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빗나간 재회 - 1부

본문

이 작품도 역시 예전 작품입니다.




총4부로 잘랐으며 금요일 배반의 그림자가 올라기기 전에 이틀동안 올릴 예정입니다.


늘 그렇지만 초기 작품은 지금보다도 더 그저 그런 글이오니 이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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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년 만인가요.. -


- 네.. -




그의 물음에 난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짧은 대답을 하고 난 그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할 만큼 연륜이 쌓인 나이는 아니었지만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그의 모습과 칠년이 흐른 지금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달라져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시간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 커피 나왔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 -


- 마셔요 -




잠시 후..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종업원에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말을 전한 그가 말을 건네며 미소를 짓자 그제서 나의 기억에 존재하던 그의 미소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을 알았고 그 순간 난 시간의 장막 한쪽을 길게 드리우고 있던 추억의 장막을 걷어내며 여름철 소나기처럼 한바탕 나를 흠뻑 적셨던 스물 몇 해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를 처음 만났던 건 대학교 삼학년 어느 미팅에서였다.


졸업을 일 년 앞두고 제대로 연애 한번 해보지 못했던 나의 손을 잡아끄는 친구에게 이끌려 나갔던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삼년이라는 기간 동안 남들이 흔히 말하는 뜨겁고 가슴 절절한 사랑을 했었다. 마음으로 주고받던 사랑과 서로의 육체의 탐닉하던 불같은 사랑을 말이다.




한 번의 풋사랑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가슴 깊이 사랑했던 남자..


삼년이라는 시간 내내 서로를 바라보며 불같이 타오른 사랑의 불꽃이 허망하게 꺼지리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기에 그에게 마음은 물론이고 육체까지 모두 열어주었다. 특히 그와 함께 했던 육체의 사랑은 너무도 뜨거웠다. 처음의 무안함과 쑥스러움 그리고 망설임이 사라진 이후에는 마치 육체적 사랑에 목마른 여인들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스를 나눴다.




때로는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에서 하루라는 시간 내내 섹스만을 탐닉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간혹 여행을 떠나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야외에서 섹스를 가지는 대범함도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뜨거웠던 시간 속에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진 건 너무나도 작은 사건에 의해서였다.




분명 그건 오해였다.


하지만 그것을 오해라고 주장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절묘했다.


회식을 마치고 기어이 자신을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던 남자 직원이 집 앞에 다다르자 느닷없이 입맞춤을 하고는 좋아한다는 말을 불쑥 던졌고 갑작스런 상황에 너무 놀라 그저 멍하니 서있던 나의 눈앞에 그가 나타난 건 남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사라진 직후였다.


아니라고 강변했다.


모든 건 오해라고.. 하지만 그는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남자 직원이 입맞춤을 하고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체 서 있던 나의 행동을 그는 이해해 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분노에 가득한 얼굴로 나를 몰아붙이는 그를 향해 이렇게 나를 못 믿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했던 것이 실수였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모든 것은 끝나버렸다.


삼년이라는 시간동안 그토록 뜨거웠던 불같은 사랑은 작은 오해와 자존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것이다. 그냥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날 밤 나를 찾아왔던 그의 모습을..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 한 시선으로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말없이 돌아서던 그의 모습을 말이다.


왜 붙잡지 않았을까..


그의 눈은 분명 날 붙잡아 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나는 돌아서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날 믿지 못해주는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 결혼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


- ...... -




나의 생각을 가로막듯 남자의 말이 귓전에 전해졌다. 


그런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차분하고 느릿한 남자의 말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파헤쳤다. 지금의 남편이 바로 그날 그가 보았던 같은 회사 직원이었기에 말이다.




- 행복하시죠.. -


- ...... -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난 묵묵히 커피 잔을 들었다.


행복.. 그럴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 행복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은 채 감춰져 있는 것이 존재하듯 나의 결혼 생활 역시 순탄치 만은 않았다.




남편은 과거를 알고 있었다.


아니 남편이 알기 전에 이미 내 입으로 모든 걸 말했다. 


남자가 있었노라고.. 그리고 사랑했다고.. 그런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상관없다고.. 과거는 지나간 시간일 뿐이고 지금은 자신의 감정이 전부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때때로 남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나를 절망 속에 빠뜨렸고 시간이 지나며 난 왜 세상 사람들이 여자의 과거를 남자에게 말하는 것을 바보짓이라 하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과거는 남편에게 무기였고 힘이었다.


나를 등진 그에 대한 반항과 자괴감에 끊임없이 나의 곁을 맴도는 남편과 결혼을 결심했고 한두 해는 나름대로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난날 이 남자와 있었던 과거는 남편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짐이 되어버렸다. 술에 취해 들어오거나 또는 심한 말다툼이라도 있는 날에는 남편의 입에서는 늘 나의 과거가 튀어나왔다. 자신에 여자는 나뿐이었고 자신은 손해를 보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남편은 몰랐다.


그 말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이고 그런 남편에게서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는 지금의 이 남자가 새삼 떠오른다는 것을 말이다. 






- 결혼은 하셨나요.. -




남자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 체 나는 되물었다.


마치 간혹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의 모습을 애써 감추려는 듯 말이다.




- ..... -




남자는 대답 대신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의 미소가 나의 가슴을 다시 파고들었다.




- 하셨나 봐요.. -


- 아직 안 했습니다 -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남자의 말에 순간 가슴이 흔들렸다.




- 왜.. 아직.... -


- ...... -




천천히 묻는 나의 물음에 남자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커피 잔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어색한 침묵이 잠시 주위를 맴돌았다.








- 아이는... -




잠시의 침묵을 깨고 남자가 물었다.




- 하나에요.. 딸... 세살이고요.. -


- 엄마를 닮았으면 상당히 예쁘겠군요.. -


- 아뇨.. 아빠를 닮았어요.. 제가 일을 하기 때문에 친정 엄마가 돌봐주세요.. 주말에만 집으로 데려오고.. -




묻지는 않은 사실을 난 말하고 있었다.




그 대화를 끝으로 다시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난 그와 내가 비로써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꼈다. 칠년이라는 시간이 많은 것을 가로막아 버린 듯 했다. 서로가 나눈 대화 속에 오가는 존칭이 그랬고 간혹 한번쯤 다시 만나게 되면 웃으면서 부담 없이 많은 것을 묻고 이야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꾸만 끊어지는 대화. 그리고 간혹 부딪치는 시선을 황급히 거두는 자신과 그의 모습에서 지난날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던 자취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듯싶었다.




- 만나면 할 말이 많았을 것 같았는데.. 아니군요... -


- ...... -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남자가 말을 건넸고 그 순간 나의 시선이 남자와 마주쳤다.




- 가끔 지연씨를 생각했어요.. 잘 살고 있을까.. 행복할까 하고 말입니다.. -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신의 이름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었지만 기억 속에서 아련하게 흔들리던 추억에 깃들었던 목소리를 통해 들어보는 자신의 이름이 무척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 그런데 할 말이 없네요.. 묻고 싶은 건 많은 것 같은데.. -


- ...... -




다시 미소를 지어보이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나의 시선을 떨궜다.




- 상현씨는 지금 행복하세요.. -




상현.. 그의 이름이었다.


칠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슴에 묻어둔 체 잊어가던 그의 이름이었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그저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난 여전히 시선을 떨군 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글쎄요..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


- ...... -


- 실은 지연씨한테 고백할게 있어요.. -




상현의 말에 난 고개를 들었고 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 오늘 지연씨를 만 난건 우연히 아니에요.. -




상현의 말에 난 적잖이 놀랬다.


퇴근을 하고 회사를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순간 우연히 마주친 상현과의 만남이 우연히 아니라는 말에 난 순간 가슴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 저 다음 주에 미국으로 떠납니다.. -




가빠오던 가슴이 순간적으로 멈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 회사에서 미국에 지부를 냈는데.. 거기에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지연씨를 한번 꼭 만나고 싶어서 수소문을 했었습니다.. 지연씨에게 꼭 용서를 구하고 싶은 것도 있고.. -


- 무슨 용서를... -




나의 되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상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 지난 날.. 지연씨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 말입니다.. -


- ...... -


-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속이 좁았고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그래서 다시 지연씨를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


- 어째서요.. -




상현의 말에 갑자기 난 화가 났다.


후회를 했다면 그래서 나를 다시 찾아볼 생각을 했다면 왜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지 묻고 싶었다.




- 그게... 상황이.. -


- 무슨 상황이요.. 후회는 됐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던가요.. -


- ........ -


- 그런가요.. -




나는 조금씩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나를 다시 찾았다면 아니 내 앞에 다시 나타나기만 한다면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냐면 나 역시 그와 다시 맺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기 때문이다.




- 제가 다시 지연씨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봤을 때 지연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 누.. 누구한테.. 그 말을... -


- 혜진씨에게.. -


- ...... -




난 비로써 그와 헤어진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었음을 느꼈다.


그날 지금의 남편이 갑작스레 입맞춤을 했을 때 내가 욕이라도 한 마디를 했다면 아니 오해를 하고 돌아서려는 그를 붙들고 어떻게 하든 그를 설득을 시켰다면 그와의 이별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그와 헤어지고 일 년이 되지 않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 이 사람과 난 한평생을 같이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더욱이 친구인 혜진을 통해 나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상현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내 자신이 또 한 번 우스웠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시간은 어차피 되돌릴 수 없고 난 지금의 자리에 서 있는데.. 또한 만약 남편이 처음 약속대로 과거는 과거로 묻어둔 체 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내가 지금 이런 후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내가 싫어졌다.


나란 여자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라는 걸 나는 새삼 깨달으며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 그럼 한국은 언제쯤 다시.. -




다시금 이어지던 잠깐의 침묵 속에서 미워지는 나를 질책하며 마음을 달래고 상현에게 물었다.




- 아마.. 안 들어올 것 같습니다.. -


- ...... -




다신 한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거기에 자리를 잡으면 부모님도 들어오실 생각입니다... 마침 이모님도 LA에 계시고.. 그곳에서 기반을 잡을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내건 조건도 괜찮고... -


- 그럼.. 다음 주 언제 떠나는지.. -


- 토요일에 떠납니다.. -


- ...... -






그 대화를 끝으로 상현과 헤어졌다.


우연으로 가장한 칠년만의 조우 속에서 조금씩 잊어가던 그에 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지난날의 시간과 추억을 되새기며 난 상현과의 그렇게 또다시 헤어졌다. 지난날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 달라며 헤어지는 순간 다시 말하던 상현의 모습을 뒤로한 체 말이다.










- ...... -




창밖으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 노을 속에서 이틀 전 만났던 상현의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자신을 믿지 못한 것을 용서하라는 말과 함께 행복 하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건네며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 네.. 여보세요.. -


- 나야.. -




남편이었다. 




- 음.. -


- 나.. 당신한테 부탁할게 있는데.. -


- 뭔데.. -


- 실은 내일 직원들하고 낚시를 갈 생각인데 괜찮지.. -


- 지난달에도 갔다 왔잖아.. - 


- 지난달은 지난달이고.. 이번에는 직원들이 바다낚시를 가자고 하도 성화라서.. -


- 그걸 지금 잘하면 어떡해.. 이번 주에 엄마가 집에 오라고 한 거 잊었어.. -


- 그러니까 당신에게 부탁하잖아.. 장모님한테 잘 말씀드려.. -


- 당신이 직접 해.. -


- 야.. 너 너무한다.. 처가에는 지난주에도 갔다 왔잖아.. 그리고 우리 집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안 가려고 애쓰면서 왜 난 꼬박 꼬박 처갓집을 가야하는데.. -


- 뭐..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가 지우 봐주잖아.. 그게 억울하면 어머니보고 지우 좀 봐달고 해봐.. 그러면 내가 매주 어머니 찾아뵐 테니까.. -


- 아.. 그러기에 당신이 회사 그만두면 되잖아.. 당신이 집에 있으면 장모님도 편하고 나도 편하잖아.. -


- 지금 말 다했어.. -


- 아.. 됐어.. 장모님한테 말 하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암튼 난 내일 낚시 갈 테니 그렇게 알아.. 끊는다.. -


- 여보.. 여보... -




남편의 전화는 벌써 끊겨있었다.
















- ..... -




아침 일찍 남편이 낚시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후 비어버린 집을 청소하던 지연이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전화를 바라보며 추억의 조각 하나를 가만히 떠올렸다.




[ 내 전화번호는 **** - 5678 고 넌 **** - 6789 야... 외우기 쉽지.. ]




상현과 연인으로 지내기 시작할 무렵 상현이 핸드폰 두개를 사가지고 와서는 자신에게 내밀던 적이 있었다. 아는 선배를 통해 어렵게 얻은 번호라며 외우기 쉬운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비밀번호까지 하나로 통일했었다. 그 후 그 핸드폰은 상현과 헤어지며 없애버렸었다.




- ...... -




그렇게 한참을 지난 시간을 떠올리던 지연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을 망설이던 지연이 천천히 전화기 버튼은 누르려다 말고 잠시 손을 멈추었다.




지연은 생각했다.


지금 그 번호는 누가 사용하고 있을까..


지난날 자신들처럼 연인들이 사용하고 있을까 아님 모르는 사람들이 나눠서 사용할까..


하지만 지연의 마음 한 구석에 혹시 상현이 아직도 그 번호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버튼을 다시 누르고 있었다.




- 네.. 여보세요.. -




그리고 곧이어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지연은 심장이 얼어붙는 듯 한 짜릿함을 느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수화기 너머에서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수화기를 든 지연의 손끝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 저에요.. 지연이... -


- ...... -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순간 뜻밖의 전화에 성현도 놀란 듯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 호.. 혹시나 해서 걸어봤는데.. 아직 이 번호를 사용하시나 보네요.. -


- 아.. 네.. 아직... -




성현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묻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근데.. 무슨 일로... -


- ...... -


- 지연씨.. -




성현의 물음에 지연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성현이 다시 지연을 불렀다.




- 저기.. 오늘 만났으면 해서요.. 하고 싶은 말도 있고.. -


- ...... -




막상 말을 내뱉었지만 지연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눈을 살며시 내려 감았다.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를 다시 만날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지금 생뚱맞은 말을 했고 순간 지연은 전화를 끊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오늘 출근을 해서 오후에나 뵐 수 있을 것 같은데.. -


- 시간은 상관없어요.. -


- 그럼.. 세시쯤 뵙죠.. 장소는 그때 거기.. -


- 아뇨.. 거기는 너무 멀고 **에서 만나요.. -




약속 장소가 멀어서가 아니었다.


지난번 만났던 곳은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


주말이라 회사 사람들이 출근을 할리는 없지만 그래도 회사 근처에서 만난다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서 뵙죠.. -


- 네... -




상현과의 통화를 끝내자 지연이 황급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떨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진정을 시켰다.




지연은 후회했다.


왜 전화를 했을까.. 만나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가..


지연은 다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할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현이 아직도 그 번호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지연으로 하여금 묘한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 ...... -




화장을 마치고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연은 시간이 흐르며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자꾸만 가슴이 가빠옴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지금이라도 약속을 취소할까하는 생각을 했다.




- ...... -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물끄러미 앉아있던 지연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 여보세요.. -




잠시 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엄마.. 나... -


- 그래.. 지금 오려고.. -


- 그게 아니라.. 엄마 오늘 지우 하루만 더 봐줘.. -


- 왜.. 무슨 일 있니.. -


- 응.. 나 오늘 회사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출근했어.. -


- 어제는 아무 말 없었잖아.. 그리고 김 서방은... -


- 어.. 김 서방은 출장 갔어.. 외국에서 바이어가 와서.. 미안해 엄마.. -


- 아니다.. 잘 됐다.. 너희 아버지 너희들이 지우 데리고 가면 허전하다고 잠도 잘 못 주무신다.. 그럼 이번 주는 그냥 우리가 데리고 있으마.. 오늘이나 내일 시간이 나면 그냥 한번 들러.. -


- 알았어.. 엄마.. 미안해.. -


- 됐다.. 끊자.. -




엄마와의 통화를 끝낸 지연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 하실 말씀은... -




상현의 말에 지연은 가만히 상연을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키던 상현의 입에서 나온 약간은 사무적인 한마디를 들으며 지연은 칠년의 세월에 가로 막혀있던 서로의 시간이 꽤나 깊었음을 알았다. 




- 왜 아직 결혼을 안 하셨어요.. -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말들 중에 지연 스스로도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지연의 물음을 들은 상현이 입을 굳게 다문 체 잠시 지연을 응시했다.




-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




말끝을 흐리며 엷은 미소를 짓는 상현을 바라보며 지연은 마음 한구석에 혹시 상현이 자신을 못 잊어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 만나시는 분도 없으세요.. -


- 네.. 아직은.. -


- ...... -




침묵이 다시 흐르자 지연은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자신의 물음에 답을 하는 상현의 얼굴에 씁쓸함 같은 것이 서려있다는 느낌을 받자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 혹시.. 진환이 기억하십니까.. -


- ..... -




할 말을 찾고 있던 지연을 도와주기라도 하는 듯 상현이 먼저 입을 열었고 지연의 눈이 자연스레 상현의 얼굴로 향했다.




- 그 녀석 결혼한 거 아십니까.. -


- 아뇨.. -




알리가 없었다.


상현과 연인으로 지내던 시절 상현의 단짝 친구였던 진환을 자주 만났었지만 상현과 멀어지며 자연스레 그와 연루된 모든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상현의 친구인 진환은 물론이고 당시 함께 어울리던 친구조차도 말이다.




- 진환이 와이프가 연우씨입니다.. -




연우라는 이름에 지연은 잠시 놀랬다.


대학 시절 자신의 단짝 친구였고 상현과 연인 시절 함께 자주 어울렸던 친구였다.


허나 상현과 어긋나면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는데 그 연우가 진환과 결혼을 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친구로 남아있는 희주도 연우와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는 말을 들었기에 더우 그러했으리라...




- 그 자식은 지금은.... -




그렇게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지연은 조금씩 칠년이라는 세월의 벽을 잊어간 체 지나간 시간 속에 묻혀가던 상현에 대한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그에 대한 낯설음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지연은 생각했다.


상현과 멀어지며 자신은 상현과 어우러져있던 많은 것을 버렸건만 상현은 여전히 칠 년 전의 시간과 맞닿아 있는 연장선상에서 삶을 살아오고 있었으며 변한 것이 있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존재만이 지워져버렸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 앞에서 지연은 칠 년 전 그 시간 자신의 삶이 어쩌면 어긋나 버린 채 지금까지 흘러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다.












- 후회했어요.. -


- ...... -




적지 않은 시간동안 지난 시간 속에 잊혀져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상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지연이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말문을 멈춘 상현에게 느닷없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 아니.. 상현씨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요... -


- ...... -




갑작스런 지연의 말에 약간은 당황한 듯 상현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상현씨한테 아무 연락이 없자 화가 났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상현씨를 찾아가서 사과를 할까 생각도 했는데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더군요.. -


- 지연씨... -


- 그래요.. 어쩌면 모든 게 저의 잘못일거에요.. 원인도 내가 제공했고... 그걸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상현씨를 찾아가지 못한 것도 모두 제가 자초한 일이에요.. -


- 어차피 지나간 시간입니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


- 아뇨.. 지나간 시간이 아니에요... 그 지나간 시간 때문에 난 여전히... -




말을 이어가던 지연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상현의 말대로 어차피 지나간 시간임은 분명했고 자신이 말하려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간혹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들먹이는 남편의 그런 행동 모두가 모두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상현에게 말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음을 함께 알고 있었다.




- 저도 한번쯤은 상현씨를 만나고 싶었어요.. -




마음을 진정시킨 지연이 말을 돌렸다.




-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


- ...... -


- 하지만 정작 상현씨를 만나고보니 차라리 만나지 않은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


-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쓸데없이 지연씨를 찾았었나 보군요.. -


- ..... -




상현의 말에 지연이 물끄러미 상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 전 그냥 스치듯 한번쯤 지연씨를 보고 싶었는데 막상 이곳을 영원히 떠나게 되고 보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고... 어떻게 변했는지도.. 헌데 제가 욕심이 지나쳤나 봅니다..정말 죄송합니다.. -


- ...... -




미안해하는 상현의 얼굴을 보며 지연은 갑자기 왈칵 눈물이 밀려 나오는걸 느꼈다.




칠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에 대한 미안함이 응어리진 체 가슴에 남아있던 것일까.. 지연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밀려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아냈고 그런 지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상현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지연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들 사이에는 다시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 아직도 닭볶음탕 좋아하세요.. -




어색한 침묵을 가르며 지연이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상현과 연애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닭 요리를 즐겼고 특히 상현은 닭도리탕이라 불리던 닭볶음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갑작스런 지연의 질문에 잠시 눈을 껌뻑이던 상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가끔 장흥에 가서 혼자 먹고 오곤 합니다.. 기억하시죠.. 계원... 거기는 여전히... -


- ...... -


- 미안합니다.. 제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




순간 말을 멈추고 굳은 표정을 짓는 상현을 바라보던 지연 역시 얼굴이 굳어졌다.


장흥에 있는 계원이라는 요릿집은 상현과 자주 가던 곳이었다. 물론 상현과 헤어지면서 그곳에 가본적은 없었지만 아직도 상현이 그곳에 간다는 말에 적잖이 놀랬다. 더욱이 가끔 혼자서 그곳에 간다는 말에서 지연은 괜한 말을 꺼냈다고 자책하는 듯 한 상현에게서 연민의 정 같은 것을 느꼈다.




- 아.. 커피가 없네요.. 커피 한잔 더 해야겠습니다.. 지연씨도 더 하시렵니까.. -


- 거기.. 가 볼 수 있을까요.. -




자책감을 감추려는 듯 애꿎은 커피 잔을 들여다보던 상현을 가로막으며 지연이 말을 건넸고 지연의 말에 상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한번 다시 가보고 싶네요.. 닭볶음탕도 먹고 싶고.. -


- 저기.. 지연씨.. -


- 약속 있으세요.. -


- 아뇨.. 그런 건 아닌데.. -


- 그럼.. 가요.. 제가 살 테니.. -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연을 당황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상현이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로 향하는 지연을 응시하며 머뭇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한적한 국도를 달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지연은 지나간 칠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조금은 변해버린 듯 한 풍경들을 쫓으며 자신의 머릿속에 새겨져있던 모습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역시 칠년이라는 시간을 짧은 시간이 아닌 듯 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잔영들과 눈에 보이는 풍경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마치 칠 년 전 상현과 함께 연인으로 이곳을 지날 때와 지금의 관계가 사뭇 다르듯 말이다. 






잠시 후..


멈춰진 차에서 내린 지연은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입구의 팻말 말고는 모든 것이 약간 달라진 식당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지만 이내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 종업원이 다가오자 추억에서 빠져 나왔다.




- 두 분이십니까.. -


- 네.. 오늘 손님이 많은가 봅니다.. -




조금 전 주차장에서 차를 대기 위해 자리를 찾아야했던 상현이 종업원의 말에 대답을 하며 물었다.




- 네.. 주말이다 보니.. 근데 어떡하죠.. 안에는 자리가 꽉 차서 지금은 자리가 방갈로 밖에는 없는데.. -


- 그래요.. -




종업원의 말에 지연을 한번 돌아보던 상현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할 수 없죠.. -


- 근데 저기는 따로 방값을 받아야 하는데.. -


- 네.. 알고 있습니다.. -


- 그럼.. 오시죠... -




종업원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지연은 식당 뒤편 띄엄띄엄 지어져있는 통나무집을 스쳐갈 때 문을 통해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간혹 노름을 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약간 저었고 잠시 후 종업원 걸음을 멈추고 몇 개의 방갈로 중 맨 끝에 위치한 방갈로의 문을 열어주는 곳으로 들어갔다. 




- 뭐로 해드릴까요.. -




방으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펼치며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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