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의 전설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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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매니아들의 거창 번개
baram57이 주관하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번개가 있습니다.
현재 참석을 하시겠다는 분은 그 유명한 낭만백작님, 좌우백, 바이샤, 중년아제 내외분
나 오공, 태사자 및 늙었어도 마음 착한 기쁨조 약간을 비롯하여, 약 15명의 매니아들이 거창 모임에 참석을 하신다고 연락이 있었습니다.
시간과 거창이라는 위치는 정하여 졌으나 정확한 장소는 우리 야설 매니아들께서 얼마나 많이 참석을 하느냐에 따라 바람이 결정을 합니다.
참석을 하실 분은 필히 꼬리 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서는 제 글에 야전에서는 게시판에)
참석 범위: 야설을 좋아하는 매니아 님들, 전국 어디에서도 상관없음.
부산 지역 출발 장소: 부산 구포역 맞은편 구포다리 올라가는 곳(개인적으로 오셔도 무방함)
날짜 및 시간 : 2005년 5월 14일 18시 30분 (시간 변경 될 수 있음)
예정 행사 : 5월 14일 저녁-->바람이 주선하는 매니아들의 주연과 대담 및 식사
5월 15일 ----->거창의 멋진 덕유산 부근에서 나물 채취 및 기타
모임 장소: 추 후 별도로 공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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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의 전설
전 걸레입니다.
이제 겨우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에 무슨 걸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한다 하여도 전 걸레인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걸레의 길로 들어 선 것은 얼마 전에 저에 대한 죄책감에 자살을 한 사촌오빠의 탓이라고 한다면
저승에서 지옥의 불구덩이와 영혼을 괴롭히는 온갖 무서운 짐승과 아귀들의 틈에서 고생하고 있을
사촌오빠를 더 힘들게 할 지는 몰라도 사실이 사실인 만큼 사촌오빠에게 그 모든 탓을 돌리겠습니다.
저희 아빠와 엄마는 제가 겨우 초등학교 2학년 일 때 이혼을 하였습니다.
아빠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저는 아빠가 혼자서 먹고살기에도 빠듯하였는지 저를 큰아버지 집에 의탁을 시켰습니다.
철부지 어린 저에게는 오직 사촌오빠만이 저의 친구였습니다.
저보다 겨우 세 살이 많았던 사촌오빠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장사를 아침 일찍 나가면 아침밥도 챙겨주고
학교에서 준비하여오란 준비물도 항상 챙겨주었으며 초등학교도 항상 같이 등교하고 하교 때도
전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놀다가 사촌오빠가 공부가 끝나면 같이 집으로 오는 누가 보아도 정답게 보이는 오누이 사이였습니다.
그런 사촌오빠와 저에게는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것은 집으로 온 후에 항상 오빠와 같이하는 병원놀이와 부부 놀이였습니다.
병원놀이를 할 때는 사촌오빠가 항상 의사선생님이고 전 항상 환자였으며 부부놀이를 할 때는
사촌오빠는 남편이고 전 사촌오빠의 아내가 되어 그 놀이를 즐기는 것이 사촌오빠와 저의 놀이의 전부였습니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제가 배를 부여잡고 얼굴을 찡그리면
"아~그래요 어디 봅시다, 여기 누우세요"하면
"예"하고 윗도리를 올리고 누우면
"흠! 심각하군요"오빠는 두 손의 손가락을 귀에다 꼽고 한쪽 발로 제 배와 가슴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짖습니다.
"그럼 제가 죽을병에라도 걸렸나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하면
"어디 봅시다"하면서 제 치마를 들추고 팬티를 벗깁니다.
"흠, 이 보지가 문제 군"하면서 손가락으로 보지 둔덕을 벌립니다.
"왜요?"하고 물으면
"이 보지를 항상 깨끗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환자께서는 그렇게 안 하였습니다"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면
"선생님이 제 보지 깨끗하게 해 주세요, 네 부탁합니다"하면
"좋아요 조금 간지러울지 몰라도 웃거나 몸부림치면 더 빨리 악화가 되니 참으세요"하면
"네, 선생님"하고 대답을 하면 사촌오빠 아니 의사선생님은 제 발 밑에 엎드려 제 보지를 입으로 빨아줍니다.
처음 그 놀이를 할 때는 무척 간지러웠으나 점점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간지러운 기분은 없어지고
야릇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제가 사촌오빠를 졸라 그 놀이를 즐기는 상황으로 변하게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저 쪽쪽 빨기만 하던 사촌오빠의 빠는 기술도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기교도 늘었습니다.
보지 둔덕을 손가락으로 벌리고 혀로 제 보지의 금을 따라 아래위로 골고루 빨아주면 숨이 턱에 차 오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오줌을 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오빠는 제 오줌을 더럽다고도 안 하고 오줌을 먹었습니다.
또 부부놀이 즉 소꿉놀이를 할 때는 공기 돌로 밥을 짓는 시늉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시늉을 하여
조그만 나무 널빤지에 그 것을 상을 삼아 차리고 둘이 마주보고 앉아 먹는 것은 다음 놀이의 구색에 불과하였습니다.
"여보 이제 자야지?"사촌오빠가 말하면
"네 여보 방으로 들어가요, 설거지 끝났어요"하며 치마에 손을 닦는 시늉을 하며 따라 사촌오빠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불 펴게"하고는 사촌오빠의 요를 폅니다.
"여보 오늘 우리 아기 하나 만듭시다"요를 깔고 있은 제 뒤에서 편편한 젖가슴을 만지며 말합니다.
"아~이 여보 싫어"하면
"부부면 애를 가져야지 안 가지면 쓰나"하면서 옷을 벗습니다.
전 항상 그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 위에 옷을 벗고 누우면 사촌오빠가 좆으로 제 보지에 비비며 키스를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뽀뽀 수준이었으나 그 역시도 거듭함에 따라 서로의 혀를 빨고 귀도 빨았습니다.
그러나 사촌오빠는 섹스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 탓에 좆을 보지에 박는 일까지는 없었습니다.
사촌오빠는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저와 그런 놀이를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다 사촌오빠가 2학년이 되던 해의 어느 날
"혜경아 오빠 좆에서 이상 한 물 나온다 볼래?"하기에
"응"하고 말하자 오빠는 좆을 끄집어내고는 흔들었습니다.
그 것이 자위이고 용두질 친다고 하는 말은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겨우 알았습니다.
"으~혜경아 나온다 잘 봐"사촌오빠는 한참을 용두질 친 끝에 하얀 물줄기가 튀어나왔습니다.
"오빠 뭐야?"놀라며 묻자
"응, 이게 보지 안에 들어가면 아기가 생긴데"하며 웃었습니다.
"그럼 내 보지 안에 넣지 그 아까운걸 이렇게 버려"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여자는 한 달에 한번씩 보지에서 피가 나와야 된데"모든 것을 다 아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아~그렇구나, 그런데 그 물을 어떻게 보지에 넣어?"하고 물었더니
"응, 너 전에 거울로 네 보지 비쳐 본 적 있었지?"하기에
"응, 봤어"하고 말하자
"제일 밑에 작은 구멍 있었지?"하기에
"응, 있었어"하자
"거기에 이 것을 넣고 빼고 반복하면 들어간데"하며 몸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오빠 그럼 오늘 한번 넣어볼래?"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처음 하면 처녀막이라는 것이 터져 아프데"하기에
"많이?"하고 묻자
"잘 몰라,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하나도 안 아프고 점점 네가 네 보지 빨아주면 기분이 좋듯이 더 좋아진데"하였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더 즐거움을 준다는 말이었고 저 역시 얼마나 더 좋아지는지 궁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또 한번의 아픔은 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오빠 그럼 해 보자, 응"오히려 제가 졸랐습니다.
"또 처음에 하면 보지에서 처녀막이란 것이 터지면서 피도 나온대"하기에
"많이?"하고 묻자
"그렇게 많이는 안 나온다더라"하기에
"계속 나와?"하고 묻자
"그 때만 잠시 나온대"하기에
"그럼 하자"하고는 치마와 팬티를 벗고 요를 깔자
"혜경아 요에 피 묻으면 큰일 나"하면서 요 위에 신문지를 여러 겹 깔고는 눕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사촌오빠도 바지와 팬티를 벗고 제 가랑이 사이에 무릎을 꿇더니
"아파도 참고 입 막아"하기에
"응"하고는 양손으로 제 입을 꼭 막았습니다.
"자~간다"제 가랑이를 벌려서 높이 들게 하더니 좆을 제 보지 구멍 입구에 대고 박았습니다.
"읍!"입을 단단히 막고 있었으나 비명이 세어 나왔습니다.
정말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아픔을 참는 다고 약속을 한 마당에 사촌오빠에게 빼라고 할 수 도 없었기에 오빠가 좆을
보지에 박고 빼고 박기를 반복하여도 눈물만 흘리면서 애써 참아주자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얼마 안가
"으~나온다"사촌오빠가 제 가슴에 머리를 박자
"아~뜨거워"제 보지 안에 최초로 좆물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의 고통은 처음 박을 때보다 더 아팠으면 아팠지 덜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아팠지?"오빠가 제 보지에서 좆을 빼며 물었습니다.
"응, 엄청 아팠어"하며 일어나 밑을 보자 신문지에는 사촌오빠의 말대로 피투성이였고 제 보지 주변도 피투성이였습니다.
몰론 사촌오빠의 좆에도 피투성이였습니다.
사촌오빠와 저는 시시덕거리면서 샤워를 하였습니다.
저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섹스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촌오빠는 어디에서 주워 들었는지 일주일 이상은 하면 안 된다면서 빨아주기만 하고 저에게도 사촌오빠의 좆을 빨고 흔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정액을 먹으라고 강요하며 안 먹으면 다시는 같이 안 논다는 협박 아닌 협박 때문에 비위가 상하였으나 먹었습니다.
아마 열흘이 지난 후였을 것입니다.
"혜경아, 우리 빠구리하자"생소한 말을 하였습니다.
"빠구리가 뭐야?"하고 묻자
"이 바보야 좆을 보지에 박는걸 빠구리라고 한다"하며 자랑스럽게 말하였습니다.
"아~그렇구나 해, 이제 안 아프지"조금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잠시 아프대"바지와 팬티를 벗으며 말하기에
"전에 만큼?"두려웠으나 치마와 팬티를 벗으며 묻자
"아니, 누워"하기에 요를 깔고 역시 신문지를 여러 겹 깐 다음에 누웠습니다.
"으"오빠의 좆이 제 보지에 박히자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아팠습니다.
"많이 아파?"사촌오빠가 물었습니다.
"아니 조금"웃으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내 말 맞지?"오빠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응"하고 말하자
"요렇게 넣고 빼고 하는 것을 펌프질이라 한다더라"자랑스럽게 말하곤 펌프질이란 것을 시작하였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습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닥 타닥"오빠의 펌프질이 거듭되자 평소에 엄청나게 오빠에게 빨림을 당하며
이상한 기분이 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저는 빨림을 당 할 때보다 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 좋았습니다.
"오빠 이상해, 미치겠어"얼굴을 찡그리며 말하자
"우리 혜경이 벌써 느끼는 구나"환하게 웃으며 더 빠르게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오빠 이상하게 오줌 마려워"하자
"그럼 싸라"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 혜경이 보지에서 물 나온다"오줌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몰랐으나 그 것은 오줌이 아니고 보지 안에서 나온 물이었습니다.
빡빡하게 느껴지던 보지가 한결 덜 빡빡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촌오빠의 펌프질은 보지에서 물이 나오자 한결 더 빨라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제 보지 안에 엄청나게 많은 좆물을 뿌려 주었습니다.
그런 놀이는 거의 날마다 하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더 하자고 졸랐습니다.
그러면 오빠는 항상 싫어하는 기색을 안 보이고 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6학년이 되던 여름부터 저에게도 생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빠는 어린 제가 임신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어디에서 구하였는지 고무로 된 풍선 같은 것을 좆에 끼우고 하였습니다.
오빠는 어디에서 주워 들었는지 생리 일주일 전 후는 안전해서 보지 안에 직접 싸도 안전하다고 하며 안에다 싸 주었고
평소에는 하고 씻어서 간직한 그 풍선 같은 차고 해 주었으며 생리 중에는 제가 입으로 해 주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은 사촌오빠가 가장 친하게 지낸다고 하는 사촌오빠의 친구를 불러서는 교대로 2번씩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어린 나이였지만 맛도 알았고 시음도 간혹 내는 수주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사촌오빠 혼자서 저와 빠구리를 하면서 놀았지만 그 후로는 일요일이면 사촌오빠는
그 친구는 물론 다른 친구들도 불러서 교대로 즐겼고 심지어 어떤 날은 여러 명의 친구를 불러서 함께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남성호르몬을 많이 섭취하고 보지로 흡수를 하여서 그런지 제 젖가슴은 동년배 아이들에 비하여 월등하게 커졌습니다.
또 어떤 날은 우리 반의 여자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오빠와 오빠 친구들과 함께 모두 벌거숭이로 방안에서 뒹구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여자친구는 항상 사촌오빠가 먼저 취하고 오빠의 친구들에게 돌리는 것은 불문율이었습니다.
또 저는 항상 사촌오빠에게 새로운 여자친구들을 먹게 하느라고 물색을 하였고 심지어는 섹스라고는
단 한번도 경험이 없는 애들도 꼬드겨 오빠에게 처녀막을 깨트리게 하는 지극 정성을 보임으로서
사촌오빠가 밖에서 한눈을 못 팔게 하는 치밀함을 보이는 사촌오빠의 착실한 노예로 하루하루 변하여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밥은 안 먹어도 되었지만 섹스를 안 하고는 못 배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사촌오빠도 역시 거의 매일 저를 즐겁게 해 주었고 대학에서 안 친구들을 데리고 와 같이 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촌오빠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군대에 입대를 하고 말았습니다.
여 상 2학년인 주제에 섹스를 굶는 다는 것은 죽음보다 싫은 몸으로 변한 저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요 이년이 넘는 시간을 섹스를 굶주린다는 것은 죽기보다도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너무나 잘 아는 사촌오빠는 사촌오빠의 친구들 중에 제일 친한 성구라는 오빠에게 절 부탁하고 갔습니다.
성구 오빠는 좆도 사촌오빠에 비하여 월등하게 컷 고 힘도 무척 좋아 한번만 하는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학교만 마치면 성구 오빠가 안 불러도 성구 오빠가 다니는 학교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면 성구 오빠는 학교 뒷산이나 노래연습장 아니면 비디오 방에 가서 교복 상의는 입힌 체 섹스를 즐겼습니다.
또 성구 오빠 역시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즐기고 나면 군에 간 사촌오빠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일주일간에 누구누구와 몇 번을 즐겼고
어디에서 즐겼는지를 자세하게 적어서 편지로 보냈으나 사촌오빠는 단 한번도 답장은 안 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100일 휴가를 나온 사촌오빠는 저에게 이제 더 이상 난잡한 행동은 그만 두라고 하였으나
이미 인이 박힌 저에게 그 충고는 쇠귀에 경 읽기였고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라 무시를 하고 계속 저의 섹스 행각은 더 난잡하여졌습니다.
또 그 때부터 정상 섹스만 즐기던 저는 후장섹스의 맛에 길들여져 두 명 혹은 세 명이 함께 즐기는 날이 더 많아 졌습니다.
한 사람은 보지에 박고 한 사람은 후장에 박고 또 한 사람은 제 입에 박고 즐기는 섹스는 환상적이었습니다.
또 교대로 바꾸어가며 후장과 보지 그리고 입에 무려 세 번의 좆물이 들어오면 전 너무 황홀한 나머지 실신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란한 생활에 완전히 길들여진 제 보지는 아무리 큰 좆도 다 수용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심지어는 양놈들 좆 만큼 굵고 긴 인조 좆도 쉽게 박혀 상대가 없으면 그 놈으로 자위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막 3학년 2학기에 접어들어 실습을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라 왔습니다.
근대에서 착실하게 복무를 하고 있으리라 믿었던 사촌오빠가 GOP에서 고참 한 명과 근무를 서던 도중에
화장실 다녀온다며 가더니 얼마 안 되어 총소리와 함께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큰아버지 집은 갑자기 초상집으로 변하였습니다.
눈물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저는 오빠가 복무하던 부대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맞이한 것은 싸늘하게 식은 사촌오빠의 주검뿐이었습니다.
가정사정으로 자살을 한 경우에는 국립묘지에 안장이 안 된다는 부대장의 말에 따라 화장을 하여 산에 뿌리고 왔습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 쓴 유서에는 저에 대한 별 이야기는 없었으나 잘 살라는 말 분이었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어 먼저 간다고 가슴에서 지우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온 저의 학교로 사촌오빠의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내용은 자기가 절 나쁜 나락으로 빠지게 하였다며 자기를 원망하며 살라는 말과 무슨 말로도 용서를 빌 자신이 없고
그리고 또 저의 미래가 눈에 삼삼하여 도저히 볼 자신도 없어서 먼저 간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몇 일은 자중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촌오빠 장례 치르느라 다녀 온지 4일 그리고 3일간 자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앞에서도 말을 하였지만 이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들여졌고 몸에 인이 박힌 상태인지라
더 이상 참는 다는 것은 제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성구 오빠를 찾아갔으나
성구 오빠는 냉담하게 한 통의 편지를 저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것은 죽은 사촌오빠가 성구 오빠에게 보낸
눈물 젖은 편지로서 앞으로 자신의 사촌동생과 난잡한 짓은 그만두고 좋은 길로 인도를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다시 저와 섹스를 하거나 섹스 하는 것을 방조 내지는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를 한다면 저승에서라도
성구 오빠를 저주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의 편지였으며 다 읽고 나자 성구 오빠는 안아주기는커녕
저에게 올바른 길로 가라며 눈물을 흘리며 부탁이 아닌 애원을 하였습니다.
실망과 서운함을 뒤로하고 성구 오빠가 다니는 대학을 나왔습니다.
"너 혜경이 아니니?"어디선가 한 두 번 본 기억은 있었으나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났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을 안 하자
"나, 인구야, 인구"하였습니다.
"아~인구 오빠"반가웠습니다.
인구 오빠는 죽은 사촌오빠와 고등학교 동기로서 사촌오빠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몇 번인가 제가 살던
큰아버지 집으로 일요일에 와서 섹스를 즐긴 적이 있었던 그런 사촌오바의 막연한 친구였습니다.
"응. 그래 참 기호 자살하였다며?"아픈 상처를 건들었습니다.
"응"하고 고개를 숙이자
"녀석 참 좋은 놈이었는데....."하며 말을 흐리더니
"요즘도 그 것 자주 하니?"좌우를 살피며 나직하게 물었습니다.
"몇 일 안 했어?"얼굴을 붉히며 말하자
"생각 있어?"하고 윙크를 하며 묻기에
"응"하고 대답을 하자
"좋아, 가자"하기에
"응"하고 기쁜 나머지 인구 오빠의 팔짱을 끼고 따라갔습니다.
"우리 아빠 지방으로 전출을 가서 나 혼자 자취한다"은근히 자기 자취방으로 간다는 암시를 주었습니다.
"아~그래 오빠"하고 말하자
"너 애인 있니?"하고 묻기에
"아니 없어"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하자
"그럼 나랑 애인하자"하기에
"좋아"하고 승낙을 하였습니다.
솔직히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인구 오빠의 자취방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원룸 아파트로 매우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으로 보아 인구 아빠가 학자금을 넉넉하게 보내 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인구 오빠와 전 가방을 던지고 부둥켜안고 몇 날 몇 일을 굶주린 짐승같이
아니 늑대와 이리라도 된 듯이 서로의 입술과 혀를 빨며 몸은 침대로 향하며 옷을 벗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오빠 나 죽여 줘"침대 위에 눕자마자 인구 오빠의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좋아, 나도 많이 굶었는데 반 죽여주지, 에잇!"힘주어 박았습니다.
"푸~욱"모처럼 제 보지는 임자를 만났습니다.
제가 처음 사촌오빠 덕에 인구 오빠와 섹스를 할 때에도 사촌오빠의 좆에 비하여 굵고 길었는데
대학생이 된 인구 오빠의 좆은 제 보지 안을 가득 메우고 또 자궁까지 자극을 할 정도로 깊이 박혔습니다.
"아~흑 오빠 좋아"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이 보지 이제 누구 것?"좆을 제 보지 깊숙이 박은 체 물었습니다.
"오빠 것"하며 웃자
"좋아, 참 너 실습 나갔니?"하고 묻기에
"모래부터 나가"하자
"그럼 우리 동거할래?"뜻밖의 제안이었습니다.
"정말?"솔직히 사촌오빠가 자살을 한 뒤에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보기가 두려웠습니다.
"응, 우리 아빠가 생활비는 넉넉하게 보내 주거든, 그러니 넌 실습 비 타서 기호 엄마에게 맡겨"
저에게는 단 한푼도 생활비를 안 대어도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고마워 얼른 해 줘"하고 부탁을 하자
"알았어, 그래 죽여주지, 팍팍팍 퍽퍼퍽,퍽퍽, 퍽퍼"펌프질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악!, 악, 아ㅡ악,윽,악윽, 윽!---윽!---윽, 아아앙, 어서 아악,"몇 날 몇 일을 굶은 덕에 바로 올랐습니다.
"퍽퍽퍽, 퍽억,퍽퍽퍽프-,퍽퍽퍽 죽인다 죽여"인구 오빠도 좋아하였습니다.
"아학, 하흑,학하,학학학"마구 올랐습니다.
"퍽억,퍽퍽퍽퍽 퍽---퍽---퍽!,퍽퍽퍽"인구 오빠의 힘은 아주 대단하였습니다.
"으악,학, 오빠 더 세게 , 아 좋아, 나 죽겠어, 아 미칠 것 같아. 어서"얼마나 섹스에 잘 길들여졌습니까
"퍽퍼퍽, 퍽퍽퍼거, 퍼억,푸욱"인구 오빠는 아주 깊숙이 쑤셔서 자궁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학!, 으학 학하"자궁에 좆 끝이 닿자 숨이 막혔습니다
"으억, 푸---------욱!, 아윽!"제의 그런 반응이 좋았는지 거의 다 빼더니 또 힘차게 깊이 쑤셨습니다.
"오빠, 어서,어서, 아 나죽어, 더 깊이 넣어줘. 아학!"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몇 번 제 자궁에
자극을 준 사람은 있었어도 최근에는 저의 자궁까지 자극을 줄 정도로 긴 좆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정말 대단한 펌프질이었습니다.
"아학, 아 오빠 더 세게, 더 깊이 나 죽엇, 아학, 어서,아윽"정말이지 좋았습니다.
"퍽-----윽! 억,퍽 퍽 퍽"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아아........좋아....미칠 것만 같애!"제 보지 안에서도 모처럼 많은 물이 나왔습니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이렇게 펌프질을 하다가 제 보지에 불이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아아흑.......깊이......아아....내 오빠야....아흐윽....좋아!"더 이상 좋을 일이 없을 정도로 황홀하였습니다.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퍽, 퍽---퍽"강력한 펌프질에
"악…아…아…..악….악………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멋진 신음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갑자기 펌프질이 빨라졌습니다.
"악…악…….아….악…음……그래….거기…..거기야…..악..악……아….미치겠어….아……악…"숨이 막혔습니다
"퍼~벅! 타~다닥 퍽! 철~썩, 퍼~버벅! 타~다닥"강약 조절도 대단하였습니다.
"하앙...그래.....아아...잘...해...그거야...아앙....나..이상해...아래가...좋아져...너무..오랜만의...느낌이야...하악...너무..깊어..."제가 하고도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에잇, 으억, 푸---------욱!, 아윽!"또 다시 깊이 쑤셨습니다
"오빠, 어서,어서, 아 나죽어, 더 깊이 넣어줘. 아학!"계속 숨이 턱에 찼습니다.
"퍽퍽퍽, 퍼-억,퍽퍼윽, 퍽-억,퍽-억!,퍽퍽퍽퍽, 안에 싸도 돼?"펌프질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아학, 아 더세게, 죽엇, 아학, 어서,아윽,응, 싸"겨우 대답을 하였습니다.
"퍽! 퍽! 퍽! 퍽퍽퍽퍽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 간다! 으~~~"마무리 펌프질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습니다.
"아~오빠 들어온다 들어 와"전 도리질을 치며 인구 오빠의 등을 끌어안았습니다.
"좋았어? 휴~"인구 오빠가 제 보지 안에 좆물을 뿌리며 물었습니다.
"응 오빠 쨩이야"엄지를 들어 보이자
"이제 매일 해 주고 또 혜경이가 원하면 내 친구도 데리고 오지"하며 제 볼을 잡고 흔들자
"정말?"하고 환하게 웃자
"그럼 내 친구들 엄청 많아 자신 있어?"하기에
"얼마든지 데리고 와 대신에 오빠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만 동거한다"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하고는 제 보지에서 좆을 뺐습니다.
그 후로 인구 오빠와의 동거는 시작이 되었고 인구 오빠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면 몇 명이라도
그냥 보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하다 못하여 후장이나 입으로라도 상대를 해 주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혜경이 보지는 걸레 중에 왕 걸레다"인구 오빠는 간혹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내가 걸레의 전설이 될 거야"저도 안 지고 맞받아 대꾸를 하면서 섹스를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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