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 21부
본문
21부. 불타오르는 명검(名劍)
주의!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팀명, 그리고 모든 일들은 소설로서 가공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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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열릴 것 같지 않던 요르단 골 문을 열어 재친 것 치고는 영후나 노감독은 덤덤함 그 자체였기에
남일은 더욱 황당한 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정도 쯤은 당연한 결과였다,라는 듯한 표정이라니…
“저렇게 할 거란 거, 정말 알고 계셨단 말입니까?”
남일의 꿈결 같은 표정을 슬쩍 곁눈질하던 노감독은 마치 제 자식 자랑이라도 하려는 아버지의 표정으로
영후에 관한 과거 일화를 이야기 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고등학생 때였을 걸세.”
동점이 되고 난 뒤 더욱더 치열해질 게 분명한 시합은 이제 별반 중요하지 않다는 듯,
잠시 노감독은 그때를 회상하며 조금은 웃음을 지었던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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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한 남자가 스피드 건을 가방에 챙겨 넣으며 자동차 조수석에 올라탔고,
운전석에서 기다리던 또 다른 남자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묻기 시작했다.
“어때? 여기도 그냥 그렇던가?”
“글쎄, 구속이 좀 잘 나오는 왼손 투수가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영 찾기가 힘드네.”
지금 대화를 나누는 두 남자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팀의 스카우터들은 일년 내내 전국의 고등학교를
이 잡 듯 뒤져가며 즉시 전력감의, 혹은 잠재성이 보이는 선수들을 찾느라 늘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특히나 이 두 사람이 몸담고 있던 팀의 지난해 성적이 바닥을 기었던 관계로 드래프트를 앞두고
꼭 새로운 선수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에 어디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서로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똑같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 지역은 거의 다 본 거 같지?”
“뭐, 그런 거 같아. 그닥 유명한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도 없고…”
“그럼 이만 올라갈까?”
“가기 전에 어디 가서 뜨끈한 국밥에 소주나 한잔 하자고~”
“그럽시다~”
어둡고 조용한 동네를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그들의 눈에 자그마한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봐 김형, 저기 저거 학교 맞지? 지도 좀 줘봐.”
“여기. 학교 맞긴 한 거 같은데, 야구부가 있을 거 같진 않지 않어?”
“거참 딱하네. 김형, 저기 저거 안보여?”
“어라? 라이트잖아?”
“이런 늦은 시각에 운동장에 라이트를 켜놓는 학교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그것도 그렇구만.”
“우리 마지막으로 저기만 들렀다가 올라갑시다. 응?”
“오케이~”
결국 두 스카우터들을 실은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조용히 교문을 통과한 후에 멈춰 섰지만,
그들이 원했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장면이 보여지고 있었기에 두 사람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야구가 아니라 축구였잖아 나 원 참.”
“그러게. 오늘은 뭐가 씌워도 단단히 씌운 날인가보네. 차 돌립시다.”
“그럽… 어…? 잠깐…”
“왜요?”
“아니… 저 녀석 볼 차는 것 좀 봐봐…”
“사람 참, 지금 저런 걸 지켜 볼… 어?”
순간적으로 두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한 소년의 멈추지 않는 슈팅 연습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겨우 정신을 차린 운전석의 남자가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수석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김형, 스피드 건… 스피드 건 좀, 빨리!”
“어? 어어.”
겨우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차 속에서 쥐 죽은 듯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그저 소년의 다음 슈팅이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지켜본 것 만으로도 이미 수십 번은 넘게 찼던 소년이었지만,
또다시 한결 같은 폼으로 달려나간 소년은 오른발을 고정시키자마자 왼발로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소년의 발을 떠난 축구공은 그야말로 포물선이란 걸 모른다는 듯 쭉 뻗어나가 골망을 흔들었다.
“정말 깨끗한 폼이구먼. 야구 선수들이 저런 걸 배워야 하는 데…
몇 십 번을 차도 폼의 변화가 없고, 부드러운 데다가, 순간적으로 힘을 실을 줄 아는군.”
“마… 맙소사…”
“왜? 얼마나 나왔는데?”
스피드 건을 들고 있던 남자는 말없이 옆의 남자에게 건네줬고,
스피드 건을 건네 받은 남자 또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굳게 입을 다문 이유를 스피드 건만이 정직하게 표시하고 있었을 뿐.
‘14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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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141? 그것도 고등학생때? 영후가요?”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이야기 하고 있는 노감독 덕분에 남일은
‘지금 이 영감탱이가 소설쓰고 있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뻔도 했지만,
방금 전 영후의 벼락같은 슈팅을 보고 난 뒤라 그저 마른침만 꿀꺽 삼킬 뿐이었다.
“그래 한동안 그 스카우터들이 영후를 야구선수로 전향시켜주면 안되겠냐고 무던히도 찾아왔었지.”
남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야구에서도 분명 하체의 튼튼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건 같은 운동선수로서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고등학생 때의 하체가 그 정도였다는 건 더 이상 조련이 필요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고,
가뜩이나 고교대회 덕분에 혹사당하고 있는 투수들의 망가진 어깨를 고려했을 때,
영후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재목이었을 테니까.
‘하마터면,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엄청난 선수 하나를 잃어버릴 뻔 했었군.’
부상으로 인해 그 오랜 시간을 공백으로 둘 수 밖에 없었던 남자는
기어이 피나는 재활훈련에 매달려 오른발을 부활시켰고, 결국은 꿈을 이뤄내고 있었기에,
공을 쫓으며 그야말로 신이 난 듯 뛰어다니는 꼬마아이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가대표 선수’ 영후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남일은 ‘난 저 남자만큼 축구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하는 반문을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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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은 영후의 슛이 성공되자마자, 곧바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실측을 할 순 없었지만, 분명 영후의 발을 떠난 공의 속도는 흡사 일류 투수가 던지는
패스트 볼의 속도에 맞먹는 속도였기 때문이었다.
‘로베르토 카를로스의 150km인가…’
확실히 기자 하기 편한 세상인건 틀림없었다.
벌써 10년이 넘은 영상을 인터넷 웹사이트에선 단 몇 초 만에 찾아내어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하연의 기억은 정확했고, 하연은 잠시 텔레비전을 뒤로 한 채 그 영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때는 1997년 6월 프랑스에서 열린 4개국 초청 프레월드컵 프랑스전 이었다.
로베르토 카를로스 (Roberto Carlos DA SILVA . 브라질)는 상대진영 한 가운데에서 얻은 프리킥을
왼발 아웃사이드로 강하게 찼고, 이내 공은 마치 예술당구처럼 벽을 이루고 있던 수비진을 휘돌아
골대에 꽂히며 수비벽의 반대편에서 마음 놓고 있던 골키퍼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버렸다.
‘직구와 변화구라… 훗, 야구기자 녀석들이 이 경기를 보고는 있으려나?’
하연은 계속해서 리플레이되고 있는 카를로스의 프리킥과 영후의 프리킥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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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대표 팀은 영후의 골 덕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평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지만,
유독 한 사람만은 더더욱 조급해하기 시작했다.
삐~익!
“뭐야! 뭐가 오프사이드란 거야? 동일 선상이었다고!”
근명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호주의 마크 쉴드 주심에게 어필을 하자 주심은 단호한 표정으로 다가와
근명에게 주의를 주었고, 괜한 카드를 받을까 근명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까지 안정시킬 순 없었다.
‘젠장, 난 지금 골이 필요하다고!!’
누가 보더라도 안달 난 근명에게 영후는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를 건넸다.
“좋은 침투였다. 오프사이드라고 쫄 거 없어. 계속 시도해줘. 패스 보낼 테니까.”
“쳇! 한 골 넣었다고 우쭐대는 겁니까? 두고 보시지, 내가 더 많이 넣을 테니까!”
심판에게 뺨 맞고 영후에게 화풀이를 하며 근명은 터덜터덜 다른 쪽으로 사라졌고,
영후는 그런 근명의 열정에 빙긋 웃어주며 전반과 달리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앙 허리라인 쪽에 합류했다.
드디어 동점이 되자 자신들의 왕자가 보는 앞에서 만큼은 꼭 이겨야 하는 부담감이 작용한 요르단 이었기에
전반과 달리 공격의 빈도가 조금씩 늘고 있었고, 반대로 대한민국의 입장에선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의 생각과는 달리 영후의 마음엔 한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지나친 추측일까…?’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지나친 의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한심한 상상 이었기에 이내 떨쳐버리고 경기에 임하려고 하는 찰나,
“영후! 볼!”
그저 잠깐이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그러나 경기장에선 분위기를 순식간에 뒤바꿔 놓을 만큼의
필요충분시간이었기에 지성은 당연히 받아줄 줄 알았던 영후에게로 공을 보내고서 "아차!" 했다.
영후는 생각에 잠겨 지성의 패스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에게로 돌진하는
바와드를 깨닫고서야 급하게 리턴 패스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와드는 애초에 공 따위엔 관심 없었다는 듯, 발을 높이 들어 영후의 발목을 노리며 태클을 들어왔고,
패스는 이뤄냈지만 미처 태클을 피하지 못한 영후는 자신의 발목을 부러뜨리려는 듯한
스터드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느끼며 ‘악!’ 소리조차 지를 사이도 없이 그라운드에 나동그라졌다.
순간, 태클을 한 바와드 조차, 생각보다 강한 강도의 반칙이라 생각하고 멈칫하고 있었고,
요르단 선수들과 대한민국 선수들 모두는 제자리에 선 채 걱정스런 눈빛으로 영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 마크 쉴드 주심만은 그저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영후에게 일어나라는 제스쳐를 하고는
이내 공의 흐름을 좇아 이동하려 했다.
“뭐… 뭐야! 심판 지금 뭐 하는 거야!!!”
근명은 어이가 없어서 경기가 속개된 것과 상관없이 주심의 앞길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지만,
주심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둥글게 만들며, 이른바 ‘공을 향한 정당한 태클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었고,
정당한 태클이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파 보이던 영후는 여전히 그라운드에 쓰러져 발목을 부여잡은 채
일어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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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빠… 감독님이… 우리 감독님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조차 잇지 못하는 혜미와 마찬가지로 규식도 영후의 상태가 걱정스럽긴 매한가지였다.
분명, 공이 영후의 발에서 떠난 후에 들어온 악의적인 태클이었다.
의도가 다분하니만큼, 영후의 발목에 가해진 충격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 이상일 것이었다.
하지만, 규식이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 상황에서의 판정이었다.
‘그저, 순간적인 실수였기를…’
규식은 자신도 모르게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묵묵히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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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분명 잘못된 판정이야… 저건…”
수림은 그 장면에서 순간 스포츠에서 가장 공정해야 할 심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했었던 기초 육상종목들은 심판들이 개입할 여지가 가장 적은 운동이기도 했었기에
지금까지는 그저 심판이란, 개개인 선수들의 기록을 두 눈으로 지켜봐 주고,
인정해주는 보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그랬기에, 지금까지도 심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수림은 자신도 모르게 분함을 삭히지 못하며 부들부들 온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스포츠라는, 인간의 몸을 이용한 순수한 대결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훼방을 놓기 시작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방금 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수림은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마치 자신이 경기를 뛰는 것처럼 흥분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이런 게임은 질 수 없어!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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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들것에 실려 나온 영후는 발목에 스프레이 진통 파스를 잔뜩 뿌리고 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저 일어섰던 것일 뿐,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엄청난 통증의 정도는 본인만이 느끼고 있을 터였다.
결국 다시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영후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팀닥터는,
반대편 터치라인에서 영후의 상태를 묻는 노감독 때문에 순간 고심하고 있었다.
‘부상 전력도 있는 선수다. 지금은 아드레날린 때문에 통증을 못 느낄 수도 있어.
촉진으로는 쉽게 짐작할 순 없지만, 그래도 선수를 보호하는 건 내 의무야!’
결국, 팀닥터는 노감독에게 수신호를 통해 ‘X’를 표시하려고 마음먹고 일어서는데,
영후는 황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자신의 입을 최대한 가까이 대고선 속삭이기 시작했다.
“걱정할 거 없어요, 선생님.”
“하, 하지만 영후야…”
“저도 오늘은 그저 대표팀 경기에 데뷔한 것 만으로 만족하려고 했어요, 근데…”
“?”
“아무래도, 저… 이기고 싶어졌어요.”
통증이 그대로 묻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영후가 팀닥터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빛을 바라본 어떤 사람이든 그 순간만큼은 영후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을 것이었다.
그만큼, 믿음직스러웠고, 맑았지만, 그럼에도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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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영후의 발목에 테이핑을 마친 팀닥터의 오케이 사인이 보이자, 노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하지만, 노감독의 속은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네놈을 아끼자니 가상한 노력이 아깝고… 네놈을 내놓자니 아플까 두렵구나…’
이런 노감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후는 주심에게 손을 흔들며 자신을 경기 속에 넣어달라며
사인을 보내고 있었고, 슬쩍 영후를 바라본 주심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영후의 경기 참가를 허락했다.
“괜찮은 거에요? 그 새끼 완전 발목보고 들어 오던 데…”
아무렇지도 않게 경기장으로 뛰어들어온 영후를 근심스럽게 바라보며 근명이 물었지만,
영후는 발을 탕탕 바닥에 굴러 보이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 연기가 좀 괜찮았지?”
그 말을 끝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공을 가지고 돌파하는 지성에서 사인을 보내며 새로운 공간을 찾아
영후는 사라졌지만, 근명은 왠지 영후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살색 테이핑이 어쩐지 붉어진 것만 같아 보여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에이 씨!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병신아, 난 지금 한 골도 못 넣고 있다는 거 그새 까먹었냐?”
역시나 단순한 근명은 영후에게 뒤질세라 곧바로 영후와의 반대 공간을 침투하며
지성과 주영에게 사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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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선수는…?’
마크 쉴드 주심은 어쩐지 경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한국의 조전무에게서 이상한 제의를 받았기 때문도, 다른 경기와는 달리 꽤나 엄청난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너무나 이상한 한 남자 때문이었다.
‘분명, 충격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가…’
게다가 아시아의 에이스 박지성이 공과는 상관없이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기에
자신의 시야에서 순간순간 사라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저 후반에 교체되어 들어온 ‘리’는
항상 자신의 시야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곧, 공과 연계된 모든 플레이에 관여하고 있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이 남자를 보기 전에는.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공은 항상 공격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남자가 항상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공격과 수비 모두를 아우르는 엄청난 활동량과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결론을, 마크 쉴드 주심은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막을 수… 있을까…?’
요르단 선수들이 막지 못한 다면, 어쩌면 자신이 막아야 할 남자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지만,
방금 전 입은 부상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저렇게 행복하게 뛰어다니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마크 쉴드 주심은 손목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후반 30분에 근접해 있었다.
그야말로 자신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몰입하고 있는 경기였다.
이대로 경기가 계속 진행된다면 요르단이 승점 3점을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단 1점이라도 요르단에게 안겨줘야 했다. 아니 대한민국 팀의 승점을 어떻게든 깎아야 했다.
하지만 저 남자가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막강해 보였다.
‘저 남자를 막지 못할 거라면… 그렇다면…?’
선수들 만큼이나 흠뻑 젖은 심판 유니폼이 오늘따라 너무나 갑갑하게 느껴지던 마크쉴드 주심의 눈엔
이윽고 잔뜩 흥분해 있는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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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드에서는 뺏고 뺏기는 엄청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조금씩 대한민국 선수들이 우위를 점하며 땅따먹기를 하듯, 전체적으로 전진하고 있었고,
지성과 주영은 영후와 근명, 그리고 근호에게 쉬지 않고 스루패스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길목을 차단당하자 근호와 근명은 최대한 오프사이드를 주의하며 짧고 간결하게 주고 들어가는
2대 1 패스를 이용해 수비를 허물어뜨리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주영에게 순간적인 로빙 패스를 받으며 뛰어들어가던 영후는
수비수와 골키퍼의 시선을 모두 모았다고 생각하자마자 전혀 반대편을 바라보며,
자신의 뒤쪽으로 다가올 근명의 숨결을 느끼며 곧장 힐패스를 밀어주었고,
드디어 근명은 골키퍼도 없는 무주공산의 단독 찬스를 맞으며 가볍게 골대에 공을 차 넣었다.
"골이다!"
근명은 환호하며 세레모니를 펼치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느낌은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삐삑! 삑!
그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뭐야? 말도 안돼. 무슨 판정이 이따위야!!!”
분명 오프사이드도 아니었고, 선심도 기를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크쉴드 주심은 직접
근명의 오프사이드를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곧장 주심은 근명에게 다가와 옐로카드 한 장을 선사해 주었다.
“뭐, 뭐야? 심판 미쳤어? 이게 오프사이드야? 어? 눈을 대체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마크 쉴드 주심은 근명에게 입을 다물 것을 요구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근명은 계속 항의를 했다.
결국 원희와 주영이 근명을 가로막으며 지성이 주장의 자격으로 어필을 해봤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주심과 근명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고, 이윽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옐로카드.
그리고 가차없이 주머니에서 주심은 레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모두들 동상이 된 듯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지성은 열심히 주심에게 어필해 봤지만, 마크쉴드 주심은 계속되는 근명의 불만 섞인 태도에 주의를 줬었고,
지금도 오프사이드 이후에 공을 터치했기 때문에 카드가 나온 것이었으며, 반성의 기미도 없이
계속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에 자신으로선 최선의 방법이었음을 설명해주었다.
결국 지성도 포기하고 물러났고, 노감독도 억울해 죽으려 하는 근명을 향해 들어오라며 손짓으로
지시해줬지만, 그 순간 가장 분노하고 있던 사람은 근명도, 지성도, 노감독도 아니었다.
‘이런… 거 였단 말이지…?!’
한껏 불타오르려는 한 남자에게 고급 휘발유를 들이 붓는 행위를 한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한 채
마크 쉴드 주심은, 이 정도면 적어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해낸 것이라고 생각하며,
떨리는 손을 애써 감추며 카드에 하근명의 번호를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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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곧, 쉽게 얻을 수 없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11대 10의 경기를, 그리고 꼭 이겨야 하는 경기를 어떤 방법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인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더 기대되는 건 바로 ‘그 남자’의 ‘분노’였다.
그랬기에 새하얀 A4지에 확률공식을 써내려 가며, 담담하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착한 우리 감독님 앞에서, 저런 짓을 하다니…
이 경기, 요르단이 지게 될 확률이… 거의 99.7% 이상이겠지?”
대한민국 팀의 선수 한 명이 퇴장을 당하는, 게다가 경기가 인저리 타임까지 해도
15분 남짓 남은 시점에서 더욱더 마음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던 사람은 그러나 남희 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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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팀, 자신의 팀이란 생각이 자리잡고 난 영후의 결연한 얼굴을 처연히 바라보며
노감독은 그저 빙긋 웃고 있었다.
“이 경기… 우리가 이기겠구먼.”
대한민국 팀의 스텝들은 하나같이 초비상사태였건만, 노감독은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읊조리고 있었고,
옆에 앉아있다가 의도치 않게 홀로 노감독의 이야기를 듣게 된 팀닥터는 순간 움찔했다.
‘어쩜, 저렇게 닮았단 말이냐… 저런 말을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팀닥터가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니, 진짜 놀랄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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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근명은 그라운드를 나서기 전, 영후에게 다가가 우물쭈물하며 사과를 했다.
자신의 치기 어린 행동 때문에 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완벽한 아웃룩 패스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자신의 득점도 날아갔지만, 동시에 영후의 어시스트 기록도 날려버린 것이었으니까.
“좋은 침투였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먼저 손을 내미는 영후의 손을 맞잡은 근명은,
그러나 순간 자신의 손이 무척이나 뜨겁게 느껴지고 있었기에 흠칫 놀라고 있었다..
‘이 남자… 웃고 있는 게 아니야…’
같은 분노라도 외부로 폭발시켜버린 자신과 달리, 영후는 몸 안에 응축시키며
언제고 ‘골’로서 터뜨리려 하고 있다는 걸, 그저 간단한 악수 한 번 만으로도 근명은 느낄 수 있었다.
‘이 경기, 우리가 이긴다!’
그 수많은 퇴장 경험 중에도 이렇게 마음 편한 퇴장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근명은
그제야 가벼운 마음으로 그라운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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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속개되기 전 영후는 잠시 골키퍼 성룡에게로 다가갔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언제나 부동의 국가대표 골키퍼 운재에게 가려져있었기에
이번 경기에서의 실점 또한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런 골키퍼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실점을 한 순간에 대한 아쉬움만을 속으로 삼킬 뿐.
때문에 영후가 다가오자 성룡은 꽤나 당황했다.
“심심하지?”
“예?”
“심심하잖아, 안 그래?”
“그게 무슨…?”
“경기에 끼워줄게. 그러니까 우선 잡으면 무조건 질러라. 내가 어디에 있든 상관 말고. 최대한 높고 길게”
“예?”
마치 어릴 적,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고는 싶은데 끼워주지 않는 무리들 속에서 친절하게도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미는 동네 형처럼 영후는 성룡에게 장난치듯 말을 했지만, 그 말의 의미는 쉽게 파악 할 수 없었다.
무조건 지르라니…
“받은 건 돌려줘야지, 안 그래?”
도무지 못 알아 들을 말들만을 실컷 하고는 유유히 전방으로 달려가는 영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성룡은 어쩐지 그 어떤 때보다도 묵직한 믿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경기가 속개되자 성룡은 마침 자신에게 돌아오는 공을 잡고는 곧바로 자신의 전매특허인
롱킥을 시도했다. 영후의 말대로, 그가 어디에 있든지 전혀 파악하지도, 상관하지도 않은 채.
“저 자식! 뭐… 뭐 하는 거야?”
코칭 스텝들은 순간 어이없는 성룡의 롱킥에 아연 실색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도 얼마 없는 이때에 상대편 진영에 넘어가 있는 선수들도 없었는데,
시간을 쪼개 쓰며 차근차근 공격작업을 수행해 나가도 모자랄 판에, 아무 생각도 없이
게다가 저 장거리 롱킥을 시도해버렸으니, 결국은 또다시 시간만 허비하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아무도 없…
아니었다!
결코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다!
하프라인에서 요르단의 수비수들과 뒤섞여있던 영후는 성룡의 발에서 공이 떠나자 마자 총알을 탄 듯
튀어나가기 시작했고, 멍하니 서있던 요르단의 최종 수비들은 미처 영후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겨우 뒤따라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수네 카셈이 제법 영후의 스피드를 따라잡으려 노력했지만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기어이 하수네 카셈은 영후의 유니폼을 붙잡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후의 골을 향한 집념을 막을 수 없었다.
찌이이익~!
결국 영후의 유니폼 상의는 찢어져 나갔고, 그것만으로도 하수네 카셈은 경고를 받아 마땅했지만
주심은 지금 상황엔 차라리 어드밴티지를 선언하는 게 요르단에게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을 하며
휘슬을 아낀 채 두 손을 쭉 펴보였고, 영후 또한 주심의 휘슬소리 따윈 기대하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자식, 롱킥 하난 기차군’
예상보다 훨씬 더 멀고, 더 높게 날아가는 공보다 더 빠른 스피드로 영후는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지만,
요르단의 엘라마이레 골키퍼는 나오기도, 또 골대에 머물러 있기에도 너무나 애매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날아오는 공의 바운드 예측도 쉽지 않거니와, 자칫 상대 공격수와 엉켜버리면
어이없게 실점을 할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못 잡을 거야. 행여 따라잡더라도, 트래핑 하진 못 할거야. 기다리자…’
영후를 처음 맞닥뜨리는 모든 골키퍼가 그러했듯, 엘라마이레 골키퍼도 그 순간 오판을 하고 있었다.
하긴, 다른 판단을 내렸다 한들, 더 나은 결과를 담보했을 거란 보장도 없었긴 했지만.
‘조금 길다!’
영후는 생각보다 길게 날아가는 공을 힐끔 쳐다보며 발목의 부상도 잊은 채 기어를 한 단 더 올렸다.
그러지 않는다면 공은 쭉쭉 뻗어나가 자칫하면 그대로 상대 골키퍼의 품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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