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 40부
본문
0부. 각자의 노림수
주의!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과 팀명, 그리고 모든 일들은 소설로서 가공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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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는 고급 세단 안에선 뒷좌석에 묻혀있는 현우도,
운전석에서 핸들을 가끔씩 좌 우로 움직이는 운전기사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고요함과는 달리 현우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또 복잡했다.
‘그 사람들은 누구고… 또 아저씬 도대체 어떻게 알고…’
분명, 앞에 앉아있는 남자와 차를 먼저 보내며, 현우는 어디에 간다는 말 따윈 전혀 하지 않았었다.
게다가 윤지의 집이라면, 길가에서 차를 보낸 후 혜미의 집에서부터 걸어갔었던 게 전부라면 전부였다.
그렇다면 결국 운전석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핸들을 잡고 있는 저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미행을 했다는 결론만이 남을 뿐이었다.
‘전무님이… 시킨 걸까?’
하지만 그도 잠시, 윤지의 아파트에 침입했던,
그리고 자신을 붙잡았던 두 남자를 너무나도 간단히 제압하던 모습이 떠오르자,
그저 운전과 짧은 대답만을 할 줄 아는 남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돼버린 현우의 몸은
계속해서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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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아… 아저씨…”
두 명의 괴한에게 붙들린 채, 어두움에 인기척이라곤 모두 사라져버린 아파트 바깥으로 끌려 나오던 현우는,
윤지의 이런 사소한 부탁조차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기만 했었는데,
그 순간 들려오던 운전기사 아저씨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빛이요 희망과도 같았다.
게다가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두 괴한은 주춤거리고 있었고.
“뭐… 뭐야?!”
“우리 도련님께 그 더러운 손 떼지 못해!! 타앗!”
입을 염과 동시에 운전기사는 날아오르듯 그 둘에게 돌진했고, 숫적 우세라는 것도 잊어버린 듯,
두 괴한들은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 순식간이었다.
말쑥한 양복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동작으로 두 남자들의 복부와 턱에 단 한 번씩의 타격만으로
그것도 동시에 장정 둘을 간단히 쓰러뜨린 건.
퍽! 퍼벅!
“어이쿠!”
“어억!”
두 남자가 반격조차 시도하지 못한 채 길바닥에 그대로 나동그라지는 건 커녕,
늘 신사 같기만 하던 아저씨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그보다 좀더 은색이었던 넥타이가
평소와 다르게 허공에서 휘날리는 모습 말고는 현우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은 참으로 멋있었다.
그리고 그 멋있는 모습에 반해 쓰러지듯, 이내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며 스르륵 쓰러지려 했고.
“도련님!”
하지만 결코 현우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 현우의 운전기사가 그전에 먼저 안아 들어주었으니까.
현우는 남자의 품이 너무나 편하고 아늑해서,
차라리 지금 이 남자의 품이 아빠의 품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본 것 같았다.
“도련님, 정신차리세요! 안되겠군… 우선 병원으로”
“아저씨…”
“도련님, 정신이 드십니까? 제가 보이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곧 병원으로 모시고”
“아니에요… 거기 말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했던 현우는 그러나 겨우 기운을 내어 입을 열고 있었다.
“네?”
“전주… 전주로 가요.”
현우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말에 운전기사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도련님?!”
“그리고 저 가방도…”
현우의 시선을 따라가 본 남자는 두 괴한과 자신의 거리 그 중간에 놓여진
꽤나 묵직해 보이는 가방을 바라봤지만, 이내 그보다 먼저 현우를 가볍게 안아 들고는
곧바로 차로 데려가 뒷좌석에 앉혔다.
그리곤 다시금 가방이 떨어져 있는 곳으로 걸어와 가방을 잠시 바라보았지만,
이내 한 손으로 집어 들곤 현우가 앉아있는 뒷좌석 발치에 놓아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인사를 하는 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운전기사는 잡고 있던 문을
조심스럽게 닫아주었고,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로 어안이 벙벙해 하는 두 남자들을 바라봤지만,
그 시선에 담긴 의미와 고개 짓을, 또한 이어진 그 남자들의 의미심장한 끄덕거림 또한
현우는 보지도, 절대 알지도 못했다.
-
“하~암… 안 주무세요?”
어둠을 밝히는 침대 옆 스탠드의 불빛이 아직도 눈가에 가물거리자
수림은 한참을 자고 난 부스스한 몰골로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하며 물었다.
하지만 남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권코치…님?”
전혀 반응이 없는 남희를 다시금 부르려다 수림은 목소리를 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에서 상체만을 일으킨 채로 있던 남희는,
동영상 재생이 벌써 끝나 검은 화면이 된, 다리 위에 있던 노트북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깊게 잠이 들어있었으니까.
“차암… 언니두…”
수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대에서 빠져 나와 남희에게로 다가갔고,
이내 노트북과 각종 자료들을 소리내지 않게 조심하며 정리하고는 이내 남희를 침대에 편히 눕혀주었다.
“아…”
모든 게 다 정리된 거라 생각했던 수림은 그러나 하나를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남희의 얼굴로 손을 뻗었고,
이내 남희의 날렵한 코끝에 걸쳐있는 안경을 조심스레 벗겨주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침대로 가려 했지만, 수림은 어쩐지 그냥 돌아설 수 없었고,
결국 한 손에 안경을 쥔 채로 허리를 숙여 살짝 벌어져 있는 남희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 주었다.
“잘자요, 언니…”
수림의 키스 덕분일까. 남희는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던 흔적 따윈 얼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낮에 봤었던 하연의 그 눈물 덕분에 더 이상 번민할 사치 따윈 없었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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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영후를 부탁한다며 남희의 손을 부여잡은 채 호텔 룸 안에서 한없이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하연을 바라보다 남희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하나는 해보겠지만,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
언뜻 이해하지 못하는 하연이 눈물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남희를 바라보자,
남희는 그 심연보다도 깊은 눈을 마주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기에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사실대로 말씀 드리자면… 감독님께선, 저의 제안에… ‘노’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
하연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이 바보가… 이 멍충이가…!’
“그래서… 전 한국여대 코치 업무를…”
“……”
“지금보다 더 전력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나… 남희씨?!”
“처음부터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감독님이 아니실 테니까 말입니다.”
하연은 도대체 영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들 어찌 이럴까 싶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남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런 하연에게 이번엔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며 남희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그렇지만…”
“네?”
“하나,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하연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남희를 보며 부탁이 나오기도 전에 무조건, 무조건 들어 줄거란,
아니 꼭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다짐을 해보고 있었다.
-
혜미가 곤하게 잠들어있는 동안, 윤지는 반대편 침대 위에 웅크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 영후란 남자를, 그리고 한국여대를 생각하면, 자신의 머리는 그러지 말라했지만,
아직도 소재가 불분명한 아빠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그러지 말라했다.
이제 겨우 열 아홉의 나이의 소녀에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의 요구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고, 버거운 무게였다.
‘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침대 어딘가에 숨어있던 핸드폰이 소리도 진동도 내지 못한 채
불빛만을 깜빡이고 있는 게 윤지의 눈에 들어왔고 윤지는 별 생각 없이 손을 뻗어
핸드폰 액정화면을 바라봤는데, 액정화면엔 현우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얘가… 설마 벌써…?’
윤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새벽 4시에서 5분이 모자라는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부탁에 이렇게 목숨을 걸 듯 들어주는 애도 있는데,
자신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저울질을 하고 있었던 건지 스스로가 어이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 고민은 여기서 그만하자.’
드디어 윤지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옆 침대의 혜미를 의식하며 꽤나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현우야.”
‘미, 미안. 혹시 자는 거 깨운 거니?’
“아니야 그런 거. 근데, 이 시간에 안자고 뭐해?”
윤지는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모른 척 현우에게 물었고,
역시나 현우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 그게 실은… 윤지 네가 말했던 거… 아무래도 급한 거 같아서 가져왔어.’
“그랬구나… 지금 어딘데?”
‘어, 여기 호텔 주차장.’
윤지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미안하지만 이리로 올라와 줄래?”
‘엇… 지금?’
분명 현우는 혜미를 떠올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윤지의 눈엔 선했다.
때문에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 장난기는 여지없이 발동했고.
“싫어? 그럼 뭐… 내가 내려가서 들고 오지 뭐.”
뻔히 하드디스크의 무게를 알고 있으면서도 윤지는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졌지만,
역시나 현우는 다급하게 만류했다.
‘아냐, 아냐! 그럴 거 없어. 이거 생각보다 무겁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올라갈게.’
“그래, 그럼. 문 열어놓을 테니까 벨 누르지 말고 들어와. 혜미 깰라.”
윤지는 왜 이런 순간에는 꼭 남자들을 약 올리고 싶어지는 건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벌써 혜미가 옆에 곤하게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현우에게 넌지시 알려주며
알게 모르게 가뜩이나 순진한 남자애 하나를 묘하게 자극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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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현우는 무거운 가방을 든 채,
윤지의 방을 찾았고 이내 윤지가 알려준 숫자가 써 있는 룸을 찾았다.
“여긴…가?”
윤지의 말 대로라면 문이 열려있을 것이었기에 현우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려 했는데,
순간 문고리에 손이 닫기도 전에 현우의 손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구…?”
“헉!”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남자의 목소리에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린 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또르륵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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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연은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한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누가 보기에도 여간해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귀찮을 만큼 노곤해 보였다.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는데…’
하연은 그저 영후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서울로 올라가려 했었다.
결코, 영후가 붙잡아 주길 바라지 않았었고, 키스를 하며 룸으로 끌어들여주길 바라지도 않았다.
또한 알아차릴 새도 없이 자신의 옷을 벗겨주길 바라지도 않았고,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뜨거운 섹스를 몇 번이고 하게 되길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또 이렇게 몇 번의 격렬한 섹스를 해버리고 나니,
머릿속을 가득하게 채우고 있었던 고민과 걱정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것 따위, 이 따뜻한 남자의 품에선 티끌만도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이 남자가 허기를 느끼는 자신을 걱정하며 먹을 거리를 사러 나간 사이에
또다시 잊고 있었던, 산적해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엄습해오고 있었다.
하연은 노곤한 몸을 겨우 움직여 침대에 모로 누우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남희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철용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곤경에 빠진 한국여대 총장과 노감독.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단 한 남자, 바로 이영후라는 남자에게 귀결되어 있었다.
‘왜 하필…’
하연은 점점 태풍의 핵이 되어버리는 듯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 밖에 해주질 못하고 있는 자신이 답답했다.
‘차라리 영후가 보통 남자들 같았더라면…’
늘 한숨처럼 머릿속에 스며드는 생각이 또다시 들자 하연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곧 영후가 컵라면과 소소한 군것질거리를 손에 들고 돌아올 것이었다.
그 남자에게 더 이상 복잡다단한 얼굴을 보이긴 싫었던 하연이었기에,
욕실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엘리베이터 앞까지라도 마중 나가볼 요량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아찔한 전라의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그곳에 그 멋진 하연의 알몸을 보아줄 그 누구도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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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두가 잠든 시각, 가뜩이나 조용한 호텔 룸의 복도에선 때아닌 실랑이가 벌어지며
조금쯤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현우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후의 존재란
마치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을텐데,
그런 남자가 코 앞에서 자신을 멈춰세우고 있었으니 오죽 놀라고 또 신기했을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각자가 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두 남자는
결국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입씨름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주면 내일 아침에 윤지한테 준다고 하잖니.”
“그치만… 그럴 수 없어요. 이건, 이건 제가 직접, 그리고 지금 전해줘야 하는 거라…”
“이 녀석아, 지금이 몇신 데 자고 있을 녀석에게 전해준다는 거야.”
윤지의 룸 앞에서 영후와 현우가 가방의 손잡이 한쪽씩을 각각 잡은 채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두 남자의 입씨름을 멈추게 하는 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후야…?”
그제야 두 남자는 가방을 밀고 당기던 것을 멈춘 채 동시에 룸의 열쇠를 꼭 쥐고 있는 하연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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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러니까 이걸… 윤지가 가져다 달랬다고?!”
가뜩이나 가방에 한 가득 담겨져 있는 하드디스크의 수량에도 놀라고 있던 하연이었지만,
현우의 입에서 또다시 윤지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물론 영후는 하연과는 다른 이유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런 시간에 이런 식으로 방문하는 건 결코 좋아보이진 않는다구.”
하지만 영후와는 달리 하연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현우에게 말했다.
“현우…랬니? 현우야, 괜찮다면… 하드 디스크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조금만 확인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현우는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건 모두 윤지의 사적인 물품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아이가 쓰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였다.
즉, 하드디스크 안에 그 어떤 충격적인 것들 것 들어있을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보여준 윤지의 돌발 행동과 더불어 윤지의 집에서 있었던 해괴망측한 일들을 떠올리자면
그것만으로도 절대적으로 거절해야만 했다.
‘참… 윤지의 집?’
고민을 하던 현우는 그제야 방금 전 윤지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보, 왜 잊고 있었던 거야?! 근데… 이 분들께 이야기 해도 되는 걸까…?’
현우는 또다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대면해 본 남자의 눈은
참으로 맑았기에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있었다.
“근데, 아까 이걸 가지고 나오려는데 이상한 도둑 같은 남자들 둘이 윤지의 집에 들어왔었어요.”
“뭐?!”, “그런…?!”
하연과 영후는 전혀 생각지도 않던 말이 현우의 입에서 튀어 나오자 더욱 놀랐다.
“근데… 보통 도둑 같았다면 돈 될 것들을 찾았을 텐데, 그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뭔가를 찾는 것 같았어요.
꼭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은 것 같이…”
“사주…?!”
순간 하연의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것은 기회였다.
어쩌면 하드디스크 안엔 윤지와 조전무가 연결되어있는 무언가의 자료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영후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영후와 윤지의 관계는 하연이 걱정할 것도 없이 손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더욱, 이 자료에 뭐가 들어있는지 봐야겠다.”
하연은 현우를 압박하며, 영후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는데,
역시나 그냥 넘어가 줄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고 결국 굳게 닫혀있던 입술이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가는 데…?”
“영후야, 그, 그건…”
영후의 말에 하연은 차마 백 퍼센트 확실치 않은 윤지와 조전무에 대한 의구심을 털어 놓을 순 없었기에
답답한 표정이었지만, 반대로 현우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가만있을 하연이 아니었다.
“모르는 거잖아. 이 아이!”
“뭐? 그게 무슨…”
“얘가 정말 윤지를 아는 건지, 아무도 모르게 윤지가 있는 방으로 숨어들어가려고 그런 건 지 모르잖아!
영후 너도 얘 모른다며! 저 가방은 핑계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저 하드디스크 안에 들어있는 게 뭔지 확인해보면 되잖아!”
“에에?!”
그야말로 억지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하연의 의견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현우는 자신의 말 말고는 지금 이 순간엔 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하지만 하연과 현우를 중재하는 방법은 의외로 영후의 입에서 쉽게 흘러나왔다.
“그것보다… 다같이 윤지가 있는 방으로 가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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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어두운 룸을 울리는 노크소리에 윤지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출입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는데, 역시 그곳엔 현우가 서 있었다.
“열어놨다니까, 노크는… 어?”
그러나 현우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뒤에 서 있는 영후와 하연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윤지는 조금 놀랐지만 겨우 내색하지 않았다.
“감독…님?”
“어어, 아직 안자고 있었구나? 피곤할 텐데.”
“다들… 어쩐 일이세요? 전 현우만 오는 줄 알았는데…?”
“아… 그게… 그러니까…”
결국 현우의 말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자 머쓱해진 영후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해 했고,
그러면서 하연을 바라봤지만 하연은 영후와 달리 성큼 앞으로 나섰다.
“가방 안에 든 하드디스크, 도대체 무슨 자료가 들어있는 거니?”
꽤나 도전적으로 들이대는 하연의 모습에도 윤지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잡고 있던 문 옆으로 비켜서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들어오시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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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다행이다.’
현우는 미안해하는 영후와 떨떠름한 표정의 하연이 겨우 돌아가고 나자,
속으로나마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행스러워했다.
물론, 갑자기 태도를 바꿔 영후를 잡아 끄는 것마냥 돌아가버린 하연의 얼굴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결국 자신의 뜻대로 윤지와 혜미의 룸으로 들어오는데 성공한 하연은 자신만만하게 하드디스크를 요구했고,
하연의 요구대로 임의로 고른 하드디스크를 받아 든 윤지는 거리낌없이 노트북에 연결해서 보여주었는데,
잘 정리된 폴더 안에는 축구경기 동영상 뿐이었기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하연은
몇 번이고 손수 파일을 확인했지만 그 뿐이었다.
각종 축구경기의 영상만을 확인한지 일곱 번 째인가 되었을 때,
갑자기 하연은 밤새 앉아있을 것만 같던 얼굴을 180도 바꾸며 황급히 영후를 끌고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 방에 남아있던 현우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둠 속에 희석되어 버렸기에 윤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
“뭐, 난 괜찮아… 근데… 넌, 괜찮아?”
“어? 나야 뭐…”
“그건 그렇고, 쟨 참 잘도 잔다. 꽤나 시끄러웠을 텐데…”
현우 또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윤지의 말을 듣고 보니 곤히 잠들어있는 혜미의 고른 숨소리가 이제야 들리고 있었다.
“하긴 오늘 경기도 치뤘으니까, 피곤하기도 했겠지.”
“경기는… 너도 출전했잖아. 넌… 괜찮은거야?”
“나?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야?”
어둠 속에서도 고양이 같은 눈을 반달로 만들며 미소 짓는 윤지의 얼굴에 현우는
역시나 금방 얼굴이 빨개졌지만, 윤지는 평소처럼 장난을 걸지 않았다. 덕분에 현우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참 내가 가져온 거, 제대로 가져온 거 맞지?”
“응, 고마워.”
“근데 있지…”
“?”
“실은, 윤지 너희 집에 도둑이 들었었어.”
“!”
“내가 막 들어가서 나오려는데 들이닥치더라고.”
“그…래서?”
“으응, 우선은 컴퓨터 있는 방 침대 밑에 숨었지. 그런데, 좀 이상했어. 뭔가를 찾는 거 같았는데…
그게 돈이나, 뭐 그런 건 아닌 것 같았어.”
“그랬구나.”
현우는 조금 놀라다 마는 윤지의 반응에 더 놀라고 있었다.
‘뭐지…? 별 일 아니라는 이 표정은?’
하지만 이윽고 들리는 윤지의 말에 현우는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알고…싶니?”
‘알고 싶냐니… 그렇다면 정말 박기자님의 생각대로 뭔가가 더 있었단 건가?’
현우는 또다시 급변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만, 겉으론 애써 담담한 척 입을 열었다.
“어? 뭘?”
“그 사람들이 찾던 게 뭔지.”
“그…글쎄…?”
“원한다면, 그게 현우 너라면, 보여줄 수도 있긴 한데…”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현우완 달리 역시나 윤지는 장난스레 손을 뻗어 현우의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었고,
역시나 현우는 질색하며 저만큼 도망갔지만, 이내 윤지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는
하드디스크 하나를 연결했다.
‘분명 저기에 들어있던 건 온통 축구 동영상 뿐이었을텐데… 그런데 대체 또 뭘 보여준다는 거지?’
하지만 현우의 생각과 달리 윤지가 윈도우 탐색기가 아닌 이상한 프로그램을 실행시키자,
어디엔게 숨어있던 폴더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윤지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혜미에게 들켰던 게 전화위복이 됐네.’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볼 일은 없을 거란 생각에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방치해 뒀었던 파일들을
감추기로 결심했던 건, 혜미가 윤지의 집을 찾았던 그 날 이후였으니까.
한편, 숨어있던 폴더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안에 있던 동영상 파일을 재생시키자,
난데없이 붉은 조명 아래 옷을 모두 벗고 누워있는 남자의 전신이 등장했다.
“이게 무슨…?!”
“보고 싶다며.”
현우는 영상 속에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자의 모습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곧이어 등장하는, 그것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리고 역시나 알몸의 여자의 모습에 기함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현우의 순진한 모습에 윤지는 더욱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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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거기선 바로 돌아들어가야지!
그리고 나경이랑 하늘이는 이럴 땐 역습에 대비해서 항상 무게중심을 뒤쪽으로 두고!”
오전 훈련시간이 되자 수림은, 밤새 연구했던 셋트피스에 대해 세밀하게 지도하는 남희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지만, 셋트피스 훈련에서 제외된 윤지가 혼자 반대쪽 진영에서 공을 몰며
이런저런 드리블을 해보고 있는 것을 보다가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셋트피스 훈련에서 윤지를 제외시키는 거지…?’
“영후 놈 또 어디서 농땡이 부리는 겁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수림은 먼 발치에서 묻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는데,
역시나 그곳엔 말쑥한 양복 차림의 철용이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서 있었다.
이에 수림은 양손을 나팔처럼 모아 입 주위에 모은 뒤 조금 크게 소리를 질러 답했다.
“아, 요 옆 경기장에 계실 거에요! 오늘 있는 A조 경기 보러 가신다고 했거든요!”
“하, 이 자식… 천하태평이군.”
“네? 뭐라구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 경기 잘 하십쇼~!”
철용은 수림에게 간단하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연습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다,
다른 선수들과는 따로 떨어진 채 공을 가지고 드리블을 하다 넘어지곤 하는 윤지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
하지만 철용과는 또 다른 이유로 윤지를 바라보고 있던 혜미가 훈련하는 도중에도
순간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아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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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크지도 않은 ‘이상한 신음 소리’에 잠귀도 밝지 않은 혜미가 깨어난 건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자는 척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
이상한 신음소리와 뒤섞이며, 그렇게 보고 싶던 현우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고 있는데도,
등 진 채로 일정한 숨소리를 내며 자는 척을 하고만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차마 겁이나 돌아볼 수가 없었다.
동영상 속 남녀의 달뜬 신음소리에 희석되어 들리는 현우와 윤지의 대화가
혜미의 여린 마음을 무섭게 만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현우는 현우대로 윤지의, 동영상 속의 모습을 지금 막 확인하고는 너무나 황당해하고 있었다.
“이거… 설마… 윤지… 너…?!”
하지만 윤지는 현우의 이런 반응은 그닥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 아직도 그대로인 거지? ”
“뭐… 뭐가?”
“첫경험 말야. 저렇게 하는 거. 여전히 아직인 거지?”
윤지가 동영상을 가리키며 현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황당한 것을 묻자,
혜미는 너무나 놀라 벌떡 일어날 뻔도 했지만, 놀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뱀과 같은 윤지의 손길이 어느새 현우의 바지 앞섬에 와 있었으니까.
게다가 어느새 반쯤 발기되어 있던 현우의 자지는 당황해 하는 현우와는 반대로
뜨겁게 윤지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고.
“에엣!? 또 왜그래?”
“얘 좀 보게? 그때 자는 혜미 알몸도 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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