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2부 1장

본문

제 2 장 수난시대 비아그라 구입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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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는 남은 방학 기간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자투리 시간에는 뭐든 읽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 탓에 신문이나 월간지 등을 읽으며 보냈다. 신문을 보면서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주식이었다. 심심한 시간에 신문기사와 주가와의 관계를 연습장에 그려가며 연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면서 방학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로 받은 돈의 얼마를 재미삼아 투자해 보기로 했다. 또 하나,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자동차였다. 후의 친구가 매달 자동차 잡지를 사서 모으고 있었는데,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한번 읽고선 아예 지난 1년 치를 가져와 읽었다. 잡지를 읽으며 순진을 옆자리에 태우고 국도를 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후는 재수 시절 면허증을 따 놓았기 때문에 이번에 중고차라도 한대 구입하고 싶었다. 집에서는 반대하시겠지만,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진과는 적어도 하루 세 번이상은 통화를 했다. 후의 현장 아르바이트가 태풍으로 사흘 정도 쉴 틈이 생겨 서울에 놀러 갔었지만 그녀와의 2차전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들이 여관의 대실이라는 아주 쓸만한 방편을 몰랐고, 순진의 집에서는 이유 없는 외박은 철저히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진한 키스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후가 서울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학기 때 과외를 하던 집에서 연락이 왔다. ‘주만’이라는 고 3짜리 사내 녀석이었는데 반항기가 심해 한번 곡소리 나게 패준 적이 있었다. 다행이 녀석이 입을 다물어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내심 뜨끔했다.




“네 주만이 어머님! 날도 더운 데 건강하시죠? 그런데 어쩐 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네… 다름이 아니라 주만이가 성적이 많이 올라서 고맙다고 인사도 할 겸해서 연락 드렸어요. 방학 전까지는 그저 그렇더니, 방학 때 친 모의 고사에서 전체 석차가 100등정도 올랐거든요.”




아들과 몇 살 차이는 나지 않지만, 그래도 선생님이라고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시는 주만이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서, 후가 날짜를 따져보니 주만이 후에게 두들겨 맞은 뒤부터 후의 지도를 잘 따르던 것이 기억나 실소를 금치 못했다.




“네, 기쁘시겠네요. 안 그래도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녀석이 선생님께 모질게 꾸지람 들었다고 하더군요. 요새는 집에서도 말도 잘 듣고……. 그리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방식을 따랐더니 과목당 10점 정도가 올랐데요. 그래서 말인데, 방학이 끝나면 주만이 수능 때까지 봐주실 수 없을까요? 인석도 원하는 것 같구요. 성적도 올려주셨고 사람도 만들어 주셨는데, 보수도 섭섭지 않게 드릴게요. 말 안 들으면 따끔하게 혼도 내주시구요.”




“아… 하… 녀석이 그런 말도 하던가요? 말을 안 들어서 손을 대긴 했는데, 어머님 말씀도 안 드리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녀석이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네요.”




“그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저번처럼 월, 목 이틀하구 3시간씩 하면 되겠죠? 올라오면 연락주세요, 선생님.”






방학이 끝나기 사흘 전에 후는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 현장에서 번 돈이 꽤 많았다. 50일 남짓 일을 했는데, 회사에서는 일당을 5만원으로 계산해준데다 후가 열심히 일했다며 보너스 조로 300만원의 아귀를 맞춰주었다. 과외도 고 3짜리는 한달에 30, 고 2 둘은 20씩 받았다. 그의 통장은 어른들이 주신 용돈과 함께 500만원 가까운 현금이 들어있게 되었다. 그 돈으로 그는 등록금을 냈지만, 장학금 덕에 등록금은 150만원도 되지 않았기에 350만원 정도가 남게 되었다. 게다가 며칠 전 과외 자리도 충당해뒀다. 그래서 후는 부모님께 이번 학기에는 용돈을 부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가 대견하다며 좋아하셨지만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아직까지 그들에게 후는 어린애였다.


남은 사흘을 작별인사를 하며 보낸 후가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개학하는 날 아침이었다. 1학기 때처럼 일찍 올라갈 필요가 없었다. 수강신청은 방학 전에 해두었고, 그리고 개강 첫 주에는 출석을 부르지 않는 통례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숙사에 여장을 푼 그는 순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종로에서 만난 그들은 증권회사를 찾아갔다. 후가 방학동안 생각하던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후는 어렸지만, 거래소의 직원과 대화가 될 만큼 사전 지식이 충분했다. 한 시간여의 상담을 마치고 후가 구입한 주식은 공기업을 인수한 어느 이동통신회사의 것이었다. 증권회사의 직원은 통신사업은 아직 초창기 산업이라 위험성이 크다고 했지만, 후의 생각은 달랐다. 외국 영화에 나오는 휴대전화나 호출장치 등을 봤을 때 국내에도 잠재고객은 충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후는 100만원의 주식을 거래하고 증권회사를 나섰다. 증권회사에서의 후의 모습은 이제껏 알고 있던 착하고 성실한 후가 아니었다. 냉철한 판단과 어른까지 주눅 들게 하는 말솜씨 등은 한살 차이지만 확연히 자신보다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들게 했고 믿음이 갔다.


증권회사를 나오자 저녁시간이었다. 둘이서 첨으로 함께 갔던 전통주막에서 저녁과 함께 술을 마셨다. 주막은 예전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컨셉인지 국밥 같은 것도 팔았다. 국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순진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저어… 후야!”




“응. 왜 그래?”




“나 부탁이 있거든. 아니 사과할게 있어서…….”




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해보지만 그녀가 자기에게 사과할 건덕지는 없었다. 후도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다.




“실은 순영이 있잖아. 내가 걔 과외 했었거든. 순영이 가르쳐주고 집에서 과외비 조로 용돈을 받았었는데, 내가 문과라서 그런지 언어랑 외국어는 되는데, 수리1이랑 수리2 이과과목은 점수가 안 올라. 그래서 집에서 다른 과외를 구하자고 하는데, 내가 후, 너를 이야기했거든. 니 허락도 없이 집에다 한다고 말해버렸어. 먼저 이야기하고 허락 받았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방학 끝날 때에 나온 이야기라 말할 틈도 없었고, 그땐 너도 바쁜 것 같아서 얘기를 못 했어. 너도 다른 일 많을 텐데 공부할 시간 뺏는 거 아냐?”




후는 순진의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는 탁자를 넘어 순진의 손을 잡았다.




“그게 뭔 대수라고 그래. 오히려 내가 고맙다야. 지방학생이 그런 거해야지 용돈 벌고 그러는 거지. 잘 됐다.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뛰어다니는 수고 안 해도 되고 합법적으로 마누라랑 놀 수도 있잖아. 나야 좋지 뭐? 근데 시간이랑 보수는 얼만데? 그게 중요하걸랑. 헤헤…….”




“해줄 수 있는 거야? 고마워, 후야! 시간은 일주일에 이틀, 두 시간씩. 보수는 한달에 30만원 주실 거래. 나 생각해서 좀 싸다고 뭐라 하지마. 알았지?”




“순영이 고 2잖아. 고2가 두 과목에 그 정도면 후한거지. 나 대구에서 과외했지만, 고2 전과목 손봐주고 20만원 받은 걸. 시간도 같았구.”




“지방이지만 너무했다. 아무리 아는 집이라도 그렇지… 서울에서 그 정도하면 최하 50만원은 받아. 함튼 하는 거다. 알았지?”




“오케이, 내가 서비스로 수리2 문과 쪽까지 커버해주지. 대신 다른 과외도 있으니까 시간은 내가 정할게.”




“진짜? 이따 부모님께 말씀드릴게. 다음 주부터 할 거니까 이번 주 중에 우리 집에 인사드리러 와야 해, 알았지? 참참, 내 정신 봐. 이걸 깜박하고 있었네.”




그러면서 순진은 가방 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속에서 나온 것은 즉석식 복권 두 장이었다.




“웬 복권이야?”




“실은 이거 방학 때 니가 서울 왔을 때마다 너 서울역에 바래다주고 거기서 하나씩 산거야. 니가 가고 나니까 허전하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말야. 아직까지 안 해봤어. 실은 나 이런 거 해본 적이 없어서 너랑 같이 하려고 놔뒀어. 두 개니까 하난~ 후 꺼, 하난~ 내 꺼.”




후는 순진이 주는 복권을 받았다. 둘은 한 장씩을 들고 있었다. 후는 동전을 꺼내 순진에게 주고 자신도 하나를 왼손에 쥐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왼손잡이였지만 고지식한 어른들 덕에 오른손도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양손잡이였다. 동전을 왼손으로 잡은 것은 마주 앉은 순진에게 복권 긁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복권을 식탁에 올리고서 오른손으로 고정시키고 왼손의 동전으로 긁으며 말했다.




“자, 거기 은박지로 감싼 것 같은 부분 있지? 응 그래 거기 말야. 거기를 동전으로 긁는 거야. 잘 하네.”




“근데 이거 어떻게 보는 거야?”




후는 당첨금부터 긁었는데 1,000만원이 나오길래 포기하고 순진의 것을 봤다. 당첨금액이 500원이었다.




“거기 행운번호가 보이지? 그거랑 밑에 있는 숫자 중에 같은 숫자가 있으면 당첨되는 거야. 행운번호가 3이니까, 5, 7, 8, 3, 0… 이야 500원 당첨이다.”




“정말? 당첨된 거야? 그래도 너무 짜다. 본전이네. 근데 후는 어떻게 됐어?”




“응? 내껀 당첨금이 1,000만원이니까 안 될 거야. 그래도 긁어나 보자.”




후는 행운번호부터 긁었다. 순진과 같은 3이 나왔다.




“우린 인연인 가봐. 행운번호도 똑 같잖아?”




순진이 후의 질문에 그렇다고 하며 후를 재촉했다. 후는 계속해서 숫자 하나씩 긁어갔다.




“5… 9… 8… 1… 2… 잉? 꽝이네. 하기야 이런 건 아무나 걸리는 게 아니니까. 보자 경품도 꽝이네. 이따가 정류장가서 니 꺼나 바꾸고 가자.”




“에이~ 아깝다. 걸리면 좋았을 텐데……. 근데 정류장에서 어떻게 바꿔.”




후는 만원 이하의 복권은 세금이 붙지 않아서 정류장에서 금액에 맞는 복권으로 돌려 밨을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이후의 대화는 만약에 1,000만원의 복권이 당첨됐다면 어떻게 할까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후는 주식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주식투자를 이야기했고, 순진은 사교성은 좋지만 제약을 싫어하는 후의 성격을 빌미로 후가 작은 자취방 하나를 얻자고 했다. 소주를 세병 정도 마시고 그들은 전통주막을 나섰다. 후도 기숙사 점호에 들어가야 했고, 순진도 늦은 시간이었다. 탑골공원 앞 정류장에서 후는 순진의 복권을 바꿨다. 서서 긁어보니 당첨금이 또 1,000만원이였다.




“오늘은 안 되려나 보네. 나중에 바꿀걸 그랬나? 어디 보자. 행운번호가… 또 3이네?”




“이번 건 잘하면 될지도 몰라. 계속 3이잖아.”




“에이 이런 건 아무나 걸리는 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9… 5… 4… 3… 1… 잠깐 3…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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