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폭우(狂風暴雨) - 7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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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남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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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훈이 속초에서 돌아오고 난 뒤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그의 이성문제였다. 속초에서 첫 경험을 가진 중훈은 윤정과 커플이 되었다. 비록 윤정이 말한 그 ‘책임’이라는 한 마디에 시작한 것이긴 했지만, 중훈이 자신의 마음을 배반하는 여체로의 욕구를 이길 수가 없었던 탓이기도 했고, 연락이 없는 수환에게의 실망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않는 시원한 성격이었다. 중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오는 윤정과 일주일에 적어도 세 차례 이상의 관계를 가졌다. 덕분에 그는 방학이 지나기 전에 여자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성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많은 일들이 생겼다. 그가 피서를 떠나기 전부터 현성에게 각 중학교의 실력자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중훈의 주먹실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현성이 찾아올만한 녀석들의 태반을 중훈이 모르게 직접 처리해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중훈만 아니었다면 아직까지도 부근의 중학생들 중의 최강자로 있었을 현성이었다. 그러나 한학(漢學)을 배우신 아버지에게서 어릴 때부터 남자의 덕목을 들으며 자란 현성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성격이었다. 현성은 중훈과의 싸움 이후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중훈 못지않게 운동을 계속했었다. 중훈에게서 이기기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중훈에게 진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그릇을 알게 해준 중훈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중훈을 자신과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를 대신해 말썽거리를 정리해준 것이다.
그러나 현성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중훈의 소문을 들은 녀석들이 너무 많았다. 현성이 똘마니들과 그가 대신 뒤치다꺼리를 해준 녀석들의 입단속을 시킨 것은 주효했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이 수시로 중훈을 찾아왔다. 그나마 체육관을 찾아오는 녀석들은 관장 입회하에 정식으로 대결을 벌이기에 큰 탈이 없었다. 문제는 중훈이 피서를 떠나던 날 아침처럼, 아무데서나 중훈 앞에 나타나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어떤 싸움꾼은 혼자 중훈을 찾아오기도 했으며, 나머지는 패거리로 쳐들어오는 경우였는데 그런 녀석들은 몽둥이 같은 걸 숨겨 오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는 중훈도 가능하면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처리하기도 했지만 절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런 꾼들은 지더라도 깨끗하게 물러설 줄 알았기에 중훈에게도 편했다. 그러면서 현성처럼 친구가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후자의 경우는 중훈도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중훈의 비정상적인 오기는 - 시작자체가 치기에서 비롯된 싸움이었으니 - 그런 녀석들을 이겨내는 원동력을 주었다. 녀석들은 쓰레기답게 지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아 중훈을 때때로 귀찮게 했다. 어쨌거나 그런 녀석들도 중훈의 실력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이후 현성의 인맥을 통해 여러 학교의 대가리들과 수차례 완타치를 쪼개봤지만, 중훈의 주먹을 견디는 녀석이 없었다. 중훈이 관장의 지도와 현성의 경험을 속속들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관장은 중훈을 프로로 전향시키기 위해 다시 감언이설로 꼬드겼지만, 중훈에게서는 거절만을 들을 뿐이었다.
2학기가 되자 중훈은 연합고사를 준비해야 했다. 녀석은 싸움과 윤정 때문에 시간을 많이 빼앗겼기에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중훈은 계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교내에서는 그가 싸움을 하고 다니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미 한 달 전에 끝난 실업계고교 진학으로 심심해진 현성이 중훈의 학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항상 주의를 기하고 있던 결과였다.
현성은 항상 말하던 대로 공고로 진학을 했다. 고향의 부모님께서야 녀석이 인문계로 진학하기를 바랬지만, 자신은 공고를 택했다. 그가 공고를 선택한 이유는 국어와 한문을 제외하고는 바닥을 기고 있는 그의 성적 때문이 아니라 졸업한 선배들의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고교의 주먹패들은 자기들의 뒤를 이을 인재들을 후배들 중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한 번씩 후배들을 불러내 자기네 학교로 오기를 부탁하곤 했었다. 게다가 2학년 때부터 주먹질에 두각을 나타낸 현성에게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현성은 그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중훈에게도 그런 제의가 올만 했지만, 그것은 현성에 의해 철저히 막아졌다. 현성은 중훈과 싸운 녀석들에게도 입막음을 시키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쩌다 소문이 새어나가 선배들이 중훈을 보자고 했을 때에도 중훈은 공부를 해야 하는 녀석이라고 선배들을 설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린치도 당하고 기합도 받았지만, 친구의 장래를 위해 뜻을 굽히지 않아 선배들도 녀석에겐 손을 들고야 말았다.
연합고사가 끝이 나자 중훈은 몇 달간의 노고를 몸으로 풀려는 듯 더욱 윤정의 몸을 탐닉했다. 중훈은 자신의 처음을 앗아간 그녀에게 잘해주기 우해 무던히 노력해왔었다. 원래 윤정과 처음 관계를 가질 때만 해도 그가 좋아하던 사람은 수환이었다. 하지만 그는 윤정을 하룻밤 상대로 버릴 수 없었다. 그가 계부에게서 배운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부는 윤정보다 더한 처지에 있었던 그의 어머니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윤정에게 자신이 처음이 아니란 것 정도는 현성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던 그였다. 처음에는 중훈도 속았었지만, 그녀의 사소한 말투나 행동에서 그런 것들은 어렵사리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윤정을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윤정의 사랑 때문이었다.
딱히 사랑에 대한 공식을 정의 내린 중훈은 아니었지만, 윤정의 것은 아무리 잘 봐줘도 어설퍼 보였던 것이다. 아니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애교가 많은 윤정의 성격 덕에 함께 다니는 것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싸움을 하는 것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재촉하는 윤정은, 중훈이 차츰 그것이 사랑인가 하는 의심을 들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가 오랜 기간의 사고 끝에 결정을 내린 그녀의 사랑 아닌 사랑은 광고용과 집착, 그 두 가지 단어로 함축될 수 있었다.
윤정은 툭하면 친구들과의 자리에 중훈을 불러내곤 했는데, 중훈이 다른 일을 제쳐두고 약속장소로 나가면 중훈의 손에 쥐어진 것은 윤정의 친구들이 먹은 계산서였다. 그가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가면 그녀는 친구들에게 이런 멋진 남자가 내 남자친구다 라는 식으로 자랑하기를 즐겼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있을 때면 지나가는 또래 남학생들에게 시비를 걸어 중훈의 싸움 실력을 친구들에게 뽐내기를 좋아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완빤찌’라는 별명을 가지게 될 만큼 노는 물에서 이름을 날린 중훈이지만, 그렇게 주먹을 쓸 적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계부를 닮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지만, 타이틀도 없는 싸움에 힘을 빼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훈의 얼굴이 팔려 상대방이 먼저 피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런 것 정도는 중훈도 참을 만 했다. 여자들이야 원래 그런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그에게 가장 힘이 든 것은 윤정의 두 번째 특성인 집착이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을 중훈의 학교 앞에 찾아와 그를 기다리는 것도 모자라 주말마다 그의 시간을 축내는 것이었고, 행여나 그녀를 피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심할 때는 연필 깎는 칼을 가지고 손목을 그으려는 시늉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를 덧붙인다면 수환의 문제였다. 속초에서 돌아온 이후 중훈이 연합고사를 치르고 난 후까지도 연락이 뜸하던 수환이 갑자기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그녀가 직접 연락을 한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난 날 보았던 그녀의 오빠가 중훈의 학교로 찾아온 것이지만 중훈은 상당히 기뻐했더랬다. 며칠 있으면 졸업을 하기 때문에 중훈은 쉽사리 학교 수업을 제끼고 수환의 오빠를 따라나섰었다.
병원에서 본 수환은 처음보다 많이 안색이 좋질 않았다. 그녀의 병명은 그도 처음 들어보는 ‘형질세포성 백혈병’이라는 것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그녀의 오빠, 수철에게 들은 것이지만, 원래 백혈병이라는 것은 10만 명에 3~4명 정도가 발병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 소수가 발병하며, 그중에서도 그녀가 앓고 있는 것은 전체 발병자 중에서도 희귀한 것이라 했다. 때문에 치료법도 잘 나와 있지 않아서 병원에서도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환자실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전에 일반치료실로 옮겼는데 그 동안 계속 그녀가 중훈을 찾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철이 중훈을 데리러 온 것이라 했다. 치료가 많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중훈은 그녀의 병세가 악화된 것이 자신의 책임인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털모자를 눌러쓴 수환은 파리한 입술로 그에게 웃음을 지어주었지만, 그의 가슴은 미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윤정은 전날 중훈을 만나지 못한 화풀이를 했다. 윤정은 중훈이 사다준 삐삐를 던지며 펄펄 뛰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중훈의 다짐을 받은 윤정은 그를 자주 가는 여관으로 데려가 자신의 화를 풀었다. 그러나 수환을 보고난 중훈은 그녀와의 섹스에서 예전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중훈은 눈이 저림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에 비친 햇살이 그의 망막을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그의 옆자리엔 알몸의 윤정이 누워있었다. 그가 뒤척이자 윤정이 잠에서 깨어났다.
“으응~~! 중훈아, 일어났어?”
윤정이 중훈과 잠을 자고 일어나면 카세트레코더처럼 하는 말이다. 중훈은 대답 대신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윤정은 그가 담배를 물었건 말건 그의 아랫도리부터 잡고 본다. 이제 다음 달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그들이지만, 하는 짓은 여느 부부 못지않았다. 윤정은 그가 담배를 피우는 사이 그의 아래를 잡고 용두질을 치며 하품을 한다. 하품을 그친 그녀는 전날의 뒤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의 아래를 입에 물고 아침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들이 있는 곳은 현성의 소개로 자주 오는 여관방이다. 중훈은 윤정과 헤어지고 싶은 맘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라났지만, 막상 윤정의 육체를 접하고 나니 그 말을 뱉어낼 수 없었다.
윤정은 어젯밤 늦게까지 그를 탐한 것도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여자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하던 일에 열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중훈의 중심은 그녀가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아침이면 항상 대기 중인 상태였다. 담배를 피던 중훈은 그녀의 농간에 아랫도리가 가려워옴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윤정이 입에 그를 문 상태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담배를 비벼 껐다. 윤정은 나직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그에게 안겨왔다. 그는 무성의했지만 윤정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키스를 했고, 익숙하게 그녀를 주물러 나갔다. 반년 간의 경험으로 중훈은 그녀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다.
“아흑~!”
중훈은 그녀의 신음을 귀로 흘리며 자신이 들락거리는 통로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아직 그녀는 말라있었다. 몸도 덜 여문 윤정이 빠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런 것까지 중훈이 알리는 없다. 그는 다만 그녀의 몸이 반응할 때까지 정성만 들이면 되었다.
윤정도 중훈과의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와 살을 맞대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고, 어른들이 하는 놀이를 한다는 그 짜릿함이 즐거울 뿐이었다.
윤정은 중훈을 만나며 다른 남자들과는 관계를 정리했었다. 그녀가 선배들에게 듣기론 남자를 잡기 위해선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한다고 했다. 선배들이 말하는 중요한 교훈은 ‘명포수는 두 마리 토끼를 쫒지 않는다.’였다. 가끔씩 예전의 남자들이 그녀를 찾아와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돌아섰던 그녀이기에 어제 일에도 그렇게 짜증을 부린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중훈은 자신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한편 중훈은 윤정의 몸을 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윤정의 가슴을 빨면서도 그의 마음은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녀석은 윤정과 자신의 관계를 계산했다. 자신이 윤정에게 준 것과, 그녀가 녀석에게 준 것들을 늘어놓고 본다면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도 그녀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윤정의 위로 올라가며 어제 오후에 새로 사준 그녀의 삐삐가 침대 맡에 있는 것을 보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돈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지만, 어제는 정말 그녀를 위해 사준 것이 별로 탐탁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서서히 윤정에게서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사념들도 그녀의 몸속에 자신의 살덩이를 꽂아 넣으면서 중단 할 수밖에 없었다.
중훈과 윤정이 여관을 나온 것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였다. 윤정이 자신을 씻겨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던 것을 그가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녀석도 윤정의 청을 들어주었을 것이지만, 그날은 줄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 씻지 않으려던 윤정도 카운터에서 걸려온 주인아주머니의 독촉 때문에 욕실로 들어가야 했고, 중훈이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며 그를 귀찮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훈의 귀는 부처라도 된 듯 그녀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 있었고, 그녀가 뭐라고 앙탈을 부리건 철저히 묵묵부답으로 대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설치던 윤정도 포기를 한 것인지 여관 뒷문으로 나오면서는 말투가 다시 사근사근해져 있었다.
“중훈아! 오늘 일찍 들어가야 해?”
“…….”
“아직 이르잖아? 좀더 놀다가 들어가.”
“어제 안 들어갔잖아? 나중에 봐!”
중훈은 차갑게 말하곤 발걸음을 돌렸다. 윤정이 뒤에서 뭐라고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발걸음을 잡을 수는 없었다.
중훈은 그길로 현성의 자취방을 찾았다. 현성의 방에 도착한 녀석은 문을 두드리지도 열어젖혔다. 이불 속의 현성은 아직 꿈나라를 오고가는 모양이다. 중훈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냉장고를 열어 반병만 남은 소주병을 꺼내 들었다. 이제 시험을 친 다음이라 친구와 논다는 핑계만 대면 그의 부모님도 사내 녀석의 외박을 그리 꾸중하지는 않았다. 중훈은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가 한 병을 비우고 다음 병을 찾고 있을 때 현성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중훈은 빈정대며 현성에게 말했다.
“얌마! 넌 어제 뭐했길래 아직도 자빠져 자냐?”
“짜아식~~! 알면서 그런 걸 다시 묻냐? 이 기집애는 어디 간 거야? 아~~! 배고파! 근데 넌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야! 술 더 없냐?”
“응? 이 씨발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있어 없어?”
현성은 잠이 깨기가 귀찮은 듯 고개를 냉장고 쪽으로 까딱거렸다. 그러나 중훈은 대답 대신 자신이 비우고난 소주병을 흔들었다.
“이런……! 그거 내가 일부러 남겨논 건데. 그리고 아침부터 술은 무슨 술이야? 에이~~ 씨부랄!”
현성은 혼자 주절주절 대며 찬장 아래에 있는 소주박스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그 모습을 보며 중훈은 속으로 현성은 절대 중학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새끼! 지금이 몇 신 줄이나 아냐? 네 시다. 네 시!”
“뭐? 니가 내시라고? 너 고자였어? 윤정이가 불쌍하네? 고자랑 어떻게 밤일을 하냐?”
“야! 거기서 윤정이가 왜 나오냐?”
“지랄! 지도 지금까지 떡치고 온 주제에……. 뭐 묻은 개가 더 개지랄을 한다고……, 참 내 드러워서……. 야! 이거나 처먹어!”
현성은 새우깡 한 봉지를 꺼내 중훈에게 던져주고는 자신도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현성은 방금 일어났는데도 거침없이 목을 꼴깍이고는 새우깡 한 움큼을 입으로 가져갔다. 녀석은 턱 근육을 불룩거리며 중훈에게 말을 건넸다.
“야! 정말 어쩐 일이야?”
“뭐,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왔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어제 보고도 또 보고 싶디? 내가 니 마누라냐? 니기미, 윤정이는 어떡하구?”
현성의 입에서 자꾸 윤정의 이야기가 나오자 중훈은 대꾸도 하지 않고 소주를 마셨다. 소주를 비운 중훈의 얼굴이 씰룩인다. 현성도 그제 서야 수환이 그를 찾았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어젯밤에 은영이 녀석에게 말을 해주었던 것이다.
“수환이 만났냐?”
“…….”
“어떡할 거냐?”
“모르겠다.”
현성은 중훈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현성은 중훈의 대답이 짧아지는 것을 보며 중훈이 고민에 싸여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성은 중훈이 윤정과 사귀는 것을 속으로는 계속 반대를 해오고 있었지만, 중훈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아 말리지는 않았었다. 다만 중훈을 만나기 전의 윤정의 행실을 넌지시 일러만 줬을 뿐이다. 현성이 중훈을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비록 자신은 날라리를 만나 몸을 뒤섞으며 놀아도 친구는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 그에게는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소개시켜준 여자는 시쳇말로 ‘걸레’라는 표현을 듣던 - 은영에게 들은 바로는 이제는 중훈만 만난다고 한다. - 여자임이 내내 미안한 것이었다.
이제 친구는 수환이라는 다른 여자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다. 현성도 수환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어제서야 은영에게 들었다. 현성도 친구로서 막 나가는 윤정보다는 차라리 아픈 수환이 나아보였다. 은영도 중훈과 수환이 처음 만나기 며칠 전 오랜만에 수환을 만난 것이라 기억력이 나쁜 은영은 수환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수환에게 술을 먹인 것이었다. 은영은 수환이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보고는 그녀가 완쾌되었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수철의 전화를 받고서야 그녀도 수환의 병세를 알아낸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현성은 중훈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자신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녀석은 중훈의 걱정을 덜어줄만한 이야기를 해야했다.
“중훈아! 호걸이한테 연락이나 넣어볼까?”
“호걸이?”
중훈은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그가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할 때나 괴로움을 이겨내어야 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것은 분명 전자의 뜻일 테다. 중훈은 호걸과의 첫 조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서를 떠나던 날 아침에 그에게 덤벼왔던 녀석 중 작은 녀석이 호걸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비겁하게 자신의 패배를 거짓으로 얼버무리곤, 얼마 뒤 패거리를 이끌고 중훈의 집 앞으로 찾아왔었다. 중훈은 동네에서 소문이 날까 녀석들을 뒷산으로 데리고 갔고, 큰소리 지르는 놈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은 뒤 패거리에 대한 응징에 들어갔다.
중훈은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패거리 사이로 돌진해 들어가 가볍게 세 녀석을 거꾸러뜨렸다. 주로 수도로 목의 경동맥을 후려치거나 명치를 주먹으로 지르는 방법을 썼다. 그래야만이 녀석들이 크게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중훈은 똘마니들이 바닥에 쓰러지자 본격적으로 호걸과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대결을 해 본 상대라 중훈의 마음도 편했다. 중훈은 그날 호걸에게 완빤찌를 쓰지 않았다. 호걸의 발길질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한 그는 잽으로만 호걸의 안면을 집중 공격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상대의 얼굴은 어머니가 와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부어올랐지만, 중훈은 예의 비웃음을 날리며 그 짓을 멈추지 않았고, 녀석의 상의가 입과 코에서 흘린 피로 얼룩이 졌을 무렵 마지막 일격으로 녀석을 짓이겨놓았다. 중훈은 쓰러진 녀석의 얼굴을 발로 톡톡 걷어차면서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그것도 웃는 얼굴로…….
중훈이 호걸을 심하게 대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중훈의 성격은 모난 점이 있어 정식으로 덤벼오는 녀석들에겐 정중하게 대했으나 치사한 수법을 쓰는 녀석들에겐 잔인한 면이 있었다. 물론 패거리를 만든 녀석은 분명 윗대가리 급일 테고, 그렇기에 똘마니들에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성격 덕에 똘마니들은 한 대씩 맞고 나가떨어지게 만들면 그만이지만, ‘패거리 질’의 주동자에게는 다시는 그런 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철저히 자신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줘야 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이 호걸이란 녀석에게는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녀석은 똘마니들에게 업혀 가면서도 쌍욕을 주저하지 않았고, 복수하겠다는 말을 쉴 세 없이 내뱉고 있었다. 침중한 똘마니들의 표정을 본 호걸은 더욱 큰소리를 냈으나 중훈이 다시 날린 주먹질에 기절을 하고서야 조용해질 수 있었다. 그 후 녀석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싸움꾼을 수소문해 중훈에게 보내왔었다. 그 간격도 심할 때는 중훈이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맞짱을 뜬 적이 있을 정도로 호걸의 오지랖은 상당히 넓었더랬다.
중훈은 호걸의 호작질에 마지막으로 주먹을 쓴 것이 한달 가까이나 지났음을 기억했다.
“그래볼까? 너 호걸이 연락처 있지?”
“당연!! 그 정도야 기본이지. 근데 그 사이에 괜찮은 놈 건져놨을 라나?”
“씨발, 없으면 그 새끼나 족치면 되잖아?”
중훈의 말에 현성은 가볍게 웃음을 띠고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방 안에는 그들이 마셔댄 빈 병이 술 냄새를 풍기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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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디아도라입니다.
7장은 저번에 쓴 것을 지우고 다시 적었습니다.
제가 하반기 공채로 바빠지는 관계로 업데이트가 늦은 점 사과 드립니다.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가능하면 빠르게 업하겠습니다.
그럼 전 또 빠진 머리를 광풍에 날리러 가보겠습니당...ㅡㅡ?
참~~! 제가 저번에 올린 광풍폭우 의견기타를 수정해 놓았습니다.
거기에 가시면 광풍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셨던 점들을 다시 한 번 요약해놨어용.
필요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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