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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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수환은 재활치료도 동시에 받았다. 몰라보게 나아진 그녀의 병세는 이제 휠체어 없이 혼자서도 병원을 나다닐 수 있었다. 그녀는 병원 공중전화로 중훈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낙으로 살며 하루하루 원기를 되찾아갔다. 여러 친구들의 정성이 통한 것인지 그녀는 중훈의 고교 첫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이제 간단한 통원치료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는 의사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더랬다.
수환이 퇴원을 한 첫 번째 토요일, 중훈은 수환과 함께 외출을 했다. 그날은 중훈도 좀처럼 하지 않던 멋을 부렸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무스를 발라 빳빳하게 세우고 어머니가 사준 스킨을 면도 후에 발랐다. 노란색 계열의 스트라이프 무늬 남방으로 상체를 가리고 베이지 톤의 화이트 진으로 하반신을 마무리한 그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자신이 봐도 제비 같아 보였다. 수환은 수환대로 처음으로 또래의 여자애들 같은 분위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스쿨걸 룩(School Girl Look) - 흰색계열의 블라우스나 남방, 체크무늬의 짧은 치마, 허벅지까지 가리는 타이즈와 검정색 굽 낮은 구두 등으로 구성된 여고생 교복 스타일의 패션 -을 차리고 입은 수환은 이제 밝은 미소의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약간의 화장품 냄새까지 느껴지는 그녀를 얼마 전까지의 병자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중훈이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그녀의 집 부근에 있는 ‘I" 호텔이었다. 수환은 중훈이 호텔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평상시와는 다르게 웃는 표정이 아닌데다가 로비를 지나 프론트에서 키를 받아들고 객실로 향하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중훈은 수환의 미미한 수준의 거부반응을 무시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환은 객실로 향하는 그를 보며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떨리는 목소리로 수환이 겨우 입을 뗐다.
“중훈아, 나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어. 이런 덴 나중에 오면 되잖아?”
중훈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걱정 마! 별 거 아니야.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돼!”
“그렇지만, 우린 아직 어려!”
“병원에만 계속 있었으니 이런 데도 와 봐야지?”
“하지만, 난 싫어……!”
중훈은 그녀에게로의 대답을 무시한 채 그녀의 팔을 잡고 객실 문을 열었다. 수환은 겁에 질려 있는 표정이면서도 중훈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눈을 질끈 감고 중훈을 따라오던 수환이 문턱을 넘어섰다. 그러자 불이 꺼져 있던 방 안이 갑자기 밝아지며 요란한 축포소리가 들려왔다.
“펑~~! 펑~~!!”
“수환아~~! 퇴원 축하해!!”
“그럼, 그럼!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고 매미 울 때도 철이 있다 그러잖아?”
“현성이 넌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 해! 맨날 무식한 거 티만 내구…….”
“야,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수환이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은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 모두의 손에는 잔치용 축포가 들려 있었고, 머리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천장에는 ‘경축! 이수환 퇴원!’ 이라는 내용의 플랫카드가 각양각색의 풍선의 호위를 받고 걸려 있었다.
“너… 희들…….”
“자자 이리 와서 앉아! 방금 많이 놀랬지? 현성아, 거기 수환이 의자 가져다줘!”
중훈이 울먹이는 수환을 잡아끌며 자리에 앉혔다. 수환은 눈에 그렁이는 눈물방울을 매달고서 아직까지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윤정과 은영은 커다란 케이크를 양쪽에서 나눠들고 수환이 앉은 테이블로 가져왔다.
“퇴원 축하합니다. 퇴원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환이~~! 퇴원 축하합니다.~~!”
중훈의 선창(先唱)으로 시작된 생일축하곡을 개사한 노래가 친구들의 합창으로 끝이 났지만, 수환은 눈물을 흘리며 케이크 위에서 마지막 자태를 뽐내는 작은 촛불 하나를 끄지 못하고 있었다.
“엉엉~~! 고, 고마워!”
“야1 수환아! 고마우면 더 건강해지면 되잖아? 얼른 꺼! 우리 이거 땜에 아침부터 굶었단 말이야.”
“그래, 현성이가 오랜 만에 제대로 된 말 했네? 수환아, 이리 와 다 같이 끄자! 너희들도 얼른 와!”
중훈은 아직도 울고 있는 수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모두를 선동했다. 다섯이 둥그렇게 자리를 둘러싸자 중훈이 말했다.
“자아~~ 하나, 둘, 셋~~! 후우~~!”
“이야~~! 짝짝짝~~!!”
“야, 나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좀 빨리 오지?”
녀석들의 뒤켠에는 아주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늘어져 있었다. 이 깜짝 쇼도 중훈의 아버지, 진호 덕이었다. 중훈은 수환의 퇴원을 기념할 만한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 물론 주머니 사정이야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환이 편하게 있을 만한 장소가 없었다. 아무리 통원치료를 받으면 된다지만, 그녀의 면역능력은 현저히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많은 곳을 택한다면 행여나 병원균 같은 것에 감염될 위험이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까지 나쁜 상태는 아니지만 행여나 하는 중훈의 노파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일급호텔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예전에 이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봤던지라 수환의 사정을 계부에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는 먹을거리 정도는 자신의 주머니 사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기에 부탁을 하지 않았으나, 진호는 통칭 건달두목답게 화통했다.
일행이 뷔페식으로 차려진 잔치상을 마구 먹어대고 있을 무렵 갑자기 현성이 중훈의 옆구리를 찔러왔다. 녀석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중훈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중훈의 큰소리에 다들 그를 바라보자 괜히 머쓱해진 중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 구석의 냉장고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니가 왜 가만히 있나 싶더라. 저기 열어 봐.”
현성은 100m 단거리 선수도 혀를 내두를 만큼 빠른 움직임으로 냉장고 앞으로 가더니 문을 열었다. 그는 감격해 마지않는 표정으로 중훈을 보며 말했다.
“역시 넌 친구야, 친구!!”
녀석이 냉장고 안에서 무언가가 가득 찬 것을 들고 나왔다. 그의 손에 들려진 양주병을 본 두 여자애들이 그제 서야 둘의 행동을 이해하고는 객실이 떠나가라 웃고 있었다. 현성이 넷의 잔을 채우는 동안 중훈은 크리스탈 잔에 수환이 마실 주스를 따르고 있었다. 현성이 잔을 들고 크게 외쳤다.
“수환이의 완쾌를 축하하며~~ 건배!!”
“건배~~!!”
다들 잔을 비웠지만, 중훈은 입에 대는 시늉만 하더니 잔을 내린다. 현성이 다음 잔을 채우려다 중훈의 잔이 그대로 인 것을 보고 물었다.
“야, 넌 왜 안 마셔? 오늘처럼 좋은 날에…….”
중훈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손을 내저을 뿐이었다. 현성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중훈의 잔을 채우는 것을 포기했다. 그로서도 중훈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이었고, 그것은 현성의 마음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수환을 챙길 사람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는 사실을 녀석도 알고 있었다. 현성은 자신은 이제 나머지 두 여자를 상대해야한다. 그것만이 중훈의 의도를 제대로 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는 윤정과 은영에게 잔을 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중훈은 수환과 우유나 주스 같은 것만 마셔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둘 사이는 지극히 평범한 친구 사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다른 사람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그 모습에 가장 기뻐한 것은 현성이었다. 현성은 그날 평상시보다 많은 술을 마시더니 결국은 객실에 딸린 침대로 직행하고 말았다. 그와는 반대로 윤정은 중훈과 수환의 모습에 윤정이 입술을 깨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 자리의 누구하나 그녀에 대해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중훈의 부드러운 태도가 윤정을 흔들어놓았다. 그녀는 혼자서 무서운 속도로 잔을 비우더니 현성의 옆에 눕혀지고 말았다.
중훈은 남은 방학기간을 거의 수환에게 쏟았다. 이제 수환은 그와의 데이트도 너끈하게 소화해낼 정도로 건강해졌다. 둘은 다른 학생커플처럼 놀이동산에도 다녀왔고, 그 당시 처음 생겼다던 노래방이란 곳도 다녀왔다. 그런 생활은 수환에게나 중훈에게나 꿈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수환에게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 서 있는 윤정이 그 문제의 핵심이었다. 수환이 아무리 병원에서 생의 3분의 1을 살아왔다지만, 그녀도 여자로서의 직감이란 것이 있었다. 중훈이 은영의 친구라고 윤정을 소개하기는 했지만, 최소한 윤정의 작은 질투에서 비롯된 행동들을 수환은 놓치지 않고 보았던 것이다. 한 번씩 다섯이 모여 놀 때엔 은근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앉으려 하는 모습이나, 중훈이 자신의 병세를 고려하여 걱정하는 것을 볼 때 눈빛이 변하는 것을 수차례 보아온 수환은 둘의 사이가 보통은 넘는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환이 처음 친구를 따라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만난 것이 중훈이었다. 그날 어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술을 덮었고, 그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키워왔었다. 그가 없는 반년 가까운 투병생활 동안 항상 그만을 그리워했고,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병세가 깊어질 무렵 겨우 중훈을 만났는데, 이게 웬 걸……. 그의 곁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윤정이라는 여우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윤정이 미워 보이는 것보다 중훈에 대한 실망이 더 컸었다. 그러나 둘 사이를 지켜보던 그녀는 이내 침울해지고 말았다. 자신의 몸 상태로는 윤정이란 애를 이기기도 힘들뿐더러 그에게 짐이 될 뿐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이라도 그와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하는 게 소원인 가녀린 이 아가씨는 좀 더 용기를 내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처음 윤정을 보던 날, 수환은 중훈만 모르게 조금은 가시 돋친 말을 그녀에게 해버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수환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상대가 너무 고단수였다는 점이었다. 어물쩍 가시 돋친 말을 받아넘기며 자신을 챙겨주는 모습까지 보여준 여우같은 여자가 중훈의 곁에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환도 중훈을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날부터 수환은 바뀌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힘들다던 약물치료에 방사선치료를 군소리 않고 해왔을 뿐만 아니라, 치료 후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평상시의 배를 먹었었다. 그런 수환의 변화에 집안의 어른들이 윤정이 수환의 회복제가 되었다고 생각을 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다 중훈의 몸은 어떨지 몰라도 마음만은 수환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수환으로선 노력이 정당한 결과를 얻은 것이었다.
수환이 처음 혼자 힘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던 날 자신을 안아오는 윤정의 의도가 중훈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그런 것이란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환의 퇴원 축하 파티를 하던 날, 윤정이 만취하여 쓰러진 이유를 수환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자신이 윤정을 이긴 것이라는 것도…….
그러나 수환은 윤정에게 이긴 것이 못내 가슴이 아팠다. 그녀도 몸이 좋아지니 병원에서 자신이 얼마나 편협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지를 알아버린 것이다. 스스로의 작은 욕심이 윤정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 그녀의 여린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 작은 욕심이라는 것도 좀 어처구니없는 경우이기도 했다. 겨우 하루 만난 것으로 중훈을 가슴속에 새겼다고 하기엔 윤정과 중훈의 관계가 너무 깊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윤정이 자신들의 사이에 끼인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그랬다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보였다. 게다가 윤정이 진짜로 자신을 걱정해서 병원에 찾아와 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더욱 중훈의 곁에 있는 자신이 못나 보였다. 수환은 그런 생각이 들자 중훈에 대한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자신이 좋아서 왔다고는 하지만, 다른 여자의 마음을 거절하고 온 것이라 약간은 차가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중훈이 자신에게 온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윤정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그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생각에서 가장 큰 결점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윤정이 중훈을 대하는 마음이 틀리다는 점을 몰랐다. 중훈이 윤정을 싫어하기 시작한 이유는 그녀의 과대한 소유욕 때문이라는 것을 수환이 모른 탓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자신의 바램이 이루어졌으니 더 이상 그에게 바랄 것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했다. 그가 수환에게 돌아가더라도 탓하지 않겠다고…….
중훈은 오늘도 보충수업을 마치자마자 수환의 집으로 달려갔다. 지난 번 그녀가 보고 싶어 하던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보는 그녀를 옆에서 바라보던 중훈의 눈이 반짝였다. 중훈은 가슴이 따듯해지며 그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수환도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중훈은 전혀 알지 못했다.
수환은 오늘로서야 그녀가 해보고 싶었던 모든 종류의 데이트를 다 해봤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부터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나오는 모든 데이트코스를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던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하늘에 또 다시 감사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선택을 실행에 옮겨야 했다. 그녀를 괴롭히던 모든 기억을 오늘 털어내야 하는 것이다.
중훈이 그녀를 흔들었다. 그들이 영화관을 나와서 탄 택시가 그녀의 집 앞에 선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중훈을 꼭 안았다. 마치 마지막으로 안아보겠다는 듯이……. 그녀의 행동에 잠시 굳었던 중훈도 포근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러자 수환은 저도 모르게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작은 들썩거림에 중훈도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가만히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수환이 붙었던 몸을 떼어냈다. 젖은 두 눈으로 중훈을 응시하던 수환이 눈을 감았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이 기억 속에서 재생되던 중훈이었다.
“수환아~~!”
중훈은 자신도 눈을 감고는 그녀의 입술에 가만히 자신의 것을 덮었다. 잠시 후 그는 윤정과의 버릇 때문에 자신이 입술을 벌리고 혀를 움직이려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급하게 입을 떼었다. 그러나 수환은 그런 그의 머리를 붙잡고는 자신이 입술을 열어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몇 초간의 키스가 끝이 나자 수환은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서 떨어져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는 대문이 열리자 그 뒤로 사라지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중훈아! 고마웠어. 행복해야해!”
중훈은 수환의 인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농담을 건넸다.
“그럼, 행복해야지 불행하란 말이야?”
수환은 대답 없이 문을 닫았다. 그녀의 눈에선 아까보다 더욱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 없이도 행복하란 말이야. 이 바보야!’
수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몸이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격한 감정에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훈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걸음을 떼고 있었다. 오늘은 호걸이 녀석이 저 멀리 경기도 광주에서 알아낸 왈패를 보내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호걸의 발이라면 보통은 넘는 녀석일 것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약간의 긴장으로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간 뒤로 아직까지 열기가 식지 않은 늦여름의 해가 그의 등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이 만들어낸 그림자 뒤에는 한 인영(人影)이 숨어서 사라져가는 중훈의 뒷모습을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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