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6부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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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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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의 그런 상념을 뒤로 한 채 중훈은 아직까지 코너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관장이 지적한데로 중훈은 이미 좀 전의 데미지에서 회복이 된 상태였다. 물론 무식한 원모의 공격에 코너에 몰려있기는 하지만, 그는 좀 전보다 여유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 자식 체력은 언제까지 가는 거야? 오른쪽 위, 왼쪽 아래, 명치 어림……. 다음은 왼쪽 위인가? 역시……. 자 잠시 호흡 가다듬고…….’
그는 원모의 공격패턴을 읽고 있었다. 원모가 센 것은 중훈도 인정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투에서일 뿐이다. 원모의 저돌적인 전차 같은 기세와 스태미너가 지금의 위치를 준 것이라 중훈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원모는 현성에게 졌었고, 자신은 현성에게 이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당연히 원모를 이겨야 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훈이 보기엔 원모의 공격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공격패턴은 세 가지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마저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처음에 약한 주먹이 몇 번 들어오고 나면 마무리는 강펀치, 거의가 그런 식이었다. 단 하나 좌우를 번갈아 치는 원모의 패턴 중에 두 번째 패턴은 강펀치를 날리고도 연이어 잽을 한두 번 밀어내는 것이 있었는데 중훈은 그 잽에서 승기를 잡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중훈의 입가에 비웃음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원모가 두 번째 패턴을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은 분명히 가드 위를 치는 왼손 잽 두 번, 가드를 노리는 오른손 스트레이트, 가드가 멈칫하는 사이를 노리는 왼손 복부일격, 다시 귀 언저리에 다가드는 오른손펀치, 그것을 지나면 다시 가드 공격, 마지막으로 오른손 어퍼컷이 들어올 것이다. 원모의 공격이 시작되자 중훈이 다시 한쪽 발로 리듬을 읽었다.
‘하나, 둘, 반 박자 쉬고, 셋, 넷이 거의 동시에……. 다섯, 잠시 멈칫. 여섯. 지금이다.’
중훈은 원모가 어퍼컷을 날리자 가드로 막았다. 그는 잠시 몸이 떠오름을 느꼈지만, 반 박자 후의 잽을 쳐내야 한다. 원모의 잽은 혹시나 상대가 쓰러지지 않을 것을 대비해 거리를 두고 다음 펀치를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의 것은 잽이 아니라 스트레이트였다. 원모도 계속하여 펀치를 날린 것이 힘이 드는 지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낸 모양이다. 중훈은 흠칫했다. 자신도 쌓인 데미지가 만만치 않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다시 승기를 잡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원모의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왼손 잽으로 옆으로 흩어버렸다.
중훈은 코너에서 튀어나오는 힘으로 원모를 어깨로 들이 받았다. 그는 상대가 흠칫하는 사이 왼손 잽을 원모의 안면에 넣을 수 있었다. 원모가 화를 내며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지만, 자세를 낮춘 중훈의 머리 위를 스칠 뿐이다. 중훈은 그 자세에서 원모의 옆구리를 세게 쳤다.
“커억~~!”
원모는 갑작스런 충격에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고, 그의 입에서 침이 고여 떨어지려했다. 중훈도 그것을 파악한 듯 다시 뒤따라 오른손을 날려 원모의 턱에 작렬시켰다. 원모는 턱이 크게 돌아갔지만, 다시 주먹을 뻗었다. 중훈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원모는 다음 펀치를 던지지 못했다. 강한 충격에 일순간 주먹을 내지를 수는 있었지만, 다음 순간 원모는 갑자기 쓰러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놀라서 인도 위에까지 뛰어나와서 쓰러지는 것과도 비슷했다. 중훈은 얼떨한 표정이었지만, 원모가 늦게 쓰러진 이유를 아는 관장은 놀라 링 안으로 들어와 중훈을 막아섰다.
“중훈아, 네가 이겼다. 여기까지만 하거라.”
“네, 관장님!”
현성은 중훈이 이긴 것이 좋아서인지 달려와서 중훈을 안아 올렸다.
“야! 아프다. 좀 내려줘.”
현성이 중훈의 몸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주먹에 눌린 자국이 심하다.
“어……, 미안.”
현성이 중훈의 팔과 몸에 남은 상처를 보는 동안 관장은 원모에게 달려가서 녀석의 상세를 살폈다. 하얗게 질린 원모에게 관장은 찬 물수건으로 녀석의 얼굴을 두드렸다. 원모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5분 정도가 지나서였다. 관장이 걱정스런 눈으로 물었다.
“원모야. 좀 어떠니?”
“아으 간자니, 터이 이사해오.(관장님 턱이 이상해요.)”
관장은 원모의 턱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디 보자. 이런……. 얼른 병원으로 가자꾸나.”
지켜보던 현성이 관장에게 물었다.
“관장님, 얘 왜 이래요?”
관장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턱에 이상이 생긴 것 같구나. 철호야!”
관장은 체육관의 가장 고참인 녀석을 불렀다. 철호는 체육관의 유망주로 다음달에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기로 되어있는 프로 데뷔 2년차의 실력자이다.
“예, 관장님!”
“네가 오늘 여기 마무리 좀 하고 가거라. 난 얘 데리고 김 선생님께 좀 다녀오마. 접골원에 전화 넣어두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훈아! ……. 아니다. 다음에 얘기하자꾸나.”
중훈을 한참 바라보던 관장은 아니라는 듯 말을 멈추고는 원모를 업어 밖으로 나가버렸다. 관장은 자신의 봉고차에 원모를 태우고 이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운전을 하면서도 관장은 중훈의 실력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중훈이 녀석, 본능적으로 주먹을 날릴 줄 아는 녀석이야. 감각도 좋고……. 그나저나 오랜만에 그 소리를 들어보는구만. 주먹에서 바람 소리가 나더니……. 분명 스크류 블로우(Screw Blow : 타격순간 손목을 비틀어 타격치를 높이는 방법. 다만 손목의 스냅으로 인해 손목과 팔목 인대의 파열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였어. 자신도 모르게 스냅을 넣다니……. 대단해. 우선 팔 근육부터 다져줘야 하나?’
관장이 나간 사이 체육관은 상당히 어수선했다. 원모를 뒤따라 온 떨거지들은 두목이 져버린 상태여서인지 고개만 숙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자 철호가 나서서 중훈과 현성을 제외한 두 녀석을 제외하고는 체육관 밖으로 내보냈다. 현성은 다시 한 번 중훈의 괴력에 놀라고 있었고, 중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성은 땀투성이가 된 중훈을 데리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자신도 싸움을 지켜보며 식은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1번 타자를 물리쳤구나. 축하한다. 다음은 누가 올런지…….”
“…….”
중훈은 대꾸도 하지 않고 샤워를 했지만, 현성의 입은 다물어 질 줄 모른다.
“A중의 찬식이, T중의 진호, O중의 호걸이……. 아직 까마득하구나.”
듣고 있던 중훈이 친구를 불렀다.
“현성아!”
“왜?”
“그러지 말고, 이번 방학이 지나기 전에 하나씩 이리 불러주라.”
현성은 갑작스런 중훈의 부탁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이게 완전히 맛 들였네? 미쳤어?”
“아니 귀찮아서 그래. 2학기가 되면 연합고사 준비해야 되잖아? 그전에 끝내고 싶을 뿐이야.”
“자식아! 이 짓거리에 발들이면 어떻게 되는 지 알아?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리고 한 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몰라. 서울에 있는 중학교만 해도 수백 개가 넘어.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그냥…….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것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너도 2학기면 공고 지원할 거라면서? 너도 바빠지기 전에 미리 부탁하는 거야.”
중훈은 샤워기의 물을 잠금과 동시에 입을 닫았다. 현성은 그런 중훈에게서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니가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야. 내가 아는 녀석만도 서른 명이 훨씬 넘어.”
“그건 현성이 말이 맞다.”
샤워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철호의 말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철호의 말에 중훈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그런 가요?”
“그건 데미지 누적 때문이야. 넌 아직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원래 경기 한 번 하고 나면 최소한 한 달 정도는 다음 경기를 뛰면 안 돼. 그래야 몸이 제대로 충격을 받아들이고 해소시키는 거지. 오늘만 봐도 넌 많이 맞았어. 지금은 몰라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 거야. 나도 심할 때는 이틀간 쉬지 않고 잠만 잔적도 있을 정도니깐…….”
중훈도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아직까지 뜻을 굽히진 않았다. 그는 다시 현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가요? 근데 현성아, 오늘 보니까 원모가 이제껏 니가 붙어본 애들 중에 가장 강하지 않았어?”
“그런 셈이긴 하지만, 내가 안 붙어 본 놈들 중에서도 녀석보다 센 놈들이 많아.”
“원모 이하는 내가 알아서 해줘. 그 이상은 몇 명이야?”
현성은 중훈의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음……. 그래도 한 대여섯 명은 남아. 그리고 항상 의외의 복병이 있다구. 너처럼 말이야. 그런 경우는 나도 조언을 해 줄 수가 없다구.”
“상관없어. 그리구 형, 죄송해요. 방학 동안에 다 정리하고 싶어요. 2학기는 공부랑 운동만 하고 싶어요.”
중훈은 대답을 하며 옷을 입었다. 그의 당돌한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철호였다. 그도 엉뚱하기도 한 중훈의 치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른의 입장에서 말려야 한다. 그러나 시원하게 웃는 중훈의 미소는 철호에게도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의, 그것도 어린 놈의 웃음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은 철호도 그날 처음 알았다.
“형, 관장님은 형이 좀 설득해줘요. 대신 연습 열심히 할게요.”
녀석의 부탁도 부탁이지만, 강렬한 눈빛과 시원한 표정이 철호의 마음을 약하게 했다.
“그… 그래. 아무튼 한 하루 이틀은 좀 쉬는 게 좋아. 그건 형도 양보 못한다?”
“철호 형, 고마워요. 그럼 나중에 뵐 게요. 현성아, 가자.”
현성은 옷을 입다말고 소리쳤다.
“야, 이 씨발아! 나 아직 다 안 입었어.”
체육관을 나온 현성은 한참을 중훈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중훈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현성, 원모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호흡이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맥박소리만이 들리는 정적의 시간. 중훈은 그 짧은 시간이 주는 흥분과 매력을 이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인체가 고통과 혈액순환이 빨라지는 극한 상황에서만 분비된다는 아드레날린……. 그것이 중훈을 중독 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현성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때 중훈의 상념을 깨는 현성의 말소리가 들린다.
“중훈아, 너 담 주에 시간 되냐?”
“응? 왜 담 주엔 누구야?”
“그런 건 아니고, 은영이랑 피서 가기러 했는데 너도 같이 가자. 은영이 친구도 올 거야.”
은영이 친구라는 말에 중훈의 눈이 번쩍 뜨인다. 방금도 원모에게 코너에 밀렸을 때도 수환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던 중훈이었다. 그는 설명을 더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어디로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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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불형입니다.
이번에 미친 바람의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이글의 원제는 "사나이 인생사"였습니다.
거기에서 "광풍폭우"로 다시 한글사랑을 위해 "미친 바람, 거센 비"라는 이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얼마전 생각을 해보니 영 제목이 맘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다시 두번째 제목으로 돌아갑니다.
다시는 제목을 바꾸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는 인의 첫경험이 곧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럼 대구 양아치는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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