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 2부 15장
본문
감기 - 22 개미의 날개 9
모든 옷을 다 벗고 다리를 가지런히 모은채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 모습에 끌려 다가가는 날 향해 비스듬히 바라보고 있는 유경의 유려
한 굴곡은 부드러운 침대의 탄력에 힘입어 둥그스름하고 풍만한 엉덩이를 더욱 돋보이
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옷벗은 마야의 지독한 오마쥬였다.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면, 옷을 벗은 마야의 미소는 색정적이면
서 동시에 깊은 애정을 담고 있는 매혹적인 미**고 나는 말하고 싶다. 지금 눈앞에는
전라의 모습을 드러낸 마야의 미소가 그대로 재현되어 내가 침대로 오르기를 유혹 가득
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캔버스에 마야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던 고야의 그 당시 기분이 이러했을까. 지금 눈앞
에 펼쳐져 있는 이 한폭의 그림같은 강렬한 유혹에 선뜻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오래전 식어버린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은 감히 흠 잡을 곳
없는 명화에 덧칠을 하지 못 하고 망설이는 삼류화가의 초라한 모습, 그것이었다. 다만
영혼보다 솔직한 육체의 한 부분만이 터질듯한 몸부림을 치며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고
뇌의 깊이가 어떠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곁에 어정쩡한 모습
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려가는 내게 그림속 마야의 미소가 더 진해지더
니 따뜻한 손이 내 얼굴을 감싸고 천천히 가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난 고야의 손길을 빌려 그녀를 쓰다듬으며 공간과 시간의 벽을 넘어 그의 마음
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청력을 잃은 후 삶과 정신적인 면에서 황폐해진 시간을 보
내야 했던 고야. 한 여인을 통해 절망과 슬픔을 극복했던 그의 모습을 이젠 내가 모방하
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랬듯이 나 또한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을 통해 뜯겨져 나간
내 날개를 다시 찾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그녀의 몸을 뜨겁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옥죄어 오듯이 따끔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곤충이 화려한 날개를 가지기 전 반드
시 거쳐야만 하는 그 탈태의 고통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은 반드시 한번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중에 하나였다.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그 아픔을 잊기라도 하듯이
성급하게 그녀의 몸위로 올라가 가슴과 목에 키스를 하고 한 손을 올려 뺨을 쓰다듬었을
때, 끈적한 한숨과 함께 내 입술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입술이 아닌 뜨겁고 조그마한
그녀의 혀였다. 마치 맛을 보기라도 하듯이 내 윗입술을 훑고 지나간 그녀의 혀는 내 아
랫입술과 턱을 지나 목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두 남녀의 몸 사이에는 그 어
떤 것도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밀착되고 뜨거워진 혈액 만큼 날뛰는 심장의 박동수에
따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성기의 끝도 함께 율동을 하는 것을 그녀의 젖은 아랫배를 통
해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만날 때 마다 느낄 수 있었던 그녀만의 향기가 내 품에 안긴 후 점점 강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숨을 내 쉴 때 마다, 그리고 내가 그 숨을 들여마실 때 마다 그 향
기는 내 가슴을 강렬하게 움켜쥐고 그녀의 몸을 더욱 뜨겁게 탐하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마치 갈증에 타들어갈 때 바닷물을 마신 사람처럼 그 향기에 취한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탐하며 그녀를 끌어안고, 또 끌어안으며 지독한 갈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칠 수
밖에 없었다.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단단해져 가는 그녀의
유두를 배고픈 아이처럼 입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그런 내 성급한 모습에 자상한 어머
니가 아이를 달래듯이 내 등과 엉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그녀의 한 손을 잡아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서성거리고 있는 내 성기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하아... 뜨거워. 우영씨.. "
"유경이도.."
손가락 끝으로 훑어가며 내 성기를 쓰다듬어 올라가는 그녀의 움직임에 대한 보답으로
나 또한 그녀의 뜨겁고 습한 숲의 한 자락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며 내 손에 달라붙어 가는 그곳의 느낌은 마치 어릴적 갓 만들어
진 송편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맛이 보고 싶어졌다.
방금 내 손으로 만들어진 이 뜨거운 송편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그것을 내 입안에 넣
고 맛을 보고 싶었다. 단단하고 둥글게 영글어진 그녀의 과일에서 입을 떼고 배꼽을 지
나 골반뼈를 입술로 강하게 빨아가던 나는, 고개를 숙이고 살짝 오므려진 그녀의 두 다
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들어갔다.
역시 송편이었다. 넓게 깔려있는 검은 솔잎들 사이로 향긋한 향이 나는 두개의 송편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전부터 그녀의 몸에서 나기
시작하던 향기가 어디서 부터 시작되는지 드디어 알 수 있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솔잎
과 흙냄새가 어울러진 이 향기는 내 가슴을 진탕시키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머리를
멍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향기의 진원지가 솔잎의 사이에서 내가 맛을 보기를
수줍게 기다리고 있었다. 솔잎들을 옆으로 가지런히 정리를 한 후 송편 하나를 입에 물
고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하나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다시 그 옆의 송편을 입
에 물고 맛을 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송편을 모두 삼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의 허리
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시트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내 머리를 헝클으며 잡아 당
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악!..."
그녀가 내지르는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전 사라졌던 그 지독한 갈증이 다시 찾아오기 시
작했다. 그녀의 뜨거운 곳에서 솟아나는 이 젖과 꿀을 마신다면 타들어가는 목을 축여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것이 목을 더 옥죄여 오는 뜨거운 바닷물이라고 해도 도저
히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가 날 유혹하고 있었다. 이빨로 살짝 깨물고, 혀로 훑어
가며 맛을 본 후에 끈적하게 흘러 내려오는 그것을 허겁지겁 마시기 시작했다. 내 입가
에는 어디론가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 소리에 맞쳐 벌어졌던 그녀의 허
벅지가 내 관자놀이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행동은 이성의 강한 저
항 이전에 쾌감에 눈 뜬 육체의 본능적인 속삭임이었다.
목을 축인 후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가슴을 높고 낮게 세차게 움직이
며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떨리는 두 눈꺼풀과 붉게 달아오른 뺨은 그녀와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이 단 하나하고 말
해주는 듯 했다. 내가 몸을 일으켜 그녀의 가슴에 내 가슴을 맞닿게 하고 그녀의 뺨을 어
루만질 때 까지 그녀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혼자만의 세계에서 그 기쁨을 즐기고 있었
다. 이윽고 무거운 눈꺼풀이 힘겹게 열리고 눈물이 어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 그 눈
빛에 나 또한 몸을 담그고 함께 하고 푼 마음 뿐이었다. 고개를 숙여 메말라 있는 그녀의
입술을 침으로 축여 주고 뜨거운 그녀의 혀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후 그녀의 귀를 만
지며 속삭이듯 말을 했다.
"유경아.."
"응.."
"사랑해. 널 나만 보고 가지고 싶어.. "
애무 중에 갑작스러운 내 말에 당황스러웠는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녀는
짖궂은 표정으로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우영씨도 나만 바라보는 남자로 남아줄꺼야? 언제까지나?"
내 말을 따라하며 짖궂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녀. 땀이 살짝 맺혀있는 그녀의 뺨과
코, 그리고 입술에 입술을 맞춘 후 떼어내며 대답했다. 그 대답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온 것들에 대한 마침표였으며, 내 가슴속에 간직되어 온 오랜 불안감을 씻어주는 구원의
손길이기도 했다. 무수한 돌팔매질로 상처투성이가 된 내 영혼을 위해 안배된 또 다른
굴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응,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을께."
"나도.. 사랑해. 우영씨만.."
그녀의 대답과 함게 다시 시작하는 그녀와 나의 몸짓. 자석처럼 끌려가는 입술과 혀가
만나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하고, 그녀의 팔이 내 등을 훑고 지나 엉덩이로 내려가기 시
작했다. 그녀는 단단해진 가슴을 만지다 한 손을 내려 오래전 부터 어디론가 가고 싶어
발버둥치고 있는 내 성기를 잡아 뜨겁게 달아오른 갈라진 틈에 잇대었다. 그리고 그 틈
의 사이에 더 깊은 곳을 찾듯이 터질듯한 성기를 아래 위로 비비기 시작하자, 그녀는 나
의 그런 마찰을 즐기듯이 그 움직임을 따라 내 몸을 더욱 뜨겁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마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이가 새로운 것의 형태를 알아가는 것 처럼 감촉과 냄새, 그리고 귀
로 들리는 끈적한 청각만으로 서로의 몸을 파악해 가는 그녀와 나는 곧 참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온 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흐으윽...하악!"
폐속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소리가 그녀의 입을 통해 세어 나오고, 굳건한
모습으로 그녀의 송편 틈세를 비비고 있던 내 몸의 일부가 그녀의 몸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어가는 그 깊이 만큼 내 등과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는 그녀의 손톱
이 날을 세운 칼날처럼 내 피부를 뜯어낼 것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에게 가하
는 고통을 내게 고스란히 전가시킬려는 듯이 그녀의 좁은 틈세로 내 성기가 들어갈 수록
그녀의 손에 들어가는 힘도 점점 쎄어져만 갔다.
드디어 오랜 시간을 지나 그녀와 내가 하나가 된 느낌. 이건 단순한 육체의 쾌락이 아니
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화려한 탈태의 순간이었다. 내 몸을 부등켜 안고 전
율하는 그녀와 그런 그녀의 몸속에 파고 들어가며 함께 몸을 떨고 있는 나의 이 뜨거운
몸짓은 육체를 통한 소리없는 언어이고, 또 내 마음과 그녀의 마음을 이어주는 정신적인
교류였다. 강한 흥분속에 그녀와 나의 영혼이 얽메여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시작된 나의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를 향해 올라오기 시작하자,
난 양팔을 뻗어 그녀의 뒷머리를 잡고 강렬한 키스를 그녀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땀방울
인지 침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내 얼굴에서 그녀의 얼굴을 향해 방울져 떨어지기 시작
하고, 내가 내뱉는 거친 숨이 밑에 깔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오똑한 코안으로 스며들
어가는 것을 눈이 아닌 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악..하악.. 자기야.."
뜨겁고 거친 숨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부르는 그녀. 어느세 그녀가 날 부르는 호칭
이 바뀌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완전히 열린 것이라 생각이 들자 입가에 스며드는 웃
음을 어디로 돌릴 수가 없었다. 웃음을 숨기기 위해 그녀의 귀를 깨물면서 그녀의 이름
을 불렀다.
"유경아.. 사랑해."
"나도.. 자기야. 나도 사랑해.."
내 움직임에 따라 그녀의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것이 보였다. 내 몸이 그녀에게 들어갈
때는 얼굴에 잔뜩 힘을 주었다가, 나올 때는 무언가 허전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련
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질안을 가득 채우는 이물감과 그 부피 만큼의 흥분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자신은 모르는지 거친 숨과 의미없는 신음을 흘리며 내 몸을
끊임없이 강하게 조이며 안아 왔다. 내 몸의 말단에서 부터 시작하는 뒷머리를 찌르는
듯한 쾌감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런 느낌보단 이 상황을 오랫동안 유지
하고 푼 마음 뿐이었다. 지금 이 시간은 지난날 내가 수 없이 해왔던 싸구려 섹스가 아니
라 유일무이하고 모방할 수 없는 영혼의 교류였으며 내가 다시 비상하기 위해 반드시 겪
어야 하는 의식의 순간이었다.
"하악..아.. 하앙..."
가슴은 잔뜩 세우고 두 팔로 내 목을 끌어안고 울부짓고 있는 그녀. 그녀의 붉어지는 피
부만큼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느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
은 채 내가 움직이는 대로 자신의 몸을 함께 실어주고, 땀에 젖은 그녀의 긴 머리는 내
몸과 그녀의 몸을 마치 하나로 묶을려는 밧줄처럼 칭칭 감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허공
을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던 그녀의 다리가 내 허리와 등을 끌어안기 시작하고 이를 악
문 그녀의 얼굴 사이에 강한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온 몸에 가
위가 눌리면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무언가에서 억지로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녀는 고통과 쾌락이 혼재된 안개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내게
안겨 울부짓기 시작했다. 벗어날려는 그녀의 영혼을 달아오른 육체가 힘겹게 잡고 있었
다.
"아아아아아... 자기야.......아아아아.."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뿌듯한 마음에 감격스러워졌다. 그리고 그녀를 힘주어 안
고 아직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 내 몸의 일부를 강하게 마찰시키며 그녀의 몸안 깊
은 곳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강하고 빠르게 파고들어가
는 내 몸이 어느 순간 더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 아직도 굳어있는 그녀의 몸속에
내 몸의 일부가 세차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악.."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한 차례의 비명과 함께 이어지는 지독한 정적. 조금전까지 그
렇게 서로의 귀를 아프게 자극하며 울부짓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피스
텔안의 침실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고요함만이 머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들리기 시작하는 거친 숨소리와 몸으로 전해져 오는 심장의 두근거리는 진동.
그리고 땀이 피부의 굴곡을 타고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서야 억눌러져 있
던 숨이 갑자기 세어 나오듯이 그녀와 나의 입을 통해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나오기 시작
했다.
"하아아.. 하아..하아..."
"허억.. 헉헉.... "
아직도 뜨거운 그녀의 몸을 어루만져 주며, 그녀와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헝클어진 그
녀의 긴 머리를 손으로 가지런히 빗겨주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조금씩 고
른 숨을 쉬기 시작하는 그녀가 눈물이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내 뺨을 쓰다듬어 왔다.
내 몸을 끌어안고 내 입술에 혀를 넣고 키스를 해오는 그녀. 뜨거운 내 침으로 그녀의 목
을 축여주고, 그녀의 입술과 혀를 살짝 깨물어 준 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해 자기야. 정말 사랑해."
"유경아 나도.."
아직은 부끄러운 듯 내 품에 파고들며 안겨오는 그녀. 그런 그녀의 행동에서 결코 나보
다 2살이 많은 누나라는 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저 쉴 곳을 찾아 헤메던 새가 둥지를
찾아 파고드는 듯한 행동에 멀리 밀려나 있는 이불을 끌어와 그녀와 나의 몸을 덮었다.
나 또한 한동안 길을 잃다 오랜 시간끝에 고향을 찾아간 방랑자처럼 그녀의 몸을 가득
끌어안고 아직도 세차게 올리고 있는 내 심장의 울림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뜨거웠던
땀방울이 점차 사늘하게 식어갈 때 지금까지 묻어두었던 것을 꺼낼 시간이 다가왔다.
"주고 싶은게 있어. 이젠 자신있게 널 사랑할 수 있으니까.. 주고 싶어."
"풋.."
내 가슴에 안겨 숨을 고르고 있던 그녀는 내 말에 잠시 웃음을 흘린 후 고개를 들어 바
라보기 시작했다.
"자기가 여행 다녀온지 몇 개월이나 지났는지 알아? 그런데 이제 준다고? 안 받아! 큭큭"
"그 선물 말고.. 그 전에 먼저 주고 싶은 게 있어. "
"호오.. 기대 되는데.."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해 준 후, 옷을 입지 않은 채 침실밖에 나가 책상 서랍에서
두툼하게 포장된 박스를 꺼내 다시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벌거벗은 내 몸을 보고 살
짝 얼굴을 붉히며 얼굴을 옆으로 돌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녀를 살
짝 안아 준 후 그녀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뜯어 봐."
"이거 뭐야? 좀 무겁다.."
"열어 봐"
"훗훗.. 뭐지?"
투명한 메니큐어가 칠해진 그녀의 긴 손톱이 포장의 한 곳을 잡고 뜯어내기 시작하고,
이윽고 종이 박스안의 내용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에 열려진 박
스안에는 오래되고 낡은 일기장 몇 권이 담겨져 있었다.
"일기장?.. "
"오래전 부터 써온 건데.. 집에 가서 읽어봐."
"이거 나 보고 읽으라고 주는 거야?"
"그거 다 읽고 말해줘. 내가 어떤 놈인지.. 내 머리에, 내 가슴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량한
말로 너한테 설명하는 것 보다..이게 더 진실될 것 같았어. 이런 순간이 오면 줄려고 오
래전 부터 준비한 거니까."
"그 오래전 부터 준비한 대상이.. 딱히 난 아닌 거 맞지?"
"막연히 생각해 왔어. 어떤 가식도 필요없이 발가벗겨진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
을.. 처음 병원 옥상에서 널 봤을 때 어쩌면 너라면.. 이라는 상상을 하긴 했지만.."
그녀의 짖굳은 장난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날 가슴에 안겨오며 그녀는 조용하
게 듣고 있었다.
"너라면 다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모두 말해주고 싶고.. 그래서 내가 매일 꾸는 그 악몽
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을 너한테서 보게 되거든.."
"이 흉터처럼?"
내 가슴에 거미줄처럼 그려진 흉측한 흉터를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오는 그녀. 그
런 그녀의 손길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느끼다 살짝 키스를 해 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미혼모였어. 고등학교때 집에 돌아오시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강제로
당하신 후 날 가지셨는데.. 국민학교때 담임이 아이들이 다 있는 곳에서 날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이런 말을 했어. 더러운 미혼모의 자식..이라고."
굳어있는 내 얼굴을 느꼈던 것일까. 가슴에 파고들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위로 향하며
내 얼굴을 쓰다듬어 오고 있었다.
"한동안 방황했다고 할까. 어린 때였지만.. 그 말이 어떤 욕 보다 더 오랫동안 귀에 세겨
져 버렸거든. 그래서 한동안 아버지를 원망했었어. 그러다 군에 가기 며칠전에 아버지와
내가 한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기분은.. 화내고 욕을 해야 하는 대상이 사라져
버린 허탈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 모든 걸 가슴속에 담아두고 살아갔을
미련한 어머니에 대한 이유없는 분노라고 해야 할까.."
내 얼굴을 쳐다보던 그녀의 눈망울에서 물기가 서리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
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 좋은 분이셔. 다 알면서 애써 모르척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전
형적인 경상도 남자시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직까지 재혼을 안 하신 것도 얼마나 어머
니를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으니까.. 집에 가서 읽어 봐. 내가 말로 전할 수 없는 우리 가
족 이야기, 그리고 내 지난 모습들.. 다 담겨 있으니까. 너한테 다 보여주고 싶었어. 이게
널 사랑하는 내 마음이야."
"고마워 자기야. 소중하게 읽을게."
눈물 젖은 눈꼬리가 가늘어지며 내게 안겨오는 그녀. 내 품에 안겨 뜨거운 키스를 해오
며 내 몸을 쓰다듬어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을 일들에 대한 위로같은 느낌
을 받았지만, 값싼 동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난 상련의 행동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
도 알 수 있었다. 그 애틋한 감정에 잠시 식었던 몸이 다시 뜨거워지고 그녀의 한쪽 다리
가 내 허리를 넘어 감아오기 시작했을 때 난 그녀의 몸을 살짝 일어낸 후 그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닿게 하고 서로의 몸을 감고 있는 그녀의 몸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왜? "
"나도 그러고 싶은데.. 시간이 너무 늦었어. 아저씨한테 나 맞아 죽어."
"큭큭..겁은 많이 가지고.. "
"이제 일어나야지? 씻고 가면 자정 쯤 되겠다."
"하아.. 일어나기 싫은데.."
일어나기 싫어하는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벗어
놓은 그녀의 옷을 정리한 후, 내 옷도 챙겨와서 옷을 입고 그녀를 집에 보낼 준비를 했
다. 닫혀진 화장실 문을 통해 한동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이윽고 뜨거
운 물에 몸을 씻은 그녀가 수건을 몸에 두르고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닦은 그녀가 속옷
을 입을 때, 그녀의 뒤에서 브레지어 클립을 채워주고 브라우스와 치마를 챙겨 옆에서
건내주었다. 침대에 걸터 앉아 검은색 스타킹을 다시 신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반쯤 죽
어있던 성기에 다시 피가 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었다.
"뭘 그렇게 봐? 변태같이.."
"이쁘네.. "
"칫. 이게 누나한테.. "
"큭큭.."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걸어가 잠시 차에 타고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히터
를 결 때 오디오도 함께 틀었는지 차안에는 낮게 울리는 히터 팬소리와 함께 Carol Kidd
의 When I Dream이 흐르고 있었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을 만지며 노래를 듣고 있은지
한참이 되었을 때 그녀가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리며 내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
했다. 그리고 마주치기 시작하는 그녀와 나의 입술. 음악소리에 섞여 무언가 빨아 먹는
듯한 소리가 차안에 울리다가, 사라져 갔다. 한 손을 들어 그녀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그녀를 끌어안았다.
"차 조심 하구. 도착하면 문자줘. 기다릴께."
"응. 그동안 자기는 자고 있어도 돼. 큭큭.."
잠시 장난을 친 후 차에서 내려 문을 닫을려는데 그녀가 불렀다.
"자기야."
"응? 왜..."
"사랑해."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소리없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
는 말. 그리고 그 말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라면 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심정으로 흐믓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그녀는
뽀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자기는? "
난 대답을 하지 않고 그녀가 보이게 허리를 굽힌 후, 주먹진 왼손위에 오른손을 올려 돌
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두 손의 손목을 마주보게 교차시킨 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게 뭐야? "
"내 대답. 나중에 알아 봐."
"나 궁금하면 못 참는단 말야. 집에 가다가 사고나면 좋겠어?"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애도 아니고.. "
"쳇.."
"잘 봐. 조금전 수화가 무슨 뜻인지 말해줄께."
삐친 듯이 눈을 살짝 흘겨보는 그녀에게 난 입모양으로 조금전의 수화의 뜻을 말해주었
다.
"사. 랑. 해"
다시 눈꼬리가 가늘어지며 눈웃음을 짓는 그녀. 아무래도 눈웃음은 그녀가 기분이 좋을
때의 버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분이 풀렸는지 괜히 나에게 짜증을 내
더니 그녀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자기야 추워! 빨리 문닫아."
"큭큭. 차 조심하고.. "
오피스텔로 돌아와 그녀와의 관계 후 씻지 못한 몸을 뜨거운 물로 씻어준 후 몸을 말리
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잠이 들었다고 느꼈을 무렵, 내 핸드폰에서 메세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런지 쏟아지는 잠을 억지로 쫒으며 핸
드폰을 들고 폴더를 열었을 때 내 입은 그 어떤 날보다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기야. 언제나 오늘처럼 우리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자. 사랑해]
난 헨드폰의 메뉴바를 누른 후 영구보관함에 그 메세지를 넣고, 오랜만에 단꿈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야 할 일이 생겼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
다고 말씀드리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다.
[23부 개미의 날개 10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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