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6부 1장
본문
제 6 장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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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주먹이 개술집 뒤의 골목에서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날았다. 주먹이 상대의 얼굴에 격중(擊中)될 때마다 피가 튀었다. 상대는 계속하여 그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커녕 잠바자락도 건드리지 못했다. 다시 몇 번의 주먹이 더 상대의 얼굴에 가격되었지만, 상대는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하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상대의 비틀거리는 하체를 보았다. 벌써 30분 째였다.
인은 다시 자신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상대의 주먹을 피했다. 상대는 그가 가장 아끼는 후배였다. 녀석은 그의 아픈 기억을 아는 달조차도 같이 술을 마셔주는 것뿐이 고작인, 그의 잊혀진 생일을 기억해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뒤를 이어 소연의 회장 자리를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던 녀석이었다. 인은 오랜 만에 자신의 주먹을 쓰게 한 후를 바라보며 잊지 못할 기억이 떠올렸다.
1990년, 당시 인의 나이 16세. 그는 대치동 부근의 D중학교를 다니는 3학년생이었다. 그 때 그의 이름은 ‘인(忍)’이 아닌 중훈(重勳)이었다. 중훈은 동네에서는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서 수재라고 소문이 났던 그가 주먹질에 손을 댄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중훈이 그 때까지 모르고 있던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중훈이 그에 대해 안 것은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주민등록등본을 뗀 다음이었다. 등본에는 어머니와 자신의 전입일자가 자신의 생일보다 5년이나 늦게 적혀 있었다. 그는 호기심이 일어 호적등본을 떼었고, 거기에 적힌 부모님의 혼인신고 날짜가 그들 모자의 전입일자와 일치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머니, 혜선에게 그것을 물어보았고, 그녀는 사정이 있어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식도 못 올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어머니께 궁금해왔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아머지가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신다고만 하셨고, 자신은 여자라 자세한 것은 자세히 모른다고 하신다. 그의 아버지는 사철 단벌신사이지만, 그의 집에는 고가의 물품이 많았다. 게다가 한 번씩 찾아오는 아버지의 후배들 - 그들은 중훈에게 삼촌이라 부르게 했다 - 은 하나같이 덩치가 좋거나 인상이 매서웠다. 그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잠들기 전에야 어머니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수상한 직업과 자신의 호적문제가 서로 관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직업부터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중훈은 학교를 재끼고 허름한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뒤를 밟아보았다. 오전의 아버지는 사우나에서 시간을 때웠고, 사우나를 나온 아버지는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 입고 있는 옷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그때부터 일과를 시작한 아버지의 곁에는 항상 듬직한 어깨들이 따라다녔고, 아버지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아버지 각계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은 중훈이 보아도 상당히 고위직의 인물들 같았다. 중훈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들어간 ‘강남실업’이라고 적힌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교복을 입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사무실 앞의 건장한 두 남자가 그를 막았다. 어린 중학생이 그들 중 하나라도 견딘다면 말이 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 몇 번이나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지만, 그는 끈질기게 사무실로 달려들었다. 두 남자 중의 뚱뚱한 한 명이 그를 달래었다.
“여기는 너 같은 애들이 오는 곳이 아냐. 나중에 더 크거든 오너라.”
중훈을 치기어린 건달지망생으로 본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중훈의 입에서 처음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여기 우리 아버지가 계시단 말이에요!”
“그래? 너희 아버지가 누군데?”
“잠깐만…….”
나머지 한 명이 중훈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 동료를 제치고 끼어들었다.
“아버님 성함이……?”
“성은 강씨구요. 함자는 진 자, 호 자 쓰십니다.”
그에게서 그 말이 나오자 둘은 달려들어 그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며 그를 사무실로 이끌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한 녀석이 그를 소파에 앉혔다. 중훈은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자주 자기 집을 들락거리던 ‘뭉치’삼촌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지만. 삼촌은 잠이 든 것인지 그의 말에 대꾸도 없다.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사무실 내부는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고풍스런 가구들하며 소파에, 벽에는 호랑이 두상(頭狀)이 박제로 걸려있었고, 그 아래에는 시퍼런 날을 자랑하는 일본도가 다섯 자루 진열되어 있었다. 그가 사무실 전경에 정신이 팔린 사이 문지기들의 전갈을 들은 아버지가 그를 사장실로 불렀다. 사장실은 바깥보다는 소박한 맛이 났지만, 전체적으로 고급스런 분위기였다. 중훈이 사장실로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신이 몇 년 전 바닷가에서 찍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회전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가 들어오자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아들을 나무라는 것으로 말을 시작했다.
“인석아! 학교는 안 가고 여기는 어쩐 일이냐?”
“아버지! 얘기해 주세요.”
그는 어릴 적부터 진호의 가르침대로 다른 아이들처럼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중훈은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궁금증부터 풀려고 했다. 진호는 중훈에게 되물었다.
“녀석아! 뭘 얘기하란 거냐?”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요.”
진호는 아들의 눈에서 호기심과 강한 의지를 읽었다. 진호는 굵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아버지는 깡패다. 남들이 말하는 주먹밥을 먹는 사람이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걸 힘으로 해결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경우가 없다고는 장담 못한다. 하지만, 네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이 일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중훈이 네가 생각하는 다른 깡패들과 다르단다. 난 지금 하는 사업을 합법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어. 이 강남실업이라는 회사도 경호업체로 확실하게 등록이 되어있고 매년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있지. 예전처럼 법의 그늘에서 살고 싶진 않거든. 그건 너랑 네 엄마, 예린이(중훈의 여동생)를 위해서 이기도 하지. 아버지가 이제껏 말하지 않았던 것은 네가 주위에서 주눅이 들까봐 여서였다.”
거틴 일을 하는 사람답게 진호는 아들에게 조금의 거리낌이나 숨김없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중훈은 조금은 얼떨한 표정이었지만, 녀석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풀리지 않는 호기심이 있었다. 중훈은 주머니에서 어제 떼어온 호적등본을 보이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여쭈었다.
“아버지,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어요.”
진호는 그가 내민 호적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뭘 말이에요, 아버지?”
중훈은 진호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며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다. 그래 뭐가 궁금하다는 거야?”
중훈은 호적등본에 기재된 부모님의 혼인신고일자와 자신의 전입일자를 짚었다.
“이거요, 아버지! 저희 집이 못산다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아버지 혼인신고가 늦어진 게 좀 궁금해요. 어머니는 그냥 사정이 있다고만 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숨기는 것 같아서요.”
“어……. 그래…….”
잠시 몸을 떨던 진호는 결심을 내린 듯 말을 꺼냈다.
“그래,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언젠가는 네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구나. 우선 간단하게 결론부터 이야기하마. 넌 내 친자식이 아니다.”
진호의 그 말에 중훈의 눈이 경악으로 차올랐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아버지 자식이 아니라니요?”
“사실이다. 네 어미는 친모가 맞지만, 너와 나와는 한 방울의 피도 섞이지 않았다.”
“아버지… 농담이시죠?”
중훈의 놀란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중훈에게 진호는 다시 말을 꺼냈다.
“얘기가 길어지겠구나. 그래 아버지가 예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구나. 네가 네 어미를 만났을 때에는 네가 아직 강보에 싸여 있을 때였고, 아버지가 스물다섯이 되던 해였다. 난 그때 상대 조직 수뇌부의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도망을 치던 상태였지. 네 어미는 경북의 한 시골에서 국밥집의 식모노릇을 하고 있었다. 정말 애기엄마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고왔고, 심성도 착했단다. 아버지는 네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네 어미를 마음에 둘 수밖에 없더구나. 그리고 난 자주 네 어미를 괴롭히던 네 친부를 보았다. 네 친부는 한달에 한두 번 국밥집을 찾아와 돈을 가져오라고 행패를 부리더구나. 그 사람은 노름과 아편에 찌든 사람이었지. 어미가 일을 하던 이유도 네 친부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어. 내가 알아보니 그때까지 넌 이름도 없더구나. 난 그런 사람이 아버지로서나 남편으로서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내 방식대로 그 작자를 불러내 개 패듯이 패버리고는 아킬레스건을 자르고 받은 돈을 쥐어주었단다. 네 어미를 위해서였지. 그 이후로는 그 남자가 찾아오지 않더구나. 두 달 후에 난 네 어미와 함께 울산의 아는 선배를 찾았단다. 너도 얼굴을 뵌 적이 있을 거야. 준식이 형님이라고……. 그 분 덕에 울산에서 살림을 차리고 사는데 네 친부가 어떻게 알았는지 또 우리를 찾아왔더구나. 그 때는 예린이가 네 엄마 뱃속에 들어있을 때였지. 난 네 엄마 모르게 준식이 형님께 부탁을 해서 그 작자를 저 멀리 섬으로 보내버렸단다. 이번에는 다시 우리를 찾아오지 않더구나.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네가 네 살이 되던 해에 상대편 조직과 아버지가 있던 조직이 화해를 해서 우리 가족은 서울로 올 수 있었다. 내게 내려진 현상수배도 풀려서 그때서야 널 내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 아직은 이런 이야기를 숨겨야 할 것이지만, 아버지는 그러기 싫구나. 넌 누가 뭐래도 내 자식이다! 비록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넌 내 새끼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어린 너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의 잘못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아들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네게 할 수 있는 거란다.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네 이름을 지을 때였고, 널 내 호적에 올렸을 때란 것을 알아다오.”
진호는 긴 얘기를 하면서도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계속 강조했고, 중훈도 그렇게 여기고 싶어 했다. 어린 그도 자신에게 떨어진 날벼락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자신이 진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았다. 그의 놀란 눈에서 떨어진 눈물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울지 마라! 하나만 묻자. 중훈아! 넌 누구 새끼냐?”
“……. 흑흑…….”
대답 없이 눈물만 떨구는 중훈에게 진호의 호통이 떨어진다.
“사내자식이 어디서 눈물이야! 다시 한 번 묻자. 넌 누구 자식이냐?”
“아… 아버지 자식입니다!”
진호는 그 말을 듣고서야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허허~~! 그래, 넌 내 자식이다. 넌 그것만 알고 있으면 돼. 넌 아직 어리지만 언젠가 아버지보다 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머지는 아버지가 밀어주마. 넌 이 애비처럼 주먹이나 쓰고 살면 안 된다. 행여나 다른 맘먹지 말거라. 애비로서의 부탁이다. 알겠느냐?”
“네……, 아버지!”
중훈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 진호가 다시 목소릴 높였다.
“밥도 안 먹었어? 사내새끼가 목소리가 그게 뭐야?”
“예~~! 아버지!!”
“그래, 그래야 내 새끼지. 참, 엄마한테는 오늘 일 비밀로 하거라. 그리고 엄마 욕하지 말거라. 네 엄마가 비록 다른 남자와 살을 맞대고 살았다지만, 날 만난 이후부터는 현숙한 아내였고, 좋은 어머니였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아버지 차타고 들어가거라. 애들 붙여주마.”
진호가 아들을 차에 태워 보내려고 했지만. 중훈은 혼자이고 싶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혼자 갈게요.”
진호는 아들이 받았을 충격을 고려해 그러려마 하고는 중훈을 보냈다. 중훈이 문밖으로 사라지자 진호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창을 열고 저 멀리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휴우~~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군. 과연 내가 이야기 한 것이 잘한 일일까? 녀석이 견뎌낼 수나 있을까? 아니야, 내 핏줄은 아니지만 내가 십수 년을 기른 녀석이야, 난 이제 지는 해이지만, 녀석은 이제 시작하는 태양이다.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견뎌내지 못한다면 그건 녀석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중훈아, 아버진 널 믿는단다. 부디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말거라.’
그가 내뿜은 담배연기 사이로 중훈이 힘겨운 발자국을 떼고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중훈은 사무실에서 나오는 데 다시금 눈물이 솟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란 사실이 아직까지도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예린이만을 귀여워하고 자신 모자는 탐탁치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 사춘기의 그로서는 그만한 충격도 없을 것이다. 중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제까지나 진호의 자식이고 싶었다. 그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지로 채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3교시가 끝나고 점심도시락을 까먹던 그는 뒷자리의 큰 녀석이 자신의 반찬을 빼앗아가자 언질도 주지 않고 주먹부터 날려버렸다. 그때까지 한 번도 주먹을 써보지 않은 그였지만, ‘빠각’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대는 기절을 해버렸다. 주변의 친구들이 말릴 겨를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기절한 녀석을 양호실에 눕히고 돌아온 그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맞은 녀석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왔다. 양호실에 실려 간 녀석을 추가해 여섯 명인 그들은 스스로를 사육신(死六臣 : 녀석들이 진정한 의미를 알리 만무하다. 다만 삼총사에서부터 시작해, 사총사, 독수리오형제를 거쳐 사육신의 된 것이다.)이라고 칭하는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왈패들이었다. 사육신은 중훈을 옥상으로 불러냈다. 그때까지 중훈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화가 난 한 녀석이 욕을 하며 달려들었지만, 중훈의 손이 더 빨랐다. 그의 주먹에 턱을 맞은 그 녀석은 2m정도 날아가더니 구석에 쳐 박혔다. 그러자 나머지 네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중훈은 가장 먼저 달려드는 녀석의 명치에 주먹을 꽂을 수 있었지만, 뒤를 따르는 다른 녀석의 발길질에 복부를 맞았다. 잠시 그가 배를 잡고 멈칫하는 사이 세 녀석의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중훈은 대낮에도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세 녀석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던 그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팔을 풍차 돌리듯이 휘둘렀다. 녀석들이 놀라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중훈은 다시 주먹을 휘둘러 한 방에 한 명 씩, 둘을 떨궈냈다. 남은 한 녀석은 뒷걸음질을 치다 쓰러진 동료의 몸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쓰러진 녀석의 얼굴 위로 다시 중훈의 주먹이 들어갔다.
“떠억~~!”
녀석의 고개가 확 젖혀지며 두 개의 이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중훈은 혹시나 선도부나 선생님이 들이 닥칠까봐 얼른 자리를 떴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가던 중훈은 다시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도 자신의 주먹이 이 정도로 셀 줄은 몰랐기에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달랐다.
‘난 누가 뭐래도 아버지 자식이야.’
어쨌건 중훈은 내부에 잠재된 폭력성을 실현시키는 것이 자신이 진호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춘기 특유의 치기(稚氣)어린 발상이었지만, 그 외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생전 최초의 싸움을 끝냈다. 하지만 최초의 싸움치고는 강도가 너무 셌다. 그래도 후에 다가올 격전들보다는 강도가 약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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