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는 날에는 - 17부
본문
불꺼진 컴컴한 거실...
안방에서 새어나오는 TV소리..
침대에 우두커니 기대어 방바닥에 앉아있는 형체..
"....씨이바......."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내던지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벗어 정리하고 양말을 벗고 간편한 복장을 챙겨입는다.
욕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발을닦고 이빨을 닦고 면도를 한다.
거실로 나오자 [미정]이가 거실불을 밝게 켜둔채.. 욕실 문앞에 서있는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채.. 나를 향해 서있다.
"머야??.... 저리 비켜..."
툭치고 지나 거실쇼파에 널부러져 목에감긴 수건을 빼서 발바닥의 물기를 훔치고 있다.
[미정]이가 다시 돌아서 내 앞으로 오더니 다시 멈추어 선다.
"오빠.. 할말있어..."
"씨발.. 내가 말한 서류 가지고 와... 이혼해 준다잖아..."
"아니.. 나 오빠랑 이혼안해..."
"뭐??????????????....."
"오빠...흑...잘못했어..... 미안해.... 나 용서해줘..."
"후우........너 뭐야???... 지금 장난하냐??...."
"흑흑....미안해.. 사실대로 다 말할께...흑흑....."
"사실대로??... 좋아..어디 한번 짖어봐......"
"흑!!......."
"빨랑 짖어 보라니까???....."
"사실.. 오빠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옛애인을 결혼하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흑흑..
내가 미쳤나봐...... 진짜야.. 그동안 내가 오빠마음도 몰라주고.. 내가 진짜 미쳤나봐...
흑흑흑......"
"야.....!!...스톱!!....그만해..."
"흑흑....."
"훗.. 너 옛날에 니 쫒아다녔다던... 그 돌팔이 얘기 하나본데...
알고봤더니.. 그돌팔이가 아니라 니가 쫒아다닌거였잖아........ 안그래???..."
"흑흑흑.....뭐??...."
"그리고 그 돌팔이가 병원개원해주겠다는 집안의 여자랑 장가가겠다는거고....훗.."
".........어..어떻게...흑흑....."
"결국.. 그 돌팔이한테.. 차이고..... 나한테 빈털털이로 쫒겨나게 생겼으니.. 이제와서
그딴식으로 그 대가릴 돌리냐?? 어??..."
"흑흑....아냐..오빠... 진짜 후회해... 진짜야...흑흑...."
"야... 유미정..!! 너 참 똑똑한 널스였는데.... 이제보니 아이큐가 좀 낮은거냐??? 뭐냐??..
니가 그새끼한테.. 울고불고 매달리는거 그 오피스텔 옥상에서 내가 다 봤거든......."
"뭐???????????????........"
"그새끼 존나게 패버린것도 나야..!!... 내가 싸움도 못하고 싸운적도 없는놈인데....
내 마누라 귀싸데기 날리는거 보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더라..????.."
"흑........흑흑흑.......흑흑흑흑..."
"그날까지... 아니 니 입에서 이혼얘기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니가 다시 돌아와주길
바랬어..... 뭐... 애틋한 사랑에.. 옛애인이 그런일까지 당하고... 뭐.. 한두번 만나준거고
사람이다보니까.. 정들고... 어거지로라도 억지로!!! 씨발!!!!!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어...
그만큼 널 사랑했거든????????......."
"흑흑.....오빠.......미안해..흑흑흑..."
"니가 니입으로....... 나한테 이혼얘길 해??????????? 그새끼를 위해서???????.."
"흑흑흑...미안해...흑흑흑...이젠 아니야...오빠....진짜야....용서해줘....오빠..."
"늦었어....나 마음 굳혔어..... 빨리 서류챙겨와..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제발 꺼져줘!!...."
"엉엉.....오빠.....엉엉......옵빠아.....엉엉......."
[미정]이가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어가며 울고불고 매달린다.
"옵빠아.......엉엉....제발........용서해줘....엉엉......."
"야.... 아파트에서 야심한 밤에... 쪽팔리게 뭐하냐??? 저방으로 가.... 빨리!!..."
"씨발년 봐라???.......체!!....."
자꾸 서글프게 울며 불며 매달리는 [미정]이 때문에 또다시 마음속이 심하게 흔들린다.
[미정]이가 우는 만큼.. 나도 울었다... 남자의 가슴으로..
[미정]이가 흘린 눈물의 수십..아니 수백 수천배의 눈물을 가슴으로 흘렸다.
이젠.. 더이상 가슴속에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미정]이를 밀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파트 단지내 공원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씨발..... 좃같은년.... 씨발년......"
30분동안 담배를 다섯가치를 태웠다.
엘리베어터에 오른다.
다시 집구석 안에 들어갔다.
"체.... 너 뭐냐???......"
[미정]이가 현관앞에 속옷만 입고 무릅을 꿇고 앉아있다.
이건 뭐....한마디로...가관이 아니다.
"흑흑..... 용서해줘..... 제발... 부탁이야..."
"야... 입아프다...엉??? 니가 존나게 사랑하는 그 돌팔이 한테 가라..제발...응????.."
"흑흑...아니야.. 내가 미쳤었어.... 부탁이야....엉엉엉....."
"아.....씨발...진짜!!....후우.........."
"제발 오빠!!....우리 연지를 위해서라도.... 제발 용서해줘....."
"야!!....연지 내딸 맞긴하냐???????...."
"이씨!!!!....오빠!!!...나 맹세코.... 그남자랑 잔적 없어!!!!....정말이야..!!..."
"야.... 그걸 믿으라고????... 너같으면 믿겠냐??????....하하하.....하하하하하..."
"흑흑...오빠 나빳어..어떻게 연지를..보고....흑흑..."
"씨발... 나쁜건 니가 나쁜년이지....신랑을 두고.. 그새끼한테...가랭이 벌리고.. 좋았냐???"
"흑흑...안그랬어......믿어줘......흑흑흑......"
"야야... 좃까고..... 다 필요없으니까... 빨랑 가서 자라...."
쇼파에 길게 누워...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불꺼진 거실옆... 현관쪽.. [미정]이의 흐느낌 소리가 점점 흐릿해진다.
그렇게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보그르르르..........]
무언가 매콤한 냄새가 난다.
눈을 뜨고 머리맡 핸드폰을 찾았다.
알람도 울리기전....
[미정]이가 주방쪽에서 무언가에 열중이다.
찌게를 끓이고 아침준비를 하고 있는 [미정]이의 뒷모습..
진짜 별짓을 다하고 있다.
왠지 더 화가 나려고 한다.
저렇게까지 반성하는거.. 진짜 일까??
그렇다고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는데.. 용서가 되는건가??..
아니다......
여지껏 속고만 살았는데....
"압빠....... 나 엄마랑 어제 카드놀이 해써..."
"흐음...연지 일어났어???...."
"압빠.... 또 물주까???...."
"흐음....아니.. 이리와...아빠 배위에..."
[연지]를 보니... 미쳐버리겠다.
정말 어거지로 다잡은 맘이.. 녹아버린다.
이런 [연지]를 두고 이혼할 수 있을까?????
그전에 [명준]이 녀석이 한말이 생각난다.
[넌새꺄.. 때려죽여도 이혼 못해...]
쇼파위.. 누워있는 내 배위의 [연지]...
잠시후 알람이 울리고 TV가 켜진다.
[미정]이가 식탁위에 찌게와 반찬거리.. 밥을 준비한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와 옷방으로가서 옷을 갈아입는다.
거실로 나오자 식탁에 [연지]와 나란히 앉아있는 [미정]이..
내자리쪽으로 밥.. 숟가락..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그냥 밖으로 나와 버렸다.
[연지]만 아니었어도.... 한바탕 하고 싶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한 사무실..
컴퓨터를 키고 멍하니 앉아있다.
[딩동..]
[바람님 일찍 출근하신거에요? 출근전 집이에요?]
[대답이 없으시네..]
[화장실 가셨나??]
자판위로 무거운 손을 올린다.
[다가다가..다가닥닥...]
[하이...요..]
[넵..바람님 일찍 출근하신건가요??]
[네...이슬빛님은??]
[글쎄요...ㅎㅎㅎ]
[아직 집이시죠??]
[아뇨 출근했음..]
[이슬빛님 옛 애인 있었어요?]
[호호 느닷없이... 왜요??]
[하긴 나이가 어려서.. 지금애인이 첫 애인이겠군뇨.]
[헐.. 아닌데.. 세번짼데...]
[옛애인을 다시 만나고 싶을때가 있어요?]
[아뇨.. 헤어졌는데 왜 만나요..]
[만약에 그 애인이 죽었다거나 집안의 반대.. 뭐 이런식으로 헤어졌다면요..]
[뜻하지 않은 이별이라면 만나고는 싶겠죠.. 왜요??]
[그냥.. 와이프때문에 우울하네요..]
[헐.... 와이프가 혹시.. 옛애인을??????]
[그래서 이혼하려구 해요..]
[허걱!!!!!!]
[요즘 미치겠어요..]
[..............T_T]
[도무지 용서가 안돼네요.. 오랫동안 옛애인을 나 몰래 만났나봐요..]
[그렇겠군뇨..]
[이혼하는게 정당한거 맞는거죠??]
[잘 모르겠음...솔직히..]
[훗..스물한살 이슬빛님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고민이네요..주책없이..내가]
[..........아녀요.. 도움을 못드리는거 같아 죄송할 뿐이에요..]
[오늘은 우울해서 채팅 못하겠어요.. 죄송]
[바람님.. 와이프 사랑했었나요??]
[......무진장 사랑했죠....그리고 사랑하니까 결혼까지 했겠죠..]
[지금은요??...]
[......절대...사랑하지 않아요....]
[조금이라도요??..]
[네..]
[아닐텐데... 진짜 사랑했더라면 그런일을 당해도.. 당장 배신감에 분노는 치밀겠지만..
왠지....안타깝고 애타는 심정은 남아있을텐데...]
"이.....기집애......!!!....."
스물한살 [윤정]이...
내 심정을 정확히 뚫어지게끔 읽고 있다.
요즘 애들이 빠르다지만.. 지까짓께 애닳는 사랑을 진짜로 해봤을까??...
"안타깝고 애타는 심정은 남아있을 것이다..??..."
나도 몰랐던 내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글자이다.
하지만 이혼을 해야 한다.
[연지]생각만 하면 가슴이 쓸리지만..
어쩔수 없다.
[미정]이 말처럼... 지난 5년간 속아온게 아까워서 남은 내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거다.
할꺼면 서둘러야 한다.
안그래도 어제오늘아침의 모습때문에 가뜩이나 심란한 내심경에
이른 아침부터 채팅까지 하니.. 어렵게 다잡은 내 의지가 더 흔들리고 있다.
"집??? 까짓꺼 줘버리자!!!.... 니미... 애데리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려면..
그정도는 있어야지.... 그 돌팔이한테 줘버리던지.. 이젠 더이상 연연하지 말자..."
[미정]이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떨리는 [미정]이의 음성....
"나야.. 뭐해??..."
"흐음......연지 유치원 하복..입을꺼 준비하고 있어..."
"씨바!!.......... 연지 얘기가 나오네..??..."
"후우..... 미정아...."
"...응..오빠..."
"오늘 서류 준비해라.."
"흑..........오빠........."
"그집 그냥 니 가져.... 됐지??... 그냥 이혼하자... 조건 좋지???..."
"흑흑..............."
"서류 준비해라... 끊는다."
"싫어!!!!!!!!..... 제발 오빠.....흑흑........."
"야... 그럼 또 뭐???? 어???? 뭘 더해줄까???? 나 더이상 없어!!... 이정도면 된거잖아!!.."
"안돼...!!... 진짜 잘못했어.... 사랑해 오빠...."
"뭐??? 사랑해 오빠??????... 이런 씨발...!!... 나 열받게 하지마라..!!.. 알았냐???..."
[딸깍...]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그 더러운 주둥아리로.. 나를 사랑한다고???....
한강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까페
[고민지]실장과 함께 넓직한 테라스의 난간에 기대어 서있다.
"김팀장님.. 매일 점심 그렇게 저랑 드실꺼에요??"
"왜요...??... 다른 임원들이나 직원들 때문에 불편하세요??.."
"호호.. 아뇨?? 제가 왜 불편해요??.."
"그럼.. 그렇게 해요..."
"왜 저랑 점심 함께 드시려고 하는거에요??.."
"어떤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건 절대 아니에요.."
".....그럼요??.."
"그냥.. 고실장님 혼자 드시는게.. 왠지.. 측은감이 들어보이고........."
"그리고?? 또 뭐요??.."
"또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는것만 같아요..."
"훗..... 김팀장님 저 좋아하세요??..."
"하하... 좋아하기는 하죠.. 이쁘니까....."
"호호호....."
"훗........."
"제가 옛애인 때문에 그동안 김팀장님께.. 너무 일방적으로 제 감정을 표출한거 같아
미안하기도 해요.."
"아뇨.. 괜찮아요.. 덕분에 즐겁고 짜릿한 시간이었어요.."
"이제는 옛애인.. 죽은 희준오빠를 잊으려고 해요.."
"네........"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하.... 뭐 고실장님 입장에서는 좋은거겠지만.. 제 입장으로는 조금 아쉽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젠.. 제가 그 희준오빠라는 사람의 대타가 될 수 없으니.. 에효... 마지막 할 때
더 오래할껄..."
"호호호호........"
"하하............"
"흐음.... 대신 새로운 김희준과 시작하려고 해요...."
"............네??....."
[고민지]실장이 내쪽을 보며 비스듬히 서더니 손을 뻗어 나의 넥타이를 만진다.
그러더니.. 넥타이를 잡아 끌어 당긴다.
"흡........"
[고민지]실장의 얼굴로 점점 다가간다.
[고민지]실장이 눈을 감는다.
입술이 가까워 진다.
키스를 나눈다.
뜨거운 키스이다.
방금.. 이기집애가 한 얘기.... 죽은 오빠는 잊고 나와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고민지....참 대단한 여자이다..
일방적인 선포.. 개줄끌듯 잡아 끄는 넥타이..
물컥한 [고실장]의 젖가슴이 느껴진다.
주책없는 매직스틱!!!...... 또 고개를 들고 있다.
[고실장]이 천천히 입술을 뗀다.
천천히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본다.
"희준씨... 당장 답을 달라는 부탁은 안드릴께여.. 부담갖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밤...내 몸속에 들어와 주세요.... 그 매직스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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