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3부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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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볼륨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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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는 전날과 비슷한 방법으로 그녀를 여관에 데리고 갔다. 대신 이번에는 술이 없었다. 안겨오는 그녀에게 후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부드러운 살결이 주는 흥분을 이길 수 없던 후는 그녀에게의 미안함을 정으로 바꾸어 창밖이 밝아올 때까지 그녀를 몰아붙였다. 후는 뻗어 버린 인희를 누이고, 침대 맡에 쪽지를 남겨 두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이틀간 외박했으니 부보님 걱정하실 거야. 일어나면 얼른 들어가. 들어가면 바로 아침 챙겨먹고……. 그리고 얼른 새 직장 찾을 생각해야지. 내가 걱정하잖아. 그러니까, 힘내세요. 선생님! 파이팅~~!!’
밤새도록 땀을 흘린 후는 아침 점호 때에도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사감이 뭐라고 했지만, 그의 귀엔 자장가로만 들렸다. 학교에서도 강의 시간동안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소연 세미나에서도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형들에게 꾸중을 들었다. 술자리가 시작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연거푸 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술도 그의 괴로움을 달래진 못했다. 보다 못한 순진이 집에 가야한다며 그를 데려나갔다. 소연 내에서는 후가 항상 순진을 바래다주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러나 어딜 가나 놀리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야~~! 그러다가 너희 둘 정분나는 거 아니냐? 순진아, 조심해라. 저 자식 취해서 덮칠지도 몰라. 그럼 니 인생 쫑이야! 크큭……!”
다음 주에 군대를 가는 달이었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회원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이미 술기가 돈 후는 택시를 잡아타고 순진의 집으로 향했다.
“자기야, 무슨 일 있어? 오늘 이상해.”
“어~~ 무, 무슨 이은……. 그으… 렁 그 아 키워.”
후의 꼬부라진 목소리에 순진이 한숨을 내쉰다. 걱정스런 표정의 순진이 대문 안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골목 어귀엔 순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후가 걱정된 것이리라. 그는 순정의 어깨에 잠시 고개를 의탁했다. 그런데 갑자기 후가 술이 확 깼다. 그는 순정의 어깨 넘어 기숙사 정문에 서 있는 인희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순정을 데리고 돌아섰다.
“여보야~~!! 나 너무 취했거든……. 글고 넘 피곤해. 오늘은 그냥 가줘. 미안해.”
후의 낌새가 이상했으나, 순정은 드러내지 않고, 그에게 등이 떠밀려 택시를 타고 있었다. 순정은 택시 뒷창문으로 비틀거리며 기숙사로 돌아가는 후를 바라보았다. 순정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후가 이미 정문을 들어선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인희마저 돌려보낸 후는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골아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후는 사감실에 불려갔다. 사감은 화난 얼굴이었다.
“223호실 천 후, 건축공학과 1학년, 학번 96XXXXXX. 맞지?”
군대에서 대위까지 지낸 사감은 군대식 말투를 즐겨 썼다.
“맞습니다.”
“자네, 요새 생활태도가 너무 불량하다. 알고는 있나?”
“죄송합니다.”
“나도 자네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네만, 나도 남들이 보는 눈이 있어서……. 다음 주 안으로 기숙사를 나가게.”
“네, 알겠습니다.”
후는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사감은 그가 매달릴 것을 기대했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후는 근래 들어 기숙사를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인희가 자꾸 찾아오는 것도 그랬고, 점호불참이 많아지니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시간이 공동생활 속에서 자꾸 줄어만 가는 것이 불만으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후는 사감이 퇴실조치를 내렸으나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후는 그날 오후 공강시간을 이용해 순진과 함께 방을 보러 다녔다. 세 번째 복덕방을 찾았을 때 그들은 맘에 쏙 드는 방을 찾을 수 있었다. 수도학원 뒤편의 어느 상가의 옥탑을 개조한 방인 듯, 5층 옥상바닥에 판넬로 지어져 있었지만, 보일러도 있었고, 작은 주방과 욕실 겸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방안은 누군가 살고 있는 지, 아직 침대와 옷가지들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5평정도 되는 방은 빈 공간이 많았다. 그리고 넓은 옥상을 마당처럼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젊은 총각이 혼자 쓰던 방인데, 장가를 간다고 급하게 내놨어. 지금은 아무도 안 살아. 침대나 옷장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놔두고 간 거야. 쓰고 싶음 쓰면 돼. 대신 냉장고나 다른 살림들은 사야 될 거야. 자, 어때? 이만하면 신혼살림으로도 딱이야. 짐도 지금 당장 들여도 되고……. 계약할까?”
후덕하게 생긴 복덕방 아주머니의 설명이었다. 후는 통장에 남은 돈 200만원을 찾아와 1,200만원의 방값의 일부를 계약금으로 냈다. 그는 계약서를 쓰면서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순진의 이름으로 계약을 했다. 복덕방 아주머니가 신혼부부라고 한 것에 기분이 좋았던 순진에게 후가 주는 선물이었다. 그 덕에 그녀는 정말로 후의 아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머지 전세금 1,000만원은 순진의 이름으로 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하기로 했다. 이미 그녀의 주식은 몇 달 사이 50%의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대출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은행이자보다 주식이 벌어들이는 이윤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주식을 파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후와 순진은 은행에서 대출금을 받아 나머지 전세금을 치렀다. 기숙사로 돌아간 그들은 세피아에 짐을 실었다. 지난 며칠간 인희가 계속하여 기숙사를 찾아왔기 때문에 조바심이 난 후는 미리 준비해둔 짐을 재빨리 차에 실었다. 짐이라 봤자, 책 몇 권과 옷가지, 이불 등이 전부였다. 기숙사 사비가 반환되어 나온 것으로는 황학동 중고시장에서 고른 냉장고와 세탁기, 가스렌지, TV 등을 구입했다. 순진의 어머니가 집에서 남는 그릇이며, 수저, 냄비 반찬 등을 주셨기에 그런 것들은 살 필요가 없었다. 이른 점심을 자장면으로 때운 후가 동사무소에 가서 임대차보호권을 설정하고, 전입신고를 마쳤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그가 대충 무거운 것을 옮기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그는 순진에게 짐정리를 맡기고 동대문 운동장에 가서 역기와 아령 등을 사왔다. 기숙사에서는 마당에 그런 것들이 놓여있어서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따로 나오니 운동기구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얼추 뒷정리가 끝나자 늦가을 해가 지려고 했다. 그들은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왔다. 인스턴트 돈까스를 튀겨 케챱을 뿌려 먹은 그들의 손엔 와인이 들려 있었다. 비록 와인잔이 아닌 맥주컵에 따라진 와인이었으나 그들의 핑크빛 분위기를 깨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엔 피곤하지만, 행복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린 그들 뒤엔 새로운 보금자리인 침대가 시트 대신 그가 쓰던 이불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삐걱거리던 침대가 조용해지자 후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순진이 천장으로 퍼져 나가는 담배연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꼭 신혼부부 같지 않아? 나 정말 여기서 살고 싶어.”
“조만간 그렇게 될 거야.‘
순진은 아직도 복덕방 아주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후는 담배를 끄고 그녀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녀는 그의 손에 전기가 통한 듯 말없이 그의 돌출부를 찾아 쥐었다. 잠시 후 그녀의 위에서 왕복운동을 하던 후는 그녀의 체액이 시트를 적시는 것을 보며, 앞으로 세탁비가 많이 들 거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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