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X - 2부
본문
팔당을 끼고 도는 길은비아그라 구입방법 휴일이면 주차장을 방불케 하지만 평일은 한가로운 여유속에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드라이브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코스다. 시동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줄인 채 마치 꽃마차를 타고 달리듯 느긋하게 운전하는 기분은 정말 좋다. 하지만 내 기분과 달리 바쁜 일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우리의 저속운전이 못마땅한지 전광등을 껌벅이거나 경적을 울려대며 곡예하듯 위험한 추월을 한차례씩 하곤 꽁지가 빠지게 달려나가고 있다. 하긴 평소의 나였더라도 초보티 풍기는 운전자가 앞에서 서성거릴 때 중앙선을 넘어서라도 그 차를 따돌리거나 핸드폰이나 옆 사람 때문에 딴 곳에 신경쓰는 운전자를 만났다면 경적을 울리거나 차창너머로 육두 문자를 서슴없이 날렸을 것이다. 휴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운전하는 태도가 바뀌어 한가롭게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감을 느껴야 했다.
"속도 조금 올려요."
"급한 것도 없잖아."
"다른 운전자를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더구나 편도 일차선에서 서행하며 여유를 부리는 것은 다른차의 사고를 유발할 수 있잖아요."
"오늘은 도로가 한가해서 중앙선 넘어로 추월해도 괜찮아."
"그건 당신 생각이고 중앙선 넘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밟아요."
"이 길은 산책로라고 해도 될법한 곳이야. 우리도 한가롭게 달리지만 지금 빵빵 거리는 사람들도 급할게 없는 사람들이지. 정말 급한 사람들이라면 간선도로를 택했을 테니까."
"하긴 그래요. 어차피 이 길 끝은 간선도로가 연결되어 있는데 굳이 이 길을 택한 운전자라면 급할 것도 없는 사람들이겠죠."
"빨리 빨리에 익숙해 있을 뿐이야.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서두른다고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악셀을 밟는 것은 어쩌면 보편적 인간욕망의 단면일 수도 있어."
"바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목숨을 담보로 앞차를 추월하면서까지 욕망에 충실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길을 택해 달리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여유를 위해 카페를 찾거나 몸의 향락을 위해 모텔을 찾는 사람들일 뿐인데."
"이 길을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쾌락을 위한 것일까?"
"일부는 낭만을 위해 달릴 수도 있겠죠. 우리처럼."
"내가 그렇다면 남도 그럴 것이라 믿는 것은 옳지 않지. 카페의 전망좋은 자리를 남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속도를 조금 더 낸다고 생각하면 될테니까."
"강을 따라 카페 만큼이나 모텔이 들어선 걸 봐요. 급히 패달을 밟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결국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뻔하다니까요."
"저 사람들이 추구하는 쾌락의 의미는 뭘까?"
"육체적인 사랑을 구하는 것이죠."
"로봇의 머리는 맨 마지막에 구현할 생각인데, 그 놈의 머릿속에 사고력을 넣어야 할지 판단회로만 넣어야 할지 작은 고민이 되는군."
"지금의 과학수준으로 창조적인 사고력을 만들 수 있어요?"
"로봇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를 늦추면 초보적인 창조적 사고력까지는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아."
"창조적 사고력이라는 것은 인간만의 전유물 아닐가요?"
"인간만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극단적인 논리일 뿐이야. 조사된 바로는 고등동물은 창조적 사고력을 어느정도 갖고 있다는 것이지."
"설마, 개나 원숭이가 인간과 같은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죠?"
"왜 없다고 생각하지?"
"DNA를 분석해 보면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은 인정되지만 사고력 만큼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믿고 있어요."
"나는 인간 사고력은 물질작용이라고 보거든. 복잡한 DNA 지도가 하나 둘 풀리면서 인간의 비밀이 하나 둘 풀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풀 수 없는 것이 인간활동을 지배하는 뇌의 작용이지."
"그렇니까요. 인간의 뇌는 DNA 구조로도 풀 수 없는 신비스러움이 남아 있잖아요."
"과학적으로 인간뇌의 활동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감지되었는데 미세한 호르몬의 영향에 의해 인간 활동이 지배된다는 결론에는 일치하는 것 같아."
"슈퍼컴퓨터를 수없이 쌓아 놓아도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인간의 두뇌활동 시스템이 겨우 호르몬이라는 물질에 의해 지배된다구요?"
"그래, 다만 호르몬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파악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두뇌활동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은 물질이라는 것이지."
"정신세계는 신의 영역이라고 믿고 있어요. 비록 제가 컴퓨터를 전공하는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인간의 창조를 부정하지는 않으니까요."
"나는 달라.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과학자이므로 당연히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의 두뇌활동을 측정해서 얻은 결론이 물질이라면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도 아직 많겠군요?"
"그렇지. 호르몬의 양적 조절을 통해 신체에 나타나는 현상까지는 파악했지만 미세한 양의 차이로 다양하게 표출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거든. 하지만 이것은 계측 방법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고 있어."
"끔찍하군요. 정교한 계측방법을 개발해 낸다면 인간의 정신세계를 조절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테니까요."
"더 큰 문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복제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데 있어."
"그럼 호르몬의 양을 조절하면 사랑과 쾌락에 대한 구분도 할 수 있나요?"
"아직은 어려워. 많은 과학자들은 정신적 사랑을 귀하게 여기며 인간의 뇌파를 측정하고 있지만 작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
"그럼 정신적 사랑에 대한 호르몬의 영향을 측정해 냈다는 것인가요?"
"측정엔 성공했지. 정말 허무한 일이난거야. 아가페적인 사랑은 인간 고유한 정신세계라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감을 심어 주었지."
"아름다운 사랑 조차도 물질로 규명된 것이라면 삶의 의미가 무참히 짓밟힌 것이군요?"
"사랑이 결핍된 환자에게 적절한 호르몬 요법을 적용하면 무한한 사랑을 베풀수 있게된다는 것이지. 반대로 말하면 인정머리 없는 인간도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얘기고."
"육체적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과 정신적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죠?"
"과학적으로? 아니면 비과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말해봐요."
"둘다 똑같아. 정신과 육체의 사랑은 물질만으로 규명하면 동일 호르몬의 작용이거든."
"정신적 사랑은 무한한 희생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인간만의 정신세계라고 믿었는데 어떻게 육체적 사랑과 똑같다고 단정짓죠?"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가 바로 그거야. 호르몬의 양을 측정했을 때 두 사랑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지. 천사와 늑대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모호해졌다고나 할까? 명백한 차이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히 짓밟아 버렸으니..."
"그래도 당신은 두 종류의 사랑이 다를 것이라 믿는 구석도 있는거죠?"
"물론 두 종류의 사랑은 완전히 다른 작용이라고 믿고 있어. 다만 지금까지 연구된 보고서들이 갖고 있는 결론이 동일하다는 것일 뿐이야. 더 미세한 측정 방법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입증될텐데."
"만약 그런 차이점을 구별해 내지 못하고 정신을 물질세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믿는 상태에서 로봇의 머리를 만들어 낸다면 로봇의 사고력은 천사와 악마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오류를 피할 수 없겠네요."
"그래서 내가 로봇의 머리는 맨 마지막에 설계하려는 이유이기도 하지."
"현재까지 파악된 정신의 물질적 측정에 따라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동일하다면 밤마다 저를 죽여줘요. 사실 당신의 정신적 사랑은 완벽하다고 믿기 때문인지 몰라도 육체적 사랑이 배가 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적도 있거든요."
"아이쿠, 교수님한테 당할 재간이 없군."
한참 이야기 하며 달리는 사이에 차는 주차 공간이 적당하게 있는 카페 앞에 도착했다. 몇 대의 차들이 먼저 좋은 자리에 주차되어 있어서 그 틈새에 끼워 넣기 위해 핸들을 꺽기 시작할 때 주차를 돕는 젊은이가 달려와서 차 키를 달라고 한다. 우리는 차키를 맡기고 육중한 나무대문을 연상케 하는 현관을 넘어 침침한 분위기의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있는 곳엔 군데군데 촛불이 밝혀졌고 통기타 가수의 구성진 노랫말에 맞춰 흠뻑 빠져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이렇게 한적한 카페를 찾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있다. 첫째는 이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시간에 얽메이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아주 드물게 이런 시골 산속에 처박혀 있는 카페를 찾고 싶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나만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개적이지 않은 자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 그래선지 이 길을 지나면서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고 언제라도 시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면 제일 먼제 이 카페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저 구석으로 갈까?"
"어휴, 우리가 애들인가. 그냥 창가쪽에 앉자."
더 어둠이 깔리기 전에 우리의 자리에는 촛불 하나가 밝혀졌다. 낯선 통기타 가수의 끓는 애절함이 귀에 들어올 틈도 없이 뜨거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코 끝으로 은은한 향기를 마시고 있다. 초라한 생쥐의 꼴일 때 만난 숙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부등켜 안아주는 멋진 파트너로 이 자리에 있다. 가랑가랑 촛불이 흔들리며 밝고 어둔 빛을 뿌릴 뿐이지만 내 앞에 앉은 숙의 모습은 성스럽고 경건한 영혼의 마음이 가득차 보였다.
"사랑이란 것을 저울질 하려는 사람들이 왜 존재하죠?"
"쓸데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짓거리일 뿐이야."
"하지만 당신도 그 사람들의 연구결과에 목메달고 살잖아요."
"발표된 결과니까 흥미를 가져 보는 것 뿐인걸."
"당신 정말 생각하는 로봇을 만들 자신 있어요?"
"없어. 그래서 머리는 빼고 몸뚱이만 만들어야겠다 싶은거야."
"그러다 남들이 머리 부분을 만들어 버리면 몇 년간 고생한 것이 허사가 될꺼 아닌가요?"
"그렇게 되겠지.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그럼 당신은 인간 두뇌를 물리적으로 규명하여 설계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나보죠?"
"지금은 그래."
"로봇 프로젝트에서 머리를 빼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머리가 없어도 작동하는 로봇이 설계되야 한다고 믿고 있어.
만약 숙이라면 로봇의 손을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제일 먼저 뭘 하겠어?"
"당연히 관절 부위를 먼저 설계해야죠."
"바로 그거야. 로봇을 설계한다면서 머리부터 생각하면 손가락은커녕 발가락도 만들 수 없게 될꺼야. 나는 각 유니트 단위로 독립적인 설계를 추진하고 싶어. 손이면 손, 발이면 발로 세분해서 말야. 메인 컴퓨터로부터 명령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반사신경에 의해 각자 자신의 기본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서브컴퓨터를 설계할 계획이야. 죽은 개구리도 일정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심장이 뛰는 것 알지? 로봇도 각 부위별로 독립적인 명령체계를 갖도록 한 다음에 종합적인 지휘체제에 의해 통제받게 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관절 부위를 따로 떼서 연구하고 손가락과 발가락도 따로 떼서 연구하면 연구팀의 규모가 엄청 커지겠네요?"
"그래서 송사장과 함께 일하면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지."
"당신이 꿈꾸는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내 재력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어제 던져준 창투사 자료를 빽빽하게 준비해야 할 것 같거든."
"난 당신이 간단한 청소로봇이나 심부름 로봇 정도를 계획하고 있다고 믿었거든."
"응, 이번 프로젝트도 송사장의 올챙이 프로젝트처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진행할 계획이야.
우선 상용화해도 될 부분만 골라 청소로봇을 만든다든지 어린이 교육용 로봇을 만든다든지 하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겠지."
"우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대박이 예상되는걸요?"
"내가 왜 머리 부분을 나중에 하고 각 유니트 단위로 컨트롤을 하려는지 대충 알겠어?"
"그럼요, 당신은 항상 남을 배려하는 바가 깊은 것 같아요."
"설마 내가 기획을 잘못해서 숙의 전재산을 말아먹기야 하겠어?
나도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해야할텐데 이렇게 휴가를 준다니 정말 다행스럽다니까."
"당신이랑 몇 분만 마주쳐도 일에 뭍혀 버리니 큰일 이에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일도 휴식이라지만 우리가 좀 심했던 것 같군."
“맞아요. 이제부턴 업무적인 얘기는 함구하고 저랑 당신에 관한 얘기만 밤새도록 해요.”
“좋아. 사랑스럽다는 말부터 먼저하고.”
“사랑이란 말은 언제나 듣기 좋은 것 같아요.”
“뭐? 딴 사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해도 감동하겠단 뜻이야?”
“아뇨, 당신으로부터 전해진 그 말에만 반응하는 걸요.”
“내 손을 잡아 줘. 방황이 끝나도록 도와줘.”
“알았어요. 밖에선 당당한 당신이지만 일단 내 품에 들어오면 나의 아기일 뿐이란걸 느껴요.”
“이렇게 큰 아일 꿈꾼단 말야?”
“불가능한 현실 때문이라서 당신을 아기라고 믿고 싶은가봐요.”
나는 그런 숙 얼굴표정이 더 애처럽게 변해 버리기 전에 얼른 그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꼭 쥐어진 작은 손을 통해 따뜻한 사랑이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우수에 젖은 듯한 촉촉한 눈망울이 촛불에 드러났지만 더 이상 감정에 휘말려 눈물을 떨구게 하는 것 보다는 밝은 얘기로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싶었다.
“숙, 당신에게 김태정의 가을사랑을 바치고 싶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숙은 혼잣말로 가을사랑을 읖조리기 시작했다.
“그대 사랑, 가을사랑 단풍일면 그대 오고
그대 사랑, 가을사랑 낙엽지면 그대 가네“
아름다운 목소리가 카페안에 흐르자 통기타 맨은 자신이 부르던 노래를 멈춘 채 숙의 노래에 반주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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