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 단편
본문
땅-
‘에, 지금부터 뉴타운 사업지구 추진계획을 발표허겄습니다. 에….’
‘신 주사, 그 에 소리는 빼도 돼.’
‘네.’
구청의 개발관련 부서 임원들과 구청장님만이 특별히 참석하는 회의에서 나는 마지막 설명부분까지 별로 할 일이 없이 앉아 있었다.
‘에, 아니, 에는 빼고, 시에서는 시의 지역균형발전 지원에 관한 조례에 의거하야, 주거 환경이 열악한 구시가지를 대상으로, 기반시설의 낙후된 지역, 주택 재건축 및 재개발 사업면적이 터무니 없이 넓은 지역, 혹은 화재, 침수 등의 재난재해가 상십적으로 발생하는 재해빈발지역, 혹은 성매매 밀집지역등에 대한…’
‘거 상십적이 뭬야?’
신주사의 사투리에 구청장이 또 딴지를 건다.
‘에, 상십적이란 말의 뜻은 뻔질나게 란 말과 일맥상통 헌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가 이 사람아, 그 뜻을 모르나? 발음이 문제란 거지. 자네 사투리 좀 제발 이런 자리에서는 쓰지 말도록 하게나.’
‘네. 그럼 계속 허야 쓰겄습니다. 에, 그런 지역을 대상으로 자치구 및 주민의 의지와 역량을 한테 싸잡아 시에 개발 계획서를 올리게 되는 거입니다. 총 25개 자치구에서 지정해서 올리면 시에서 10개로 쥐어짜서 심의 대상에 올리고, 그 25개의 자치구의 신청으로 지역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설랑은 지정 고시가 이루어 지게 되겠습니다.’
‘그럼, 지정고시가 된 후에는 용역발주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이거군?’
‘말하면 입 아프지유, 아니 아프당게요, 아니 아픕니다.’
‘으이그, 내 머리야, 내가 신경을 끊는 게 속 편하지.’
신주사는 설명 도중에도 끊임없이 구청장의 귓가를 괴롭혔다.
‘그럼, 우리는 어떤 지역이 대상으로 설정 될 수 있나?’
신주사는 도면을 짚어가며, 예상 지역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되면 무슨 기대효과가 있다고 보나?’
‘에, 우선 혼재 되어 있는 주거,상업,공공시설의 정리가 이루어져서, 개별적 난개발이 방지되고, 주거지역의 도로망이 확충되어, 도로 접도율이 상승하여 설랑은, 비상시에도 원활한 소통이 예상되며, 문화공간과 휴식공간의 균형적 배치를 통해 문화, 공공, 주거가 한탕에 맹글어지는 복합 녹색도시로 변해 번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문제점은 뭐야?’
‘문제점은 말만 이렇게 번지르르 하지, 저희들의 머릿 속에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니겄습니까?’
‘그걸 설명이라고!’
‘그랴서 대형 도시계획 및 조경학에 전문가 이신 분께 우선 이 계획의 예상 초안을 부탁하고자, 이 자리에 모신 거랑게요. 인사 드리시지유?’
황송한 소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조강현 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그래, 어떤 방향이 가능하겠습니까?’
구청장님께서 악수를 하며, 바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주거환경과 기반시설, 문화기능, 그리고 자연생태 공간의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지요.’
‘너무 어려운 말씀인데…. 좀 쉽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내가 들고 간 예상 계획 도면을 보여주며, 나의 의견을 피력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좌중에서 그럴싸 하다는 동의가 들리기 시작했다.
‘근디, 청장님, 문제가 쪼까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말씀 드려도 될란지….’
‘신 주사, 뭔데?’
‘청장님도 아시쥬? 그 형질변경 안 되는 49다시 7번지 말입니다. 그 너른 벌판을 갖고 있는 냥반이 원체 말을 들어야지유. 이런 좋은 계획이 있다고 설랑 언질을 줬는데도, 뭐 삘딩을 짓겄데나 뭐래나…..’
구청장의 낮빛이 금새 어두워 졌다.
‘그건 손님 가시고 우리끼리 다시 의논해 봄세. 그리고, 신주사는 계획 입안해서 다시 세부회의 하자고, 시간도 얼마 없는 거 같은데…..’
회의실을 나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서, 나와 신주사는 구청 밖의 화단에 나와 앉았다.
‘아니 그 회의 시간에 49-7번지라는 말은 뭔 말입니까?’
‘그게, 말 허면 복잡 허지라. 이 근처에서 그 냥반 모르면 간첩 이지유. 돈도 겁나게 많고, 사채업 으로 떼돈을 맹글었는가 본데, 우리 지역에 목장 맹키로 너른 토지를 소유하고 기신 분이지유. 아 글씨, 그 냥반 땅이 금싸래기 중에서도 상등품 이랑게요. 근디 이런 계획에 선심 좀 쓰시라고 혔는데도 영 말을 들어야 지유! 그 땅이 지금 맹키로 잡초만 우거진 채로 철조망 사이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커면 개발이고 뭐고 몽땅 도루묵 이라 않혀요?’
‘잘 설득해 보지 그러세요?’
‘하이고, 설득? 씨알이나 멕힌답디까? 어디 그 분 돈 써 재끼고 튀었다가니 제명에 산 분들이 없었다고 허드만요. 젊었을 쩍 주먹 꽤나 쓴 분이라는 말도 있고…우리내 이런 급한 사정도 몰라라 하고서는 지금도 그 땅을 한뼘 이락도 넓혀 가려고 접해있는 땅 주인과 머리 싸움 중이라고 허던데…’
‘제가 한번 만나 볼까요?’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유. 이렇게 용역발주 의례가 나가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면 혹여 생각을 바꾸실지도 모르잖여유?’
나는 신주사에게 그 땅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채업 사무실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후덥지근 하던 날씨가 며칠사이 내리는 비로 한결 시원해진 여름 오후 였다.
‘똑똑’
‘누구십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자 비서 한 사람이 책상에서 일어나 나를 맞았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 구청 개발과의 신주사님 소개로 왔는데, 혹시 사장님 좀 뵐 수 있을까 해서요.’
나는 명함을 건네고, 자리에 앉으라는 그 비서의 말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깔끔한 사무실에 시원한 실내 온도, 그리고 탁자와 테이블 뒤로 비서의 책상과 함께, 그 사장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문이 보였다. 이어서 명함을 들고 들어간 비서가 나오면서 나보고 들어오시라고 손짓을 했다. 방안으로 들어가자, 저 구석에서 안락의자에 기대어 비오는 창 밖을 응시하고 있던 건장한 노인이 의자를 서서히 돌리며 나를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조강현 입니다. 이거 초면에 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와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앉으시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집무실 책상 뒤로 대형냉장고 만한 금고가 버티고 있는 것이 사채업자라는 표시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신주사의 소개로 왔다는 점과 이번 뉴타운 사업지구의 선정을 위해 용역의뢰를 맡은 사람이라고 나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번 사업에 있어서 중간에 버티고 있는 그 너른 토지의 유용성에 대해서 나 나름대로의 관점을 피력하면서 그 분의 눈치를 살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뜬금 없이 그 사람은 식사 얘기를 꺼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바라보며, 창가에 섰다.
‘아니, 아직 식사 전 입니다만, 괜찮습니다.’
‘혼자 밥 먹는 것도 그런데, 같이 하시지요.’
그 사장은 큰소리로 밖에 있는 비서에게 점심식사를 시켰다. 아무런 메뉴도 말하질 않고… 얼마 있질 않아서 순대국과 소주 세병,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순대와 편육이 한 접시 가뜩 배달 되어 왔다.
‘이거 초면에 폐가 안 될런지요?’
나는 이런 기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성큼 수저를 집어 들었다. 국을 뜨기도 전에 그 사장은 소주잔을 건넸다.
‘이런 궂은 날은 특히 이런 순대국 이랑 소주가 더 그립지요.’
‘그렇지만 대낮에 세 병은 좀 많지 않나싶…..’
그 때 였다. 방문을 두드리면서 비서가 다시 들어왔다.
‘손님 계시잖아? 누구야?’
‘저 사장님, 조씨가 와 있는데, 사장님을 꼭 좀 뵙자고…’
‘그래? 들어오라구 해. 개쇄끼…..’
입에 욕을 담기 무섭게 자리에서 돌쳐 일어나는 바람에 나도 놀라 술잔을 내려 놓았다.
‘사장니-ㅁ, 저 좀 한번 살려 주십쇼. 이렇게 빌겠습니다.’
족제비처럼 생긴 사람이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무릎을 꿇고 다가서는 사장의 바지 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또 돈을 꿔간 것 때문에 저리도 혼쭐이 나는 모양이라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직업이 어디 갈라구?
‘너 이 새끼야, 가족들 벌어 먹여야 한다고 나한테 돈 빌려 갈 때, 너 뭐라고 했어? 그 돈으로 트럭이라도 사서 열심히 살면서 갚겠다고 했어, 않 했어? 그런데, 너 트럭 산 것 까지는 좋아. 일자리도 그만하면 됐고. 돈도 잘 갚아 나가다가 어째 세 달전부터 코빼기도 안 비쳐, 엉?’
‘그게, 저….’
‘야, 이 호랑말코 같은 쇄끼야, 내가 늙었다고 모를 줄 알까 봐? 지금도 나가면 형님하면서 턱쭈가리 땅에다 대고 박박 기는 새끼들 줄 섰어, 알어? 너 같은 새끼, 뒤 밟아 조지는 거, 이거 일도 아니야. 트럭으로 돈 벌어다 그 씨발년의 씹구녕에 쳐 박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 너만 바라다 보고 있는 가족까지 길거리로 나와 앉게 해? 니가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냐? 그래, 그 덕에 내가 들인 돈, 트럭 끌고 와서 탕감 하려는데, 뭐 잘 못 된 거 있냐? 밟아 문드려 트리기 전에 트럭 찾아가고 싶거들랑, 어서 그 동안 밀린 이자랑, 원금 갚아. 더 이상 아가리 놀렸다가는, 너! 혓바닥을 재봉틀로 오바로꾸를 쳐버릴 테니까, 좇 같은 쇄끼…’
그 자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끌려 나가듯이 방에서 나갔다. 그 사장은 그렇게 소리를 쳤는데도 씩씩대는 법도 없이 자리에 다시 앉아서 술을 들이켰다. 두 사람은 같이 식사를 하면서 별 말이 없이 계속해서 술잔이 오갔다.
‘돈이 참 사람 우습게 만들죠?’
‘그렇죠, 뭐.’
‘젊었을 적에는 나도 한가락 한다고 거들먹대고 다녔지요. 이제는 별로 남은 것도 없지만…’
‘남은 게 없다뇨? 사장님 보유하고 계시는 필지가 줄잡아도 싯가로 치면 어마어마한 금액일 텐데요.’
‘그깟 것, 한평 땅만큼의 값어치도 없다우. 그래서 이렇게 싸워대고 있지만…’
‘싸우시다뇨?’
‘내 그 사업 좋은 거 모르는 바 아니우. 그렇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봐야 하지. 내 평생을 걸려 그 땅에 다다르려고 온갖 짓을 않 해 본 것이 없었어. 이제 그 땅만 사 들이면 그만인데,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너무 힘이 드는 구만.’
나는 뉴타운 사업과 관련해서 고개를 돌리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호감을 갖고 계시다는 말씀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짐짓 관심이라도 있는 양, 질문을 던졌다.
‘무슨 땅인데요?’
‘내 얘기나 들어 보실려우? 비도 오고, 술도 기분 좋게 취해가는데 그럽시다.’
그는 그 버스 종점지역에서 터잡이로 유명했던 패거리의 잘 알려진 주먹이었다. 젊은 시절, 멋모르고 뛰어든 그 바닥에서 그는 신출귀몰한 주먹질에 사람들의 관심을 대번에 끌었고, 길거리가 좁다 하고 어깨를 거들먹 거리고 다니던 깡패였다고….
‘그 당시, 우리 패거리는 두 종류 였어. 하나는 정치인들의 불법적인 집회나 표몰이에 뒷심이 되 주는 정치깡패 류와 선거 시기가 아닌 때를 위해 언제나 조직에 밥줄을 대는 나 같은 주먹들로 나뉘어 있었지. 나는 시장 골목이며, 상점이며, 할 것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호비를 뜯으러 다녔고, 그걸 거부하는 인간들이 나타나면 흠씬 두들겨 패기도 하고, 좌판이며, 가게 안을 아수라장을 만드는 게 내 할 일 이었으니까. 그렇게 악다구니를 치면서 다니던 즈음에, 시골에서 올라 온 듯한 모녀가 그 곳에 기어 들어왔지. 너무 파리해서 국그릇도 들지 못할 것 같은 가는 손목으로 온 종일 땀을 훔쳐가며,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을 받는 그 불쌍한 모녀는 다 찌그러져가는 식당을 헐값에 인수해서 들어 온 거야. 한 일주일, 조용하게 장사하게 놔 두었어. 맛도 일품이었지만, 벙어리 에미 에다, 가녀린 딸네미와 둘이서 꾸려가는 자그마한 식당이었기에 사람들의 동정도 쏟아졌었고……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개시한 그 식당으로부터 보호비를 뜯어오라는 명령을 받았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애들을 우르르 끌고 그 식당에 간 거야. 우리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식당 안에 들어가 넓직 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것저것 시키고, 시시콜콜 타박을 하는 게 수순이지.’
““ 야? 이거 순대국 맛이 왜 이래? 걸레 삶은 물로 국을 끓이나?””
““손님, 그럴 리가요?””
‘내 앞에서 국냄새 까지 맡으면서도 우리들이 보호비를 받으러 야지를 놓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순박했지. 나는 그녀를 보면 볼수록 나의 깡패 근성이 부끄러워 지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라, 놀랄 수 밖에 없었고….하지만 일은 일이지, 아랫것들도 있는데, 라는 생각에 나는 앉아 있다가 탁자를 획 뒤집어 버렸어.’
““너희들 누구 허락 맞고 장사 하라고 그러디, 응? 이것들이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 여러 말 할거 없고, 어서 내놔.””
““뭘요? 흑흑, 저 그릇 깨진 걸 다 어떻게 해.흑흑… 아저씨, 국이 맛이 없었으면 제가 돈 받지 않을 테니 다시 끓여 올릴께요, 네?””
““아니, 이게 그래도 말 길을 못 알아 듣네? 너 보호비 라고 들어 봤냐? 우리 같이 믿음직한 아자씨 들이 너그들 장사 잘 되십사 하고 빌어주고, 막아주고, 기분 좋으라고 똥꾸녕에 바람도 솔솔 불어 준다는데, 아직도 모르겠냐? 이런 쓰발!””
‘멍하니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가 탁 막혔지. 나는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맑은 눈은 보질 못했거든, 언제나 술에 취해 게슴츠레 하게 내 좇대가리에 엎어지는 술집년 들이나 창녀들 눈깔이 제일 맘에 든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난 무언가 다른 것을 그녀의 눈 안에서 본 것이야.’
‘그래서요?’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차마 내 손으로는 그 모녀 앞에 차고 있는 전대를 뺏글어 올 수가 없어서 그냥 아랫것들을 시키고 나는 식당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웠어. 돈이 없다고 하며, 허리에 찬 전대를 무슨 생명줄 인 것 마냥 붙들고 있는 그 두 모녀를 후드려 패고, 발길질 한 뒤에 기어이 뺏어서 돈을 털었더군. 돌아서서 아이들과 가려는데, 그녀가 내 앞을 가로 막는 거야.’
““아저씨 나 좀 봐요. 나 좀 보자니깐요.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죠? 나, 아저씨 눈 보니 알 수 있어요,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죠? 그렇죠? 그럼, 우리 돈 돌려 줘요. 제발, 이렇게 제가 빌께요. 그 돈, 우리 한테는 목숨 같은 돈이에요!””
‘나는 그때 처럼 깡패 짓을 후회해 본 적이 없었지. 그 고운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데………아마 보지 않고는 모를 게야…….’
사장은 거푸 차례, 술을 들이켰다. 가슴이 쓰라려 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날 저녁에 술을 만땅으로 취해 가지고 그 식당엘 다시 찾아갔지. 멀리서 부서진 탁자를 식당 밖으로 끌고 나와서 고치는데, 그게 어디 여자 둘이나 있다고 될 일이야?’
““저리 비켜 보라니깐!””
““왜요! 이것 마저 부숴 뜨릴 라구요?””
““으이그, 씨발, 속고만 살았나?””
‘내가 길가로 나가서 짱돌을 집어오자, 여인네 두 사람은 기겁을 하고 식당 안으로 도망갔지, 망치도 변변히 없던 차에 나는 박혀 있던 못을 집어 온 돌로 쳐내서 다시 뽑고, 탁자를 그럴 싸하게 다시 만들면서, 들고 온 돌로 신나게 못질을 했던 거야. 탁자를 다 고치고 일어 나는데, 그녀가 설탕물을 한 대접 들고 나오더군. 이제까지도 그렇게 달고 시원한 설탕물은 먹어 본 적이 없지, 아마도…..’
그때부터 사장과 그 여인의 인연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 식당의 보호비는 사장이 받으러 다녔고,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한 뒤에 보호비를 받는 척 하면서 언제나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 보호비 랍시고, 바쳤다는 것이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은희였고, 사장의 이름은 수철 이라고 했다. 보호비를 대신 내주는 것을 알게 되고부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 졌고, 사장은 일이 없을 때면, 언제나 식당에 와서 허드렛 일도 하고, 그릇도 치워 주면서, 저녁에는 그 식당의 뒤로 펼쳐진 조그만 언덕에 앉아 밤이 새도록 얘기를 하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에미가 몸살로 쓰러져 일을 며칠 못하게 되자, 사장은 혼자 고생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팔을 걷어 부치고, 장사를 도왔다고 하는데…..
‘그 날은 무척이나 손님이 많았어. 저녁이 되도록 두 사람, 자리에 한번도 앉질 못했을 정도니까. 난 하루종일 그렇게 흐뭇하고 기쁠 수가 없었지. 틈틈이 나를 바라다 보면서 웃음 짓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속이 사무쳐 오면서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번뜩 들었으니까.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고, 나에게는 그나마 과분했기에, 그냥 생각만 해볼 뿐이었지만…그런데, 그 날 밤에 일이 터진 거야.’
‘일이 터지다뇨?’
‘내가 그 식당에서 죽발 때리고 있다는 소식을 형님이 들으신 게지. 식당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여럿이 불쑥 식당으로 들어서는 거야. 나는 앞치마를 메고 있었고, 딱 보기에도 식당 주방장 처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햐, 이게 누구야? 의리의 사나이 수철이 아냐? 내가 잘 못 봤나?””
““형님? 어떻게 여길, 다…..””
““야, 이 새끼야, 너 제 정신이야? 우릴 쪽 팔리게 해도 분수가 있지, 이런 좇 같은 식당에서 앞치마 두르고 우릴 엿멕여? 게다가 너! 보호비도 네 돈으로 깠대며? 이런 샹노무 쇄끼를 봤나? 너 자선 사업하냐?, 얘들아, 밟어!””
““형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나가서 얘기 하시죠?””
사장은 그 당시, 그 조직에서 나오려고 때를 기다리던 차에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녀와 식당이 다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밖으로 사람들을 불러냈단다.
““형님, 이제 이 생활에 신물이 납니다. 어디 나를 밟고 이 식당 안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갈 수 있나 봅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나 붙잡지 마쇼, 떠날 생각이니깐. 그 동안 돈도 벌어 줄 만큼 벌어다 주었고, 나 못한 거 없수다.””
사장이 노려 보면서 지그시 몸을 틀자, 모두 긴장했고….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막역한 형님이자, 주먹질 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장을 요절 내기 위해 손들고 먼저 희생할 바보들은 없었다. 사장은 주먹을 고쳐 쥐고, 뒤를 보며, 걱정 말라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은 안심 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장을 향해 공격을 하려는 무모한 생각에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의도적인 술수였다고 했다.
““오냐, 이 개쇄끼들, 어제 까지 형님이던 나에게 주먹을 날려? 아-쟈! ””
사장은 공중으로 몸을 날리면서 번개 같은 뒷발 후려치기로 먼저 공격해 들어오는 놈의 옆구리를 돌려 대며 고꾸라 트리고, 그 옆에 뻘쭘히 서있는 놈의 명치를 질러 대서 조져 앉게 만들었다. 둘러싼 포위망에 헛점이 생기자, 당황하는 것은 사장 쪽이 아니라 쪽수로도 훨씬 많았던 그 형님이라는 작자의 무리들 이었다.
““야, 이 빙신 같은 쇄끼들아! 그 쪽수로 저 한 쌔끼를 못 눌러?””
““형님, 잘못 짚으셨수다. 다 내가 키웠는데, 나 만큼 잘 싸울라구요?, 으쌰!””
사장은 자신의 주특기는 빠르게 끊어 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보다 느린 녀석들의 내지르는 주먹들이 슬로우 모션 처럼 보이고, 그걸 피하는 것 쯤이야 식은죽 먹기와도 같았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수 많은 주먹과 발길질이 한곳으로 집중 되는 것 같아도 사장은 날랜 푸트워크로 그 비오는 듯한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달겨 드는 조무래기들에게 깨끗한 결정타를 번개처럼 올려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한 놈이 쓰러지고 나자, 사장은 천천히 그 형님이라는 작자에게 다가가,
““형님 이제 아셨수? 형님은 내 적수가 아니란 걸 말이우? 내가 꾹꾹 참고 있었지만 말이죠….이제 쓸데없는 생각말고 애들 데리고 어서 여길 뜨는 게 좋을 것 같수. 더 이상 나를 화나게 하면 아주 확 쓸어버릴 테니깐 두루…..””
그러나, 그 놈은 그렇게 순순히 물러설 놈이 아니었단다, 조무래기들을 끌고 돌아서서 가다가 갑자기 돌이켜 품속에서 무언가를 날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놈의 별명처럼 예리한 주머니칼이, 다행이긴 했어도 팔에 박혔다는 것이다.
‘나야 그 당시 혈기 왕성 하던 시기 였는데 그깟 칼이 문제겠어? 박힌 그 칼을 서서히 빼서는 칼에 묻은 피를 혀로 슬슬 빨아 먹었더니 다 질겁을 하고 도망치더군.’
‘그래서요?’
‘그 날 밤, 혼자 있기 무섭다는 그녀의 곁에서 나는 밤을 지샌 거지. 점점 재려 오는 팔의 느낌에다가 약국이나 병원에도 갈 수 없었기에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손수 씻어주고, 무명치마의 안쪽을 찢어서 팔을 단단히 동여 매주기도 했지. 으쓱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를 지킬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그렇게 뿌듯 할 수가 없었어. 가게 문을 닫고, 식당의자에 둘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녀가 내 가슴에 살며시 안겨 오는 거야.’
““수철씨가 아니면 제가 어떻게 버텼겠어요? 이렇게 든든한데…””
““나같이 막 되먹은 깡패새끼가 뭐 볼게 있다고…””
““아니에요, 내가 전에 말했죠? 눈을 보면 안다고… 수철씨, 절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선한 사람 이에요, 그렇죠?””
그녀는 아프다는 사장의 신음도 아랑곳 하질 않고, 으스러지게 껴안고, 한 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사장도 그녀를 껴안고 얼마간을 있다가 방안에 누워 있는 어머니도 아랑곳 하질 않고, 식당 탁자에 걸터 앉혀 놓고는 마구 옷을 벗겼고….그녀는 땀내가 난다며, 마다 했지만, 사장의 눈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로 아리따운 여인의 향기 였다고 그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은희는 가슴이 작고 도톰 했었어. 살결이 너무 희고 고와서 나는 솜사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짠 줄도 모르고 마구 핥아댔지. 좁은 탁자 위에서 바둥대고, 내가 그녀의 온 몸을 아픈 팔이었지만 이리저리 쓰다듬기에 그녀는 몸을 비틀면서 요동치고…. 탁자의 삐걱거리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해. 내가 마구 잡이로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옷을 걷어 내렸는데, 그녀가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야. 그러더니 제 손으로 옷을 다 벗고는 탁자에 엎드리더군. 나는 그렇게 예쁘고, 탐스런 엉덩이는 본적이 없어. 그 이후로 살아있는 여인네의 살은 본 적이 없지만….’
그 이후로 사장은 혼자서 살아 온 모양이었다.
‘나는 아파오는 팔 때문에 그녀를 움켜 쥘 수가 없었지. 그저 그녀의 그 쫀득한 엉덩이 살 위에 올려 놓기만 했을 뿐… 땀으로 끈적하기도 했지만 그 뜨거움이라든가, 간간히 느껴지는 그녀의 떨림은 정말 정신을 쏙 빼게 했지. 내가 팔이 아파 그녀를 붙들고 좇질을 못하는 것을 알자마자, 은희는 나를 뒤로 돌아다 보면서 엉덩이를 내 쪽을 향해 밀어대기 시작했어. 맨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가 갈수록 엉덩이와 보지를 내 아랫도리에 부딪혀 바수어 뜨릴 것처럼 정신없이 아랫도리를 나를 향해 들이 밀었고….그 철벅거리는 소리, 그녀의 신음소리, 나를 쳐다 보면서 행복감에 젖어있던 그녀의 웃음들….모든 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 같았는데 말이야. 그녀는 나에게 엉덩이를 들이 밀다가 손으로 나를 밀쳐 내더니, 나를 다시 의자에 앉히는 거야. 그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내 위에 나를 마주보면서 그녀의 보지와 가랑이를 벌리면서 내 좇 위에 살포시 내려 앉았어. 내 넓적다리를 타고 흐르던 그녀의 씹물이 느껴지고, 그녀는 내 머리를 부여 잡고 자기의 가슴에 나를 보듬어 안은 채, 말을 타듯이 내 위에서 정신을 놓았어. 숨까지 턱에 차서 꺽꺽 거리며, 고개가 젖혀진 그녀의 하얀 목선…. 지금도 눈에 선해. 그 전에 많은 기집들과 좇질을 했지만 나는 생전 처음 좇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한동안 그녀와 나는 다리와 항문 사이로 비질비질 내가 싸놓은 좇물과 그녀의 씹물이 어우러져서 흘러 내리는 것도 내버려 두었어. 모든 게 황홀 했으니까.’
““제가 그랬죠? 수철씨, 절대 나쁜 사람 아니라고….””
‘나는 옷을 껴 입고, 탁자를 몇 개 붙여서 그 위에서 잠이 들어 버렸지. 아마도 팔이 찔려 그 때문에 그리도 깊이, 길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눈을 뜨고 나자,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랐지. 그 사람은 은희가 아니고, 몸살에서 겨우 몸을 추스리고 일어난 그녀의 어머님 이셨어. 말도 못하고, 나를 깨우는데 보니 주위에 이상하게 가게 문이 열려진 채로 있고, 은희가 보이질 않는 거였어. 나는 순간, 이상한 느낌에 현관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그때부터 은희를 찾기 시작했던 거지.’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데요?’
‘내가 잠이 깊이 빠져든 사이 그 새끼들이 몰래 문을 따고 들어와 그녀를 데려간 거였어. 자기를 업신여기고, 동생들 앞에서 챙피를 주었다는 데 대한 보복이었을 거구. 나는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그녀를 찾을 수 있었지. 거적데기에 싸여 만신창이가 된 채, 저 언덕 구릉에 버려진 그녀의 시신을 말이야. 누군가 자동차로 치고 달아난 것처럼 해 놓고 말이야. 나는 눈에 불이 확 당겨졌었어. 그녀를 그렇게 해 놓은 그 놈을 가만 안 놔두겠다고 이를 갈았구….’
‘그래서요?’
나는 입이 바짝바짝 타기까지 했다. 그 사장은 작은 손도끼를 쥐고서 그 놈을 찾아 갔다고 한다. 사장의 이글이글 불타 오르는 눈매를 바라다 본 다른 동생들은 누가 죽어도 죽을 것이라면서 절대 옆에 따라 붙지도 못하고, 기어이 그 놈과 사장은 맞대면을 하게 되었다는데,
‘나는 벌벌 떨고 있는 그 놈의 정수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어. 바로 정수리의 직전까지. 한 치만 더 갔더라면 아마도 그 놈의 골은 쪼개져서 허연 골이 밖으로 튀어 나왔겠지. 모두들 그 놈이 죽는 줄로만 알았다가 귀신 같은 솜씨로 멈추어 버린 도끼자루에 혼들이 다 나가버릴 지경이었어.’
‘그런데 왜 복수를 않 하셨어요?’
‘갈 때까지는 그랬지. 그 놈을 잡아다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갈아 마셔 버리겠다고 그런데, 그 놈의 눈을 쳐다 보면서 도끼자루를 치켜든 순간에, 그녀의 목소리가 문득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확실히 느껴지는 거야. 수철씨는 악한 사람, 아니죠? 선한 사람 맞아요! 눈을 보면 안다니까요!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 눈매까지 생생하게 기억 나면서 말이야. 그녀가 나를 살린 거지. 돌이켜 보면…’
도끼자루를 내려 놓으며, 사장은 둘러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고 한다.
““누구든 조직을 떠나려면 나처럼 하지 않고는 못 떠난다. 잘 봐둬라!””
그리고 사장은 자신의 왼쪽 손목을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고 한다. 조직의 무서움과 그 기강을 자신으로 인해 무너뜨리고 나올 수는 없었기에 그렇게 라도 하고서 손을 씻고 싶었다는 것이 사장의 말이었다.
‘모든 주먹들에게 회자되는 나의 무서운 일화지. 나는 내가 입고간 옷을 찢어 손목을 퉁퉁 쳐 매고, 한 손에는 피가 둑둑 떨어지는 왼손을 들고, 형님 잘 모시고 살라며, 돌아서 그 자리를 나온 얘기는 말이야. 그 이후로는 나를 건드리거나 귀찮게 하는 놈들은 없었어. 그녀가 가고 없는 세상, 정말 살기 힘들더군. 머릿 속에는 거짓말처럼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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