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끓는 왕초의 불기둥 - 4부
본문
왕초는 부산의 여러 곳인 거래처를 돌아 다니면서 월말 수금을 마치려고 바쁜데 휴대폰에서 벨 소리가 울려 나오자 왕초는 명희라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나 다를가 휴대폰 창을 드려다 보니 헤어지면서 명희가 알려주던 휴대폰 번호가 뜨고 있었다.
왕초는 망설이듯 하더니 한참을 뜸을 들인 후에야 여보...세요. 하며 폰을 받는다.
명희는 반색을 하면서 왕초씨! 나는 대구에 잘 도착 하였고요. 엄마에게 가는 중간에 전화를 드리는 거예요. 왕초씨는 부산일 보시고 저녁에는 대구에 꼭 오시는 거지요? 하면서 매달리는 목소리였다.
왕초는 벌써부터 이렇게 죽을둥 살둥 모르면서 물불을 안 가리며 덤벼드는 여자에게는 왠일인지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
왕초는 부산일을 다 마치는 대로 저녁 늦게라도 대구 거래처로 스케줄을 잡아 놓고 있으면서도 명희에게는 의도적으로 둘러대면서 대구에는 못가고 광주로 가야될 것 같다면서 명희를 떼어내기 위해서 멀리 하려고 있지도 않은 말을 핑계대며 대답해 주는 것이었다.
명희는 대구에서 왕초에게 한번 더 안겨보고 싶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그 맛을 또 다시 한번 더 맛보려 하였던 것이었다.
명희만의 짝사랑으로 끝나게 되니 내내 아쉬움은 물거품으로 사라지니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알았어요. 하며 마지못해 대답을 한다.
그러면서도 하루밤 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보고싶어여.........서울에 오시는 대로 꼭 연락주세요. 이제는 애인이라고 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듯이 상냥스럽게 인사를 하며 폰을 끊는다.
왕초는 그 동안 이렇게 바람을 피우며 외도를 해 본 여자중에 명희가 몇명 안되는 유부녀 중 하나였다.
왕초는 사춘기때부터 오형제 신세를 지면서 자위행위로 이성에 대한 눈이 뜨이기 시작하더니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 셋이 어우려져서 청량리 588 번지에 있는 창녀촌에 가서 그 아까운 숫총각의 순결을 빼앗기듯 내버린 것이 여자에 대한 인생의 첫 출발이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조숙하게 이성에 눈을 뜬 왕초는 대학교 시절에 콩깍지를 까듯 닥치는 대로 여학생들을 게눈 감추듯이 날름날름 주워 먹고 다녔다.
집의 부모님들은 눈치를 채고 저 놈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니 빨리 결혼을 서둘렀다. 마침내 결혼한 후에도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하더니 본격적으로 여자 사냥에 더욱 피치를 올리고 다녔다.
바람 피우는 남자가 마누라에게는 더 잘해 주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수 많은 여자를 경험하게 되므로써 여자에 대한 섹스에는 도가 터가가 시작하여 선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번에 맛본 명희도 보통을 넘는 여자는 아니라는 것도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7년의 결혼 생활을 하며 아이를 낳고 여자나이 32살이 되었으니 이제는 막 물이 줄기차게 올라 남자에게서 느끼는 오묘한 맛을 다 알게 될 때라는 것처럼 명희는 몸으로 말하듯이 남자를 밝히지 않을래야 밝히지 않을 수 없는 타입이었다. 이런 여자를 보고 남자들은 좀 심하게 말한다면 색꼴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남의 여자인 유부녀를 맛이 좋다고 하여 눈이 멀면 반드시 봉변을 당하고 나서야 후회하게 된다.
왕초는 이러한 이치를 잘 깨닫기 때문에 명희를 제 자리에 돌려 놓기 위하여 멀리하려고 같은 대구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않으려고 하였다.
왕초는 꼬리가 길면 밟히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수하게 널려 있는 게 여자인데 여자 하나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개망신 당할 일은 사전에 피해가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렇게 냉혹한 자제력과 냉엄한 결단성도 있어야 남자다운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산에서 헤어지면서 명희가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조르는 바람에 왕초가 명함을 명희에게 건네준 것에 대하여 꺼림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불륜의 정사는 거의가 전화 때문에 예기치 않게 들통나는 예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혹시 명희의 남편이 핸드폰을 뒤져서 낯 모르는 번호를 보고 추궁한다면 명희는 무엇이라고 변명할까.......생각만 해도 아찔하였다. 거기에다 명함까지 뒤져 보면 빼도박도 못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왕초는 가정을 가진 임자있는 여자보다는 부담이 없는 솔로들에게 임자없는 여자들만을 호시탐탐 노리며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왕초같은 봉황에 깊은 뜻도 모르고 열 여자를 마다않는 남자의 본능에 남자다운 명도의 길을 경험담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수천명의 네티즌 중에서 난데없이 쪼그마한 참새 한 두마리가 날아와서 자신들의 컴플렉스를 덮으려는 듯이 토끼깥이 5초도 못 버티는 찍...............하고 사정하는 소리처럼 C.........팔하면서 내 뱉는다.
흔히 이런 초보들은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는 결점때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가 일쑤이다.
남자에게는 세가지 적이 있다.
1. 꼴대 문 앞에서 꼴인도 하기전에 자살 하는 자
2. 뻔대기 같은 작은 고추로 여자의 간에 기별도 안 가게 하는 자
3. 심인성발기부전으로 축 늘어져서 보기에도 애처롭게 남자 구실을 못하고 자존심만 상하는 자
이런 쫄개들이 원통하여 리플을 다는 소리였다.
몸에 이로운 약은 먹기에 슨 법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제왕처럼 군림할 것이냐!!!
아니면 어깨가 축 늘어진 내시처럼 살 것이냐!!!는 본인 하기에 달려있고 생각 여하에 달려있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이 팔자라고 하지를 않던가............생각이 바뀌면 인생도 바뀌고 팔자도 고친다.
왕초같이 능한 사람도 더 배워서 경지에 이르는 달인이 되게끔 도움된 핫-나경을 보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깊이 느껴보고 오-오마이갓을 보고 무쇠같은 남자로 단련해서 더 더욱 테크닉이 뼈가 되고 살이 되어서 능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비교할 수가 없이 제일 좋은 성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 보라는 말이 애송이에게는 손에 쥐어 줘도 모르는 것이 소귀에 경 읽기가 되었나 보다.
섹스도 배워야 잘 한다. 테크닉을 배워서 자신의 질 높은 삶을 누려 보라고 한 진실된 충언이 어째서 영계는 깨닫지를 못하고 C...........팔에 해당 되는가...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들은 멀지 않아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된다.
평생을 무능력한 남자에게만 매달려 살려는 여자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능력있는 놈에게 빼앗기게 될터이니 불쌍타 아니할 수가 없다.
화창한 봄 날씨에 분주한 하루는 왕초에게는 마냥 짧기만 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월말 수금도 하고 신상품 주문까지도 잊지 않고 다 받아 내었다. 상품은 주지도 않았는데 선금까지 다 받아내는 남다른 재주까지도 왕초는 다 갖추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름은 왕초로 지었는지 모르겠다.
왕초란??????
넝마주이나 거지들의 우두머리를 왕초라고 부르는데 어째서 넝마주이나 거지도 아닌데 왕초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 모르겠다.
왕초의 아버지의 이름은 왕건이었다. 고려시대 고려를 개국 한 첫번째 임금님인 왕건과 이름이 똑 같았다.
한문에 능하신 분께서 첫 아들을 생산하고 보니 이름짖기에 고심하였다. 이름이란 남이 부르기 좋아야 하며 또한 남이 한번 들으면 잊어 먹지 않는 이름이 제일 좋으며 그 다음에는 뜻도 좋아야 한다. 남자로 태어나서 닭의 대가리는 될 망정 말의 꽁지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왕초라고 이름을 작명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왕초는 부르기도 쉽고 한번 들어도 잊어 먹지 않고 사업도 잘 하고 있으니 사장 소리를 들으며 특이한 이름에 걸맞게 여자들도 특출나게 많이 나꿔내는 왕초다운 면모였다.
왕초는 부산일은 다 마치고 명희에게는 광주로 간다고 하던 사람이 저녁 늦게 동대구역에 내렸다.
이미 해가 기울었는데 하늘에서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이런때일수록 왕초는 객지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역에 서서 서성거리며 갈등을 느낀다. 저녁늦게 거래처를 가 보기가 어중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 출장을 오면 자주 가던 동대구역 뒤족에 위치해 있는 동천 유원지 숙소로 가려고 택시를 잡아탔다.
사람은 한번 가본 곳이 마음에 들면 또 다시 가게 되는 단골집이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동촌 유원지에 있는 숙소는 앞에는 냇물도 흐르고 공기도 좋으며 조용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왕초의 마음을 자연적으로 이끌리게 되는가 보다.
택시는 어느덧 동천 유원지 구름다리 앞에서 멈추었다.
왕초는 택시에서 내리며 사방을 두리번 거리니 이미 어둠만이 사방을 뒤덮고 쥐 죽은 듯이 고요함만이 적막하게 느껴지는데 냇물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위에서 어렴풋이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차가운 봄비는 치적대며 내리고 있는데 왠 여자가 저렇게 울고 있을까............하고 호기심이 생기니 아니 가 볼수가 없어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하여 우산도 없이 다가가니 구름다리 중간 쯤에서 우산도 없이 찬비를 다 맞으며 사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울음만 애처롭게 구슬프게 울고만 서 있는 여인이 있었다.
옆에 다가간 왕초는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가..........하고 얼굴을 들여다 보니 20대 중반의 젊은 아가씨가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되어 하염없이 먼 산만을 바라보며 넑이 나간듯이 정신을 놓고만 있었다.
왕초는 피치못한 무슨 사연이 많기에 그러나보다 하며 다시 되돌아 오려고 하니...그 여자의 옆에는 신발이 두개가 나란히 다리 위에 벗어 놓은 것이 보였다.
그러니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피치못한 사정이 있기에 자살까지 하려는지 안타까워 보였다.
왕초는 처음에는 남의 일이라 그냥 지나치려고 하였으나 그 여자는 자기가 죽을 자리를 표시해 두기 위해 신발을 벗어 놓은 것을 보고는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옆에 서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보기만 해도 온 몸이 오싹하게 현기증이 느껴져 소름이 쫘.............아.............악 끼치는 깊은 낭떠러지였다.
사람은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 순간을 넘기면 될일을 짧은 한 순간에 괴로움이나 고통이 인생의 전부인양 좁은 생각과 착각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참을 인자 세개면 살인도 면하고 귀중한 목숨도 건질 수 있다고 하였던 것이다.
왕초와 그 여인 밖에 없는 캄캄한 곳에서 찬비를 다 맞으며 이 세상을 원망하며 비관한듯이 울고만 있는 연약한 여자의 목숨을 구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설득해 나가기로 하였다.
왕초는 여자에게 무슨 곡절이 있어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생명까지 버리려고 하느냐면서 물어 보아도 들은 척도 안하고 어깨만 들썩거리며 흐느끼기만 할 뿐이다.
왕초는 애처롭고 측은한 생각에 어깨를 다독거려주니 말없이 흐르는 눈물만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울음을 그치려는지 훌쩍~~~~~~~~~~~거리더니 왠 남자인가 하고 왕초를 올려다 본다.
왕초는 그 여자가 진정기미가 보이자 비도 오고하니 빨리 저 건너 보이는 포장 마차에 가서 옷이나 말리자면서 말을 거니 사람이 있어 뛰어 내리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 여자도 옷이 젖어 축축함과 한기를 느껴서 인지 마음이 가라 앉고 있었다.
왕초는 빨리 가자며 어깨를 이끌자 그 여자는 못 이기는 척 하고 죽으려고 벗어 놓았던 힐의 구두를 두 발로 잡아당겨 다시 신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구름다리를 걸으면서 밤에 내리는 봄비를 같이 맞으며 포장마차에서 은은히 비춰나오는 불빛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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