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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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출현! 스트라이커!
조금은 낯선 조명아래, 돼지 같은, 게다가 늙어 축 늘어지기 까지 한,
침대에 엎드려 누워있는 한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의 등판이 보였다.
그리고 남자의 등판 위에서는 동남아 계열의 국적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가
속이 환히 비치는 붉은 슬립차림으로 천정에 매달린 봉을 잡은 채,
천천히 그 남자의 등 곳곳을 부드럽게 밟아대고 있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남자의 입에선, 연신 ‘으음’하는 시원함에서 비롯되는 신음이
연이어 나왔고, 그렇게 한 20분쯤 지나자, 자신의 할 일을 마친 여자는
조용히 그 남자의 등에서 내려와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혼자 남겨진 남자는, 자신의 직책으로부터 발생되는 중압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AFC에서는 UEFA에 대항하기 위해 아시아의 각 구단 법인화를 재촉했고,
법인화는 곧, 기업과 팀의 결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로 인해 파생될
경영 투명화는 곧바로 자신들의 비자금조성에 직격탄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그렇게나 인기의 비활성화를 위해 일부러 방송사가 K리그 중계방송을
등한시 할 수 있도록, 대한축구연맹에 가입된 각 구단 단장들의 암묵적 동의 하에,
광고수익배분을 최대한 낮게 제시해 공중파에서 방영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FA컵의 중요경기들을, 평일 낮 경기로, 그것도 제주도에서 개최하는 등,
팬들의 원성을 살 수 있도록, 꽤나 효율적(?)으로 노력을 했건만,
프로축구는 점점 지역에 뿌리를 내려 연고지의 주민들은 점점 사랑을 주기 시작했기에,
무조건 대표팀만을 띄워 A매치 입장권 수익 등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던,
자신의 직장이기도 한 대한축구협회는 점점 난감해하기 시작했다.
그저 한국축구는 태생부터가,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꽤 간편한 도구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진화했고,
커져버렸고, 사랑 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 며칠 사이엔, 한때 국내 프로축구에 반향을 일으키며, 모든 사람들을 축구에
열광토록 만들었던, 그래서 자신들에겐 언제나 눈엣가시 같았던 ‘그 놈’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기에, 이 남자의 양 어깨는 그간 받아온 스트레스로 인해
그야말로 땡땡하게 뭉쳐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 망할 놈의 노감독 짓 일테지…’
말이 프로축구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익성을 위해,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저, 명목상, 그리고 기업 홍보의 목적을 위해 축구팀이 존재해
왔었으나, 역시 굴러들어오는 돈은 점점 욕심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인지,
축구팀들은 하나 둘 씩 수익성의 극대화를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축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시민, 도민구단을 필두로,
입장권 및 유니폼 판매 등과 함께 선수 육성 후 이적을 시켜 수익을 올리는 등의 방법을 통해
흑자경영을 이뤄 돈 맛을 알게 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랬기에, 더 이상 예전처럼 축구협회와 연맹에 무작정 끌려가던 예전의 축구팀들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이제는 대표팀에 소속구단의 선수가 발탁이 되는 것 조차 꺼리기 시작했다.
주급은 자신들이 주고 있음에도, 축구협회는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선수들을 빼가서
혹사시키고, 혹은 부상을 입힌 채 돌려보내기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확실히 대표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모든 감독들이, 한국 대표팀 감독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며 꺼려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앉혀 둔 노감독은, 자신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자신들이 조기 유학 등을 보내
키운 선수들이나, 학교 후배 등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야말로 리그에서의 ‘활약도’만을
중점으로 파악해 선수 선발을 하고 있었으니, 전보다 스타플레이어가 적어진 대표팀의 인기는
점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민주주의가 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
예전 80년대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이 남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내, 또 다른 여자가 속옷차림으로 들어왔지만, 남자는 별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누워있었고, 여자는 들어오자마자 그나마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버리곤,
남자의 하반신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치워버렸다.
수건을 치운 자리엔, 탄력은 전혀 없어 보이는 엉덩이만이 축 져진 채 자리잡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의 등 위엔 차가운 액체가 듬뿍 뿌려지고 있었고, 남자는 조금 떨었던 것도 같았다.
“마사지 시작하겠습니다.”
농염한 그녀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남자의 등으로 물컹한 느낌이 느껴졌다. 여자는 먼저
안마를 행했던 동남아 계열의 여자와 같이 손을 쓰지 않고 마사지를 시작했는데,
차이점이 있었다면, 이 여자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이용해서 마사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남자등과 여자의 가슴은 마사지오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남자의 뒷몸에
오일이 묻어있지 않은 부위가 없자, 여자는 남자의 몸에서 내려와, 엎드려 있는 남자의 몸을
부축해 앞으로 돌아눕도록 도왔고, 남자가 ‘끄응’하며 겨우 앞으로 돌아눕자, 여자는 다시
남자의 몸 위로 올라가, 역시 풍만하고 기름진 가슴으로 남자의 가슴부터 시작해서,
점점 아래로 마사지해가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자의 흐물흐물한 자지 즈음에 이르렀을 때 여자의 가슴은, 골 사이로 자지를 넣고
자지만을 집중적으로 마사지 하기 시작했지만, 여간 해선 그 남자의 자지는 발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짜증난다는 여자의 표정을 그 남자가 봤더래도, 계속 마사지를 받았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꽤나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마사지를 받고
있었고, 여자는 식은 땀을 흘려가며 가슴으로 애써 자지를 세워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한 여자는 조심스레 수건을 집어 들어 자지에 묻어있는 오일들을 닦아내고는
이내 입으로 자지를 머금었다.
“으음.”
근엄한 척 하는 것들은, 섹스 할 때도 근엄한 신음을 내고 지랄을 떤다,는 생각과 함께
그 여자가 역겨움을 겨우 참아가며 몇 분에 걸쳐 겨우 자지를 겨우 발기시키자,
이내 그 남자의 입이 열렸다.
“올라오지.”
남자의 의중을 알아들은 여자는 이내 겨우 해방이다,라는 얼굴로 남자의 몸 위로 올라가더니
보지에 자지를 맞춰보곤 그대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참으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삽입이었다. 여자는 돈도 좋지만, 다음부턴 이런 늙다리들은 다른 애에게 양보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내 열심히 엉덩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똑똑.
남자의 입은 열리지도 않았는데, 노크소리가 나자마자, 검은 양복을 입은, 게다가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비서인 듯 보이는 남자가 전화를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여자는 순간, 당황해서 움직임을 멈췄고, 또 다른 남자에게 드러나버린 자신의 나신을 가릴
틈이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늙은 남자의 몸 위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쇳소리를 내는 듯
남자의 입이 열렸다.
“계속 해.”
항상, 이런 식의 생활을 해왔던 이 여자는,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엉덩이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지만, 속으론 이 남자를 백 번쯤 죽였다 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비서에게 전화를 건네 받은 남자는 여자가 열심히 돌려대는 엉덩이는 별로 자극되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전화를 받고만 있더니,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예, 부회장님. 그 건은…예…예…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이내 전화를 끊은 늙은 남자는 비서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한마디 던졌다.
“그 놈이 뛴 경기가 인터넷인가 뭔가에 떴다는 구만………구해와.”
“예, 전무님.”
전화와 함께 지시도 받은 비서는 묵묵히 목례를 하고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다시 나가버렸고, 역시 여자도 그와는 상관없이 열심히 돌리던 엉덩이의 속도를 조금씩
올려가려 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 전무인 이 남자의 입에서 탄식처럼 튀어나온 한 남자의
이름에, 이 여자, ‘윤지’는 순간 멍해지는 것 같았다.
“이영후……결국, 다시… 돌아왔다는 거냐?”
-
영후는 이른 아침부터, 중학교 운동장 한 켠에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아침운동이었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묵묵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던 점이 있었으니, 스트레칭을 할 때엔 언제나 몸 구석구석의 근육세포들과
대화를 나누곤 했던 그 였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는 달리, 몸을 풀면서도, 정작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건 그저, 어제 치렀던 연습경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몸이 조금 무거운 느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없진 않았다.
‘정말…내가 여자랑 잤단 말이지…’
지난 밤 동안 수림과 함께 나눴던 섹스의 여운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영후였기에,
이른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금 들뜨고, 상기된 것도 같았다.
‘그치만, 아침엔…’
영후는 차마, 맨 정신으로 수림을 깨울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함께 섹스를 하겠지만, 섹스를 하는 사이라고 해서 꼭 연인일 수는 없었기에,
그저 하룻밤 사이에 몇 번의 섹스를 나눴다고 해서, 그 여자를,
그리고 그 여자의 몸을 마음대로 다뤄선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어젯밤에도, 새벽녘에도, 그리고 아침까지, 그대로 눈이 부셨지만,
그래서 영후의 그것은 눈치도 없이 아침까지 계속 하늘로 치솟았지만, 그럼에도 영후는
그녀의 단잠을 깨우지 않고, 몰래 먼저 집을 나섰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간단히 트랙을 몇 바퀴 돌고 있는데, 조금씩 축구유니폼을 입은 동네
아저씨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조기축구회원들끼리 경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겸사겸사, 오늘은 그냥 몇 바퀴만 돌고 가야겠다.’
영후는 조금씩 스피드를 내며, 운동장을 돌았고, 그러는 동안에도, 아저씨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어, 이내 슬슬 공을 주고 받으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느덧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든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영후는 스탠드로 가서, 짐을 챙기며 슬슬 갈 준비를 했다.
‘아직도…잠들어 있을라나…’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영후에게, 아저씨치고는 막내에 속할 것 같은 남자 하나가 영후에게 다가왔다.
“저기, 혹시 볼 좀 찰 줄 아세요?”
“네?”
딴 데 정신이 팔려 그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영후는 다시 물었고,
그 남자는 급한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희 선수가 한 명 적어서요, 오늘 옆 동네 팀하고 시합하기로 했었는데, 한 분이 안 나와서
그런데, 같이 좀 뛰어주실 수 없을까 해서요. 아, 그렇다고 하실 게 많은 건 아니구요.
그냥, 골키퍼 앞에서 대충 수비만 서주시면 되거든요.
다행스럽게 오늘은 저쪽 팀에서도 ‘그 녀석’이 안 온 거 같으니까요.”
영후는, 어제의 시합으로 누적된 피로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곧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뒤에만 서 있어주는 건데 뭐…’
이내, 버릇처럼 축구화를 꺼내 신고는, 몇 번이고 끈을 바로 묶어보았다.
-
그 무렵, 영후의 침대에서 곤하게 자고 있던 수림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핸드폰 벨소리 인줄은 모르고 침대에서 뒤척이던 수림은,
꽤나 침대의 공간이 넓게 느껴지는 통에, 벌떡 일어났다.
‘아…여긴…’
또다시 낯선, 남자의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한 수림이었지만, 놀람보다는 이내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어젯밤의 모든 것들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와 똑같이, 자신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로 자신의 옆에 있어줄 것만 같던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벨은 꽤나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수림은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어제의 술판이 벌어졌던 자리에서
반짝이는 영후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수림은 차마, 영후의 핸드폰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걸려오는 사람의 이름은 살짝 봐도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며
괜히 눈치를 살피다가, 살며시 핸드폰을 들어 액정을 바라봤다.
‘박마녀’
마녀?
수림은, 단순히 ‘마녀’라는 글자를 보고 ‘쿡’하고 웃음을 터뜨리려고 했으나,
순간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녀라면…여자잖아…혹시…?’
수림은 갈등하다가, 조심스레 핸드폰의 전화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이내 전화벨소리가 멎어버렸다. 멎어버린 핸드폰처럼, 잠깐이지만, 수림의 마음도 먹먹하게
멎어버리는 듯 했다. 이윽고,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수림은 알몸인 채로 웅크리고
앉은 채, 영후의 핸드폰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사귀는 여자가 있는 걸까…?’
영후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기 전에,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신이 조금은
멍청하게 느껴지는 수림이었지만, 이내 자신의 젖가슴에 남아있는 그 남자의 키스자국과
여전히 그의 성기가 가득 차있는 것만 같은 자신의 보지 속 느낌을 되살리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수림은 혹시, 욕실에 영후가 있다면, 깜짝 놀래 켜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장난끼 넘치는 얼굴과 고양이발걸음으로 욕실 문을 확 열어젖혔지만,
어두운 욕실엔 침묵만이 맴돌았다.
‘어디…간 거지…?’
-
“축구화 한번 좋네~, 어디꺼여?”
골키퍼 바로 앞에서, 멍하니 서있는 영후에게 꽤나 몸집도 있고,
나이도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 이거요? 저도 잘…그냥 얻은 거에요.”
영후의 말은 그닥 틀린 건 아니었다. 영후의 선수시절, 협찬사에서 자신만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해서 선물해준 것을 받았던 것이었으니까.
“이잉, 우쩐지, 몸이 호리호리한 것이 뽈은 별로 못 찰 것치럼 보이드마,
신발은 고로코롬 삐까뻔쩍하드라고”
“아 예…”
조기 축구 같지 않게, 좀처럼 서로의 골 망을 가르지 못한 채 중원싸움만 벌이고 있는
미드필드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영후에게 골키퍼는 계속 말을 붙여댔다.
“아따, 너무 그렇게 긴장할거 읎어~, 오늘은 저짝팀 에이스가 안 나와 부렀응께.”
‘에이스?’
경기 시작 전부터,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상대팀의 에이스가 안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을 받고 있는 듯 해 보였다.
‘뭐, 아마추어 선수 출신 정도 되는 사람이 있나 보네.’
가뭄에 콩 나듯, 자신에게로 오는 공을 그냥 뻥뻥 내지르면서, 영후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접전지역에 합류해 골을 노렸을 영후였지만, 확실히 어제의 경기로
인한 데미지가 아직은 느껴졌기에, 회복훈련을 하듯, 최대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골키퍼와 계속 농담 따먹기를 즐기고 있었다.
“음마. 제법 차는갑네? 멀리도 나가뿐지네, 잉?”
긴 트레이닝 복 속에 감춰진 영후의 허벅지 굵기를 알리 없을 골키퍼는,
쉽게 차내는 것 같은데, 꽤나 멀리 날아가는 공을 감상하며, 연신 감탄을 했다.
이내, 별 소득 없이 전반전이 끝났고, 언제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렸냐는 듯,
내팀 네팀 가르지 않고 옹기종기 운동장 가운데 모여, 간식거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식을 담아온 모양이 다들 군색한 것이, 외출은 못 시켜줄 망정, 주말임에도
축구 하러 나서는 남편들 덕분에 홀로 집에 있을 마눌님들을 닥달 했다간 제명에 못 죽는
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나이였기에, 새벽부터 마누라가 깰까 조심하며 자신들이 직접
준비했을 음식들이었다.
“근데, 누구 술 가져온 사람 없어?”
참한 안주거리만 넘치자, 어느 뱃살 두둑한 아저씨 하나가 모두 들으라는 듯,
목소리 높여 물었고, 다들 얼굴만 쳐다볼 뿐, 술은 아무도 가져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꼭두새벽부터 갑자기 왠 술을 찾고 그래…그런 거 가져오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구석에 앉아 물을 조금씩 들이키며 영후가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갑자기 정문 쪽에서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내 그곳으로 쏠렸고, 순간 영후의 상대팀 아저씨들이 만세를 부르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청년을 맞았다.
“아니 왜 이제야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어?”
“죄송해요, 아빠가 가게에 좀 늦게 나오셔서…
그대신 아빠 몰래 가게에서 이거 가져왔으니까, 좀 봐주세요.”
‘헉!’
영후는 그 청년이 들어 보인 비닐 봉투 속의 물건을 보고 기겁했다.
그 청년이 들어 보인 건 다름아닌 막걸리 몇 통이었기 때문이었다.
‘술을 가져오는 인간이 있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하여간 삼거리 슈퍼 장씨가 자식 하난 잘 뒀단 말야.”
다들 칭찬이 자자했지만, 그럼에도 영후가 속해 뛰는 팀의 아저씨들은 왠지 얼굴이
밝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돌아온 ‘에이스’인 저 청년 때문일 것이었다.
비니를 눈썹 위까지 눌러쓴 자그만 얼굴 아래로, 위아래 검은 트레이닝 복을 입은 몸은 그닥,
탄탄해 보이지도 않았고, 키도 별로 크지 않았기에, 언뜻 어떤 강점이 있는 건지 영후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뭐, 선수는 경기력으로 말하는 거니까…’
슬슬 술잔이 돌기 시작하자 설마 자신에게 술잔이 돌아올까 덜컥 겁이 난 영후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전반전에 섰던 반대쪽 골대로 슬슬 걸어갔다.
“근데, 저 아저씬 누구래요? 처음 보는데?”
왠지,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좀 젊은 것도 같고, 꽤나 준수한 용모를 가진, 게다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영후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 청년은 골키퍼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잉, 놀라 덜 말어. 니가 하도 잘 찬께, 우리도 이 참에 비밀병기 하나 영입했다는 거 아녀~”
너스레를 떠는 골키퍼아저씨의 말씀에 다같이 웃음을 터뜨리긴 했지만,
그 청년은 왠지 영후가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
남희는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새벽까지 축구경기비디오 녹화본을 보며 포메이션과
공간배분, 시간에 따른 체력 저하 등을 나름대로 메모하며 연구하는 동안에 쌓인 피로감을
닦아내고 있었다.
만일 그녀의 샤워장면을 본 남자들이라면, 이성의 끈은 마치 썩은 동앗줄 마냥 툭 끊어졌을
만큼, D컵에 가까운 완벽한 가슴부터, 36인치에 육박하는 엉덩이까지 흐르고 있는 물줄기가
부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런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샤워하는 동안에도, 밤새 본 축구경기들을
통해, 여자경기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작전을 이행토록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내고는, 스스로 풀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여자는 남자보다 순발력, 지구력 등 모든 면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남희는 결국, ‘패싱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답을 찾았다.
하지만 그 해답에도 약간의 문제점은 있었다.
첫째로, 모든 선수들의 첫 번 째 볼 터치가 안정적이어야 하고,
둘째로, 볼을 가지고 있는 선수 이외의 선수들은 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편한 공간을 찾아
쉬지 않고 뛰며, 빈 공간을 창출해 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이어진 패스들을 살리며, 한 두 명쯤은 이겨낼 수 있는,
골 결정력이 있는 스트라이커가 있어야 한다…
는 세가지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지만, 그나마 다른 플레이에 비해 문제점이 가장
적은 방법이었으니, 남희는 어쨌든, 영후에게 이러한 분석에 대해 보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 둘째 문제점은 훈련으로 어찌 될 테지만, 마지막 세 번 째는 글쎄…’
언제나 현실은 수학적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믿어왔던 남희에게,
이번에 주어진 문제만큼은, 너무나 어려운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
이윽고 시작된 후반전엔 전반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을 영후는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저, 막걸리 한 두잔 때문에 취해버린 아저씨들의 알딸딸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그 ‘청년’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본능은 영후에게로 후반전
시작하기 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고, 영후는 그 경고를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고는 이내 현실로 나타났다.
‘호오?’
영후는 꽤나 감탄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단지 멤버 하나가 바뀌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상대팀의 아저씨들의 움직임마저 기민해지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공격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는 그 ‘청년’의 드리블 및 패스는 무척 간결하고, 또 부드러웠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왼 발등으로 트래핑해서
자신의 앞에 적절하게 떨궈놓은 그 ‘청년’은 이내 영후와 맞서게 되었다.
‘한번 실력 좀 구경해 볼까?’
영후는 전반과는 달리 무게 중심을 최대한 뒤로 이동한 뒤, 자세를 낮췄다.
순간, 무덤덤한 표정의 그 ‘청년’은 자세를 낮추는 대신 벌어지는 영후의 다리 사이로 ‘툭’하고
공을 차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영후의 어깨 쪽으로 스치듯 달려나갔다.
‘아차차!’
순간적인 반응이 미세하게 늦었던 영후는, 순간 자신의 발목에 모래주머니가 그대로 채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의 순간돌파능력은 꽤 놀라웠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가면 재미없지…’
영후는 재빨리 뒤돌아 달려나가며, 가까스로 공을 향한 태클을 해서,
그 ‘청년’의 다리 사이에 있던 공을 빼내었다.
“휴~ 큰일 날 뻔 했네.”
영후는, 설마 공을 빼앗길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그만큼 놀라움이 커 보였던 ‘청년’에게
‘찡긋’ 윙크를 보내고는 이내, 전방의 놀고 있는 아저씨들에게 장거리 패스를 날렸다.
“아따 이 양반~, 지대로 태클할 줄 아는구마~잉~”
간담이 서늘했을 골키퍼 아저씨의 뒤늦은 농담을 뒤로한 채, 영후는 그 ‘청년’에게 점점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꼈다. 또한 이 ‘청년’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음도 알 수 있었다.
“쳇!”
조금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센터라인 쪽으로 돌아가는 이 ‘청년’은 그러나 또다시
돌아와 자신을 돌파하려 할 것이란 걸, 영후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엔 그러지 않았을 텐데, 벌써부터 공을 자신에게로 패스해 달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 영후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재밌지 않겠나.’
어느새, 다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온 청년은, 자신에게 올라올 크로스를 기다리며,
영후와 몸싸움을 시도했지만, 영후는 조금 의아했다.
‘그러기엔…좀 몸이 약한 감이 있군.’
곧이어 왼쪽 사이드 라인 쪽에서 올라온 크로스의 방향을 보고 헤딩을 시도하기 위해
뛰어가려는 ‘청년’은 이미 길목을 막고 서있던 영후 덕분에 낙하지점에도 가보지 못하고
되돌아 가야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계속 도전해 올 것을 알기에, 영후는 마음속으로나마
응원을 보냈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부딪히러 와라.’
하지만 단지 몇 번의 공격을 실패했을 뿐이었는데, 이 ‘청년’보다 아저씨들의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저녀석 왜 저래? 평소 같지 않구”
“쟤가 못하는 거야, 저 남자가 잘하는 거야?”
어느새, 자신들의 할 일은 잊어버린 채, 아저씨들의 관심사는 그 ‘청년’이 영후를 돌파해내고
골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영후는 자신을 등지고 공을 키핑 하고 있는 ‘청년’에게서 왠지 공을 바로 뺏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언제라도 뺏을 수 있을 만큼 빈틈투성이였지만, 공을 뺏기보다는 또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돌파하려는지 한 번 보고 싶었다.
‘물론, 지금 정도라면, 이런 곳에서 우두머리 노릇하기는 쉬울테지…
하지만, 왠지 이 정도에서 멈출 것 같진 않은데...’
이런 동네 조기축구 같은 곳에서 썩히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영후는 자신을
등지고 있는 청년을 돌아서지 못하게 하려 최대한 밀착했고, 순간 턴을 하려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청년의 가슴을 밀어냈다.
‘어?’
순간 영후는 자신의 손끝에 느껴진 이상한 감각에 움찔했다.
그때였다. 영후가 막아선 반대쪽으로 턴을 한 그 ‘청년’은 이내 오른쪽으로 공을 차려 했고,
다시 정신차린 영후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그 ‘청년’을 마음속으로 나마 칭찬하며,
‘이번엔 공을 막아볼까’, 하며 그쪽으로 약간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순간,
이 ‘청년’의 발목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오른쪽으로 공을 차던 것을,
영후의 몸이 움직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체없이 다시 오른발 인사이드로 왼쪽으로
‘툭’ 차놓고 자신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스치듯 돌파해 달려나갔다.
‘설마…!’
틀림없는 ‘플립플랩’이었다.
어릴 적부터 모래밭에서 공을 차던 브라질 선수들 중에서도 발목이 유연하면서도 강한
선수들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기술을, 지금 영후는 국내에서, 그것도 조기축구시합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겠지만,
영후에게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 하나로…그것도 아웃사이드, 인사이드를 순간적으로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니…저녀석…?’
영후 자신도 실전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을 기술을,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목격했기에 감탄하고 있는 영후를 뒤로하고 결국 골을 성공시킨 그 청년은, 그제야 속박에서
벗어난 듯, 천천히 뛰어가며 머리에 쓰고 있던 비니를 벗어 들고 빙빙 돌리며, 아저씨들의
환호를 즐겼다.
“역시 장씨네 딸내미여~!”
“그러면 그렇지, 사람 놀래 켜 주는 방법도 여러가지구먼~.”
많이들 즐거워했고, 또 놀랐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놀란 건 영후였다.
청년이 벗은 비니 덕분에, 숨어있던 긴 생머리가 흡사 초원을 거니는 명마의 빛나는 꼬리처럼
나풀거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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