하. "
왠지 뭣 빠지게 무겁더라니.
*
등록금을 벌어서 대학을 다닐 정도의 효녀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술 마시고, 밥 먹고, 책 사고..
혹시라도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추가로 생일이다, 발렌타인 데이다, 무비 데이다, 로즈 데이다, 다이어리 데이다, 실버데이다, 그린데이다, 와인데이다..
-_-
아무튼 돈은 필요하다.
게다가 항상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다.
내가 1학년때.. 그 당시의 나는 고3짜리 여자애 하나를 데리고, 연애에 대한 진지한 100분 토론을 하다가 실직을 한 상태였다.
그 전까지는, 왜 과외를 할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숙제도 착착 잘해와서 든든한 철밥통이였지만.
모아놓은 저축 따위가 있을리도 없고, 이래 저래 집에 눈치가 보여서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물론 친척들에게는 " 아영이 공부 엄청 열심히 했구나! " 같은 있으나 마나한 소리 외에는 땡전 한푼 어드밴티지가 없었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였을까.
아무리 친한 친구더라도 손 벌리는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제 본격적으로 과외를 잡아보려고 PC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려는 찰나에 은성이와 만났다.
그리고 그 직후 명목상 과외선생님으로서 동거를 하게 되었다지만..
아마 내 기억으로, 내가 맡아서 성적 오른애는 없었다.
-_-;
처음에는 아직도 내가 이렇게 소녀같은 충동이 남아있었나.. 바보같은 낭만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치 내가 없으면 전전긍긍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다고 할 정도로 주책을 부리는 남자친구 덕분에 단지 잠깐 동안의 충동이 아니였다는걸 알 수 있게 되었다만.
사실 처음에는 기분이 영 별로였다.
너무 경솔한게 아니였을까..
도저히 초를 칠 수 없는 분위기?
솔직히 기분이 조금 좋기도 했다.
그래서..
그만 휩쓸려 버렸다.
엄청난 질투에, 잔소리 아닌 잔소리까지..
내가 하루 종일 자기만을 봐 주기를 바라는 모양이라 달콤한 기분에 젖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자기의 보호를 받는 어린 양 정도의 역할을 기대해주는 걸까요?
예를 들자면, 벌써부터 커플링과 대학 생활까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해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혹시라도 돈이 들어갈 일만 나오면 그냥 무조건 나한테 맡겨요 누나~
이런 식입니다.
천만에.. 한참 잘못 짚었어요.
저는 남자의 보호나 받는 그런 여자이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에 제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과 저는 서로를 지켜주는 사이가 될거에요.
지금은 서로 풋풋한 감정으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습니다.
-*-
정말 운동은 쉴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적응은 너무나도 신속해서.. 잠깐만 게을리해도 그것에 적응이 되어 예전에는 몸에 조금씩만 무리가 갈 정도로 적당한 운동이 지금은 가슴이 뻐근하다.
그렇게 멍하니... 한 참동안 길을 걸었다.
부르르, 하는 진동을 느끼고 나서야, 내가 누나를 데리러 갈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어디야? 누나 심심해 죽겠다. 죽어도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오바. ]
나는 피식 웃으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약속 장소로 옮기며 답장을 찍었다.
[ 베이스 캠프에서 지금 출발했다. 약 한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오바. ]
[ 나 처녀다. 처녀가 죽어서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도 못 들어 봤는가? 오바. ]
[ ㅋㅋㅋ... 처녀? 어찌 알겠는가? 불확실한 정보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확인 요망. 오바. ]
답장을 보내고, 약 일분쯤 지났을까..
퍽!
등 뒤에서 강렬한 타격감을 느꼈다.
" 여자친구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정말! "
" 아야, 손이 왜 이렇게 매워요? 아파 죽겠네. "
진짜 아팠다.
여자 손이 이렇게 맵냐.
" 아파도 싸, 으이그.. "
" 뭐 하다 이제 왔어? "
" 잠깐 멍때리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을 지나쳐서요.. "
" 담부터 늦지 마. "
" 누나는 방학 언제 해요? "
누나는 팔을 앞으로 쭈욱 내뻗으면서 말했다.
" 음, 이제 얼마 안남았어. 대학교는 시험 끝나면 바로 방학이야. 부럽지? "
그러니까 언제?
" 정확한 날짜는 아직 안나왔어요? "
" 6월.. 6월 19일. 얼마 안남았네. 왜? "
왜긴..
여름이잖아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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