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골때리는 영민이 - 9부

본문

술집 뒤로 펼쳐져 있는 모텔의 숫자는 한 두개가 아니었지만, 영민은 모텔을 하나 하나 들어가서 혁민과 하린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며 수소문했다. 하나.. 둘.. 셋.. 모텔을 하나씩 들어갔다 나올때마다 지나가는 시간들은 


영민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어디있니..어디야...혁민이 이 새끼..!!! 하린이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넌 죽는다!"




그 때 영민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은누나였다.




"누나!! 하린 누나한테 연락 왔어?"




"아니.. 너 아직 못 찾았지?"




"어...미치겠다 정말!!"




"여기 이름이..리치모텔이라고..근처에 보이냐?"




"리치모텔??"




"어~ 핑크모텔 바로 옆이라는데.."




"핑크모텔이면..아까 지나온? 아!! 알겠다!! 고마워! 근데 어떻게 안 거야?"




"나 하린이 폰이랑 친구찾기 되어 있어서 위치추적되거든..얼른 가봐라..갔다 와서 얘기해.."




"어..고마워!!"




영민은 정신없이 지은누나가 말해준 모텔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핑크모텔은 아까 분명히 지나온 모텔이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분명히 영민이 기억하고 있었는데..그렇다면 리치모텔도 분명히 들어왔다 나왔단 얘기인데..


영민은 찝찝한 마음으로 리치모텔을 향해 뛰어갔다. 리치모텔은 핑크모텔의 바로 옆 건물이었다. 영민은 아까


들어갔다 나온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개새끼..그럼 날 속인건가..!"




영민이 모텔 안으로 들어가 카운터의 벨을 누르자 작은 창문이 열리고 남자 주인은 영민을 바라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또 왔네..이런 표정이였다.




"아저씨..이런 여자 이 모텔 들어왔죠?"




영민은 휴대폰의 메인화면에 있는 하린의 사진을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휴~ 모르겠대도~ 하루에 손님이 몇 명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아저씨의 대답은 분명 아까와도 같은 대답이였다. 그렇게 싸지도 않고, 좋아보이지도 않는 모텔...그런데다 


평일인데 손님이 많이 와서 모르겠다니..그것도 얼마 전에 받은 손님을 모른다니..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


그런데 눈 앞에 상황에 미쳐 그런 사소한 거 하나 의심을 못하다니.. 영민은 짜증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저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 들어왔잖아요!! 왜 안 와!! 왔다고!! 경찰에 신고할까? 신고하면 말할꺼냐구요!!!"




갑자기 소리를 마구 질러대는 영민을 보고 아저씨는 깜짝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아..아니..그게 진짜..기억이 잘...진정해 왜 그래..학생~ 응? 이런데서 사고치지 말고~~"




"한 번만 더 묻습니다...방문 다 발로 걷어차면서 확인하고 다니기 전에 말하시죠.."




"아휴~ 알았어...몰라 304호인가...그럴꺼야"




영민은 엘리베이터를 더 이상 여유가 없다 판단하고 계단으로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갔다. 미친듯이 쏟아지는 


땀으로 영민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있었지만 그런거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 영민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린의 안위였다. 3층에 도착해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304호의 문이 보였다. 영민은 아저씨에게 받은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낯익은 하린의 신발이 보였다. 영민은


하린의 신발을 보고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개새끼...무슨 일 있으면 넌 죽는다..!!!!!"




영민은 신발도 벗지 않은 체로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방에서 뿜어나오는 연한 조명 위에 한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여자 위에 올라가 있었다. 여자는 팬티 만을 입은체로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고, 남자는 그 여자의 한


쪽 가슴을 쪽쪽 소리가 나게 빨아대며 한 쪽 가슴을 우악스럽게 주무르고 있었다. 바로 하린과 혁민이였다.


영민에겐 이제 더 이상 참아줄만한 인내심이 존재하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영민은 방 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혁민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혁민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갑작스런 


영민의 공격에 혁민은 하린의 몸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굴렀다. 잔뜩 술이 취해 공허한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는


하린의 눈빛.. 영민은 숨이 턱턱 막혀오며 가슴을 누가 무겁게 짖누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픔은 이내 혁민에 대한 분노로 변했다. 영민은 혁민을 깔아뭉개고 혁민의 얼굴로 마구 주먹을 날려댔다.




"개새끼!! 씨발놈!! 이 양아치 새끼야!!! 니가 인간이냐 인간이냐고!!!"




"커흑~ 영민아~ 그게~ 허윽~ 잘못했다~ 영민아~ 허윽"




"잘못해? 미친 새끼!! 넌 오늘 죽을 줄 알어"




영민이 미친듯이 혁민의 얼굴로 주먹세례를 퍼붓고 있을 때 하린이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 한 마디에 혁민을 때리던 영민의 손이 멈추고, 방 안엔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맞고 있던 혁민도, 때리는


영민도 그 상황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하린은 서둘러 옷을 입고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민이


재빨리 하린을 향해 따라 나가려 할 때 혁민이 영민의 팔을 붙들었다.




"뭐해!! 놔 이 새끼야!"




"미안하다...정말.."




"미안? 그게 할 소리냐??!! 씨발놈..넌 다신 내 얼굴 볼 생각 하지마라.."




영민은 혁민이 잡은 손을 거칠게 뿌려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린은 벌써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는지 


복도에 보이지 않았다. 영민은 정신없이 계단으로 뛰어내려가 아저씨에게 열쇠를 주며 하린의 행방을 물었다.




"방금 여자 한 명 나갔죠?"




"어..좀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가던데.."




"알았어요!"




영민이 모텔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하린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 하린이 또 다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말 최악으로 꼬여 버리는 상황... 영민에게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하린에게 수 차례 전화를 했지만, 이젠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건 지은누나에게 


가는 거 밖에 없었기에 영민은 택시를 타고 다시 원룸으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 속에 자신의 


방에 들어가 보았지만 하린은 없었다. 영민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은누나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지은누나의 잔뜩 화가 난 얼굴이 보였다. 




"휴...들어가도 돼?"




"들어와.."




영민이 들어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지은누나의 손이 영민의 뺨을 짝 소리가 나게 때리고 


지나갔다. 영민은 돌아가버린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도 않고, 묵묵히 안으로 들어와 지은누나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영민의 두 눈에선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흐흑..미안해..누나..내가 병신이라서...바보 같은 새끼라서..흐흑.."




"하린이 어딨어..! 어딨냐고!!"




"몰라..모르겠어..내가 묻고 싶어..하린누나..어디 있는지 내가..흐흐흑.."




"바보!! 바보!! 너같은 놈한테 하린이를 맡기는 게 아니었어!! 이 병신새끼!!"




지은누나의 주먹과 발차기가 정신없이 날아와 영민의 온 몸에 꽂히고 있었지만, 영민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이렇게 맞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마음이..너무나 아팠다. 어디선가 너무 아파하고 있을 하린때문에


영민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내 지은누나의 때리는 손이 멈추더니 주저앉아 영민을 붙들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지은과 영민은 한참동안 서로를 안고 울었다. 


둘 모두에게 너무 소중한 하린이었기에.. 




"괜찮겠지...으응? 누나..흐흑.."




"그래..별 일 안 할꺼야..생각만큼 그렇게 여리고 바보같은 애는 아니니까.."




"그래..그렇겠지.."




"곧..돌아올꺼야..곧...그럴꺼야.."








그 날 이후 하린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일주일이 되고...한 달이 되고.. 기말고사가 다 


치고 어느새 한 한기가 모두 끝나가고 있는 시간동안 하린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영민은 알바까지 그만두고


하린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하린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지은도 영민을 도와 하린 주변의 사람들에게


연락해보았지만, 아무도 알 지 못했다. 심지어는 부모님조차도.. 이제 더 이상 하린의 행방을 알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다 해 보았기에 별 다른 방법도 없었다. 영민의 학교생활은 하린이 없어진 이후부터 완전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아르바이트는 하린을 찾는다고 일찌감치 그만둬버렸고, 과생활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이렇게 


꼬여버리게 만든 사람들...혁민..민희선배..민영.. 그리고 그 외에도 아무도 보고싶지 않았다. 하린이 없어지고


한 달이 지나자 영민은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술로 밤을 지새웠다. 그런 영민의 모습에 지은이 몇 번이나 


정신차리라고 말을 했지만, 영민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다시 하린이 돌아오기 전까진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영민이였다. 당연히 기말고사는 엉망진창으로 쳐서 1학기 성적은 엉망진창으로 나와버렸고, 방학이


되자 영민은 아예 원룸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끔 나올 때는 편의점에 담배와 술을 나올 때 뿐이였다.


담배를 거의 안 피우던 영민은 어느새 거의 꼴초수준으로 변해있었다. 담배와 술에 찌들어버린 영민의 모습은


한 마디로 폐인이였다.




"야!! 언제까지 이럴껀데.."




지은은 오늘도 밥을 안 먹는다는 영민은 억지로 끌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싫어..안 먹어..안 먹는다구.."




"애니? 애야?? 너 열심히 한다며..!! 부모님한테 자랑스런 아들 되겠다며? 이게 자랑스러운 모습이니?"




"몰라..몰라..흐흑..힘들어...미쳐버릴 거 같다구.."




"누가 모르니...알어..힘든거 잘 안다구!! 그래도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휴...모르겠어..의욕이 생기질 않어..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구.."




"그럼 차라리 군대를 가든가.."




"군대?"




"그래..거기 가서 몸도 마음도 좀 식히라구.."




"그래..나쁘지 않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건성으로 하는 소리야.."




"진심으로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그럼 진짜 그렇게 해..니 지금 상태로 봐서는 얼른 휴학하고 가는게 낫겠다..."




"그래..."




그렇게해서 영민은 얼떨결에 며칠 후에 입영지원서를 내버렸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지은누나의 말대로 


지금의 영민의 상태는 최악이었기에 군대를 가서 정신을 차리는게 나쁠 거 같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니 하린이


없어진지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으니..언제 하린이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입영지원서를 내고 얼마 후


9월 3일날 입소하라는 영장이 영민에게 날아왔다. 아직 두 달이 넘게 남은 시간들이라 그런지 군대에 간다는


실감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군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뿐... 


영민은 지독히 길고..덥고 서글픈 여름이 어서 가기를 기다렸다. 남들은 방학이라서 어학연수간다.. 놀러간다


재미있고 보람찬 방학을 보내고 있었지만, 영민의 여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영민은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나오는 길에 혁민과 마주쳤다.




"영민아..군대 간다며.."




"....."




"휴...알았어..그냥 갈께..잘 갔다와라.."




"야.."




"어?..말해.."




"너..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하냐.."




"어어...내가 미쳤나보다..정말 미안하다..아무 소용없는 말인거 안다마는.."




"됐다..학교 잘 다녀라.."




"그래..."




방학이 끝나가는 여름 오후의 캠퍼스는 너무나 한적했다. 조용한 캠퍼스 길 위로 눈부시게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고,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매미들은 더욱 시끄럽게 우렁차게 울어대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뭐가 그렇게들 좋은지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을 보며 영민의 마음엔 공허감만 더해갔다.




"그래..갔다오면 다 괜찮아지겠지...모두 잊을 수 있겠지..."




죽어도 하린을 잊을 수 없을 거란걸 잘 알고 있었지만..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하린의 마음은 영민에게서


멀리 떨어져 버린걸...






입영하는 날.. 지은누나는 수업도 빠진체로 영민을 의정부보충대까지 배웅해주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연변장으로 오자 사람들은 모두 같이온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부둥켜 안고 우는 커플들..


눈물을 글썽이는 부모님을 달래는 아들들...그리고 친구들끼리 같이 와서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며 이 순간...영민은 하린이 더욱 그리웠다. 하린이 이 자리에 같이 왔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아직..연락 없지.."




"으응...이제 그만 잊어..하린이.."




"알어..그냥 물어봤어..혹시나 연락 있나 싶어서"




"그래..이제 좀 실감나니?"




"군대가는거? 몰라..아직은..;;그냥 머리가 좀 짧다는 거 빼고는.."




"그래..2년 후딱 갈꺼야..몸 건강히 생활 잘 하고.."




"그래..고마워.."




"부모님한테 얘기했어?"




"어제..완전 혼났지..ㅋㅋ 어머니는 펑펑 우시고.."




"으구..미리 좀 얘기하지.."




"그냥..얘기 하기 싫어서"




"그래~ 그래도 가기 전에 얘기한건 잘했네..말도 안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긴 있더라마는.."




그 때 확성기로 한 남성의 모두 모이라는 안내멘트가 나왔고, 모두들 같은 곳으로 뛰어갔다. 영민은 


지은누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말이 나오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누나! 하린누나 연락 오면 꼭 얘기해줘!! 꼭!!"




"으응...그래.."








보충대에서의 정신없는 3일 동안의 시간을 보내고 영민은 20사단 훈련소로 가서 훈련을 받았다. 6주간의 너무나


힘든 훈련은 영민의 육체를 지치게 했지만, 영민의 정신상태는 제대로 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여전히 하린에


대한 그리움.. 보고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지만, 전처럼 불안하지도.. 의욕이 없지도 않았다. 영민이 운이 


좋은지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영민은 사단 사령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같은 


훈련병이나 조교들은 완전 군번이 풀렸다고 얘기해서 대충 좋은 보직으로 가는구나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영민은 사단사령부의 정보부에 배치가 되었다. 40대가 다 되어가는 남자소령이 정보장교였고, 그 밑의 20대 


초반의 여자 하사관과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영민은 정보계원으로써 주로 컴퓨터의 보안을 다루거나, 보안취급인가, 군대반입 책이나 CD등 보안성 검토필 같은 일들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일도 서투르고 해서 많이 혼이 


났지만 하다보니 점점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새 군대를 온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고, 영민은 


그제서야 자신이 군대에 온 뒤 한 번도 외부의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영민은 저녁을 먹고 공중전화카드를 사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별 말씀 하시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진하게 베어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선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한동안 울음소리만이 들렸다. 영민은 자신이 부모님에게 너무 걱정을 끼쳐드리고 군대를 온 거 같아


너무 죄송했지만 이미 와 버린 일을 지금에 와서 어쩔 수 없었다. 영민은 울음섞인 어머니의 목소리에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전화를 겨우 끝까지 받고는 끊었다. 전화카드를 가지고 가려다 문득 자신을 


마지막까지 배웅해준 지은누나가 생각나 영민은 다시 전화카드를 넣고 지은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지은누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은누나?"




"누구..영민이니??"




"어어..기억하네..하핫.."




"그럼!! 내가 니 목소리를 그새 까먹었을까봐~~ 서운한걸..겨우 그 정도로 생각했단 말야?"




"아니...워낙 연락 안 한지 오래 됐으니까.."




"그래두!! 몸은 건강하고 잘 지내지?"




"어~ 와 보니까 군대도 나름 나쁘지 않네~"




"그래??ㅋㅋ 그럼 아예 거기서 눌러 살지 그래?"




"하하;; 그건 좀.."




"농담이야~ 그래 건강하다니 다행이네~ 근데 왠 연락을 이렇게 늦게 해?"




"아~ 부대 배정받고 이제 한 달 지났어..일하는거 적응한다고 정신도 없고 해서..그렇게 됐네.."




"그래..영민아.."




"어??"




"흐음..."




"뭔데?? 왜 그렇게 뜸을 들여.."




"하린이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어"




"하린누나? 만난거야? 그런거야?!!"




영민은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만에 듣는 하린의 소식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구..그냥 편지가 왔어.."




"뭐라고 그러는데?? 어?"




"나한테 온 건 별 내용 없고..너한테 쓴게 있는데 주소 좀 불러줘..보내줄께"




"어..알았어!!"




영민은 주소를 불러주고 계속해서 하린에게 더 연락이 없었냐고 다그쳐 물었다. 이제 괜찮아진줄 알았는데..


하린의 이름만으르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다니..




"정말 다른 연락 없었어? 전화도 없고??"




"그렇대두.."




"누나 편지에 정말 아무 내용 없었어????"




"그으래에..."




영민은 왠지 하린이 지은에게 다른 말도 했을 거 같았지만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지은누나와의


전화를 끊고 영민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 하린의 소식인가..


영민은 그 날 이후 하루 하루 지은누나에게서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루 하루가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너무도 답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은누나와의 전화통화 이후 3일째 되던 날 드디어 기다리던 편지가 왔고,


영민은 편지를 들고 막사 밖의 벤치로 뛰어나가 두근두근 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편지를 뜯었다. 첫 장엔


지은누나의 간단한 인사말과 약간의 편지글이 두 번째 편지가 하린누나의 편지였다. 영민은 떨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편지를 조금씩 읽어나갔다.




"영민에게..




그 날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많이 놀랐지? 미안해.. 하지만 그 당시에 나에겐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어..




영민아..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나니? 참 순진해 보였던 니 모습.. 그리고 지은이와 내 앞에서 수줍어하며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니 모습이 난 참 좋았어.. 다른 남자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를 조금씩 좋아하게 됐나봐.. 그런데 참..내가 소극적이고 그래서 마음을 잘 고백하지 못하겠더라구.. 




그래서 처음엔..술기운에 육체적으로 너에게 다가갈려고 했어..내가 미쳤던건지..술기운인건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일이고 부끄러워.. 너가 날 도대체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리고 며칠 뒤에 난 지은이에게 고백했어..널 좋아한다구...그래서 용기내서 너에게 고백을 하려고 갔는데




너와 여자선배의 그 일을 보게 된거야..정말 너무나 충격적이었어.. 넌 다를꺼라 생각했는데..




솔직히 실망이 너무 컸어.. 정말 넌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그런데 그 날 날 붙잡으려고 온 니 모습을




보니까 이상하게 다 용서가 됐어..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구.. 그냥 너의 진심을 알 것 같았어..




너도 날 사랑한다는 생각에...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니 모습을 보며 너무 행복했거든..




정말 너랑 사귀고 동안의 시간은 너무나 행복했어.. 항상 나에게 잘 대해주는 너의 모습..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너의 모습..참 좋았어.. 




어쩌면 우리에게 그 날의 일이 없었다면 우린 아직 사귀고 있겠지.. 지은이에게 너와의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어..아주 나중에.. 이미 넌 군대를 가고 난 이후였지.. 사실 너에 대해 묻고 싶지




않았어.. 그때까진 너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찼으니까.. 그런데 짐을 정리하려고 간 날에 지은이가 얘기를




해주더라고..너가 군대갔다고..그리고 그 날의 일들.. 




바보같은 나의 오해였지.. 하지만 이제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거




같으니까.. 하지만 영민아.. 나 아직 너 많이 사랑해.. 그런데 기다려달란 말은 안 할께.. 그냥 내 마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영민아 나 공부도 더 하구 싶구.. 여기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잠시동안 떠나 있으려구 해




잠시가 될지..영영 안 돌아오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가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너와 나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미안하구... 많이 사랑해..






마지막쪽 글씨는 하린의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끝까지 눈물을 참던 영민은 결국 편지를 다 읽고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편지를 붙들고 울었다.




"흐흐흑...하린아...하린아..미안해..내가 내가 바보라서...사랑해...사랑해..."




영민의 애잔한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고백은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영민은 한참을 울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은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




"울었니? 휴...편지 받았나 보네..."




"하린이..어디로 간거야.."




"독일로... 거기 외삼촌이 계시거든.."




"왜...왜 그 날 전화 했을 때 말하지 않았어.."




"미안해..하지만 이미 떠나고 난 후였어..그리고 편지를 받고 말해주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래..그랬구나..알았어..."




"영민아...하린인...널.."




"알어..사랑해...연락오면 꼭 전해줘..사랑한다고..언제까지고 기다려주겠다고.."




"으응..."




"그만 끊을께.."




영민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흐느꼈다. 그렇게 울었것만 영민의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


영민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ps. 이번 주말은 약속이 없어 집에서 쉬면서 글을 좀 쓸 수 있겠네요...ㅎㅎ 자유게시판에 글을 두 개 썼는데




보시고 의견 좀 남겨주세요^^ 나가실 때 추천, 댓글 꼭 해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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