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X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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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탓에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지만 필요한 자료는 정말 찾을 수 없다. 발 품으로 여기 저기 자료를 찾아 다니는 시간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기 일쑤인 법인데 오늘도 예외없이 온종일 대학 도서실을 찾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지만 역부족이다. 더위가 한풀 꺽일 때도 됐건만 폭염이 계속되면서 차 에어컨도 역할을 못하고 있다. 나무 그늘에 쳐 박아둔 차 속에서 한 잠 때리면 좋을텐데 숙을 데리러 가야할 시간이 벌써 됐다 싶어 차에 시동을 걸고 혼잡한 도심을 가로 질러 가고 있다.
“오늘 어땠어?”
“응, 당신이 맡은 동아리 학생을 만났어.”
“누군데?”
“김미숙이라는 학생인데 일학년이더군.”
“요즘 풀이 죽어 지낼텐데...”
“그래, 어셈블리 책을 열심히 탐독하더군.”
“기초 지식도 없이 로봇을 만들고 싶다며 동아리에 껴 들었지.”
“공부하는 걸로 봐선 가능성이 있는 아이겠지?”
“응용분야는 훤한데 알맹이가 없거든. 하지만 언젠가는 해 낼 아이같아.”
“대학생을 상대로 로봇 프로젝트 동아리를 운영해도 되는거야?”
“기초과학도 모른 채 대학원에 덜컹 등록하는 아이들 보다는 낫지 않을까?”
“언제 키워서 연구시키지?”
“기대는 크지 않지만 뛰어난 감각으로 쫒아 오는 아이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시도해볼만한 일 아닌가요?”
“하긴,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학생들을 상대로 자유분망한 로봇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하네.”
“완성된 인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키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
“어이구, 나를 위해 동아리를 떠 맡은 셈이군?”
“혼자 외로운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잖아.”
“그래, 고마워.”
퇴근길이 혼잡했지만 약간을 외곽으로 더 진행하니 곧 이어 시원스런 강북 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거센 바람도 숨을 탁탁 막힐 정도로 더워져 있다.
“로봇 프로젝트는 얼마나 걸릴까?”
“글세, 3년은 잡아야겠지?”
“인원 계획은 다 세웠어?”
“말이 되는 소리야?
맨날 살 붙이고 있었는데 언제 시간 내서 팀을 구성해?”
“공사 구분을 못하면 박사가 아니라구.”
로봇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기관을 다른 기능으로 설계할 필요는 없다. 큰 움직임을 근간으로 공통부분을 찾아내면 결국 모터제어로 귀결된다. 손가락과 같이 부드럽게 사물을 제어해야 할 경우라도 관절에 속하는 부분이 크냐 작냐의 문제일 뿐이다. 발가락과 다리와 허벅지를 잇는 관계도 결국은 굴절범위를 몇도까지 허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며 어깨 근육과 팔 근육의 연결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렇더라도 팔과 다리가 동시에 조작될 확률과 그러한 계산오류에 따른 공중백이로 나뒹굴 위험도 계산되어야 한다. 어쩌면 사람의 평형감각에 속하는 부분을 메인컨트롤러에서 제어하기 위한 기관 단위의 컨트롤러와의 유기적 관계를 스위칭해주는 부분과 릴레이된 신호 상호간의 충돌을 최소화 하는 부분에서는 공학도 보다는 수학적 균형감각을 갖는 연구원도 필요할 것 같다.
“개략적으로 이 분야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과는 이메일을 통해 접촉해 봤어.
그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사기업 연구소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라는 점이었지. 듣고 보고 걷고 흔들어 대는 기본적인 모듈이 완성되어 있지만 그것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한 제어신호를 보내고 유효한 값을 해석해 내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멀고 험난한 길이더군.“
“그러니까 유력한 연구원들을 모으려는 것 아닌가?”
“겁장이들이지. 안정된 생활을 팽기치고 나설 사람들은 없으니까.”
“월급을 많이 주면 되지 않아?”
“일에 미친 사람들에겐 돈이란 무의미 한 법일텐데 아직까지 이 분야에 미친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발 들여놓은 사람치고 안 미친 사람이 어디 있어?”
“간혹 미쳤다가도 가족과 가정을 생각하곤 불현 듯 현실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회귀본능이 강한 사람들의 현실 때문이지.”
“해외에서 구하면 어때요?”
“어디? 미국?”
“아이디 강국이라는 인도 어떨까?”
“괜찮은 생각인것 같은데 인도는 마치 우리나라의 60년대와 비슷할꺼야.”
“첨단 통신장비가 발달했다고 들었어.”
“인프라 구축이 어려우니까 궁여지책으로 인공위성을 많이 이용한 것 뿐이야.”
“그것도 기술 아닐까?”
“기술이겠지. 남들이 경험하며 흘린 땀방울을 바라다 보며 자신은 껑충 뛰어넘어 새로운 것들만 받아들이는 것은 개발도상국만의 특권이니까.”
“그 사람들의 실력을 안믿는거군요?”
“먼 옛날 트랜지스터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했었지. 싼 인건비를 무기로 생산공장을 서울에 세우고 거기서 만들어진 제품을 전세계에 팔았었지. 그 정교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우리나라를 신흥 IT 강국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어. 인도가 바로 그 꼴이지.”
“그럼 당신은 연구원을 어떻게 충원할 계획이야?”
“모르겠어. 생각 같아서는 공고를 졸업한 사람들만 모아놓고 사오년 특강을 해서라도 자체 인력을 양성해야만 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야.”
“왜 하필 공고 졸업생을 선호하죠?”
“대학 전공한 사람들 중에 일부는 졸업할 때까지 납땜 한번 안 해보고 고득점으로 장학금까지 챙기며 공부하는 경우가 많거든.”
“설마.”
“대학이라는 곳이 가르쳐 주는 것이 없잖아. 자신의 노력으로 과정을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얻어야 하는 지식인데 이를 거부하고 교과서에 나온 가치 없는 공식과 상식들만 꿰어 찬채 시험만 잘 보는 애들이 허다한게 현실이니까.”
“그런 얘들도 있지만 노력하는 아이들도 많아요.”
“쓸만한 인재를 찾는 확률은 로또복권 일등될 확률만큼 어려운 일이지.”
“알았어요. 혹독하게 실험적인 인재가 만들어지도록 동아리를 운영해 볼께요.”
황교수의 집에 도착한 나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로봇 설계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로봇의 기관별 설계도는 여러 나라에서 조금씩 진전이 있었으므로 인터넷을 통해 그들과 협력점을 찾아 자료를 제공받았다. 인간의 사고력과 비슷한 수준의 판단가치를 심어주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에 장치될 자료는 정신과 전공의 박사들로부터 임상실험 결과를 제공 받아 디지털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돈과 명예에 무관한 몇 사람들의 광신도들이 황교수의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하면서 설계도는 점차 세밀하고 복잡한 모양으로 형태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논리적인 설계는 상상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설계가 점차 구체화 됨에 따라 이를 구현해 보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용솟음 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설계도를 실험해 보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글세, 적어도 1년 정도 걸려야 테스트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부터 들어갈 자금은 얼마나 되죠?”
“아마 이삼십억은 있어야 할꺼야.”
“부품만 계산하면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는데도요?”
“각각의 부품이 원하는데로 작동한다면 몰라도 수천번 때려 부숴야 할테니까.”
“신중하게 부품들을 다루면 비용 절감이 되겠네요.”
“그렇지 않아. 모든 일들이 이론과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없거든. 일단 이론대로 만들어 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수백번씩 디버깅이 필요하지.”
“땜질은 누가해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자기가 맡은 기관은 자기가 직접 땜질까지 해야해.”
“당신도 땜질 할 줄 알아요?”
“잘은 못해. 하지만 손가락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몫은 내가 해 내야지.”
삼개월 만에 기본 설계도가 완성됐다.
밖은 흰눈으로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포장해 버렸다.
충혈된 연구원들의 눈빛 조차도 밖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다소곳한 눈빛으로 순화시키는 대자연의 변화를 통해 험난한 설계과정이 완성되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여보, 이번 설계도를 근거로 정부의 지원금을 신청하세요.”
“그래야겠지. 로봇이 완성되더라도 실용화까지는 막대한 돈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니까.”
“이 분야의 교수들과 사전에 로봇 프로젝트 지원을 요청해 놓았어요.
그들이 심의위원으로 들어오면 적어도 당신 편에 서서 정부의 지원을 결정하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해 줄꺼에요.“
“정부에서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설계도만 외부 유출되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잊어선 안되요. 어쩌면 외부자금 지원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꺼요.”
“좋아요. 저의 그룹내에서도 당신의 설계를 논의하는 중이에요. 다만 회사의 성격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개인적 지원은 문제 없지만 공식적인 지원까지 얻어내는데는 정관개정작업이라든지 이사회를 통한 투자승인이 필요해요.”
벌써 삼개월이란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가까운 발치 끝에 놓여 있는 숙의 살내음조차 맡아본지 오랜 기억속에 사라져 버렸다. 수차례 동아리 학생들이 자원봉사차 방문했지만 그 속에 김미숙이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도 잘 자라고 있었겠지 하는 막연한 자위로써 그 동안의 세월을 눌러 본다.
날이 밝아지자 눈 길을 따라 신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기획력이 뛰어난 직원들과 함께 정부지원금과 로봇프로젝트에 대한 신규 자금 유치를 위한 일반 투자자를 위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였다. 내가 연구에 몰두해 있는 동안 황교수가 많은 직원들에게 나를 대신하여 로봇 연구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기획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들로부터 만들어진 지원요청서와 투자유치계획서를 들고 또 한두달 메달려야 할 행정적인 절차만 넘기면 몇 년을 벼뤄온 대망의 로봇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된다는 부푼 희망에 그 동안의 피곤이 싹 가시는 듯 했다.
로봇프로젝트에 대한 개요와 제작과정 등을 브리핑한 후 탁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님요, 몇 달째 잠수함 타더니 뭍위로 숨구멍 내밀었어예?”
“오냐, 벌써 삼개월이 지났더구나. 넌 어찌 지냈니?”
“올챙이 시제품 만들어서 샘플 내보냈어예.”
“오, 벌써?”
“반응이 좋아예. 회사가 쫌만 밀어주면 대박 날것 같아예.”
“잘 됐구나. 명옥이는?”
“행님요, 제가 청첩장 보냈는데 바빠서 못온다 했잖아예.”
“그랬구나. 삼개월동안 핸드폰도 끄고 황교수 집에서 푹 박혀 있었지.”
“지는 시월에 명옥이랑 살림 차렸어예.”
“아이들은?”
“명옥이가 길러예. 함 우리집에 오이소.”
“그랬구나. 니는 내가 무심했다 싶었지?”
“아니예. 황교수님이 대신 행님 얘기 했어예.”
“황교수가 날 미친 놈이라 안 그러든?”
“미쳤다하지예. 개발이라는게 그렇게 무서운 일인지 몰랐다데예.”
“하하, 개발자는 미치지 않으면 어떤 일도 건져낼 것이 없단다. 그나저나 네놈 결혼식에 참석도 못했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걱정마이소. 황교수님이 결혼 선물 엄청해줬어예.”
“모처럼 한가한 마음으로 신사동에 나왔다. 니 놈 얼굴이라도 봐야할꺼 아닌가?”
“행님요. 저녁때 술한잔 하지예. 저는 거래처 돌아보고 올께예.”
탁과 명옥의 일도 잊고 있었다. 나에게 몸을 허락한 이후 급속도로 그들의 결혼이 진행되었나 보다. 아이들 문제 때문으로도 나에게 숱한 질타를 받고 싶었을텐데 개발기간동안 속세를 벗어난 관계로 한마디 말도 상의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혼자 해냈나 보다. 그러나 탁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한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가족과 가정을 현재의 시점에서는 깔끔하게 정리하였다. 눈물과 설음과 고뇌의 흔적은 보여주지 않고 명옥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오히려 로봇 개발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남겨진 최후의 선택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져 들고 있다.
“황교수, 나 집에 좀 다녀올게.”
“그러세요. 몇 달째 아이들 얼굴도 못봤을텐데 다녀오세요.”
“그래. 저녁 때 탁과장이 술 한잔 하자는데 시간 맞춰 올게.”
“그랬어요? 미친 듯이 일하는 당신한테 탁과장의 결혼식 소식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일할 때는 알려줘도 어차피 몰라. 관심 밖이었을꺼야.”
차를 몰고 한남대교를 건너고 있다. 하얀 눈으로 덮였던 거리는 재설차의 분주함에 따라 점차 도로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립극장을 지나 장춘단 길로 접어 들면서 몇 달 전인가 앳된 학생의 모습으로 다가왔던 김미숙의 얼굴이 기억난다. 그녀는 아직도 어셈블리와 씨름하고 있을까? 신설동을 거쳐 외대앞을 지나 화랑로까지 나왔다. 중계동 아파트들도 몇 달 못본 사이에 나이가 훨씬 들어보이는 할아버지 모습으로 하얀 눈발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도봉경찰서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지하도를 따라 내려가며 초보운전자들의 당황한 모습으로 언덕에서 주춤하는 모습이 보인다. 당신도 한때는 초보였다는 경고성 글을 뒷 유리에 붙인 모습을 통해 더 많이 이기적인 세상으로 이동했음을 실감한다.
골목길을 돌어 들었다. 몇 달만에 보이는 대문인지 모른다. 골목길에 차를 대고 대문의 벨을 눌렀다.
“누구?”
“어, 나야.”
“당신 개발 끝났어?”
“응, 기초 설계도가 오늘 나왔어.”
“그럼 이젠 집에 매일 들어오는거야?”
“집?”
“아직도 정신이 안들어?.”
“내가 미쳐인는 걸 알구 있었구나?”
“하루 이틀 살았나? 당신이 일에 미치면 몇 달씩 잠적하는걸 뻔히 아는데 뭐.”
“아이들은 별일 없고?”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밖은 춥잖아.”
여름에 시작된 일이 겨울까지 이어지면서 외투가 준비되지 않은 탓에 추위를 혼자 다 느끼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어서면서 나를 맞이하는 아내의 표정은 멀리 여행을 떠났난 후 소식조차 없이 애끓게 하던 못난 아들의 무사 귀한에 안도하는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팔을 뻗어 나를 감싼 아내의 입술은 어느새 두툼한 내 입술을 덮었다. 할닥이는 가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밀착하며 한치의 틈도 허용치 않는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떨어질 줄 모르는 입술 사이로 부드러운 혀가 밀려들어왔다. 허공에 메달린 내 팔은 다소 힘을 주어 아내의 허리를 감아 버렸다. 철 맞지 않는 옷 사이로 하얀 손이 파고 들었다. 가슴께를 부드럽게 숨어 들어오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단추가 풀어지며 가슴을 파고 들었던 손끝의 움직임은 배살 위와 그 아래까지 넘나들며 몇 달만의 스킨쉽에 몸부림 치듯 아쉬운 탐닉이 시작된다. 혁대가 풀어지며 바지가 힘없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얀 손끝이 불알까지 파고들며 밑에서 위로 몇 번씩 감싸기 시작하니 딱딱하던 온 몸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햐얀 속살을 만지는 또 하나의 동작으로 이어졌다. 나도 허리 틈으로 벌어진 옷가지를 뚫고 등짝이며 가슴께를 서서히 움직여갔다. 토실하게 집히는 가슴살에 두툼한 입술을 들이대며 살짝 눞히듯 핥아가기 시작했다. 꺽인 두 다리를 지탱하는 내 팔 힘에 의지된 여체는 스르르 방바닥으로 미끌어지듯 흘렀다. 거칠게 몸을 치감은 흔적들을 지워나갔다. 하얗게 드러나며 탐스러운 향기를 뿜어내는 그 몸위로 성급히 올라탔다. 활짝 벌려진 두 다리 사이로 끊임없이 샘물이 흘러내렸다. 굵은 내 몸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학학거리며 달겨드는 여체를 향해 끊임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엄마, 아빠왔어?”
학교 다니는 큰 아이의 목소리가 방 안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황급히 몸을 추스르며 아이의 얼굴을 맞이해야 했다.
“그래, 학교는 재미있니?”
“응, 오늘 겨울 방학했어.”
“여름 방학때 널 봤는데 벌써 겨울 방학이니?”
“울 아빠가 로봇만든다니까 애들이 안 믿더라.”
“너처럼 똑똑한 아이의 아빠가 로봇 만든다는데 왜 안믿지?”
“히히, 사실 난 똑똑하지 않거든.”
“왜?”
“아빠처럼 맨날 집 밖에서만 살기 싫어서 공부 안할라구.”
어린 가슴속에도 아빠의 공백을 크게 받아 들이고 있다. 근엄하든 부드럽든 그림자처럼 놈의 곁에서 숨쉬어 주는 것 보다 더 큰 것이 없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연구에 몰두하면 몇 달이든 아무 생각도 못한채 일에 파뭍혀 버리는 병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공부를 하긴 해야지.”
“응, 꼴등만 안하면 되잖아.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있거든.”
“그랬니? 잘했다.”
아내는 아이의 눈 빛을 피해가며 질펀하게 벌어진 그 곳을 단도리 하고 있다. 하나의 행위 조차도 완성할 수 없는 현실에서 나는 너무 커다란 이상으로 모든 삶의 근거인 가정을 팽겨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어쩌면 더 힘들었던 결정을 해 버린 탁과장의 행위 조차 따라잡기엔 가슴이 너무 여린 나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삶의 근처에 있어본 적도 없는 작은 아이들의 마음속이 삶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내게 있어서 가족의 소중함이나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우려 보다는 현재 내가 택한 나의 일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적어도 스치듯 만나는 여자의 몸뚱아리에 내 영혼을 쳐 박은 적은 없다. 굳은 의지에 의해 헤쳐나가야할 과제를 풀어줄 힘을 찾기 위해 여자와 한 몸이 된 적은 있다. 그렇다면 아내와 숙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어느 편일까?
“당신, 오늘 밤 자고 갈꺼죠?”
“아니야. 연구 결과를 상의하려고 잠시 나왔을 뿐이야.”
“그럼 언제 올꺼죠?”
“글세, 지난 시간처럼 온통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는 않을테니까 자주 볼 수 있어.”
“몇번이나 말했지만 당신을 믿으니까 이만치 참는 것 알지?”
“알았어.”
나는 아내의 어깨와 머리를 감싸며 가볍게 입맞춤 해준 후 방을 빠져 나왔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얼굴이라도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판인데 그러게 되면 집을 빠져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서 꼬맹이의 얼굴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대문을 빠져 나왔다.
“아빠 왔었다고 자랑할게.”
가슴이 미어지듯 아파온다. 감정이 앞선다면 로봇 프로젝트는 더디게 진행될 것 같았으므로 차에 시동을 걸고 빛살처럼 동네를 빠져 나왔다.
“행님요, 울 집에 함 갑시더.”
“집이 어덴데?”
“천호동예.”
“와 글루 이사했노? 니 살던 동네두 가까울텐데.”
“애 엄마가 아덜 보고 싶다카니 가까이 살기루 했지예.”
“맘만 더 아프지 않겠나?”
“지가 참겠다하니 그랄수 밖에예.”
합의 이혼이 안되어 이혼재판소를 찾았다고 한다. 가진 것 모두를 넘겨준다고 해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지난 날 구박했던 소치에 대해 많은 반성을 하는 통에 갈라서기가 힘들었다 하였다. 살붙이며 가정을 이룬 사람들은 짧은 순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모른다. 마라톤 코스가 그져 밋밋하게 평원에 펼쳐졌을 것이라 마냥 믿어 버린 마라토너는 조그만 언덕을 만나도 레이스를 포기하고 만다. 많은 코스를 뛰어 본 베터랑은 평지를 달리며 구릉을 생각하고 힘을 절약한다. 마라톤 보다 더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나타난 작은 감정만으로 레이스를 포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인생 마라톤에 의미없이 합류하여 단거리보다 짧은 만큼만 힘차게 뛰어보다간 겁 없이 달려온 자신을 뒤돌아보며 모든 레이스를 포기하거나 다시 한번 자신을 추스르며 장거리 레이스를 위한 체력 안배를 하는 것이다. 탁은 인생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다만 또 다른 경기에 참여할 기회를 가졌을 뿐이다. 손 쉽게 레이스에 참여하고 더 손쉽게 레이스를 포기했던 경험들은 또 다른 경기에서도 동일한 절차에 의해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학습된다. 바라건데 지금까지의 레이스는 본 게임을 위한 연습이길 바랄 뿐이다. 나처럼 용기 없이 두 여자의 바램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땅속에 숨겨놓은 꼬리가 드러나지 않기만 바라는 것 보다는 현명한 처사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대단한 용기였음을 자인한다.
“박사님, 어서오세요. 교수님도요.”
명옥은 함께 도착한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며 신접 살림을 차린 방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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