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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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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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지금 내 품에 안겨 있는 이 여자애는 툭하면 나에게 사랑이니 뭐니를 주절댄다. 그녀의 사랑타령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해서 안 믿으려니 그것도 힘들다. 그나저나 도대체 사랑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왜 TV에서도 그렇게 떠들어대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봤자 한 때의 감정이 아니냐고 반문도 해보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그 공식이 적용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쨌거나 지금의 내 모습……. 정말 가관이다. 어른들 표현을 빌리자면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알몸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뭐하는 짓이냐고 하겠지? 아까도 수부에서 주인아줌마가 혀를 끌끌 차는 것을 보았다. 염병할……. 그럴 거라면 우리 같은 어린 손님은 받지를 말던가 하지, 왜 받아놓고도 뒷다마를 까는 건지……? 확 열 받으면 단골 갈아버릴까 보다. 그렇다고 여기 아니면 솔직히 다른 곳은 나도 아는 곳이 없잖아? 눈 딱 감고 아버지께 ‘여관 하나 지어주세요’ 그랬다간 내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것이고……. 그래, 주인이 뭐라 씨부리건 말건 새로 불법영업을 하는 여관을 찾느니 ‘구관이 명관’이라고 하던 대로 여기서나 놀아야지. 다른 수가 있나?
그나저나 이 기집애는 또 시작이네? 방금 한 번 해줬으면 됐잖아? 왜 주무시는 사자의 콧털, 아니지, 거시기를 건드리냐고……? 끙~~ 그렇지만 나도 할 말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놈이 먼저 서니깐 저게 손을 뻗은 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사타구니에다 스위치를 달아가지구 켰다 껐다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에라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어디 보자. 오늘 얘가 평상시랑은 다르네? 벌써 젖어 들었잖아? 그러고 보니 방금은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던데, 분명 나보다 경험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나? 하기야 색림지존이신 현성존자의 말로는 여자들이 제대로 느끼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긴 하더라만은……. 그래도 윤정이 이 기집애의 전력(前歷)이 항상 맘에 걸리던데. 나도 물론 윤정이 년이 먼저 날 꼬셨다는 것쯤은 진즉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근데 성격 지랄 같은 현성이 놈이 먼저 말하지만 않았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는데, 자식이 확인 사살까지 할 건 또 뭐람? 그 자식이 콕 집어 말하니까 괜히 짜증만 실리고. 에이 나쁜 놈! 지나 마누라 간수나 잘 하지. 왜 남의 애정사에 신경을 쓰고 지랄이야, 지랄은?
근데 이 기집애가 오늘따라 왜 이리 이뻐보이냐? 하기야 방금 병원에서 하는 것 보니까 얘도 그리 나쁜 애 같지는 않더라구. 오냐. 오늘 내가 봉사 한 번 하기로 한 이상 죽여주마.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현성이 놈 말투가 입에 베였구만. 이거 절대 좋은 거 아닌데……. 사람 인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투라던데, 젠장 할, 얼른 이 말투부터 고쳐야겠다. 근데 헉~~! 야~~! 벌써 거길 빨면 어떡해? 내가 부담되잖아? 나도 이 담배는 다 펴야할 거 아냐? 아, 씨발~! 빡 도네?
중훈이 머릿속으로 사춘기 특유의 유치한 헛소리를 하고 있을 때 윤정은 가만히 그에게 손을 뻗어왔다. 그는 윤정이 자신의 돌출부를 입에 무는 것을 보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황급히 담배를 눌러 껐다. 윤정은 먹고 나면 입 안에 빨간 색소가 남는 모 빙과류를 먹듯이 중훈의 급소를 흡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훈의 그것이 빙과류처럼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돌려먹기 위해서는 그녀의 머리가 회전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이 중훈의 배꼽아래를 간질이고 있었다. 중훈은 자신의 무기에 오는 쾌감도 쾌감이지만, 하복부를 쓰는 머리칼의 감촉이 더욱 흥분 되는 것인지 허리를 비틀기 시작했고 그의 손도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최소한 다음의 움직임에 대한 대비를 그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훈은 그녀를 눕혔다. 그녀의 재간을 더 이상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녀의 몸속에 자신의 씨를 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윤정의 한 손에 딱 들어오는 가슴을 입 안 가득히 빨아들였다.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 피하지방이었지만. 만져보면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녀의 가슴에서 한참을 노닥거리던 그는, 입을 다시 아래로 향했다. 그가 아래에 닿자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혀를 꺼내 그녀의 균열 윗부분을 가볍게 눌렀다.
“아앙~~! 중훈아~~! 좀 더 해줘~~!”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그녀의 여린 속살을 살짝 깨물고는 가볍게 비틀었다. 그녀는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와 같은 몸놀림을 그에게 보이며 그의 애무를 독려했다. 그는 그 짓을 반복하다가 자신이 지나던 길에 혀를 밀어 넣었다. 방금 그가 싸질러 놓은 액체와 그녀의 액체가 범벅이 된 그곳에서는 그 둘을 조화시킨, 아니 조화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역한 냄새가 났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냄새도 냄새지만, 혀에서도 찝찔한, 그러면서도 느끼한 맛이 느껴졌다. 그러나 윤정의 허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가는 것을 보면 그도 자신의 행위를 멈추고 싶은 맘은 없었나보다.
그는 가만 놔둬도 스스로 동굴을 손가락으로 쑤시는 윤정을 보며 오늘은 그녀가 정말 거짓으로 저러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자 중훈도 아랫도리가 뿌듯해온다. 그는 허리를 천천히 내렸다. 이윽고 그의 일부가 윤정의 몸 사이로 아무런 저항 없이 밀려들어갔다. 역시나 대책 없이 흘러나온 그녀의 애액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는 허리의 속도를 증가시켜야만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중훈과 윤정이 함께 수환을 찾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봄날, 중훈은 혼자서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좀 전에 사온 딸기가 들려져 있었다. 어느 책에서 딸기가 면역 능력이나 그런 것들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읽은 탓에 일부러 백화점에 들러 최상품의 것을 산 것이다. 날씨는 우중충 했지만, 그의 밝은 기분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병실 문을 열었다. 책을 일고 있던 수환이 그를 보며 맑은 미소를 보였다.
“중훈이 왔어? 어라? 오늘은 혼자야?”
중훈이 보기에 수환은 저번에 온 윤정이 기다려졌나 보다. 하기야 꽉 막힌 병실에서 또래를 찾아보기 도 힘들 것이고, 그나마 자신도 찾아와 봤자 자리만 지키다 가는 것이니 그러려니 한 것이다. 그러나 수환이 윤정이 같이 왔으면 하는 바램은 중훈이 알고 있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환은 중훈에게 잘 보이기 위해 힘들지만, 웃는 표정을 버리지 않았고, 비록 약물치료, 방사선 치료로 머리가 듬성해진 것을 가리기 위한 모자였지만 가장 예쁜 것을 골라 쓰고 있었고 따가워서 잘 입지 않는 털로 짠 스웨터까지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중훈은 다음에는 윤정과 필히 같이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응 걔는 오늘 일이 있어서 같이 못 왔어. 자 이거 받아.”
“뭐야? 먹는 거야?”
“응, 딸기야! 몸에도 좋고 많이 먹으면 이뻐진데.”
“치이~ 난 이런 거 안 먹어도 이쁜데……. 헤헤~~!”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하자 잿빛 하늘도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중훈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네? 그럼 넌 먹지 마. 내가 먹을 게.”
“남자가 예뻐져서 뭐하게?”
“그 말도 그렇네? 하하하~~!
“호호호~!”
“중훈이 왔구나!”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둘이서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 수환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중훈의 씩씩한 인사에 어머니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맞아주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뭐니? 딸기네?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걸 다 사오고 그래? 다음부턴 이러지 마!”
“괜찮아요. 어머니! 어차피 다른 데 돈 쓸 일도 없는 걸요.”
잠시 후 셋을 어머니가 씻어온 딸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수환은 며칠 전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져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약간 창백한 얼굴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중훈도 다른 날보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중훈은 저녁나절이 되어 수환의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러 수 있었다. 수환의 어머니가 약간 안절부절못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중훈아! 저 내가 부탁 하나 해도 되겠니?”
중훈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그녀의 말을 생각해보지만, 자신이 해줄 만한 거라면 자주 문안을 와주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이 생각지 않았다.
“네, 어머니! 자주 찾아오라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주 오는 것도 오는 거지만, 혼자 오지 말라는 거야.”
“그게……?”
“나도 우리 수환이가 중훈이 좋아하는 거 알고, 중훈이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거 알지만, 나도 애 키우는 엄마라 그런가, 미안한 줄 알면서도 이런 말 할 수밖에 없네? 저 번에 데리고 왔던 친구 있지? 윤정이라고 했나? 다음에 올 때 같이 와주면 안 될까?”
“네? 당연히 되죠. 안 그래도 수환이도 윤정일 찾더라구요. 어머니께서 말씀 안 하셨더라도 다음에 같이 오려고 했어요.”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여자 친구가 싫어하지 않을까?”
“무슨 말씀을요? 지난번에도 윤정이가 같이 오자고 해서 온 건데요. 걔가 보기보다는 착하고 속이 깊어요.”
중훈이 윤정의 좋은 점 - 그도 윤정의 속을 모르지만, 그녀의 바뀐 모습에 좋은 점수를 주려고 노력 중이다. - 을 말하자 어머니는 약간은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사랑하는 딸의 병세가 갑자기 나아지고 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맘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중훈이 네가 오면서부터 수환이 병세가 많이 호전 되고 있었어. 그런데 지난주에 윤정인가 하는 친구가 온 다음부터 갑자기 애가 확 바꿨어. 글쎄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싫어하던 항암치료를 잘 견디고 있고 근래 들어 회복도가 좋아서 약물의 강도를 높여도 몸이 잘 견뎌주잖아? 아무래도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니 자기도 같이 놀고 싶은 가봐.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던데 환자가 의욕이 생기면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고 그러더구나. 그리고 요샌 가끔씩 안 하던 짓도 한다니깐. 어제는 뜬금없이 화장품을 사달라지 뭐야? 이제껏 아프다고 그런 건 한 번도 신경 못 써줬는데……. 이제 딸 키우는 재미가 나는 것 같아. 어머나, 내가 주책을 부렸네?”
“아니에요, 어머니! 수환이가 나아진다니 윤정이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다음엔 꼭 같이 올게요.”
“그래, 고마워. 얼른 들어가 봐. 내가 공부하는 학생 붙잡고 뭐하는 짓이람? 조심해서 들어가고 다음에 또 와줘.”
“네, 어머니! 수환이 약 먹을 시간이네요. 그럼 전 가볼게요.”
중훈은 병원 로비의 자동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몸에 퀴퀴하게 배여 있던 병원의 약 냄새가 어느 정도 가실 무렵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져 붉은 노을을 뽐내고 있었다.
“내일은 비가 안 오겠구나!”
그는 가볍게 읊조리고는 버스정류장으로 발을 떼었다.
중훈은 수환 어머니의 말을 들은 그날부터는 될 수 있으면 윤정과 함께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에 들어설 무렵 그가 보기에도 수환과 윤정은 상당히 친해져 있었고, 얼마 전부터는 아예 그녀들의 대화에 그가 끼어들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수환 어머니가 매번 그녀의 병과를 말씀해주셨는데, 중훈, 혼자서 병원을 찾은 날보다 윤정과 함께 찾은 날 수환의 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중훈은 윤정을 다시 보게 되었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고, 그녀를 더욱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수환을 만난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그날은 현성과 은영까지 단체로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수환은 갑자기 친구가 많아지자 유래 없이 많은 말을 했고, 이제 약간 정도는 휠체어에 앉아 바깥출입도 가능했던지라 병원 앞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랬다.
중훈이 수환에게 말했다.
“수환아! 너 이제 조만간 학교 다시 다녀야지? 공부도 많이 밀렸을 텐데.”
“아니 나 아무래도 학교는 못 다닐 것 같아.”
“왜?”
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수환이 조금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응… 나 사실 저희보다 한 살이 많잖아? 그리구 난 벌써 2년이나 진학이 늦은 걸. 그래서 너희랑 같이 대학가구 그러려면 검정고시 봐야할 것 같아서……. 아직은 생각 중이지만, 조만간 아빠한테 말해 볼려구…….”
“그래, 그렇게라도 한다면 다행이지. 내가 부족한 부분 도와줄게.”
다섯 중에서 가장 수재인 - 아니 어디 가서 중훈보다 수재인 사람은 찾기 힘들다, 녀석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연합고사 성적은 전교 2등이었다. - 중훈의 말이었다.
“정말? 중훈이가 도와준다면 더 바랄 일이 없지!”
“그래~~! 나 빼고 다들 인문계란 말이지? 젠장 나도 왕년엔 알아주는 신동이었다고……. 우리 동네에서 다섯 살에 한글이랑 천자문이랑 다 뗀 놈은 나 밖에 없다니까?”
그들 중에 유일하게 실업계를 선택한 현성이 짐짓 화가 난 듯 말하자 중훈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아이구, 촌동네~~~!! 마을 주민 겨우 200명도 안 되는 동네에서?”
“이거 왜 이래? 국민학교 때 반은 열 개 반이 넘었어. 울 아부지가 괜히 중학생을 서울로 유학 보내신 줄 알아?”
“으~~응! 1학년에서 6학년까지 다 합해서 열두 반이라고 했지, 아마~~?”
“이런 싸가지가~~!?”
“하하핫~~!”
“호호호~~!!”
중훈이 오랜 만에 화려한 말발을 무기로 좌중을 웃음 짓게 만들 무렵 수환이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중훈이 가장 먼저 그녀를 잡았다. 그러나 수환은 약간 힘에 부친 듯이 웃으며 그의 손을 떼어냈다.
“혼자 일어날 수 있어!”
그 말에 윤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뻗었던 손을 뒤로 뺐다. 그녀는 다른 환자들보다 치료에 쓰이는 약물의 강도가 센 편이다. 일반 소아백혈병과는 다른 희귀종의 병이라 병원에서도 임상치료에나 가능할 법한 치료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완치도 어렵고, 치료도 상당히 길어진 것이란 것을 중훈들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수환이네 할아버지가 상당한 재력가이기 때문에 치료비 걱정은 없지만, 어려서부터 이어져온 긴 치료 때문에 남들보다 근력이나 체력이 더없이 많이 약한 편이었다. 더군다나 작년 여름부터 이어진 병원 생활 동안 거의 자기 힘으로 일어서본 적이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그녀였다. 수환을 제외한 2남 2녀는 불안한, 그러면서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수환은 이를 악물고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짚은 주 팔과 땅에 닿은 두 다리가 비틀거렸지만, 그녀의 표정은……, 분명 즐거운, 그리고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녀의 시도가 점차 성공에 가까워지자 윤정과 은영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응원했다.
“수환아! 할 수 있을 거야. 힘내!”
“그래, 너 요새 많이 좋아졌잖아!”
중훈과 현성도 그녀가 일어서기를 바라는 심정은 같았을 것이다. 수환이 겨우 자신의 몸을 추슬러 곧은 자세로 일어서자 윤정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수환도 링거액을 꽂지 않은 나머지 팔로 윤정을 다독였다.
“나, 너 없었으면 이렇게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 윤정아,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맑은 것이었다. 수환은 안은 윤정의 어깨 너머로 보석 같은 두 눈을 중훈의 눈에 맞추었다. 중훈은 그 눈을 대하자 왠지 자신이 더럽고 추하다는 자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수환의 눈은 바다처럼, 기억이 가물거리는 고향 같은 포근함을 그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중훈의 눈이 그녀를 처음 만나던 그날처럼 시원한 여름바람이 되었을 무렵, 그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번져갔다.
“나 사실, 엄마 없을 땐 오빠 도움 받으면서 일어서려고 많이 노력했었어. 엄마는 내가 움직인다면 말리지만, 오빤 설득하면 넘어오거든. 그래도 1년 가까이 누워만 지냈더니 일어 서려니깐 넘 힘든 거 있지? 헤헤~~!”
“응, 그래도 잘했어! 이제 좀 있으면 우리랑 같이 놀러 다니고 그러자, 응?”
“중훈이 하는 거 봐서. 호호~!”
“자꾸 그럼 안 데려가는 수가 있어?”
“후드득~~!”
“어머!”
“뭐야?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
그들은 수환이 일어선다고 애를 쓰는 것에 신경을 쓰는 동안 주위가 어둑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두 사내는 수환을 다시 휠체어에 앉히고 빠르게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환은 휠체어에 밀려가면서도 앞을 보지 않고 중훈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를 쫒는 윤정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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