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초록스커트 - 4부

본문

산골의 바람은 곱다. 연삽한 바람이 나무잎 속에서 속삭인다. 세상이 너무 오염 되다보니 별별일이 다 벌어지는데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라는 압박에서 탈출해 보고자 인륜의 밖과 열차 레일 외에서 사랑을 찾는다거나 말초신경을 건드려 몸체를 호도하는 일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민아는 정말 고운 여자다. 나에게는 한번도 대들거나 불평을 한 기억이 없다. 늘 옆에 서서 지켜 보며 나의 의견을 듣고 순종하던 아이(?)다. 


그런 그녀가 시집을 간다고 하던날 무척 찹작 했었다. 달빛이 구름에 숨은 장군암에 몰래 올라가 많은 시간의 추억 속에서 가슴에 남은 미련의 찌꺼기들을 정리하고자 애를 썼었다. 


사촌 여동생이 시집 가는 게 무슨 관계인가? 잘 살아야지. 행복을 빌어야지.. 사랑하는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함께 살 약속을 함도 아니요, 결혼의 금기 사항인 동성동본이라던가 의 한계도 아닌 사촌 여동생인데.. 왜 체념하지 못하고 가슴에 씨를 심어 놓고 그걸 제 옆에 두려 하는가.




소꼽장난 놀던 생각에서부터. 발가 벗고 물가에서 놀던 어린시절. 진달래 산을 오르내리며 손잡고 안아주고 술래 잡기하고 괜히 아무도 안보이는 곳으로 멀리 민아를 끌고 갔던 행동 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오빠, 우리 도망갈까?" 


"뭔소리여 우리가 왜 도망을 가?" 


"그냥, 오빠가 좋아서 해본 소리여" 


"다른 애들은 오빠 오빠 하면서 나중에 애인 되던데.." 


"피,이게 사촌오빠를 뭘로 보는기여 너 그러면 혼난다" 


"오빠는 나중에 결혼하면 누구랑 할건데?" 


"난 안해. 혼자 살지 뭐" 


"그래, 그럼 나도 혼자 살아야겠네" 


"왜 혼자사냐?" 


"그냥.. 혼자 살고 싶어.." 




민아 신랑은 연구단지에 다니는 연구원이었다. 지적으로 생기고 키도 크고 말씨도 위엄이 있고 예의도 바르고.. 


인사를 첨 하던날 나는 공연히 기가 죽어서 죄 지은 사람이 된 기분으로 술 몇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 왔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난 민아를 멀리하려 애썻다. 이 골목에서 보이면 저 골목으로 가고, 저 골목에 그림자라도 비취면 이 골목으로 돌아 가고... 


예식장에서도 제정신 아니게 체면치례로 섰다가 친구들과 얼려 헛소리만 하루 종일 하다가 술에 다운 되어 깨어보니 이튿날 아침의 여관방이고 친구들이 비용을 치루고 간 뒤였다.




"아이고, 이 청년 실연했구만.." 




여관 주인인듯도 하고 아님 심바람하는 아줌마 같기도 한 여인네가 문을 나서는 뒤통수에다 대고 하는 말이었다.




"잊어 부러요. 정 죽거쓰면 또 오셔 좋은 샥시 있응께" 




뭔소리인지 분간하지 못했지만 실수를 된통으로 한게 틀림 없구나 하면서 무거운 머리를 흔들며 탁한 한숨을 쉬며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좋은 집의 밤이 자꾸 깊어가고 가끔 손님 맞는 소리도 나고 멀리서 산짐승 소리도 들려 왔다. 


"오빠, 자자. 오빠.." 


"그래, 자자. 근데.." 


"뭐? 괜찮아.. 같이 자도 돼" 


......... 


우린 아주 어린 시절처럼 이불 속에 다를를 넣고 서로를 쳐다 보았다. 어릴적 단발머리 때의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갑자기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민아야!" 




난 그녀를 안고 말았다 


그녀의 손이 내내 등을 다독이고...




"오빠, 괜찮아.. " 




몽클한 유방의 훈기가 스며온다. 따스한 꿈이 보글거린다 너무도 오랜 세월 잊지못해 했던 불덩이가 풀무질을 해대나 보았다. 대장쟁이의 낫 벼리는 소리 괭이자루 박는 소리가 가슴에서 쿵쾅거렸다. 


그러나 민아는 조용했다. 차분했다. 그리고 계속 내 등을 쓸어주고 있지 않은가.. 


조용히 둘은 그대로 누웠다. 밤이 깊어 가고 무슨 말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혹시 말을 잘못해서 지금이 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말이 없었다. 그녀도 내 손길을 따라 움찍거렸지만 반응을 내색하지 않으려는듯 몸을 맡긴채로 숨소리를 죽이는게 역력했다. 


어디선가 창호지를 뚫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문살에 그림을 그렸다가 사라지고 하얀 나비가 날아온다 


봄인가 벌써.. 노오란 개나리가 피고 병아리 두마리 따박따박 걸은 뒤에 엿장수 아저씨 가위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엿을 사러 나가고....새색시 신방에는 낮인데 무슨 사랑의 속삭임이 저리도 깊누... 




"오빠, 나 지금 행복하다." 




나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 보았다. 호수가 그 속에 있었고 꿈꾸던 정원 눈 속에 있고 추억으로 가득한 책이 놓여 있고... 




아! 그리움의 휴화산이 폭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에서 도피처를 찾아 헤메는 남자의 밀실로 가는 길인가 


모를 일이었다 민아의 살이 정말 고운 파문으로 점령해 오는데 깊은 밤은 아침을 만들며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10




민아의 향기는 오래도록 가슴에서 모락거리고 있었다 


맨발 자락에 슬리퍼를 끌고 대문을 나가 교차로 신문을 한장 들고 들어 온다. 할일 없는 사람들 무엇인가 찾는 사람들의 기대에 찬 신문. 하기야 정치가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문화며 가지가지 메뉴로 처발라 놓고는 광고에 광고를 다해 미혹하는 일간 신문 보다, 그래도 좀은 진솔한 면도 있고 방도 얻고 물건도 팔고 차도 사고 문화강좌 소식도 좀은 있으니 이게 실상은 내게 더 흥미가 있는 신문이 아닌가. 150페이지에 달하는 면수만 봐도 이제 명실상부한 민중(?)의 신문이 되지 않았던가...교차로 벼룩시장 한밭생활 가로수 중앙로 번영로..... 




<성인용품 판매. 독신용 있음>




혼자 살다보니 이런 글자에 눈이 갔다. 마누라가 있기를 하나 그렇다고 남들 다 있다는 애인이 있기를 하나 돈 없고 빽없고 줄없고 있는게 없는 것에 치여 몰사해 버렸으니 어느 여자가 섬기겠다 와서 같이 자 주겠다는 약속을 할까...




이 구석 저 구석 다 뒤져 본다. 중고차 아파트 신상품 구인구직 샅샅이 훑는 중에 




" 3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사업좀 도와 주세요. 자가용 있으면 우대. 그냥 순회하며 매장관 리만 하면 됩니다." 




30대 후반.. 그냥 도와 주세요! 




이튿날 내가 찾아간 곳은 소청 빌딩 지하에 자리 잡은 조그만 사무실이었다. 문을 들어서는 나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정말 괜찮은 여자였다 적어도 미모만은...... 




" 어서 오세요. 용기 있으시군요. 고맙습니다" 




나는 목레하고 다음에 내가 취해야 할 태도를 결정 짓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앉으세요. 사업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가슴을 열기 위한 미팅을 좀 하면 좋겠어요." 


"네?" 


"아, 미팅말이예요. 드리이브도 하고 술도 같이 먹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싶으면 추고 밥도 먹고 그리고 지나온 얘기도 하고 ㅎㅎ 그런거죠" 




무언가 홀린듯한 기분이었다. 무슨 함정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물러설 마음은 전혀 없고 밑져 봐야 목숨하나 뿐인데 죽이기야 하겠는가. 


차를 한잔 마시면서 여자의 눈을 훔쳐 보았다. 민아의 풋풋하고 포근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지적이고 고고하고 잘고른 란같은 여자 황새를 닮았다고 할까 사슴이면서 기린 같은 높은 풀만 먹고 사는 여자의 이미지가 풍겨오는데...




혼미한 판단의 심사가 펼쳐지는 중에 핸드폰이 열렸다. 




"야, 나야. 너 지금 어디냐?" 




윤식이었다 




"응, 나 취직좀 해보려고 소청빌딩에 와 있는데.. 뭔일있냐?" 


"응, 지금 좀 만나야겠다. 같이온 사람이 있는데 집에 갔더니 없어서.." 


"이따가 만나면 안될까?" 


"이자식 보게. 니가 뭐 그렇게 궁한게 있다고 취직을 해 그냥 혼자 얻어먹고 살면 돼지" 


" 그래, 알았어..그런데 어쩌자는 거야?" 


"내가 지금 그리로 갈께" 




쩔쩔매는 내 전화 꼴을 보고는 몰골이 안타까웠던지 그 지적인 여자 황새같은 여자는 




"그러세요. 이리 오라고 하세요. 친구분도 좀 보면 좋지요 뭐" 




윤식이는 곧 올 것 같았다. 


그제서야 윤식이가 주고간 권총이 생각났다 


사람죽이는 권총은 아니지만 여하간 뭔가 있을 것 같은 권총. 그 총을 찾으러 온건가..? 


텔레비젼에는 주식시세가 막 흘러간다. 그리고 뉴스가 토막을 흘러가고 애띈 아가씨 하나가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고 무언가 하긴 하는 곳인데 대뜸 잡히지 않는다. 




11




인사하세요. 저희 남편이예요" 


난 같은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사람을 보면 나는 움찟 놀라고 말았다. 곱추인것 같기도 하고 난장이 같기도 하고 여하간 정상인이 아닌 남자였다.




"아,네...잘 부탁합니다." 




그는 빙긋이 웃고 있었고 여유가 풍겼다. 




"제 아내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제가 도와줘야 하는건데 보시다시피 몸이 변변치가 못해서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커피가 나왔다. 속 빈곳에 붓는 커피는 소주만은 못해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응게는 효과가 있다. 커피잔 속에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 난같은 여자와 장애가 있는 남편은 무슨 사연이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하는 사업은 무엇이고 내가 도와 주어야 한다는 건 뭘까? 요즘 한탕 잡으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차린 사금융 업체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부동산 업자도 아니고, 풍기는 외양과 두사람의 대화 그리고 전화 받는 소리들이 감지할 단서라곤 하나도 없었다. 




"저, 제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데요?" 


"네, 그러시죠.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아까 말씀대로 오늘은 미팅을 좀 하시는 겁니다. 저희는 본래 열흘 정도는 저의 사업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 회사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의 영업에 대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관계와 한 식구가 되는 공감대 형성이 우리의 목표이고 또한 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길이 되니까요. 저희는 본사아 지사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립하고 분리해서 오너가 되어 나갔습니다. 선생님도 그들과 같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선생님을 보는 순간 분명히 무언가를 발견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고 또 잘 해내실 것이라는확신 말이예요" 




갑자기 난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강의조로 바뀌면서 나를 설득하는 그리고 같이 가자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단어로 배열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차를 다 마실즈음 핸드폰이 울렸다. 




"어, 어디쯤 왔냐 내가 잠깐 나갈께" 


"응, 다왔거든 동백옆에 하나은행 있잖아 거기로 나와라" 


"알았어. 그런데 시간이 좀 없거든.." 


"그래 알았어. 잠깐이면 돼" 




나는 란같은 여자에게 잠시 승락(?)을 얻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그 여자를 돕고자 취직을 승인 받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벌써 해보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미모와 장애인 남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가 거리에 몰리기 시작했다. 경적소리가 거슬렸다. 담배 하나를 꼬나 물었다. 콧구멍으로 뿜어 대는 담배연기가 가슴에서 옹크리고 앉은 잡념과 갈등들을 하늘로 날리려고 애를 써댄다. 




"야, 여기" 




윤식이였다. 손을 덥썩 잡았다. 총 생각이 났다. 이놈이 무슨 과제를 가지고 왔을까? 한번은 꼭 크게 도와 주어야 하는데... 그래 무슨 일이든 내가 해주마 내가 죽은들 그게 대수랴.




"인사해라. 첨단기술을 연구히고 계신 이박사님이시다" 




나는 머리를 꾸벅거렸다 




"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손이 나의 손을 끌어 당겼다. 


갸날프다고 느껴지는 손에는 작은 실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고 장발 머리가 왠지 예술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이재경이라고 합니다" 




그가 명함 한장을 쥐어 주었다 


"저는 변변치가 못해서 명함이 없거든요"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명함은 어쩌면 없다는게 더욱 자신이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 




죽에도 닿지 않는 말로 날 위로하는 그의 웃음 속에는 정말로 배려하려는 느낌이 배어 있고 윤식이는 내 등을 툭치며 쓸데 없는 소리 말라는 시늉을 했다. 




"다방으로 갈까?.?" 


"아, 아냐. 이 봉투 너 주고 갈테니까 가서 차근히 보고 전화해라. 난 또 갈데가 있어서.." 


"그냥가?" 


"응, 시간나면 술 먹으러 갈께" 




윤식이도 박사도 함께 금새 사라져 갔다. 


나만 덩그러니 남고 엘지증권으로 올라가는 증권 아줌마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주가가 박살이 났나보다. 미국의 다우가, 나스닥이 부시의 부시는 정책으로 말미암아 불안감에 의한 대폭락이 있었다든가. 테레비에서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뭐 아는게 있어야지 에라 모르겠다. 담배나 하나 더 죽이고 난같은 여자에게로나 가보지 뭐.. 마음에서 그렇게 정해주고 있었다. 마음의 지시대로 명령을 수행한다.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뭔가 복잡해지네..여하간 미팅이 있다고 했잖아 죽기야 하겠어. 가진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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