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 1 ... - 1부 25장
본문
25. 강변의 약속
후미에는 더욱 바싹 다가와 페달을 밟고 있던 마사오의 넓적다리 위
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다음에 만나면 내 고민 좀 들어 줘."
"너도 고민할 때가 있어?"
"그럼. 모순을 알고 있는 나이니까. 심각해."
"교제는 잘 되어 가고?"
"그 사람들과 노는 건 졸업했어. 나도 늘 아이는 아니잖아."
"마사오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간이야. 가야겠어."
"일요일에 놀러와. 괜히 집에 있는 척하지 말고."
마사오의 자전거는 역으로 향했다. 후미에에게 미요와의 일을 이야
기하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 옆에는 선로를 따라 목재소가 있었고, 그 끝에 커다란 지붕을 인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은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늘 두꺼운 나
무 덮개로 덮여 있었다. 바로 그 우물 옆에 미찌꼬는 마사오가 알아보
기 쉽도록 교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녀는 마사오가, 쌓아올려진 목
재 더미 옆을 지나 다가가도록 알아채지 못했다. 마사오는 자전거의
속력을 늦추지 않고 접근하여 미찌꼬 앞에서 급정거했다. 미찌꼬가 놀
라 돌아다보았다. 예쁜 얼굴이었다.
"안녕?"
기억에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우물 덮개 위에 놓여 있던 감색 가방
을 집에들고 미찌꼬가 다가왔다. 마사오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있
었다. "가죽 가방을 갖고 다니는군. 낡은 건 아닌 것 같고. 부자집 애
구나." 마사오의 학교에서도 가죽 가방을 갖고 다니는 학생은 겨우 다
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널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 한마디 한마디가 분명했다.
"그래서 긴이에게 찾아달라고 부탁했었어."
"음. 긴이랑은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어."
"다행이었지. 반이 달랐으면 못 찾았을 텐데."
전혀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이 정면으로 마사오를 바라보는 눈이 압
도적이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늘 원숙해서 역시 나이를 느끼게
하곤 하던 다에꼬의 태도보다 더 당당했다.어른을 대하는 것 같았다.
마사오의 판단은 적중했다. 미찌꼬의 다음 말 역시 대답했기 때문이
다.
"조용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강둑으로 갈까?"
"그게 좋겠네."
"뒤에 탈래?"
미찌꼬는 잠시 놀라는 듯했으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마사오는 뒤에 미찌꼬를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미찌꼬는 옆으
로 올라 앉아 간신히 의자의 끝을 붙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사오의
몸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핸들을 좌우로 꺾어 마구 휘청거리게 하면
어떻게 나올까?"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한 미찌꼬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니, 마사오의 허리를 꽉 잡고 매달리게 하고 싶었다. 그러
나 마사오는 그런 짓궂은 남자가 아니었다.
큰 길로 나왔을 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왼
쪽에서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마차였다. 큰길로 나오면서도 마부
가 말 고삐를 당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사오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중심을 잡기 위해 핸들을 좌우로 재빨리 움직였다. 자
전거와 함께 마사오는 쓰러질 듯 기울어지며 휘청거렸다. 간발의 차이
로 말의 코 앞을 스쳐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미찌꼬는 그때까지도 마사
오에게 매달려 오지 않았다. 비명은 커녕 평소의 말투로 말할 뿐이었
다.
"발이 마차 바퀴에 들어가는 줄 알았어. 능숙하구나."
마사오는 기가 막혔다.
큰길을 벗어나 오솔길로 접어들어 보리밭 사이를 지나 강둑으로 나
갔다. 제방 위에 자전거를 두고 비탈길을 내려갔다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았다. 미찌꼬는 가방에서 보자기를 꺼내 깔았다.
무릎을 접고 앉은 미찌꼬의 발 끝에 검은 가죽 구두가 보였다. 가죽
구두를 신은 사람이 가죽 가방을 든 학생보다는 많았지만 그래봤자 겨
우 반에서 한 명꼴이었다. 다에꼬는 가끔 게다로 등교할 때도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 거의 게다를 신었다. 마포로 만들어진 운동화는 배급품
이었고 그나마 제비뽑기에 운좋게 당첨돼야 공정 가격으로 살 수 있었
다. 배급량은 일 년 동안 다섯 명에 한 켤레 정도였고 품질이 좋지 못
해서 반 년도 신지 못했다. 암시장에 가면 운동화 정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시골에서 그렇게까지 무리하는 부모들은 드물었다. 대
부분의 중학생은 고교생처럼 그저 후박나무로 된 높은 게다로 활보하
는 것만으로 으시대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손으로 만든 짚신으로 등
교하는 아이도 있었다. 체조 시간엔 맨발이었다.
새삼스럽게 마사오는 미찌꼬를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왜 그래?"
이마로 쏟아지는 햇볕에 미찌꼬으 얼굴은 복숭아빛으로 투명했다.
예쁘장한 입술도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마사오는 얼굴을 강 쪽으로 돌렸다.
"그게 작년 겨울이었지?"
"응, 겨울 방학 전이었어."
"왜, 지금에 와서 나 만날 생각이 들었어?"
미찌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마사오도 잠자코 기다렸다. 강 복판
에서 물고기가 한 마리 펄쩍 뛰어올랐다. 고요한 강심에 파문이 퍼져
갔다. 미찌꼬가 조용히 입을 열엇따.
"너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일 거야."
경악스러웠다. 여학생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마사오
의 물음에 대한 대답치고는 해괴망칙하기까지 했다. "내 인격을 재 보
자는 심산이군."
"영광이군. 그렇지만 너와 사귀는 애들이 그 쪽으론 더 유능할 텐데."
입으로는 여유있는 척 말했지만 마사오의 뺨은 상기되어 버렸다. 미
찌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들에겐 아무 감정도 느낄 수가 없었어. 나와는 세계가 다른 사
람들이야."
"긴이 외에 아는 사람이 또 누구야?"
"오까모또도 알아. 너와 후미에라는 애에 대해서도 긴이에게 들었어.
예쁘다며?" 그 다음에 미찌꼬는 태연한 말투로 도 기절초풍할 말을
내뱉았다.
"후미에와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어?"
마사오는 뺨은 이제 더 붉어지지도 않았다. 한 대 얻어 맞은 것같이
얼얼하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이 애는 머리로만 말할 뿐이야. 난
여체를 직접 겪어서 알고 있어. 창녀와 같이 자지는 않았지만 접한 일
도 있어."
"만일 그렇다면?"
"나도 그런 기회를 갖고 싶어."
이번엔 화가 치밀어올랐다.조롱하고 있거나 바보 취급을 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와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지만 놀랍군.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난 내 자신을 바꾸고 싶어."
눈이 마주쳤다. 미찌꼬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마사오도 피하지 않
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바라보았다. 미찌꼬의 눈에는 색정의 빛 따
위는 없었다. 맑았다. 지적인 의문을 가지고 친구를 응시하는 눈이었
다. "그래서 수줍어하지 않는 거구나. 대담한 말을 태연하게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지금 키스해." 마사오는 눈과 눈의 거리를 좁혀 짐짓 위협
적으로 말했다.
"응. 좋아."
미찌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마사오에게 다가와 눈을 깜빡였
다. 그러자 웬일인지 한 쪽 눈에 쌍꺼풀이 졌다. "여기서 후퇴하면 지
게 된다. 그렇지만 내가 이기더라도 이 애는 긴이에게 말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에꼬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어
쩔 수 없다." 마사오는 미찌꼬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는 않았다. 나중
에 강제로 입술을 빼앗앗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입술이 닿았
다. 미찌꼬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마사오가 입술
을 빨기 시작했다. 단단히 닫혀 있던 미찎의 입술이 조금씩 열리더
니 침이 흘러나왔다. 미찌꼬의 손이 마사오의 어깨에 올려졌다. 중심
을 잡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다. 그러더니 미찌꼬의 눈이 스르르 감겨
졌다. 마사오의 어깨에 놓인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지만 마사오의
입술을 빨진 않았다. "이런 키스는 또 처음이군. 이럴 수도 있을까?"
마사오는 그제야 미찌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두 사람은 서로 끌
어안았다. 대낮이었다. 모든 게 훤하게 보이는 대낮이었다. 저만치서
소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곳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분명히
농부가 소를 몰고 오는 것일 터였다. 그들이 아니래도 이 강둑에 불쑥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사오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믄 미찌꼬와의 대결이 중요했다. 기가 꺾이면 지는 거였다.
욕망은 거의 일지 않았다. 다에꼬와는 보통 때 키스를 해도 곧 몸이
부풀기 시작해서 금방 터질 듯했었는데 그런 징후는 전혀 없었다. 입
맞춤을 멈추고 마사오가 팔을 풀었을 때 미찌꼬가 또박또박 말해 왔
다.
"믿지 않겠지만.... 처음이야."
겨우 마사오는 상대방을 공격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알고 있어."
"어떻게?" 뭐든지 확실하게 정리해 두어야 개운해 하는 성격이었다.
역시 처녀였다.
"아직 키스하는 법도 모르는 것 같았서."
"그래서 미야자끼에게 배우고 싶은 거야."
기가 꺾인 것 같았다. 마사오는 아직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성
으로 부르고 있었다. 발음이 익숙하기까지 했다.
"나도 경험이 없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작년 겨울부터 계속 너를 생각하고 있었어."
"왜? 예쁜 것만으로 자신이 있었나? 그러면 내가 분명 응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아니야." 분명하게 미찌꼬는 부인했다.
"자신 따윈 없어. 꿈을 꾸고 있었을 뿐이지.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건
지금부터야."
".....?"
다시 한번 키스하려고 마사오는 미찌꼬 어깨에 손을 올려 강제로 끌
어안았다. 미찌꼬는 다가와 눈을 감았다. 소는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미찌꼬의 입은 조금 벌려져 있었다. 아까보다 몸도 부드러웠
다. 그렇지만 역시 욕정이 일지는 않았다. 실험중이라는 기분이었다.
마사오는 갑자기 그 양볼을 감싸며 입술을 떼었다.
"빠는 거야."
짧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찌꼬는 눈을 떴다. 눈이 끄덕이는 것 같
더니 다시 감겼다. 양불을 감싼 채 입을 맞추었다. 미찌꼬는 격렬하게
발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호흡을 정지시키고 미찌꼬의 입술을 음미하
고 있었다. 태양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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