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인생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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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인생#1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어느 대학의 부속 병원, 이미 저녁이 다 되어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병원복도를 한 여성이 급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윤기나는 검은 머리칼이 자꾸 얼굴을 때리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급하게 뛰어가는 그
녀. 그녀가 바로 오늘 병원에 환자 하나를 더 추가해준 이세희의 언니, 이세린이었다. 이
집안의 축복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그녀 역시 세희와 같은 백옥같은 피부에 긴 팔다리, 그리
고 아직 소녀티가 남아있던 세희와는 달리 들어갈데 들어가고 나올데 나온 성숙한 몸매까
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아주 예쁘게 위치하고 있
지만- 평소 그녀가 짓는 냉막한 표정 덕분에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쉽게 다
가갈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뭇사람들에게 ‘얼음 공주’ 라는 소리
까지 들어왔던 그녀.
하지만 지금, 하나뿐인 동생이 교통 사고를 당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는 헐레벌떡 병실
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는 그저 동생을 걱정하는 언니의 모습일 뿐이었다.
“하아.. 하아.. 304호.. 304호...”
평소 그녀의 지인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그녀에게서 볼 수 없는 ‘크게 동요한 표정’을 한껏
얼굴위로 뽐내면서 그녀가 찾은 304호. 그녀는 그 병실번호를 확인하자마자 거침없이 병실
문을 열어재꼈다.
“세희야!”
그녀가 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열어재낀 304호의 병실 안. 그곳에는 그녀가 상상하
던데로의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고있는 사람의 형체. 급
박한 마음과 저녁이 되어 불이꺼져 있던 병실안의 어둠은 세린에게 그 사람의 형체를 꼼
짝없이 자신의 동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 세희야! 세희야...!”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자신이 끔찍이도 아끼는 하나뿐인 동생이 병실에 누워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생각하자- 갑작스레 벅차오르는 설움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누
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 냉막하기만 했던 표정에 눈물이 흐르며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예쁜 얼굴이 드러났다.
“.... 흐.. 흑.. 세희야아! 언니가 잘못했어..! 언니가 좀 더 너를 보살폈어야 했는데!”
그녀가 병실 침대의 이불에 얼굴을 묻고서 그렇게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까부터 줄곧 꿀같
은 단잠을 잘도 자고있던 한세준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
“흐.. 흑... 세희야아... 흑... 세희야... 우아아아아아앙~”
그렇게 세준이 자고 있는 이불을 꼬옥 끌어안고 흐느끼던 세린은 복받쳐올라오는 감정을 주
체할수없는지 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얼굴을 묻고있는 이불
밑에서 잠에서 깨어난 세준은 이 어찌할수없이 곤란한 상황에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
“으아아아아아앙~ 세희야아...”
환자의 얼굴은 확인도 안해보고 그저 이불에 눈물을 적셔대며 동생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는 세린 덕분에 세준은 이 상황이 대체 어떻게 되먹은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단지
잠에서 깨어난 그 자세 그대로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을 뿐.
“으아아아아앙~ 언니가 잘못했어... 언니가...”
그 때, 그녀의 울음소리가 그칠 것 같지 않자 정말 어찌해야하나 곤란함에 죽을것같던 세준
에게 한줄기 광명이 비쳤으니.
“.... 언니!”
문닫을 겨를도 없었는지 반쯤 열려있던 병실 문을 열고서 그녀가 목놓아 부르고있는 당사자
- 세희가 등장했다. 너무나 익숙하고 너무나 그리운 자신의 동생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
오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는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예쁘장한 동생이 들어왔다.
“세희야!”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자마자 세린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희에게
뛰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세희야아..! 세희야...! 우리 세희맞니? 응? 세희 맞는거지?”
갑작스레 자신을 껴안고 울어대기 시작하는 언니의 모습에 너무나 황당했던 세희는 이내 정
신을 차리곤 자신에게 눈물 콧물 흘려대며 징징거리고 있는 언니를 토닥거렸다.
“그래.. 그래.. 나 세희 맞아.. 그러니까 눈물 뚝 그쳐.. 응?”
“흐.. 흑.. 으.. 으응... 세희야.. 어디 다치진 않았어? 흑..”
“응~ 나 하나도 안다쳤어. 멀쩡해. 그러니까 고만 울고.. 뚝!”
항상 전국 모의고사 1 등을 놓쳐본적이 없고, 벌써부터 외국계 명문대학들의 컨택이 들어오
는 S 그룹의 장녀. 전형적인 엄친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냉정하고 도도한 얼음 미녀,
이세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언니의 모습에 언제나 열등감을 가지고 그녀를 피하고 있
던 세희는 지금 자신에게 달라붙어 눈물을 뿌려대는 언니의 모습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얼떨결에 그녀의 언니를 안아주고는 머리를 쓸어념거주면서도 지금 이 상황
이 왜 이렇게 됐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흐.. 흑.. 세희야.. 교통사고 당했다며? 흑..”
여전히 동생의 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훌쩍거리는 세린이 자신이 그렇게 눈물을 짜내던
이유를 묻자 그녀를 꼬옥 안아주고 있던 세희의 몸이 움찔했다.
“응? 교통사고..?”
“응... 박기사님이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얼마나 급하게 뛰어온줄알아? 훌쩍...”
교통사고의 피의자와 피해자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언니의 말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
기 시작하는 세희였다.
“아니야... 교통사고를 당한게 아니고- 내가 교통사고를 낸거지. 이 경우엔..”
“뭐? 훌쩍... 무슨말이야?”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세린이 그 말라가는 눈과 함께 훌쩍거리며 묻자 잘못한게 있는 세희
로서는 움찔- 하며 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음... 간단히 설명하자면... 여기 있는 내가 교통사고를 냈고... 저기 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어..”
동생이 너무나 태연하게도 사고의 피의자와 피해자를 정리해주는 통에 얼결에 자신도 태연
스럽게 시선을 쫓아간 세린은 훌쩍거리던 그대로 뚝- 하고 얼어버렸다.
“하... 하하... 안녕하세요?”
그 시선의 끝엔 붕대가 칭칭 감긴 오른팔을 멋쩍게도 흔들어대고 있는 한세준이 있었기 때
문이다.
“한세준씨?”
한세준은 지금 처음 겪는 이상하고도 뻔뻔스러운 상황에 무척이나 놀라있는 상태였다. 방금
전 그 소동이라고도 말못할 우스운 일-생판 모르는 여자가 잠을 깨고나니 옆에서 울고있
었다-라는 그 황당하던 상황보다 더욱더 황당한 상황에 세준은 잠시 멍.. 하니 자신을 부르
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한세준씨 맞으시죠?”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자고있는 이불위로 눈물을 흩뿌려대던 그녀가.. 자신이 보
는 앞에서 여동생에게 눈물 콧물 쏟아내며 훌쩍대던 그녀가... 지금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그녀와 동일인물인지 세준은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의심해봐야했다.
“한세준씨?”
이번 교통사고의 피의자인 이세희의 언니라고 본인을 소개한 그녀는 얼마 전까지 눈물로 얼
룩졌다는게 거짓말인양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냉기 풀풀 날리는 말투로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제가 한세준 맞습니다만?”
그 날카롭고도 냉정하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방금전 그녀의 모습과 너무나 큰 갭을 생각
하던 그는 자신이 대답을 멍- 하니 미루고 있자 그녀의 날카로운 눈에서 무언가가 튀어
나올 것 같아 얼른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날아오는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합의금은 얼마나 원하십니까?”
완벽한 포커페이스- 방금전의 그 상황을 보지 않았으면 과연 이 여자에게 표정이란게 있을
까- 의심했을만한 그녀의 냉정한 표정에 한껏 당황하던 세준은 그녀가 갑작스레 조금 민
감한 부분을 불쑥 꺼내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하... 합의금요? 아... 그게.. 저..”
“괜히 이런 일로 서로 얼굴붉히는 일 없이 깔끔하게 끝내길 원합니다. 원하시는 액수를 불
러주시면 그에 맞춰 드릴 수 있을겁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합의금 문제에 들어서자 한껏 당황하고 있는 세준과는 달리 그의 앞
에 있는 세린은 단도직입적으로 그 문제를 들추어냈다. 차가운 목소리로 여느 공장의 증기
기관마냥 정해진 말들만 딱딱 뽑아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안그래도 당황하던 세
준은잔뜩 얼어버리고 말았다.
“어느정도를 원하십니까? 물론 그쪽분의 진단이 전치 2 주라는 것도 알고, 전치 2 주의 경
우 그다지 높은 합의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알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기에 어느정도
상한선을 부르셔도 그에 맞춰드릴 용의는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감정없는 그녀의 말들. 잔뜩 얼어있던 세준은 그녀의 말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경청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교통사고를 당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전치
2 주의 진단 정도로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 라는 것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단지 그
액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것이라는 점. 그 점이 지금 한세준의 머리를 꾹- 하고 짓누르고
있었다.
“음.. 잠시만요. 너무 갑작스런 애기라...”
솔직히 합의금 이야기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던것도 아니지만, 평생에 몇 번 보지도 못한 기
묘한 분위기의 미녀가 불쑥 병실을 찾아와 그 차가운 음성으로 합의금 애기를 들먹인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것이다. 더구나 그 합의금을 목적으로 일부러 차에 뛰어든
그에게 있어서는..
‘끙.. 어떻게 하냐.. 전치 2 주면 얼마나 받을수있는거지? 아아! 인터넷에서 검색이라도 해
보고 차에 뛰어들껄...! 이런 지미...!’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복잡한 생각으로 채워넣으며 한세준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
무리 합의금을 모른다지만 그녀에게 “저기.. 전치 2 주면 얼마나오는데요?” 라고 물어볼
만한 뻔뻔함이 그에게는 없는지라 어쩔줄 몰라하며 쓸데없이 병실 내부만 두리번 두리번
눈알을 굴려댔다.
세준은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 애쓰며 애꿋은 눈알만 굴리다가.. 문득 병실문 옆
응접의자에 앉아있는 미소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 저 애는 전에 나한테 불쑥 삼천을 내밀었던..! 으흥...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고.. 동생
이 그렇게 이뻤던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음.. 이름이... 이세희라고 했던가..?’
세준은 그 곤란한 상황속에서도 문득 얼마전에 자신을 찾아와 삼천만원이라는 거액을 불쑥
내밀던 그녀가 보이자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시선을 느낀 세희 역시 자신을 향해 시선을 옮겼고.. 그렇게
둘의 시선이 교차하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갑작스레 붉어진 얼굴을 다른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뭐.. 뭐지? 음... 낮에 내가 한 소리가 너무 심했나... 끄응.. 지금 생각하니 삼천에 대한 미
련이 다시 몰려오는구나.... 하윽 아까워...’
한편 잠시 생각해보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기는 것마냥 보이던 그가 갑작스레 병실
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동생을 향해 멍하니 시선을 던지고는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자 잠시
어이가 없어진 세린은 다시 그 냉정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음... 생각은 다 끝나셨는지요? 저도 그렇게 시간이 많은 몸이 아닌지라 빨리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습니다만..”
“아... 아! 네... 넷... 새, 생각 했습니다!”
한순간 합의금에 대한 생각은 저버리고 세희에 대한 감상만을 늘어놓으며 멍히 앉아있던 세
준은 갑작스레 세린이 그 얼어붙은 목소리로 다시한번 목을 조여오자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문득 자신이 내뱉은 말을 깨달은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멍때리고 있었건만 “새, 생각했습니다!” 라니... 그 짧은 순간 세준은 자신의
무책임한 주둥이를 몇만번이나 저주하고 있었다.
“아, 그러십니까? 그럼 애기해주십시오. 그쪽분이 원하시는 합의금은 얼마인지요?”
“아..! 저,... 저기, 음... 제가 생각 해보니까... 음.. 그게 말이죠..”
곧바로 대답을 강요해오는 그녀의 물음에 응당 생각해놓아야할 답이 없던 세준은 괜스레 말
이 길어지며 어떻게든 무엇이든 생각해보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듀얼코어 시피유
마냥 빛의 속도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 뜸들이지 마시고 빨리 말씀해주십시오. 이번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신다면 합의할 의사
가 없으신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지요. 얼마를 원하시는지요?”
계속해서 뜸들여대며 우왕자왕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세준을 보며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
던 그녀는 그녀 답지않게 조금 발끈한 모습으로 극단적인 말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지막 질문이란 말에 광속으로 뇌세포를 돌려대던 세준은 화들짝 놀라
며 급히 돌아가던 뇌를 중지시켜버렸고- 그 결과 그의 입에서는 정말 터무니도 없는... 이
상황에서 절대 내뱉을 수 없는 황당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하, 합의금 대신.....! 수, 수.. 숙식 제공이 가능하고 따뜻한 근무환경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주십시오!”
세준은 훗날 이 날 내뱉었던 말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로 뻔뻔하고 발칙했던 말이라고 기
억했다.
세준이 그렇게 일생일대의 뻔뻔스런 말을 내뱉은 시간으로부터 오분가량 후. 갑작스런 그의
말에 항상 냉정해보이던 세린과 고개돌리고 힐끔힐끔 세준을 훔쳐보던 세희는 크게 당황
해하며 서로 의논해볼게 있다며 자리를 비워버렸다.
“하아... 내가 왜...”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신이 내뱉은 너무나도 창피했던 말에 병실 침대에
얼굴을 묻으며 한없이 괴로워하고있는 세준. 아무래도 극한의 상황에 치닫다보니 자신이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던 소원-숙식 제공이 가능하고 따뜻한 근무환경이 보장되는 일자리-
이 얼결에 튀어나간 모양인데.. 그는 다시 한번 가난을 저주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 하아.. 그래도 합의금을 물어보는데 거기다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니... 어휴.. 따뜻한 근
무환경? 숙식 제공? 하아...”
그렇게 이불을 둘러싸고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괴로워하고있던 세준은 다시 한번 오분전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뜬금없이 일자리를 구걸하는 자신, 그리고.. 그런 그에게 당황해버린 두 자매... 어이없고 황
당하고 뜬금없다는 표정이 복합적으로 얼굴위에 드러나던 그녀들.. 그리고 단박에 거절당할
줄 알았지만... 아니, 실제로 세린은 그 말을 듣는 즉시 거절의 말을 쏘아대려 했지만-
잠자코 뒤에서 세준을 훔쳐보던 세희가 그런 언니를 붙들고 잠시 의논하자며 밖으로 자신
의 언니를 데려가던 모습.
“.....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하냐며 뺨이라도 맞을줄 알았는데... 음.. 의논을 해본다니...?”
그 말 그대로 그 냉철하고 차가운 세린에게 뺨이라도 맞던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폭언
에 가까운 비난을 들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의논이라는 아주 따스하고도 평화적인
곳으로 결론이 다다르자 세준은 불현듯 머릿속에 빛이 스치는걸 느꼈다.
“그래! 이건 기회야! 기회라고! 상황이 어찌 이렇게 굴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 같고... 이대로 저 여자들이 날 받아준다면!!!!!! 이건 최고의 시나리오야!
좋아!”
... 계속해서 이불속에 얼굴을 처박고 괴로워하던 세준은 불현듯 이게 기회라는 생각이 들자
180도, 아니.. 580도는 돌아간 듯 갑자기 밝은 모습으로 미친사람마냥 ‘기회’ 라는 말을
혼자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혼자서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들어서게 되면 어찌 변하게 되는지 몸소
보여주고 있을때.. 딸칵- 하고 처음에 그녀들이 나갈때는 평생 다시 안열릴줄 알았던 병
실문이 다시 열리며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있는 그녀들이 들어왔다.
뭔가 석연찮은 듯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는 이세린과, 기쁜 듯 설레이는 듯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을 감추려 애쓰고있는 이세희.
잔뜩 인상이 써지려 하는걸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억제하고 있는 세린이 이것이 마지막 기회
라는 생각에 한껏 긴장하고 있는 세준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하아.. 한세준씨.”
“네.. 넵?!”
그녀답지 않게 그 이쁜 입에서 한숨을 다 내쉬며 세준을 부르는 그녀의 말에 세준은 대기업
취직 면접의 발표현장 마냥 땀맺힌 두 손을 꼬옥 마주쥐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흐음... 그쪽분이 원하시던게 ‘숙식제공이 보장되며 따뜻한 근무환경이 갖추어진 일자리’
라고 했지요?”
“넵! 맞습니다!”
이제는 완전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구직자가 되어버린 세준은 그 기운도 우렁차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 완전히 질렸다는 듯 세린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 조건을 만족하는 일자리를 생각해보고, 동생과 의논해본 결과. 당신을...”
“당신을...?”
그세 참지못하고 반문을 해버린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그 입을 열어 하던말의 끝을 맺었다.
“저희 집의 가정부로서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
잔뜩 긴장을 해서는 과연 무슨 일자리를 구해줄까 그녀의 작은 입술만 바라보던 세준은 그
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가정부’ 라는 현실감없는 말에 잠시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얼빠진 표정에 세린은 그 냉정한 포
커페이스에 살짝 짜증이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또 한번 입을 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자매가 살고있는 집에서 가정부로서 일을 하시는 것
것으로... 때에 따라 제 동생 세희의 보모로서 그녀를 책임지고 돌봐주어야 하며, 저희 집의
집안일을 도맡아 주셔야 되는겁니다. 물론 저희 집에서 방을 하나 내드리기로 했으니
숙식걱정은 없으실테고.. 이미 저희 집엔 도우미 분들이 꽤 있으시니 그리 어려운일은 아
닐겁니다.”
“아, 저, 저기.. 잠시만요.. 가정부.. 라구요?”
“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아, 아니... 그럼..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그 가정부 말씀하시는거 맞죠?”
가정부라는 뭔가 이 상황에 묘하게 안어울리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있는 단어에 무척이나 당
황해버린 세준은 다시한번 손짓을 휘휘저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가정부’ 로서의 일이 아
니길 바랬다. 그러나,
“네.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질문으로 제 말을 끊지 말아주시길 바라구요. 계속해서 말씀드리
자면.. 말씀하신 따뜻한 주거환경이야 저희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충족이 될테고.. 그쪽분
께서 중요하게 여기실 봉급으론.. 월 500 씩 드리겠으며 성과에 따라 더욱 상한선으로 맞
춰드릴수도 있습니다.”
“오.. 오... 오백이라구요?!”
세준은 고깃집에서 힘들게 불판닦고 서빙해서 10달은 해야 벌 수 있는 돈을 월급으로 준다
고 하니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백이라고? 이건 좋은 대학 나와서
웬간한 회사들어간 샐러리맨보다 나은 봉급이잖아?!
“그렇습니다. 음... 너무 적으신가요? 이정도면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 아뇨! 적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오히려 과하면 과했지 모자르지는..!”
세린의 월급이 적냐는 말에 세준은 즉각 반응하여 강한 부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상황에서 조금 더 불러서 월급을 올려불러도 담담히 받아들일 것
같은 분위기이긴 한데.. 오백이라는 세준에게 너무나 비현실적인 액수에 눈이 돌아가버
린 세준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뭐, 세준이 이 상황에서 ‘이백만 더 올려주
시겠습니까?’ 라고 말할 깡도 없음은 물론이오 지금 이 상황에 정신줄을 놓지 않은것만해
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렇다면 마음에 드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이 일자리를 받아들이신걸로 알겠습니다.
지금이 12월 10일이니.. 퇴원하시고 여러 정리를 하시려면 시간이 필요하시겠지요. 1 월
쯤에 연락주시고 찾아오십시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아..?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듯반듯하게 ‘이세린’ 이라는 이름과 연락처가 쓰여있는 작은 명함을 건네받은 세준은 감
히 이 은혜로운 사람을 쳐다보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꾸벅꾸벅 감사를 표할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세린은 차갑지만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병실을 나섰다.
“그럼.. 그 때 뵙기로 하죠. 몸 건강히 잘지내시길.”
“아이고! 감사합니다!”
세린의 감정없는 인사에도 간쓸개 다 빼다줄것처럼 환한 얼굴로 감사를 외치는 세준을 병실
문앞에 나가려고 서있던 세희가 한마디 감상을 늘어놓으며 돌아섰다.
“바보..”
“아하핫!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작게 속삭인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세준은 병실 문을 향해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가
며 계속해서 웃어댔다. 찌들고 찌들린 가난에서 탈출하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준은 전혀
의외의 방법으로 구사일생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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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핫. 항상 일주일만에 한편씩 올리는 것도 버거워 하던 저였습니다만. 이번에는 그 때를 기억하며
비축분을 만들어두자, 라고 생각했기에. 아직은 여유가 있습니다.
프롤로그 한편으로 제가 그동안 받아왔던 최고의 리플수와 추천수를 달성했기에 (...)
더더욱 글에 대한 의욕이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히로인들 설정도 거진 다 끝난 상태구요. 일단 찬란한 인생 첫 목표로 모든 히로인들을 출현시키는 것을
잡았기 때문에.. 지금도 열심히 다른 히로인들과의 썸씽을 적어대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작품을 써보지는 못했기에, 게다가 야설을 쓰는 것은 제게 상당히 생소한 장르였기에
전개의 개연성이 상당히 떨어질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딱딱 들어맞는 개연성과 전개 보다는
어쩌다가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상황이 급전개 되어버리는 우연성과 재미를 목표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아.. 잡설이 길었군요. 오늘 아침도 제 글을 클릭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찬란한 인생의 궁극적 목표인 완결을 향해 오늘도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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