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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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젊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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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저녁, 후는 사무실 사람들과 회식을 가졌다. 모두들 차를 집에 세워놓고 자리에 모였기 때문에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의 ‘ㅁ"호프에서 1차를 하던 도중 철환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청객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크리스마스라서 가족과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두 번째 이유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봉투에 술값으로 20만원을 남기고 나갔다. 그가 자리를 뜨자 가족이 있는 규진과 재영도 집으로 간다며 채비를 서두른다. 일환도 재영이 나가며 눈빛을 교환한 듯 - 이건 후 밖에 보지 못했다. - 500cc하나를 비우더니 얼른 자리를 뜬다.
자리에는 천 주임과, 이 기사, 권 경리, 후, 이렇게 네 사람만 남았다. 호프집 홀 안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가득했다. 봉수가 배설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화장실로 가버리자 진우가 미지에게 노골적으로 농을 걸기 시작했다.
“미지씨! 이따가 이 자리 끝나면 둘이 따로 한잔 더하는 건 어때?”
“에이~ 이 기사님 왜 그러세요? 후씨도 앞에 있는데……. 그리구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요.”
그녀는 귀찮다는 투로 대답을 하며 후를 쳐다보았다. 후가 그것을 보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의미 같았다. 하지만, 후는 지난 몇 달간의 경험으로 - 그 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 여자란 짐승에게 약간이라도 틈을 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게다가 자신은 아직까지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는 몸이 아니던가? 그는 그녀의 눈빛을 무시하고 한 잔 가득한 500cc잔을 시원하게 비웠다. 진우는 후를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미지에게 매달렸다.
“미지씨! 내가 좋은 데 알아뒀다니까 그러네……. 저번에 가고 싶댔잖아?”
미지는 자신에게 추근대는 진우보다 무관심한 후에게 오히려 관심이 갔다. 썩 잘난 외모는 아니지만 주변의 남자들에게 몇 번의 러브 콜을 받은 그녀로서는 그의 무관심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승부욕을 부추긴 듯 미지는 진우의 옆자리에서 후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이 기사님~! 싫다는 데 왜 그러세요? 오늘은 후씨가 저 에스코트하기로 했어요. 그죠? 후씨~~?”
“내가 언… 네, 그랬죠. 근데 집이 어디시라고……?”
후는 아니라며 발뺌을 하려다 탁자 밑의 그녀의 손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자 얼른 말을 바꾸었다. 미지는 웃는 얼굴과 매서운 눈으로 후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허벅지를 꼬집는다.
“젊은 사람이 왜 그래요? 제기동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것을 보며 진우는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천 주임이 돌아오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봉수는 남은 잔을 비우더니 2차를 가자고 했다. 모두들 머리 속에 든 생각을 달랐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프집 뒷골목에 있는 감자탕 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미지는 감자탕 집에서도 봉수를 밀쳐내며 후의 옆자리를 차고앉는다. 짐짓 화가 난 진우와 황당해하는 봉수에게 미지는 둘러대는 설명을 한다.
“젊은 사람끼리 앉아야죠? 불만이세요? 그럼 호적 바꾸세요!”
후는 당돌한 그녀에게서 반감을 느꼈다. 그도 싸가지가 없는 여자랑은 옆자리에 앉기 싫었다. 그는 가라앉은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에게 양해를 구한 뒤 봉수의 옆자리로 옮겨버린다.
“전 제 조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조카님! 그래도 되죠?”
“그럼, 아재가 그러시겠다는 데 조카가 목소리 높이면 돼나? 미지씨! 뭘 그렇게 쳐다보나? 눈 빠지겠다.”
잠시 후,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는 큼직한 뼈다귀가 여러 개 들어있는 감자탕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그들의 입맛을 유혹했다. 각자의 앞에 놓인 그릇에 뼈다귀가 올려지고 술이 몇 순배 돌았다. 후가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녀공용의 화장실에서 후가 자신의 수도꼭지에 물을 틀 때였다. 문이 열리며 미지가 들어왔다. 후는 깜짝 놀라 등을 숙였다. 미지는 그의 뒤에서 약간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후씨~! 사람이 왜 그래요?”
“뭐가요? 제가 뭘 어쨌길래요?”
“내가 옆에 앉는 게 싫어요? 아니, 니가 그렇게 잘 났어?”
그녀는 말을 시작할 때만 해도 존대를 하더니 그것이 거추장스러운 듯 존대를 떼어 버린 것이다. 후는 반말을 듣자 기분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래! 난 너 같은 싸가진 줘도 안 먹는다.”
“뭐야?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후는 나오던 물줄기가 멈추자 그녀에게 돌아서면서 그것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그도 취기가 오른 탓이다. 그녀는 화가 난 상태였지만, 그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물건이 팬티 속으로, 다시 청바지 속으로 사라져도 그녀의 돌려진 고개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다. 후가 성기를 잡았던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잡고 자신에게로 돌렸다. 후는 눈을 치켜뜬 상태로 그의 얼굴을 그녀의 코앞에다 대 놓았다. 그는 느릿하게 말했다.
“누가 누굴 봐 준다는 거야?”
이미 한 번 죽음의 경계를 다녀온 그의 눈빛은 섬뜩했고, 거기에다 더해진 느린 말투는 미지에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었다. 미지는 숨쉬기가 힘이 든 듯 하얗게 질려갔다. 미지의 확장된 동공에 후의 이마의 상처가 확대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후가 잡았던 턱을 놓고 문을 열고 나가며 한 마디 덧붙였다.
“조심해! 다음엔 국물도 없다!”
“켁~~! 켁~~! 후아~~! 후아~~! 무식한 자식~~!”
그가 화장실을 빠져 나가자 미지는 막혔던 숨을 내뱉었다. 후를 욕하면서 자신의 남은 자존심을 추스른 그녀는 세면대 앞의 거울을 보며 놀란 얼굴을 다듬었다. 턱 아래쪽에는 그의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목 아래로 내려뒀던 폴로티를 끌어올려 그것을 덮었다.
“화장실에서 뭐했어요? 청**도 하고 왔수?”
그녀가 자리에 앉자 후가 던진 농담이었다. 미지는 방금 그렇게 차갑고 무섭던 그가 저렇게 농담을 던지자 더욱 몸을 사렸다.
“방금 맥주집에서 너무 많이 마셨나 봐요.”
그녀는 진우의 옆에 앉더니 조용히 술을 마셨다. 그 후 술자리는 봉수와 후가 주도를 했다. 봉수는 현장에서 몇 년 구른 탓에 술이 센 편이었다. 오죽하면 후도 그의 분위기에 말려 취할 정도였다. 미지는 후의 눈치를 보며 술을 자제했지만, 진우는 2차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 떨어졌다. 2차를 끝낸 그들은 취한 진우를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내고, 다시 3차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미지가 집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3차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후는 봉수를 택시에 태우고 인사를 했다.
“조카님, 내일 봬요.”
“아재, 조심해서 미지씨 바래다주고 들어가! 옆으로 새지 말고…….”
“제가 미쳤어요? 주임님! 걱정 마세요. 저도 눈은 있거든요?”
미지의 말이었다. 봉수가 사라지자 후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방금 화장실에서는 미안했어요. 제가 조금 취했었나 봐요.”
미지는 그런 후에게서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후의 눈에서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후는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아끈다. 후도 방금 약간 화가 나서 그녀에게 겁을 주기는 했지만, 그녀가 실제로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악마적인 습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후도 천성(天性)이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다시 진심으로 미지에게 사과를 했고, 그녀는 그런 그에게 조금씩 경계심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제껏 참아왔던 술기운이 급속도로 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그에 품에 매달렸다.
“미지씨! 일어나요. 미지씨~~!”
‘아~ 씨발……!’
후는 택시를 잡고 미지가 말한 대로 제기동 미도파 백화점 앞에 택시를 멈췄다. 그러나 미지는 아직까지 일어날 줄 모른다. 후는 그녀를 업고 미도파 백화점 앞의 벤치에 그녀를 눕히고 숨을 돌린다. 미지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후는 웃음이 나왔다. 앙칼지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그녀도 자는 모습은 어린 애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매서운 추위에 사그라졌다. 후는 자신의 남방을 그녀에게 덮어주었기에 반팔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30분 정도가 지나자 후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택시를 잡아 미지를 태우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나자 후도 취기가 오른다. 그는 침대에 기대 잠을 청했다.
한밤중에 미지가 잠에서 깨어났다. 심한 갈증을 느낀 탓이다. 멀리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그녀는 눈을 떠 자신이 누워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방이었다. 그녀는 간밤의 일을 떠올려보지만, 화장실에서의 일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참을 더 기억해내려고 애를 쓰니 후가 자신을 업은 사실만이 기억이 났다. 그녀는 다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그의 방임을 알아챘다. 후는 침대 옆에서 기대어 자다가 쓰러진 듯 바닥과 침대 사이에 끼여서 자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일어난 이유부터 해결해야 했다. 침대 위의 선반에서 주전자를 찾아냈지만 컵이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주전자에 입을 대고 마셨다. 주둥이에서는 담배냄새가 조금 나는 것이 그가 매일같이 입을 대고 마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둥이를 빨았다. 그녀가 그 짓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는 데 밑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언제까지 그럴 거요? 주전자가 애인이라도 된 답디까?”
그녀는 흠칫 놀라 바라보니 침대 사이에 끼여 자고 있던 그가 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미지는 놀라 주전자를 떨어뜨렸다.
“캉~~!”
“아야~! 뭡니까? 이게……?”
미지가 떨어뜨린 주전자가 하필이면 후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주전자는 뚜껑이 열리며 물이 쏟아져 나와 그의 머리와 상의를 젖게 했다. 미지는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후는 벌떡 일어나더니 상의를 벗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미지는 급하게 얼굴을 가렸지만, 후는 그녀가 안중에 없는 듯 벗은 상의로 바닥에 고인 물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바닥에 물기가 가시자 그의 상의는 이내 축축해져 있었다. 그는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가 세탁기에 던져 넣었다.
미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가 보이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밖에서는 후가 샤워를 하는 지 물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방금 본 그의 벗은 몸이 자꾸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물소리가 끊기고 그가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입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미지는 보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눈이 그리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정말 조각 같았다. 잘 발달된 어깨와 탄탄한 가슴은 그녀에게 안기고 싶은 충동을 들게 했다. 그가 장롱에서 다른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옷을 입던 그가 몸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그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미지는 돌아서는 그의 배에 난 상처를 보고야 말았다. 상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그것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상처가 분명했다. 아직까지 붉은 색으로 남아 있는 그 자국은 그녀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녀는 화장실에서의 기억이 그의 상처와 겹쳐지자 이불을 끌어당겨 코까지 덮고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답디까? 이거나 마셔요!”
후는 주방에서 다시 물을 떠와 컵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침대 뒤쪽 벽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그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았어요. 이건 여기 놔둘게요.”
후는 컵과 주전자를 침대 위에 올려 두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이불장에서 이불을 꺼내더니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누웠다. 그가 뭔가가 생각이 난 듯 다시 침대 위로 손을 뻗더니 주전자를 쥐고 입으로 가져간다. 그는 입을 대지 않고 공중에서 물을 떨어뜨려 받아마셨다. 그가 갈증을 채운 후에 다시 그녀를 바라보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벽에 기대어 그를 쳐다보고 있다. 놀란 눈이 사슴 같다는 생각이 드는 후였다. 그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걱정 말고 좀 더 자요. 정 겁나면 집에 데려다 드릴게요.”
그가 부드럽게 말한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되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몇 시죠?”
“세 시 조금 지났네요. 집에 데려다 줘요?”
그가 이렇게 나오자 그녀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기가 발동했다.
‘난 매력도 없다는 거야? 뭐야? 이 새끼! 설마… 고자 아냐?’
후는 그녀가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말한다.
“미지씨~! 집에 데려다 줄까하고 물었어요?”
“아니요. 어차피 늦은 거 왔다 갔다 하느니 여기가 자고 갈래요. 설마 쫒아내진 않겠죠?”
“그럼 집에다 전화나 해드려요. 걱정하실 텐데…….”
“집에는 언니 밖에 없어요. 언니도 오늘은 남자친구 만나러 갔으니 없을 거예요.”
“그럼 잘 자요!”
그는 불을 끄더니 자신의 요 위에 누워버린다. 그녀도 컵에 따라진 물을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그녀는 그가 올라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후는 코까지 골아가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 그녀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후를 불렀다.
“저어~ 후씨! 자요?”
몇 번을 더 물어도 그가 대답이 없자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흔들었다.
“후씨! 일어나 봐요.”
그러자 후는 귀찮다는 듯 대답을 한다.
“왜 그래요?”
“저 추워요.”
“저기 이불 하나 더 보이죠? 그거 덮어요. 그럼 됐죠? 난 잡니다.”
그는 다시 돌아누워 버린다. 그녀는 다시 그를 흔들었다.
“왜 그래요? 자꾸……?”
“그래도 추울 것 같아요.”
“나 보구 어쩌라는 겁니까?”
그가 일어서며 왈칵 짜증을 냈다.
“올라와서 같이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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