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11장
본문
제 5 장 젊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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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지는 그와 함께 출퇴근을 했다. 후도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만, 그녀가 자꾸 매달리자 하는 수 없이 그런 것이었다. 그녀에게 관심이 있던 진우가 조금 기분이 나쁜 듯했지만, 미지가 한 마디로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 기사님은 집이 강남이라서 저 때문에 괜히 돌아서 가시는 거 잖아요? 그게 줄곧 미안했고 부담스러웠었거든요. 그치만 후씨는 바로 옆이라 돌아갈 필요가 없잖아요. 나도 그 쪽이 편하고요.”
연말이 되자 미지가 데이트 신청을 해왔지만, 후는 시스터즈가 생각나서 그것을 거절했다. 그는 아쉬워하는 미지를 두고 새해연휴를 기숙사에서 술을 마시며 보냈다. 술을 마시자 시스터즈가 조금 덜 생각이 났다. 몸에서 나는 땀에서도 술 냄새가 날 정도가 되어서야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새해가 되자 후는 현장에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그는 인부 사이에서 친절한 기사로 소문이 나있었다. 보통의 기사들은 인부들에게 좀 건방지게 대하는 면이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것은 후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이고, 연장자인 인부들에게 나이대접을 제대로 해준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하루는 몸에 열이 많은 그가 덥다며 웃옷을 벗어 말리는 도중 그의 배에 난 상처를 본 인부 - 이 사람은 예전에 조직생활을 하던 사람이라 그의 상처가 칼에 의한 것임을 한눈에 알아챘다 - 가 그것을 소문을 내는 바람에 인부들이 그의 앞에서는 조심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는 절대 인부들에게 거만하지 않았다. 작업내용이 도면과 다르게 되면 그는 오야지에게 무엇이 틀리다고 지적을 할 뿐 먼저 ‘데나오시(재작업)’를 외치진 않았다. 인부들이 귀찮다며 재작업을 거부할 경우에는 메모지에다 틀린 내용과 작업인부의 이름을 적고 사진기를 들이밀면 되었다. 그러면 인부들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불이익이 무서워 으레 재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후는 재작업이 끝나면 사비를 털어 작업인부들에게 막걸리 같은 것들을 대접했다. 그렇게 하면 인부들은 마음이 풀어져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곤 했다. 작업이 빠르게 진척된 곳에서는 항상 그에 의해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어디에서 구해온 것인지 통닭 같은 것들을 들고 나타나기 때문에 인부들은 더욱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다. 현장 내에서는 후의 트레이드마크인 태극무늬 안전모(그가 장난삼아 만든 것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붉은색과 파란색의 스프레이로 반반씩 태극무늬로 그려 놓은 것. 현장기사들은 자신의 안전모의 도난 방지와 자신의 직위를 표시하기 위해 안전모에 주로 표시를 한다.)가 지나갈 때면 그것을 구경하기 위한 사람들이 작업장 밖으로 고개를 빼내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후가 현장에 온지 한 달 정도가 되자 그가 맡은 곳이 작업이 빠르다는 이야기가 철환의 귀에 들어갔고, 철환은 기뻐하며 그에게 보너스를 얹어주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후는 주만의 본고사와 민철의 대학면접이 끝난 첫 번째 일요일에 자신의 제자들을 모두 소집했다. 주진에게 놀이동산을 데려가 준다고 약속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고, 다음 달이면 고3이 되는 두 여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숨통을 틔워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수고한 주만과 민철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될 것이었다.
순영과 민철을 보며 그는 다시 시스터즈가 생각이 났지만, 한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며 그런 감정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덩치가 큰 민철이 조수석에 앉고 뒤에는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순영과 주진, 주만이 앉았다. 그는 다섯 명의 무게가 조금 버거운 듯한 세피아를 몰아 용인에 있는 놀이동산으로 갔다. 가는 내내 입을 쉬지 않는 주진과 순영을 보며 그는 진작에 데려오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주차를 마치자 차안에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내린 주만의 손에는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싸부~! 엄마가 드리래요.”
그가 그것을 받아 열어보니 10만권 수표 다섯 장이 들어있었다.
“야! 아직 과외비 받을 때 안 되었는데 이건 뭐냐?”
“싸부가 여기 데려 오신다니까 엄마가 쓰라고 드리라던데요?”
후는 그 말을 듣고 휴대폰을 꺼내 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보니 필요해서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었다. 휴대폰에서는 연결음이 들리더니 잠시 후 미정이 전화를 받는다.
“저~ 어머님! 훕니다.”
“네! 선생님! 웬 일이세요?”
“주만이가 봉투를 주더라구요. 그것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왜요? 부족하세요? 더 넣어 드릴 걸 그랬나…….”
“아이구~~ 아닙니다. 너무 많아서 걱정인데요. 저두 돈 있는 데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부담이 되네요. 남은 거는 주만이 통해서 보내드릴게요.”
“아니에요. 애들이랑 재미있게 놀라고 드린 건데 그냥 마음 놓고 쓰세요. 나중에 주만이가 돈 가져오면 저 실망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전화비 많이 나오겠네요. 그럼 끊을게요.”
후는 미정이 그렇게 까지 말하니 다른 수가 없음을 알고 그 돈을 하루 종일 다 쓸 작정을 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매표소로 가서는 자유이용권 다섯 장을 구입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지만, 점심때까지 그들은 대여섯 개의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 후가 점심을 먹으며 눈치를 보니 주만과 민철이 순영이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고, 순영은 우락부락한 민철보다는 그나마 부드러운 외모의 주만이 맘에 든 듯하다. 순영보다 약간 철이 없는 편인 주진은 햄버거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모르고 후에게 수다를 떨었다. 이후 그들은 몇 개의 놀이기구를 더 타고 차들이 길을 메우기 전에 그곳을 떴다. 그들은 겨울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후의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그들은 세피아를 놔두고 택시를 나눠 타고는 신촌으로 향했다. 후는 점심 때 보았던 것을 고려해서 순영과는 주만, 민철을 먼저 태웠고 자신은 주진과 함께 택시를 탔다. 신촌에 도착한 그는 잠시 후에 진담을 빼게 될 것을 고려해서 제자들에게 밥부터 사 먹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예전에 후가 인희와 함께 가본 적이 있는 락카페였다.
입구에서 어려보이는 순영이 제지를 당했으나 후가 미리 언질을 준 대로 순진의 주민번호를 대었더니 무사통과할 수 있었다. 후는 주만과 민철은 전에 같이 술을 마셔본 적이 있어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순영과 주진이 문제였다. 후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런 데 처음이지?”
“에이~ 오빠 요새 이런 데 안 와본 고딩이 어딨어?”
주진의 대답이었다. 순영도 이에 거든다.
“요새 고딩들, 이런데서 생일파티 하는 게 유행이에요.”
“그런가? 나만 몰랐네.”
후는 멋쩍은 듯 웃으며 대답을 한다. 후는 맥주 몇 병과 양주 하나, 과일 안주를 주문했다. 웨이터가 주문한 것을 가지고 오자 후는 병을 돌렸다. 그는 건배를 하기 전 한 마디 했다.
“주만이하고 민철이는 이제껏 수고했다는 의미로 형이 한잔 사는 거니까 마음 놓고 먹어! 부모님들께는 내가 미리 말씀드렸으니까……. 그리구 우리 이쁜이들은 오빠가 주는 것만 마셔!”
그 말에 주진과 순영이 우는 소리를 낸다.
“오빠~~! 아잉~~! 나 친구들하구두 많이 마셔봤단 말이야~~!”
“요즘 고딩한테 맥주 몇 병이 술인가요?”
“어허~~1 얘들이 왜 이래? 너희들은 어른들께 허락 못 받았단 말이야. 오빠도 욕먹을 각오하고 데리고 온 건데……. 오빠 난처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하자, 알았지?”
꼬맹이 아가씨들의 볼멘소리를 잠재운 후가 병을 들고 외쳤다.
“주만과 민철의 합격을 기원하며~! 건배~!”
“건배~~!”
후를 비롯한 두 녀석들은 시원하게 한 병씩을 비워 버렸다. 주진은 마시다 사래가 들린 것인지 연신 기침을 내뱉었고, 의외로 공부만 하던 순영이 반병을 비우고도 말짱한 얼굴이다. 그는 언질을 미리 주었지만, 다시 한 번 그녀들을 보살펴야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웨이터를 불러 맥주잔을 가져오게 했다. 과내에서도 알아주는 주당(酒黨)인 그는 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그가 아는 것 중에 하나가 술병에 입을 대고 마시면 잔에 따라 마시는 것보다 더욱 빨리 취한다는 것이었다. 원인에 대해서는 그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가 몸소 실험을 해본 결과만큼은 확실했다. 그는 잔을 가지고 오게 한 이유를 아가씨들에게 설명을 해주고는 자신과 두 녀석의 잔에는 양주를 따랐다. 술이 반쯤 비워질 무렵 홀에서는 블루스 타임이 끝나고 경쾌한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소리에 주진이 몸이 근질거리는 듯 후를 잡아끈다.
“오빠 우리 춤 춰!”
“아니다. 오빠는 몸치라서, 너희들 노는 것 구경이나 하련다.”
“에이~ 그러지 말고 나가자. 내가 가르쳐 줄게.”
후는 주진의 손에 이끌려 홀 중앙으로 끌려갔고 뒤를 따라온 나머지 세 명과 함께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후가 추는 춤은 인희에게서 배운 코러스 춤이었다.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수들의 코러스를 담당하는 여자들이 추는 이 춤은, 선 자리에서 발만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손을 좌우로 살짝 흔드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음악은 다 소화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순영은 이런 경험이 적어서인지 간신히 후의 흉내만 내고 있었고, 사내 녀석들은 거의 발광에 가까운 몸짓을 보였다. 그에 비해 연예인이 꿈이라던 주진은, 재즈 댄스를 배운 탓인지 주변의 시선을 이끌기 충분한 섹시한 율동을 선 보였다. 게다가 귀여운 용모에 늘씬한 각선미까지 갖춘 그녀이기에 그 자태는 단연 홀 안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이후 그녀의 화려한 춤사위에 주변의 몇몇 녀석들이 다가왔지만, 민철과 주만에 의해 저지되었다.
후는 두 곡의 노래가 끝이 나자 힘이 든다며 제자들을 두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돌아와 맥주병을 입에 가져가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테이블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입을 떼었다.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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