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사랑 - 12부
본문
창문으로 새어들어온 눈부신 햇살에 잠이 깼다. 어느새 아침이었다. 언제 잠든지도 몰랐는데..
잠이 깨자 머리속에서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 하나 지나갔다. 지옥과도 같았던..하루가 아닌
1년같이 길게 느껴지는 어제의 그 하루 말이다. 천천히 일어나 창문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너무나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하...맑구나...맑아...내 맘과는..내 찢어질듯한 마음과는 반대로 너무나 맑구나..저렇게
햇살로만 가득한 날들이 있었것만..그런 날들이 다시 오긴 할까..내 과욕이 이리 화를 부른건가..
난 어떡해야 하는걸까..."
어제 맞은 상처가 욱신거리며 아픔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맞아서 아픈게 아닌
가슴 속 깊이 생긴 멍이 너무나 아파왔다. 다신 보고싶지 않은 내 앞에서 울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어떻게 됐을까..무얼하고 있을까...무수한 물음들이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연락할 수 조차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건 그저 기다리는 것뿐..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하루 온종일을 누워서 보냈다. 식사도 하지 않고, 먹은거라곤 오로지 진통제 그리고 술뿐이었다. 지금
의지할 수 있는 건 술밖에는 없었다.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기에..
수십번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집전화가 울리기를 기다렸지만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걱정에 머리가 깨질것만 같았다.
"연락해봐? 아냐..그러면 그녀한테 더 안 좋을꺼야..어떡해..어떡하냐고...휴.."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같은 일을 무한반복하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정말 미쳐버릴것만 같았다.
왜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걸까..형님은 뭘 어쩌고 있는건지..머릿속에 궁금한 것이 한 가득
있었지만 아무도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집 안은 술냄새..담배냄새로 자욱했다.
1년전에 끊은 담배를 다시 피고 있었다. 금연하리라 마음먹고 집 안 깊숙이 쳐박아놓은 담배 한 보루를
일주일만에 다 피워버렸다. 처음 퉁퉁 부어있던 얼굴의 상처는 어느새 다 나아있었다. 하지만 몸상태는
아주 쇠약해져버렸다. 일주일간 먹은게 술, 물뿐이니.. 도저히 밥을 넘길 수 없었으니..
어느새 눈이 떠지면 아침이었고..잠..술..담배..똑같은 지옥같은 하루가 가고 있었다. 이젠 천국같던
지옥같은 날이 모두 지나버린 것만 같았다. 눈물도 말라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몸에 가눌 힘도 없는
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그녀인가!! 아님..형님?!!"
난 맨발로 뛰쳐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눈물로 범벅이 된 수진이가 나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왜..왜 그랬어..왜..왜!!!"
"수..수진아.."
어느새 그녀의 손이 내 빰을 향해 날아왔다. 얼굴에 맞자마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여자의 손찌검에도
서 있을 수 없을정도로 몸이 쇠약해져있었기에.. 고개를 들 면목이 없었다. 한심한 내 모습을 보고 뭐라할까..
"바보..바보!!! 그래도 잘못한건 아나보네? 꼴이 이게 뭐야..뭐냐구..흐흑.."
"미안해...할 말은 그것밖에 없네.."
"휴...됐어요..얘기 좀 해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니.."
"그래도 얘기해요!! 내가 묻고 싶어서 그래.."
"알았다.."
난 쇼파에 앉아 죄인마냥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고개들어요..죄인인거 잘 아니까.."
"그래..그렇지....죽일 놈이지.."
"휴..........언니한테..얘기 들었어요.."
"희진이는!! 희진이는 어때??"
"그게 지금 궁금해요? 지금 오빠 몸상태가 어떤지 알기나 해요??"
"알어..잘 알어..어떠냐구..어떠냐구...흐흑..."
눈물이 모두 말라버린 줄 알았것만..희진이의 얘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미치겠군요...에휴..언니는 괜찮아요.."
"맞거나 그러진 않았고??"
"흐음..모르겠어요..최근엔 안 맞았은 거 같아요..제가 오늘 봤을때는 얼굴에 다 나아가는 멍자국이
조금 남아있는 거 정도...몸은 안 봐서 알 수가 없구요.."
"멍자국?? 그 날 이후 또 맞은건가..."
"저야 알 수가 없죠..뭐..때리는게 잘한건 아니지만...형부 입장에선 그러고도 남을 일이긴 하니까..."
"그래..그렇지.."
"왜...왜 그랬어요..언제부터 그런거에요.."
"처음...처음 본 순간...사랑에 빠졌어.."
"미쳤어~!! 그걸 말이라고 해요!!"
수진이의 주먹쥔 양 손이 나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미친 소리였다. 처음부터
유부녀인줄 알던 사람을 처음 본 순간 사랑했다는 말에 안 미쳤다고 하는게 비정상이겠지..
"어쩔려구..어쩔려구 그랬어요..왜..왜..대체 왜.."
"사랑이란거 한 번 빠지니까 헤어나올 수 없더라..그런 감정...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어..매일 보구 싶구..그립구..어떡하니 그럼..희진이가 없으면 미쳐버리겠는걸.."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아니..알았어..알면서도 이렇게 되지 않게 바랬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언젠간 들킬걸 알면서도 그냥 안 들키길 바라다니요!"
"그래..바보같았지...사랑에 빠져 한 치 앞을 못 봤으니.."
"됐어요..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뭐해요..일은 이미 엎질러졌는데.."
"그래...희진이한테 얘기 다 들은거 같은데..무슨 일로 찾아온거야.."
"말했잖아요..궁금한게 있어서 왔다구요.."
"뭔데..다 물어본건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앞으로라..정말 멍청한 놈이라고 욕할지 모르겠는데..솔직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연락도
안 되고, 볼 수도 없으니..답답하기만 하구.."
"어쩔 수 없잖아요..이 상황에서 어떻게 연락하구 봐요.."
"알어..근데 왠지 연락이라도 되야지..좀 안심하구..앞으로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 있을거 같아서.."
"참..답이 없는 사람들이네..언니랑 끝낼꺼에요?"
"동생입장이라면 당연히 그러길 바라지 않나?"
"아뇨..전 오빠 입장을 듣구 싶은거에요..확실히 말해줘요.."
"아니...그녀가 얼마나 힘들어질지..내가 잘 헤쳐나갈지 확신할 수 없지만..끝낼 수 없어..그렇겐
못해.."
"정말 사랑에 빠져도 지독히 빠졌군요..계획도 없구..언니 힘들게 할 지도 모르겠다면서 포기않겠다니.."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건가 보다.."
"모르겠네요~ 전 잘..그런 사랑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래.."
"휴..내 말 잘 들어요..언니랑 떠나요.."
"뭐..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들은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건지..
"지금 뭐라고 한거야??"
"못 들었어요? 잘 들으라고 했잖아요..언니랑 떠나라구요!"
"어떻게? 아니..그보다 왜?? 너가 왜 우리를.."
"언니의 부탁이에요..나도 솔직히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정말 나중에 후회할 거 같은
생각이 지금도 들면서도..이런 말 하는건 언니가 간절히 부탁했기때문이에요.."
"희..희진이가??"
"네~ 언니가 형부 몰래 저한테 한 얘기에요.."
"그래도..너가 굳이 그 부탁을 안 들어줘도 상관없을텐데?"
"흠..이런 얘기 굳이 할 필요없을거 같은데..궁금하다면 해주죠..오빠는 언니가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그래~ 처음엔 그랬지..나중에 아닌걸 알았지만~"
"그래요~ 우리 자매는 원래 성격이 둘 다 상당히 활발해요 아니..언니가 저보다 더 활발한 편이었죠..
결혼하기 전까진..하지만 형부랑 결혼하면서 성격이 서서히 변했어요..연애때는 다정한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보니 형부는 무뚝뚝하고 너무 일에 열심인 사람이었어요..처음엔 그것때문에 사소한 다툼도
있었지만, 결국 언니가 수긍을 하면서 바꾸기로 했죠~ 물론 형부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사회적 평판도
좋고, 하지만 너무 권위적이었고..언니가 현모양처같은 사람이 되길 바랬죠..그래서 언니의 직장도
반 강제적으로 형부가 사표를 내서 그만두게 했죠.."
"그렇구나..그래서 많이 답답해했단 얘기인가?"
"그렇죠..겉으로 보기엔 아주 행복한 부부였지만..내면의 문제가 꽤나 쌓여있던 부부였던거죠.."
"그랬구나..그랬어.."
"휴..내가 이런 얘기까지 하는건..언니가 오빠를 많이 사랑하나봐요...정말 심각할 정도로..저도
부부생활에 그 정도 문제까지 있을지는 몰랐는데, 더 이상 참기힘든가봐요..더군다나 오빠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으니.."
"휴...난 바보같이 가만 있기만 한데..희진이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래요~ 그러니까 바보같이 그러지 말고..기운도 좀 차리고!! 정신차려요..! 나도 오빠랑 언니
돕는 거 맘에 들지않지만..그런 바보같은 모습은 더욱 더 싫다구요.."
"알았어..근데 어떻게??"
"지금 준비해서 나가있어요..그럼 내가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언니한테 바래다 달라 그러면서
데리고 나올테니.."
"그래 알았어!!"
"가볼께요..잠깐 살 꺼 있어서 나갔다온다 그랬는데..저까지 형부가 오해하겠어요.."
"그래..어서가봐.."
수진이가 나가고 난 잠시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건지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분명 나한테 좋은 일인거 같은데 아무것도 섭취한게 없어서 그런지 머리가 빨리 빨리
돌아가지 않았다. 난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위해 거울을 봤다. 일주일만에 처음 보는
거울이었다. 내 모습은 몰라보게 초췌했다.
"이런 모습이었구나..하아..수진이가 날 얼마나 한심하게 봤을지.."
샤워기로 찬 물을 맞으며 일단 정신부터 차려야 할 거 같았다. 머리회전이 빨리 빨리 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뭘 좀 먹고 기운을 차려야 할 듯 싶었다. 먹을꺼라곤
유통기한 지난 음료수와 빵들뿐이었다.
"젠장할..먹을게 이리 없나.."
서랍을 뒤적거리니 콘푸로스트가 나왔다. 냉장고를 다시 여니 다행히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우유가 하나 남아있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군.."
콘푸로스트를 우유에 말아 한 입 먹으니 속이 쓰려왔다. 일주일만에 처음 먹는게 이런 음식이라니
속이 쓰릴만도 했다. 하지만 일단 기운을 차려야했기에 억지로 입에 쑤셔넣다시피해서 끝까지 먹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나와 난 짐들을 챙겨나갔다. 돈..통장..옷가지 등등 최대한 필요한 물건들만
가방에 집어넣었다. 짐들을 모두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와 그녀의 집을 한 번 쳐다보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아무일 없이 잘 나와야할텐데.."
난 차에 시동을 걸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 근처의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차에 타는 그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차에 앉아 수십번 시계만을 쳐다보며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분명 한 시간이면 나온다고 했는데 그 한 시간이 이리 지루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한 시간이 마치 일년같이 느껴졌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수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에요??"
"아파트 밖에 편의점에 세워놨어"
"알았어요"
전화가 끊기고 잠시 후 멀리서 걸어오는 희진이와 그녀가 보였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그녀가 내 눈에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난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뛰어가 그녀를 안았다.
"희진아.."
"세민씨..흐흑.."
"뭐하는거야~!! 둘 다...어서 가라구!"
"미안해..수진아..정말 수고했어..이 은혜 평생 안 잊을께.."
"에휴..난 몰라요~!! 이게 당최 잘 하는 짓인지~"
"고마워..도와줘서.."
"됐거든~ 언니 몸관리나 잘해~ 오빠 좀 잘 챙기고..폐인이 다 됐두만~"
"알았어.."
그렇게 수진이가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몰골이 이게 뭐야..아무 것도 안 먹었어?"
"어...그렇게 됐어.."
"바보..흐흑..왜 그랬어..왜...흐흐흑..."
"그만 울어 괜찮아...자 이제 우리도 가야지.."
"으응..알았어...어디로 가지.."
"일단 아무데나 가자..아무데나.."
그렇게 차의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무작정 차를 몰아갔고, 차는 어느새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있었다. 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만이 있었다. 그냥 아무곳이라도 좋으니
아무도 우릴 찾지 않고, 알아볼 수 없는 곳으로 가야한다는 그런 생각만이...
ps. 거의 막바지로 갈 수록 섹스씬이 거의 없고 소프트하게 갈 거 같네요~~ 양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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