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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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젊은 남자




- 3 -




“응, 순진이니? 얼른 들어와.”




순진은 평소 잘 입지 않던 치마정장을 입고 있었다. 후의 어머니를 의식한 탓이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어머니가 반기신다.




“아이고, 야가 웬 일이고? 들어가가 좀 쉬다 안 오고……?”




“아니에요, 어머님.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제가 도와드려야죠. 참, 어머님 식사는요?”




철이 없는 편인 순진이치고는 말을 예의바르고 싹싹하게 잘 하는 것이 집에서 배워온 것 같았다. 후는 타는 속에 말은 못하고 안절부절 이지만 어머니께선 순진이 맘에 드는지 내내 즐거우신 표정이다.




“안 그캐도 야캉(얘랑) 방금 뭇따.”




“어머님 이거 파전인데요. 저희 엄마가 드리래요. 그리구 이건 김친데요. 아침에 보니까 떨어졌더라구요. 그래서 좀 가져왔어요.”




“아이고~~, 머 이런 걸 다 주시노? 야이야 어여 들어온나.”




“네, 어머님! 후야, 몸은 좀 괜찮아? 어머님 놔두세요. 제가 데워 올게요.”




“아이다. 그래도 손님 아이가? 야하고 야그나 하고 있그라.”




어머니가 순진이 가져온 파전을 데우러 간 사이 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누가 엄마한테 전화하래? 나 깜짝 놀랐잖아?”




“나나 순정이나 여기 계속 있을 수도 없잖아. 그리구 걱정하실 텐데 미리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객지에 있는 자식이 다쳤다고 그러면 어느 어머니가 좋아하시겠어?”




“그럼 이야기 안 해? 어차피 나중에 흉터 보시면 아실 거잖아?”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누가 니 맘대로 하래? 뭐 잘했다고 말대꾸야?”




“내가 못할 짓 했니? 정말 너무해. 남은 걱정돼서 그랬구만…….”




“순진이 말이 맞다. 니는 한 겨울에도 웃통 훌렁 벗고 뛰댕길 놈인데 엄마가 모르지 싶드나? 됐다. 순진아. 저누마가 머라 카든동(그러든지) 내뚜삐라.(놔둬버려라)”




어머니가 문을 열고 말씀하시자 후는 입을 다물었다. 순진은 그에 힘입은 듯 어머니 뒤에 숨더니 혀를 쭉 내민다. 후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었다. 그런 기분도 잠시, 그는 이내 어머니와 순진 사이에 끼여서 따끈한 파전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순진이 마음에 드시는 지 자꾸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순진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안마까지 해드린다. 어머니께 점수를 따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후는 말없이 파전만 집어먹다가 자신보다 순진에게 더 잘해주시는 어머니가 못마땅한지, 자신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순진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심통이 난 건지 한 마디 한다.




“아이고~~! 아줌마~! 아예 이참에 대구 델꼬가가 아부지한테 인사라도 시키까?”




“그라든지…….”




“어머~! 그래두 되요, 어머님?”




순진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어머니는 웃으며 받아 치신다.




“그랄래? 카마 이번 명절에 인사드리러 온나.”




“네~~! 어머님. 예쁘게 하구 갈게요.”




“택도 없는 소리~~!”




후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후는 처음에는 어머니께는 사투리로, 순진에게는 표준말로 이야기하다 혀가 꼬이자 아예 사투리만 쓰고 있었다.




“닌 닥치고 가마이(가만히) 있그라. 그라고 보이 니 웃통까고(윗옷을 벗고) 머하노? 여자친구 앞에서 남사스럽지도 않나? 얼른 입어라.”




“아이고매~~! 이거는 순진이 자가 상처 덧난다고 벗겨논 긴데, 엄마가 와(왜)? 머 그라고 며느리 대하듯 그카시디?(그러시더니) 아줌마한테 며느리만은 내한테는 마누란데 쫌 보마 어떠노? 안 그렇나?”




순진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하는 그를 보며 마마보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본 후의 어머니는 어른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억센 사투리 속에서 주책없는 동네 아주머니를 보는 것도 같았지만, 그의 어머니를 대하며 후가 왜 정이 깊은지를 새삼 깨닫는 순진이었다.




“이 빙시 같은 기 어디가 그래 좋드노?”




“그래도 우리 후가 착하고 성실하잖아요. 얼굴도 어머니 닮아 미남이구…….”




순진은 ‘우리’라는 말을 강조하며 대답을 했더랬다. 그런 그녀의 아부성 발언에 어머니는 몸 둘 바를 모르며 좋아하신다.




“앞에 건 맞는데 뒤데 껀 아이다. 주절주절~~.”




후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다 자기가 기여들 자리가 없음을 알고 한숨을 내쉬며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회복하는 도중이라 피로에 약해진 그는 접시 깨지기 일보직전인 수다를 한쪽귀로 흘려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선잠은 순정이 찾아오는 바람에 깨고 말았다. 순정도 어머니 때문인지 평소보다 예쁘게 차려 입고 온 것이 티가 났지만 그녀의 출현으로 인해 이제껏 좋던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식을 좋아하는 여자애들 앞에서 어느 한 쪽을 잘 해주기가 민망한 어머니께서 말수를 줄인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녀들도 어머니께서 말씀이 없자 먼저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고, 바닥에 내려왔던 후도 벗고 있던 윗옷을 입고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이후 네 사람이 함께 저녁을 먹을 때에도 식탁은 내내 조용하기만 했다. 후가 궁금함을 나타내기 이전까지는…….




“순진아! 오늘 순영이 왜 안 와?”




“응, 그거? 네가 아프다니깐 엄마가 너 나을 때까진 잠시 쉬래. 참, 니 다이어리 뒤져서 주만인가 걔네 집에도 전화해뒀어. 주만이한테 여기 전화번호랑 위치 가르쳐 줬으니까 시간 맞춰서 찾아올 거야.”




“고마워. 근데, 내일 아버님 뵙기로 했잖아. 그건 어쩌구?”




“아빠가 너 아르바이트 구해 주실려구 부르신 거래. 네가 건축공학과라고 하니까 현장에서 경험 좀 쌓게 해주시겠데. 그것두 다 나으면 그때 이야기 하자셔.”




“응, 알았어. 우물우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하는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불편하신 점이 많은지 은근슬쩍 축객령(逐客令)을 내리셨다.




“야들아, 시간도 마이 늦었고 하이 인자 집에들 가봐라. 후는 내가 이쓰이(있으니) 걱정 말고…….”




시스터즈는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후에게 구조요청을 해보지만, 그도 한 사람이라도 빨리 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기 때문에 모른 척했다. 그녀들이 머뭇거리자 어머니께서는 다시 한 번 재촉하신다.




“어른들 걱정 하실라? 어여 안 일라고 머하노?”




그제 서야 그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갈 채비를 했다. 어머니께선 후에게 누워있으라 하시고는 당신이 큰길까지 바래다주시겠다며 따라나섰다. 어머니가 앞장서 계단을 내려가면서 말씀을 꺼내셨다.




“야들아, 수고 많았다. 고맙데이.”




“아니에요, 어머님.”




“네, 어머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때문에 후가 다친 건데요.”




“그래도 부모 맴이라 카는기 안 그렇다. 그래, 내 머 쫌 물어보자. 너거들(너희들) 저 머스마 좋아하재?”




갑작스런 어머니의 질문에 둘은 당황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들이 놀라는 것을 보며 하던 얘기를 계속하셨다.




“내가 저눔아를 안다. 내 배 아파가 난 자슥인데 내가 우찌 자를 모르겠노? 아들 둘이 놔났디 하는 짓이 저거 아부지하고 똑같은 기라. 저거 아부지도 옛날에 친구가 자기 때문에 다칬다꼬 죽어야 덴다 캐가 내가 말기니라꼬 시껍뭇다(심하게 고생했다) 아이가? 그래가 카나, 지 아픈 거는 우야든동(어떡해서든지) 참아도 넘 다치는 거는 눈뜨고 몬 보는 아가 자다. 후야가 넘들한테 몹쓸 짓 했다캐도 일부로 그랄 아도 아니고……. 지도 피해 안 줄라고 지가 일부로 욕 먹는 일도 많은 기라. 그래 놓고도 지 속은 또 어떻겠노? 내 새끼라가 하는 얘기가 아이라 이판에도 너거 안 다치게 할라카다 저래 된길끼다. 안 봐도 뻔한기라, 문디자슥.”




“맞아요, 어머님. 후가 얼마나 똑똑하고 착한데요.”




자매가 있어 그나마 눈치가 조금 빠른 순진이 먼저 대답을 했다. 그에 질세라 순정도 말을 덧붙였다.




“그럼요, 후가 학교에서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데요?”




“지가 그캐봤자 헛똑똑인기라. 맨날 쌩고생해가 넘 좋은 일만 시킨다 아이가? 그래도 인자 보이 걱정이 쪼매 덜 되네. 지 좋다고 따라댕기는 가시나들도 있고……. 우쨋든지 우리 아 좋아해줘가 고맙데이.”




“아니에요, 어머님. 저흰 그냥 친구들이에요.”




순진이 다시 대답을 하자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신다.




“이 엄마도 낼모레마 오십이지만, 나도 여자다. 너거가 자 좋다카는 거 나도 알고 너거 심정도 이해된다. 나도 천씨가 좋아가 시집온 사람인데 그걸 와 모르겠노? 가진 거 쥐뿔도 없는 기 넘들 퍼다 준다고 설치는 기 천씨 집안 내력인기라. 캐도 그마이 정이 많으이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하는 기지. 칸데 너거들 서이(셋이) 보고 있을라카이 그림이 쫌 안 좋네. 나도 옛날 사람이라가 남자가 여러 여자 만나고 댕기는 거 넘들 보기가 쫌 흉해가 그렇지 그리 나쁘게 생각치는 않는다마는, 요새 세상에 그랄 수야 있나? 내도 못난 아들 둔 부모라가 너거 볼 면목이 없지만, 너거들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거는 너거들이 알아가 잘 하라는 기다. 젊은 사람들 연애하는 거 보고 어른이 머라칼 수는 없어도 넘들 눈이 있으니 조심하라카는 말이다. 나도 우리 아 좋다카는 딸아들보고 물러서라고 말하기는 뭐하고, 그칸다고 후야 자한테 둘 중에 하나 고르라 카마, 저 머스마 지가 뒤졌으마 뒤졌지 너거한테 우예 하라 말도 몬할끼다. 방금도 순정이 온 담부터 내가 너거들한테 말을 잘 못 붙인 기 그 때문인기라. 내 그래가 순정이한테는 쫌 미안타. 순정아, 미안테이. 나도 니가 싫어가 그란 기 아이다.”




시스터즈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그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런 어머니께 고마움을 느꼈다. 특히 순정의 경우는 어머니의 사과까지 들어 더욱 그랬다.




“괜찮아요, 어머님. 저도 어머님 말씀 들으니 이해가 되는 걸요.”




“저희가 조심해서 잘 할게요.”




“그래그래, 엄마 말 알아들었다카이 내도 안심이 된다. 문디자슥 복도 많지. 어디 가가 이래 참한 아들을 구하노? 나도 너거 같은 며느리보마 소원이 없겠구마는……, 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기라. 알아 들었제?”




“네, 어머님…….”




“나도 오늘은 늦었고, 내일이마 내리갈끼다. 후야 저거 착해비도 성질머리가 고약해가 내한테 분명히 잔소리 할끼라. 그거 듣니 내가 가는 기 맞제……. 아들 아부지 내 없으마 굶고 댕길낀데……. 안 그래도 자 누나야가 졸업반이라가 바쁘다 아이가? 밥도 내가 챙기조야 데고…….”




“어머님 오신 김에 며칠 쉬시다 가시지……. 후도 아직 아프잖아요.”




“어허, 너거 있는데 내가 말라(뭐 하러)? 자세히는 몰라도 너거들끼리도 할 얘기도 많아비던데…, 내가 방금 그래까지 이야기했으이 비기(비켜)줘야지. 그라고 야들아. 이거 택시 타고 가그라. 내가 급하게 오니라고 마이는 못 주고…….”




어머니가 둘의 손에 만원지폐를 쥐어 주셨다. 둘은 거절할 수가 없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것을 받아 들고 택시에 올랐다. 집으로 가는 내내 어머니의 말씀이 그녀들의 귓가를 떠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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